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 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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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뿐만 아니라 아이를 위한 육아에 있어서도 요즘은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참으로 많이 언급되는 것 같다.

이 얘기는 역설적으로 자존감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좋게 얘기하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지만 부정적으로 보자면 남의 시선이나 눈치를 많이 본다는 우리나라 사람들.

도대체 이 '자존감'은 무엇이고 어떻게 하면 '자존감'을 높일 수 있을까?


"자존감은 유전적인 산물이 아니고 순수하게 개인적인 산물도 아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사회적인 산물에 가깝다. 사실 사람이 사회적 존재가 아닌 동물이었다면 자존감 문제는 아예 제기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자존감은 자신이 사회적 쓸모가 있는, 사회적 가치가 있는 사람이기를 바라는 기본 욕구가 얼마나 실현되었는지를 직접적으로 반영하는 심리이다.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사람의 본성적 열망이 곧 자존감인 것이다. 따라서 사회를 떠나서는 자존감도 없다."

혼자나 극소수의 사람들만 모여 살아가는 곳이 있다면 아마도 자존감이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아끼고 존중하는 자신 내부의 성숙한 사고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씨족 사회에서 점점 더 발전하여 현대의 커다란 사회를 이루는 인간의 사회적인 습성의 특성상 많고 적음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누구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하려는 잠재적인 열망이 있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러한 사회적인 특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정의하고 있다.


"자기존중의 욕구는 인간 본성에 기초하는 기본 욕구이다. 따라서 건강한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을 유지하고 높여나갈 수 있다. 반면 병든 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사회 구성원들이 자존감 손상이나 상실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의 한국 사회는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강한 사회일까, 아니면 사정없이 파괴하는 병든 사회일까?"

우리 한국 사회가 자존감을 지켜주는 건강한 사회라고 묻는다면 쉽게 '그렇다'다는 대답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최근 몇 년의 선거들을 보다 보면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사회적 갈등이 언론 지상에 오르내린다. 지역, 세대뿐만 아니라 최근의 젠더 문제까지 세월이 흐를수록 갈등이 해소되기보다는 점점 더 증폭되어 가는 느낌이다.

사회 내부적인 갈라 치기들이 실제 현상이든 아니면 의도한 바든 간에 악화되어 가는 상황에 가슴이 아플 뿐이다. 사회에서 갈등은 없을 수 없겠지만 이를 해결하기 위한 건전하고 발전적인 대화가 아닌 서로의 주장만 소리 높여 얘기해서는 평행선만을 달릴 뿐이다. 건강한 사회에서 건강한 자존감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무력감과 정반대로 낮은 자존감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바로 존중받기 위한 도구에 집착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도구를 획득하면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한다. 이 또한 결국 가짜 자존감에 불과하다. 안타깝게도 오늘날의 한국인들은 대부분 존중받기 위한 도구를 획득하는 데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들에게 존중받기 위한 도구란 한국 사회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들이 될 수밖에 없다. 학생의 경우에는 성적, 여성의 경우에는 외모, 직장인의 경우에는 연봉이 존중받기 위한 대표적인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명품, 외제차, 학력, 사회적 지위 등도 이러한 도구로 간주된다."

다른 사람의 내면을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의 외부적인 모습들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 외부적인 모습에는 외모, 지위, 권력, 명예, 돈 등이 있겠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고 실제적으로 그렇게 하는 것이 더 쉽기 때문에 외부적인 모습, 도구에 집착하여 스스로를 높이려고 한다. 특히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에 대한 갈망은 참으로 대단하다. 돈만 많다면 많은 사람들이 우러러보기도 하고 돈으로는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물질 만능주의, 물질 숭배주의가 팽배한 사회는 결코 건강한 사회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외부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 본성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고 그 가치를 인정해 주는 사회에서는 이 자존감이라는 사회적인 문제는 아마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에도 나를 수용해 주며 사랑해 주고 존중해 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해 주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굳건히 고수하도록 돕는다. 즉 선한 이웃들과의 굳건한 연대나 건강한 소속 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인 것이다."

