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석이 사랑을 읊다.말랑말랑할 리가?“따지고 보면 지구는일인용 지구이다바로 나 자신 말이다당신을 만나 지구는이인용 텐트가 되었다” 49, 사랑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대체로 그렇지 않다. 제목 그대로 ’사랑의 다른 말‘을 한다.“떠난다는 것은 언제나 몸을 한 겹 벗는 일이다” 57“생의 길은 뻗어있는 듯이 보이지만 언제나 원을 그리고 있다고” 63처럼 멀어지는 어떤 것이 와 닿는다.그림 한 편이 시 한 편과 함께 있다. 그림은 시에 종속되어 있다가 뒤로 갈수록 자유로워진다.“사랑은 마땅한 것이었지만 사랑의 속은마땅하지 않았다” 89“나는 당신을 만난 날을 세지 않는다 그날들은 너무 연약해서 쉽게 찢어지는 비닐봉지와 같다” 101
제목이 도발적일 뿐평범한 과학책이다.저자는 식물 화분학자. 가루받이라 부르는 수꽃가루의 암꽃에 이르는 과정, 이후 열매를 맺기까지의 과정은 동물의 수정과 다르지 않다는 얘기. 그러니 섹스라 부르지 못할 까닭이 없다.다만, 6-70년대에 나온 책을 86년에 번역한 터라 책의 삽화 등이 좀 예스럽다.
한 공간, 여기(here)를 바탕으로온갖 시간의 중첩. 한 화면에 여러 시간이 겹친다.미국의 저택. 기원전 황무지나 빙하기나 물속이었거나 하던 때로부터 들소가 살고 미국의 시간이 겹치며 이어진다.당연히 인물들도 다양.그렇게 지금의 적층을 아득하게 보여주며 끝날 수도 있건만작가는 더 간다. 미래로.근미래의 첨단, 방사능 오염, 결국 인류가 사라지는 시간도 등장.마지막 장면은 1957년 분홍 원피스 입은 여인의 대사. “Now I remember.”
짧은 글의 연속.다른 이의 글을 소개하는 내용이다.당연히 여전히 어떤 구절들 앞에서 머뭇거리고 서성이고 망연해진다.‘안다는 것은 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는 과정에서의 관계성이다. 인간은 자기 외부의 타자를 통해서, 나와 다른 타인을 통해서,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부분적으로 자기를 인식할 수 있을 뿐이다.’‘정주는 항상 흘러가서 닿은 결과고, 또다시 흘러갈 수도 있다는 예감이다.’‘치유는 남이 해주는 위로나 호통이나 반성이 아니다. 자신에 대한 태도와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새로운 인식! 1950년작 원제처럼 《신경증과 성장-자기 실현을 향한 투쟁(Neurosis and Human Growth: The Struggle Toward Self-Realization)》이다. 자기 문제로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Struggle’이라는 표현의 절실함을 알 것이다.’
평생을 이인증에 시달린 예술가.쿠사마 야요이는 자신의 정신과 몸이 따로 있는 듯한 상태, 늘 자신을 타자처럼 관찰하는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1929년 생이고 아직 생존 중.1970년대 미국에서 해프닝, 설치 미술 활동을 전위적으로 하였다고 한다.그 호박 그림으로 유명하다. 비싸게 거래된다고 한다.그의 삶을 어린 시절부터 찬란하게 보여준다.독특한 삶, 예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