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지났고 아이들의 시험이 거의 마무리 단계다.

추석 땐, 삼호랑 잠시 커피를 마셨다. 부대 앞 두 개의 비올라 2층에 '대안공간 숲'이라는

카페에서였는데 분위기가 괜찮았다. 주인장은, 서울말씨로. "어제 연주를 했더니 팔이 좀 아파서 서빙이 어설프다."고 하면서 아주 친절한 서빙을 해 주셨다. 그러고 보니 피아노와 드럼이 세팅되어 있고, 실제 연주가 가능한 공간이 구석에 있었다. 부대 앞에서 약속이 생기면 늘 들어갈 만한 카페을 알지 못해 난감했는데, 정해놓고 갈 곳이 생겨 반가웠다.

삼호를 만나면 꼭 부대 안을 한바퀴 돌게 된다. 평소에 동선이 단조롭다니보니, 큰 맘 먹지 않으면 바깥 바람을 쐬며 산책하는 일이 드물기 때문에, 간만의 학교 산책은 참 좋다.

그런데, 1년에 한두 번 들리는 학교의 모습은 너무나 변화무쌍하다. 이번엔.. 시계탑이 없어지고 또 무슨 공사를 하고 있더라. 체육관 쪽도 허물어지고 아직 높은 담장이 쳐진 채 공사를 하고 있던데, 이번엔 시계탑을 허물고 그 아래쪽으로 지하 주차장을 만드는 공사가 또 진행중이었던 거다. 돌아다니다 보면, 예전엔 길이었던 곳이 막혀있기도 하고, 건물이 서 있던 곳에 잔디와 조각들이 흩어져 있기도 하다. 옛날 동아리들이 있었던 건물이 그새 더 많이 낡아서, 새로 들어선 번쩍거리는 첨단 건물들과는 따로 노는 것같은 인상을 풍긴다.

변함이 없는 건 어두워질 무렵의 가로등 불빛들과 공기 뿐인 거 같다. 벌써 20여년이 흘렀으니까, 전의 모습 그대로 있기를 바라는 건 터무니 없지만, 그래도 마음 한 편 용도와 내부 구조를 알지 못하는 건물들이 주는 낯섦과 떠밀어냄이 조금 서운하긴 하다. 하지만.. 약간 묵직하면서도 촉촉하고 부드러운 학교 공기는 여전히 날 편안한 기분에 젖게 만든다. 그래서 그 공기를 마시면서 천천히 걷는, 1년의 이 한두 번의 산책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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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10-0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계탑이 없어졌다고??? 이럴수가... 그럼 그 밑에서 술취해서 자던 내 추억은 어디로 갔을까? ㅠ.ㅠ

점순이 2007-10-07 01:45   좋아요 0 | URL
추억은 이제 우리들 기억 속에서만 영원해진 거지.. 암튼 부티나는 건물들이 구석구석으로 많이 들어찼더라~ 인문대 건물 아래에 있던 동아리 방을 다 터내고 원래 건물의 구조를 되살려 놓은 거는 맘에 들더라. 언제 학교 앞에서 만나게 되면 같이 한바퀴 돌아보자~^^
 

 

홍세화의 '나는 파리의 택시 운전사'라는 책으로 인해 널리 알려지게 된 말에 '톨레랑스'가 있다. 나 역시 우리 사회의 폐쇄성과 지나친 민족주의적 성향에 자괴감을 느끼며 프랑스적 관용에 대해 부러움을 느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고3 언어영역 문제를 풀다 보면 다양한 지문들을 접하게 되는데, 가끔은 사회과학 서적에서 이름 꽤나 익숙한 사람들의 글도 실려 반갑게 읽게 된다. 그리고 드뎌.. 박노자의 글까지 접하게 되었다. 글 내용도 나의 습자지만한 지식을 바로잡아 주는 내용이었던지라, 출제 의도나 문제 풀이와는 무관하게, 이 사람이 누구인지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침 튀겨가며 애들에게 소개했던 기억이 또렷하다. 기억할 만한 글이라 여겨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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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적 똘레랑스와 같은 표현은 나에게 귀에 거슬린다. 17~18세기까지만 해도 세계의 주요 문명권 중 유럽에서 톨레랑스가 가장 부족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러했다면 문제는 안 된다. 그러나 현재의 유럽이 보여 주는 모습도 톨레랑스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그런데도 흔히 사람들은 ‘톨레랑스’ 하면 유럽을 떠올리는데, 그런 생각은 시정되어야 한다.