집단이나 사회의 특성과 문화를 도외시한 채 혼자만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고수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특히나 집단으로부터의 유무형의 압력을 견뎌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 보니 자기가 현재 속한 사회의 특성이나 가치관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사회에서 설령 혼자만 정상적이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회에서는 반대로 여겨질 공산이 크다.

사회를 보다 건강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그 구성원들이 해야 될 의무이지 몫이다. 지금껏 존재해 왔던 수많은 문제들을 슬기롭게 해결해 왔던 우리 사회와 구성원들의 잠재력을 충분히 믿고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보다 건전하고 건강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러다 보면 성숙된 사회에 속해 있다는 소속감은 구성원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가짜 자존감이 아닌 진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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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행복과 삶의 의미
강영석 지음 / 지식과감성#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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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여러 미디어에서 행복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질적인 풍요는 인류사에 있어서 그 어느 시대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풍족하지만 왜 시간이 갈수록 행복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까?

그것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에만 치중한 나머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정신적인 부분에는 소홀히 한 인간의 그릇된 욕심이 야기한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모두가 행복해지기를 원하지만 정작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진정한 행복이란 작고 소소한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지 않다면 행복의 기준선을 너무 높게 설정했기 때문이다. 일상의 작은 즐거움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말고 움켜쥐는 연습을 하라. 행복은 매 순간 경험하는 일상적인 것들을 만끽하고 음미하며 감탄하는 습관에 의해 결정된다. 마치 향기 나는 와인을 음미하듯 즐거운 감정을 최대한 향유하는 게 행복의 지름길이다."

'소확행'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작지만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좋고 바람직한 일이다. 우리가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행복의 기준선을 너무 높게 잡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여러 많은 사람들이 보기에 분명히 좋은 직장에 높은 연봉,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정작 당사자는 더 높은 것만 바라볼 뿐 현재의 위치에 만족하지 않는다.

우리가 매일 지극히 평범하게도 잠자리에서 일어나 두 발로 걸어서 직장에 출근하는 모습은 중한 질병으로 몇 개월, 몇 년 동안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지극한 행복일 것이다. 사람은 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지만 행복에 대한 눈높이는 낮추는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요즘같이 화창한 날씨에 미세 먼지 없는 맑은 하늘을 볼 수 있는 여유와 함께 말이다.



"부정성 편향으로 인간은 행복해지기보다 불행해지기가 더 쉽다. '불행은 부르지 않아도 잘 찾아오지만, 행복은 불러도 잘 찾아오지 않는다.'거나 '행복은 찾아와도 금방 달아나지만, 불행은 한번 찾아오면 잘 떠나가지 않는다'라는 말처럼 불행이 행복보다 우리와 가까운 곳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부정성 편향은 예전에 인간이 동물과 생사를 함께 하던 약육강식 시대에 생존을 위한 본능으로 뇌에 새겨진 것이라고 한다. 포식자의 출현, 화재나 홍수,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에 나타나는 위험 신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개체는 위험한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개체는 자연스럽게 도태되고 말았다.

그러한 본능은 현재의 생활에서도 그대로 태어나 인간은 이익보다는 손해에 훨씬 더 민감하고 강렬하게 반응한다. 이익으로 주어지는 혜택에 대해서는 당연하고 덤덤하게 생각하지만 사소한 손해에 대해서는 너무나도 큰 부당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성 편향은 행복의 추구에 있어서는 커다란 장애물이라 할 수 있다.

국어 92점, 영어 85점, 과학 75점, 수학 42점을 받은 자녀의 성적표를 보고 왜 수학 점수가 이렇게 낮은지 꾸중하고 비판할 것이 아니라 국어, 영어를 잘하는 것에 대한 칭찬을 먼저 볼 수 있는 시야의 전환이 필요하다. 내가 가지지 못한 것, 자녀가 부족한 것만 봐서는 결코 행복의 길에 이르지 못할 것이다.

