정말 온갖 것들을 다룬다.노래는 아니고, 거리를 두면서 화자 아닌 오만 오브제를 얘기한다.대체로 냉소적이다.정서가 거의 드러나지 않아서 매우 건조하다.“모두 그러하다 버림받은 섬처럼 외로운 표정들로 어제의 신문을 옆구리에 끼거나 바람막이로 세우고 시위자들처럼입들을 앙다문 채 차츰 남의 라면 국물처럼 밝아오는 수평선을 바라본다” 18“의자는 기다리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버티며 늘 지난 일처럼 앉아 있다” 57쓸씁할 정도로 쓸쓸할 수밖에 없다
아주 얇다.당시 시집을 낸 지 1년도 안 됐는데, 새 지역 출판사와의 인연으로 시인의 고향 고령과 관련돤 시들을 모아 낸 시집이라 그렇다.마지막에 실린 산문 한 편도 그저 고향에 있는 암각화를 얘기할 뿐, 특색이 없는데 실려 있다. 구색 맞추기 버거운 냄새가 진동한다.그렇다고 허투루 쓴 시들만 있느냐. 그럴리가. 이하석인데. 촘촘하다. 사유와 언어가. 고향이라는 소재에 강하게 속박되어 답답할 수 있을 시집이 오히려 길지 않은 시들로 경쾌하면서 시원하다.“시상에는 꽃질*만 있는 기 아인기라 돌질도 가시질도 우짜든동 비키지 말거래이니는 말하는 기 시인이다만 시인이라고 딴말 할 수는 없는기라 저 들 당글 그릇 살 돈도 벌어가믄서 해야제우짜겠노내사 자꾸 한 입으로 두말 했뿌렀네 그러타꼬 둘 다 틀린 말 아이끼네 다 니가 알아서 할 일이제”* 꽃질: 필자의 고향마을 이름. 화곡으로 불렸다. 이 곳에서 는 길을 〈질>이라 한다.- <어무이 말씀>모든 예술가들의 질곡, 숙명.시인은 어떻게 풀어냈을까.
책 표지가 다르다.2002년 희대의 망작 <성냥팔이소녀의 재림>이 망하고 바로 낸 시집이다.그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타이에서 찍었는데, 찍으러 가는 길에 시가 쏟아져 그것을 묶었다고 한다.불교에 지대한 관심이 있는 듯, 여러 스님들과의 일화, 금강경과 화엄경 등 경전, 내소사나 통도사 등 여러 절 들을 많이 다룬다.근본적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주제인데,그래서 이별도 없고 다 없다는데수많은 영화 관련인들의 밥줄을 끊고도시 안에서 그는 참 태평하다.아몰랑 시전으로 읽혀 썩 유쾌하지 않은데,시 작법에도 뭐 1도 신경 쓰지 않아 뻔하지 않으니 좋다.뜻밖에 읽을 만하다.술술 잘 읽힌다.술 냄새 가득하고.이후 결국 영화판에 발을 다시 붙이지 못했는데, 요즘은 뭐하고 노시려나.
가을이 슬그머니 와“누군가의 어디를 따뜻하게 해준다”라고 한다.뿌연 필터를 낀 듯사물과 사람, 정서가 부드럽다.흐릿할 수도 있다는 점이 문젠데.이를테면 ‘풀 뽑기’ 하다가 만난 뽑히기 전에 핀 ‘풀꽃 한 송이‘처럼 이름을 불러주지 못할 때.비문이 날리듯, 옛 필름에 낀 잡티가 흐르는 듯한 것이 좀 아쉽다.쭉 그러는 것은 아니라 화엄매나 함박꽃, 다래나무 등 이름을 지대로 불러주기도 한다.시인의 연세를 찾아보지 않아 모르겠으나, 노년의 자연스러운 온화가 그윽한 시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