계몽주의의 보편주의적 사상에 입각한 톨레랑스가 사회적 가치로 받아들여진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인데, 그 배경에는 여러 요인들이 작용했다. 파시즘의 광기에 반발하는 측면도 있었고, 노동 계급의 꾸준한 투쟁의 성과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1945~1973년에 전례 없던 경기 호황이 있었다는 것이다. 호황의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을 ‘파트너’로 삼아 잉여 가치의 일부분을 나눠 줄 여유도 있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새 노동력이 필요했다. 현재 유럽 연합 총인구의 약 5.5%에 이르는 이슬람계 인구는 그 당시 알제리 출신들의 프랑스 이민, 모로코 출신들의 네델란드 이민, 터키 출신들의 독일 이민 등으로 형성되기 시작했다. 1960년대 말 독일의 경우 해마다 난민 신청자의 85%에게 체류 허가를 내 주는 것이 보통이었다. 난민에게 비교적으로 덜 잔혹한 노르웨이에서마저 80%의 신청자가 퇴짜를 맞는 오늘의 현실에서 보면 신화처럼 들리는 이야기다. 그 때가 바로 ‘톨레랑스의 황금기’였다.

유럽 전후 자본주의의 황금기는 영원하지 않았다. 1970년대에 오일 쇼크에 빠져 성장률과 이윤율이 둔화되었고, 1980년대에 탈산업화가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부터 제조업이 동유럽, 중국 등지로 이전되었다. 그에 따라 유럽 지배자들에게 미숙련 노동에 대한 수요가 급감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동유럽 등지의 ‘문화․인종적으로 동질적’인 노동의 단기적 수입, 이용이 가능해졌다. 이때 실업의 화살은 이슬람 계통 이민자들에게 날아왔다. 유럽 현지 수준의 월급을 요구하고 노조에까지 가입해 분쟁을 일으킬 수도 있는 아프리카, 중동 출신 이민 노동자들을 쓰느니, 차라리 우크라이나 출신 노동자를 6개월 간 들여와 한 달에 700~800달러만 주고 실컷 부려먹은 뒤에 보내 버리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유럽 자본가들의 계산이었다. 톨레랑스는 겉으로만 존재할 뿐 속으로는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경제적 이용 가치를 상실해 게토(예전에 유대인들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규정해 놓은 거주 지역)에 몰려 사는 복지망에 의존해서 살게 된 이슬람 계통 빈민 이민자들에게 정치적 이용 가치가 붙어 버렸다. 덴마크, 네덜란드 등지의 극우 정권들은 반이슬람 광풍을 이용해 집권했고, 이민자 청년들을 ‘쓰레기 인간’으로 명명해 구설수에 오른 프랑스 정치인도 같은 전략을 구사해 대통령직을 노리고 있다. 톨레랑스는 빈 명분이 되었고, ‘엥톨레랑스(불관용)’이야말로 정치판에서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고 있는 지경이다.

경제적 침체기와 첨예해진 경쟁 시대에, 유럽 지배자들에게 톨레랑스는 허구이다. 그러나 만약 유럽 백인 노동 계급이 인종과 종교를 초월하는 연대만이 살 길이라는 사실을 뒤늦게나마 제대로 파악하고 행동에 나선다면 톨레랑스는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도 있다. 지난 여름에 영국 항공 기내식 납품업체 게이트 구르메가 주로 이민자 여성인 수백 명의 노동자를 전격적으로 정리 해고하자, 주로 백인 남성인 수화물 처리 노동자들이 주동이 되어 들고 일어나 런던 공항이 마비되어 악덕 기업주인 영국 항공사가 4천만 파운드 정도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요즘 특히 영국에서 이와 같은 연대 투쟁의 고무적인 사례들이 발생하는데, 이것이야말로 진짜 톨레랑스의 바람직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박노자 (출전은 잘 모르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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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오랜꿈 2007-09-21 01: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블로그에 이 글에 대해서 간략한 논평을 해두었음!
 

이영자의 반지 사건을 난 아마 평생 기억하게 될 거 같다.

티비에서 방송 복귀를 앞둔 이영자 집에 가서 이것저것 감정 해 보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이소라가 선물해준 반지가 가짜였다는 그런 내용이었다.

전소미가 대뜸 그랬다. "아무래도 저거 거짓말 같다. 방송 재밌게 할라고 억지로 짠 거 같더라."

난 "그럴리가~ 전국민을 대상으로 그런 사기를 어떻게 벌이노."