노력 ==> 성공 ==> 행복

지금까지 행복의 방정식은 위와 같았다. 현재 열심히 노력하면 훗날 성공할 것이고, 성공하게 되면 행복을 쟁취할 수 있다고 말이다.

행복 ==> 성공

하지만 위 방정식은 더 이상 맞지 않다. 성공하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것, 노력하여 행복해지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성공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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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 - 감정을 다스리는 심리 수업
황양밍.장린린 지음, 권소현 옮김 / 미디어숲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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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흐를수록, 나이를 먹을수록 불안 심리가 더 커지는 것은 인지상정인 것일까?

인생에서 남은 날보다 살아온 날이 더 많다는 느낌이 들수록, 준비되지 않음에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는 후회와 자책감에 불안감은 더욱 커지는 것 같다.

불안 심리를 완전히 없앤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이고 어떻게 하면 이런 상황에 보다 현명하고 슬기롭게 대처할 수 있을까?


"마틴 하이데거가 말한 '함락'을 심리학 용어로 바꿔 표현하면 가장 익숙하고 편안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곳, '안전지대'이다. 하지만 계속 안전지대에 머무른다면 우리는 발전할 수 없다. 그런데 불안은 이러한 안전지대를 뛰쳐나갈 기회를 제공한다."

바로 지난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우리 뇌는 본능적으로 쉽고 편한 방향으로 적응하려는 습성이 있다. 이 상태가 바로 자기 계발서에서 많이 언급하는 '안전지대'이다. 당연히 이 상태에 머무르게 된다면 발전은커녕 퇴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러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여러 방법 중에서 이 책은 아이러니하게도 '불안'을 언급하고 있다.

부정적이고 안 좋은 이미지로만 인식되어온 불안은 이와 같이 긍정적인 면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상 모든 만물은 양면성을 띠고 있는 법이다. 미래에 대한 '불안'은 현재의 '나'가 움직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리사 펠드만 바렛 교수는 30여 년간의 연구를 통해서 2.0버전의 새로운 감정 이론을 제시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감정은 태어날 때부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며 수동적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대뇌가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본 감정이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감정으로 인해 표출되는 반응 역시 고정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감정은 우리 몸에 '강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것이다. 불안을 비롯해 다양한 감정은 우리의 대뇌가 만든다. 우리는 감정의 노예가 아닌 주인이다. 건강한 신체와 왕성한 에너지를 유지하고 다양한 인생 경험을 하면 감정을 장악할 수 있고 외부의 변화에 좌우되지 않는다."

몰랐다. 아니 오해했다는 것이 조금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감정이라는 것이 본능에 가까워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즐거운 즉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인 희로애락이 뇌에 새겨진 본능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저명한 심리학자의 주장대로라면 이러한 감정도 인간 개개인이 직접 만든다는 것이다. 감정을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에 일정 부분 감정의 진폭에 대한 변동성은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롯이 개인의 다양한 경험과 성장 배경, 환경 등에 따라 달리 경험하는 것을 기반으로 하여 대뇌가 만든다는 것이다.

그렇다는 얘기는 외부의 변화에 흔들릴 필요 없이 굳건한 감정을 우리 스스로가 만들 수 있다는 얘기다. 독서를 통한 간접경험이든 사람을 직접 대하는 직접경험이든 다양한 경험을 쌓는다면 우리 감정을 좀 더 풍부하고 풍요로울 수가 있고 다양한 경험을 통해서 외부의 어느 정도 수준의 충격에는 견딜 수 있는 내성을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당연하겠지만 감정의 변동이 줄어든다면 자연스럽게 불안감을 느낄 여지도 적어질 것이다.


"관계의 불안에서 반려자, 가족, 친구 등 사회적 관계에 놓인 사람들과 잘 지내는 방법을 살펴보았는데, 사실 가장 중요한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이다.... 그럼 어떻게 해야 자신을 존중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과 연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과 무엇을 할지,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이런 식으로 자신과 연애를 해 보자."

인간관계는 사회생활을 영위함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곤 한다.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치중하게 되고 정작 중요하게 챙겨야 할 자기 자신은 소홀히 하게 마련이다.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수가 쉬운 일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거기다가 다른 사람에게는 한없이 유한 잣대로 판단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만 점점 더 쌓일 뿐이다. 이러한 감정은 앞으로의 여러 가지 일을 준비하고 실행함에 있어서 불안의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 얘기하는 방법이 좋은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애인이라 생각해 보자. 애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하는 몸짓이나 행동을 스스로에게 하면 되는 것이다. 실수를 하더라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고 잘한 게 있다면 스스로에게 칭찬을 하며 무엇인가를 이루어냈다는 성취감을 느낄 때 자신에게 선물을 주어 기념하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감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경우가 많다. 자신을 먼저 아끼고 사랑한다면 인간관계에서 오는 걱정과 불안은 많은 부분 덜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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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른 뇌에 행동 스위치를 켜라
오히라 노부타카 지음, 오정화 옮김 / 밀리언서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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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계발의 핵심은 바로 행동력, 실천력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간의 본성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편하고 쉬운 것을 찾아가게 마련이고, 자기 계발은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가야만 하므로 고민이 필요하고 결단이 필요하고 의지가 필요하며 스스로 힘든 길에 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쉬고 싶고, 미루고 싶고, 편하고 싶고자 하는 마음을 떨치고 본능을 거스를 수 있을까?

시중의 수많은 자기 계발서들이 동일한 주제로 얘기하고 있는데 이 책은 어떤 특색 있는 내용을 보여주고 있을까 궁금해진다.


"인간의 뇌에는 생명 유지를 위해 가능한 변화를 피하고 현재 상태를 유지하려는 방어 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뇌에는 '가소성'이라는 성질이 있어 아주 조금씩이라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 다시 말해 10초 정도의 작은 행동이라면 뇌는 변화에 대응할 수 있다. 그래서 10초 액션이라는 작은 한 걸음만으로도 측좌핵을 자극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다. 의욕이 불타오르기를 기다린다고 해도 영원히 행동하기란 불가능하다. '일단 행동'하면 의욕은 그 후에 따라오는 것이다."

현재 인간은 만물의 영장으로 고도의 발달된 문명을 바탕으로 지구상에서 유일무이한 지배종이 되었지만 수만 년 전만 하더라도 약육강식의 세계에 그대로 노출되어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하던 처지였다. 그때 당시에 우리 몸의 DNA에 새겨진 생존 본능은 여전히 남아있는데 뇌라고 해서 다를 바는 없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상태가 안정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당연히 뇌는 생명 유지를 위해 가능한 한 변화를 피하고 현재의 상태를 지속해서 유지하려는 본능이 작동하게 된다. 이러한 원시 시대의 삶과 현대 문명의 삶의 다름에서 오는 생활 방식의 차이가 우리로 하여금 변화를 이끌어 내기 어렵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 뇌의 '측좌핵'이라고 불리는 곳에 자극을 주면 의욕이 고취되거나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분비되게 되는데 이러한 도파민의 분비가 바로 행동력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스위치는 한번 On이 된다고 해서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서 지속적으로 스위치를 켜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큰 변화를 위한 노력이 아니라 작은 변화는 받아들이는 뇌의 '가소성'이라는 성질을 활용하여 아주 작은 행동이라도 바로 시작하면 된다. 운동하기 싫고 공부하기 싫더라도 막상 운동화를 신고 밖에 나가거나 무작정 책상에 앉게 되면 의외로 쉽게 그 상황을 즐기는 자신을 발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의욕은 내부에서 심리적으로 아무리 생각해 봤자 불타오르지 않는다. 진실은 행동 뒤에 의욕이 따라온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행동하는 이유를 단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바로 '고통 회피'와 '쾌락 추구'다. 고통 회피란 싫어하는 것을 회피하기 위한 행동이다. 사람은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창피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 행동한다.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이른바 '절박한 상황에서 치솟는 초월적인 힘'이다. 반면 쾌락 추구는 '원하다'라는 욕구다. 원하는 결과를 얻거나 꿈과 목표를 실현하는 등 모든 '즐겁고 기쁘고 행복한' 감정을 얻기 위한 행동이다. 당신은 평소에 고통 회피와 쾌락 추구 가운데 어떤 행동 스위치를 사용하고 있는가?... 일단 6개월 후 혹은 3년 후의 '미래'를 떠올려 보자. 머릿속에 미래를 그리면 가슴이 설레는 사람은 쾌락 추구형이다. 그에 비해 미래를 생각하면 두근거리기보다 불안과 초조함으로 인해 기분이 우울해진다면 그 사람은 고통 회피형이다. 이는 개인의 개성이기에 무엇이 '좋다. 혹은 나쁘다'라고 할 수 없다. 우선은 자신의 '행동 스위치'가 더 쉽게 켜지는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을 알고 나서 각 스위치를 켜는 방법을 익힌다면 행동으로 쉽게 옮길 수 있다."

책의 이 구절을 보고 돌이켜 보면 보다 젊었던 2,30대 때는 '쾌락 추구'형 인간에 가까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전형적인 '고통 회피'형 인간의 유형을 띄고 있는 것 같다. 책에서는 두 개의 유형이 개인의 개성이라고 얘기하면서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고 얘기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현재 나의 '고통 회피'형은 일의 시작에 있어서 초기의 중요한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미루고 미루다 절벽 가까이에 내밀렸을 때 집중하며 실행하는 유형이다.

쾌락 추구형이 보다 능동적인 유형이라면, 고통 회피형은 수동적인 유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래를 꿈꿨을 때 자신이 세운 계획을 달성하여 기뻐하고 보다 성장된 모습을 그리게 된다면 이는 자연스럽게 현재의 나에게 커다란 동기 부여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창피한 상황이 떠오른다면 그러한 암울한 상황을 타파하고 피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지만 아마도 많은 수의 사람이 회피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까 싶다.

어쨌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통용되는 절대적인 것은 없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슨 유형의 사람인지를 우선 파악하는 것이 자기 계발의 시작점이 아닐까 생각한다.



"생각한 만큼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더 이상 결과를 고집하지 말고 행동에 집중하자. 참고로 앞에서 서술한 '10초 액션'은 행동 목표를 세분화한 것이다. 행동 목표를 설정해도 좀처럼 행동 목표를 향해 움직일 수 없을 때는 '10초 액션'을 활용하면 착실하게 실행할 수 있다."

책의 이 내용을 보며 사람들이 왜 쉽게 행동하지 않고 행동하더라도 금방 그만두게 되는지의 원인을 알게 된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계획을 세움에 있어서 너무나도 결과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아래의 몇 가지를 예를 살펴보면,

-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쓴다.

- 여름휴가까지 체중 5kg을 감량한다.

- 토익 점수를 800점 이상 획득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유형의 계획을 세웠고 앞으로 세울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목표)은 너무 큰 개념이고 결과 지향적이라는 것이다. 학생이든 직장인이든 대부분의 경우 그 사람의 성과는 결과를 보고 판단하게 되어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결과 지향론적 사고에 푹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결과를 달성하지 못하게 되면 나를 움직이게 했던 원동력은 순식간에 사라지게 마련이다.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달성하지 못하여 포기하고 그러고 얼마 뒤에 또 비슷한 계획을 세우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계획을 보다 세분화 시키고 결과 지향적인 것이 아닌 행동 중심적으로 바꿔 보자.

- 여름휴가까지 체중 5kg을 감량한다. --> 하루에 30분 이상 걷기

- 토익 점수를 800점 이상 획득한다. --> 하루에 기출문제 10문제 이상 풀기

보다 작은 단위의 계획은 서두에서 얘기했던 '우선 행동하자'의 개념과 일치하며, 세운 계획의 실천을 통해 '나도 계획을 실행할 수 있구나'하는 즐거움과 함께 누적된 노력이 자연스럽게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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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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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를 처음 접했던 때는 도서관 자기 계발 코너에서 여러 책을 뒤적거리다 '1천 권 독서법'이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 잠시 잠깐 살펴봤을 때다.

그 후 3~4년의 세월이 흘러 이렇게 우연찮은 기회에 다시 만나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당연히 저자의 이름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고 저자의 집필 도서 소개 글을 보고서야 생각이 났다.

흔하디흔한 자기 계발서의 하나로 생각하고 아주 잠깐 읽어보고 말았었는데 저자가 과거에 이렇게 큰 아픔과 상처를 가졌을 줄은 그 당시에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친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고아원에서 자라다 다섯 살에 입양을 하게 되지만 그때부터 시작된 양어머니의 아동 학대. 27살이 성인이 될 때까지 고스란히 정서적 폭력, 언어적 폭력, 신체적 폭력에 노출된 그녀의 과거 고백을 듣다 보면 감정이 무뎌질 대로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나의 가슴에도 적지 않은 파문이 일렁임을. 양어머니에 대한 화가 치밀어 오름을 저자와 동일한 시점에서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요즘은 매체의 발달과 인권 신장의 사회적 분위기로 아동 학대가 많이들 드러나고 사회적인 경각심도 예전에 비해서는 더할 나위 없이 커졌지만, 3~40년 전만 하더라도 아동 학대는 훈육과 사랑의 매로 포장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가느다란 핏줄기와 함께 칼자국 근처가 부풀어 오르면서 간지러웠던 그 순간, '죽으려던 정신'과 '살려는 육체'의 상반된 모순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참다못한 그녀는 결국 중2 때 자살을 시도하게 되지만 다행히도 살려는 육체의 아픔을 깨닫고 더 이상의 시도를 멈추게 된다. 괴로움과 아픔, 슬픔이 점철되어 삶의 포기도 뜻대로 되지 않았던 그녀의 삶에 도대체 어떤 희망과 의지가 있었기에 지금까지 견뎌왔던 것일까?

"하지만 이제는 나 자신이 되어 살아 봐도 괜찮지 않을까 조심스레 생각해 본다. '오랫동안 수고했어. 살아남아 줘서 고마워. 지금 모습 그대로 한번 받아들여 보자'라고 나에게 속삭인다."

왜 사는지, 왜 살아가는지 묻는다면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이와 관련하여 책의 마지막 챕터에 있는 글이 뇌리에 깊이 남는다.

"잘 살고 싶어서 펼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으며 '내가 오늘도 죽지 않고,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뼈 때리는 질문을 마주했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말하면서 유시민 작가가 가장 많이 언급하는 것은 '죽음'이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는 책 속 질문이 마음을 콕 찌른다. 네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대라고 말하는 것 같다."

왜 사는지 모르겠다,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그러면 왜 자살하지 않는가?라고 반문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삶이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듯이 죽음도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한다.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지극히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며, 어떻게 살지는 오롯이 자기 자신의 몫인 것이다. 삶의 시작은 주어졌지만 방향과 길은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는 다시 오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나는 오늘을 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고 누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수용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잊고 싶고 감추고 싶었던 과거를 고백한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불안한 미래와 스트레스 받는 오늘의 삶 속에서 저자가 던지는 여러 메시지는 나에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용기를 내서 한발 더 내디디라는 크나큰 응원으로 느껴진다.

감사합니다. 오늘을 살아 가게 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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