하지만 곧 밝혀진 바 그 모든 것은 짜고 친 고스톱이었음이 드러났고

난 바보가 됐다. "니는 와그래 순진하노~"

또 한번 세상 살기 참~~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내겐 참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내 눈과 귀로 보여지고 들리는 세상을 과연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 것인가.

뭐는 믿고 뭐는 믿으면 안 되는 것인가....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난 지극한, 말 그대로의 모범생이었다.

선생님들이 또는 주변 어른들이 나쁘다고 하면 나쁘다고 생각했고 맞다면 맞다고 믿었고,

하라는 건 하고, 하지 말라는 건 안 하고 살았다. 뭐 100%는 아니지만 89.9% 정도는...

근데 대학을 와 보니 그게 아니데...

스물에 처음으로 하지 말란 걸 하게 됐고 모든 주변 사람들의 생각에 맞서 싸웠다.

쉽지 않았지만 내 생각이란 걸 가지려고 했고 그 생각대로 살려고 노력했다.

그 후로 사회 생활 10년...

지금 난 예전 범생이의 길로 반쯤은 되돌아 와 있는 느낌이다.

다른 친구들과 달리-그들이 살아온 얘기를 들어보면 나랑은 참 달랐다는 생각-

비판하고 따지고 찾고 하는 등등은 게으르고 수동적인 나의 본성에 너무나 역행하는 노릇이다.

동기들과 선후배들은, 면면을 보자면 '반골'을 타고난 자들이다.

하지만 난 천성이 '순골'이다. 말 잘 듣고 시키는 것 잘 하는 게 주특기인 사람이다.

그런데 말이다... 세상은 이런 날 가끔 갖고 놀다가 들킨다.

이 순골인 나도 열불이 터질 만큼 세상은 나를 기만하고 모욕을 줄 때가 있단 말이다.

그래서 피곤하다.

세상에 배신 당하지 않기 위해 오감을 곧추 세우고 살아야 하는 건

정말정말 피곤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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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8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순골이야... ㅎㅎ
제목 보고는 순골이 도대체 뭐야 했는데 재밌는 말이네. 찬바람 부는데 감기 조심하고 따뜻하게 입고 다녀라.

2007-09-18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벽 3시에 늦은 생일 미역국을 먹다.

누군가 학원 달력에 내 생일을 메모해 둔 덕분(ㅜㅜ)에 오늘 하루 케익 촛불을 세 번 불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싫어서 조용히 넘어가려던 내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내 생일을 빙자해서 한 시간 놀아보려는 애들을 추스려 수업 하느라 진땀을 뺐다.

오늘 읽었던 글에 '콘트라 섹슈얼'과 '매트로 섹슈얼'에 대한 얘기가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 케익을 사온 건 남학생들이었고

여학생들은 포도를 한 상자 사왔다.^^ 내 주변에서도 이미 양성화의 징후는 짙었던 것이다.

여학생들의 발상이 재밌었다. 생일 선물로 포도라니.. 내 나이 때문이었을까..ㅋㅋ

애들은 벌써 내년을 걱정한다.. 내년엔 저희들 없어서 어쩔 것이냐고.. 내년에도 챙기겠다고..

학원일을 제 일처럼 걱정하는 애들이 너무 대견스럽다.

수능 끝나면 한판 신~나게 놀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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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7-09-12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생일? 맞다 나랑 비슷했었다 그치. 그러고 보니 우리 서로의 생일안챙긴지도 진짜 오래됐다. 사실 요즘은 내 생일도 가물가물 어떤때는 잊어버리고 넘어가니....
늙는다는게 이런거다라는 생각도 드네. 그래도 주변에서 챙겨주는 녀석들도 있고 기특하네. 생일축하한다야.... ^^

내오랜꿈 2007-09-12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이해가 안 된다. 새벽 3시에 늦은 생일미역국을 먹었다면 다음날이란 말인가? 니가 무슨 새벽부터 출근하는 사람도 아니고, 늦게 일어났을 거 아녀? 아점이나 점심으로 먹었으면 안 되냐? 모르는 사람이 보면 너 엄청 바쁜 사람인 줄 알겠다. 아무 시간대고 30분만 덜 자면 될 것을...다음날 3시에 생일미역국 먹은 게 무슨 자랑이라고...

그래도 뭐, 생일은 축하해줘야 하나? 쩝...

점순이 2007-09-13 02:55   좋아요 0 | URL
아눼~~ 늦잠은 당근 잤고요~ 낮엔 여기저기 다닐 일이 좀 있어서 바빴답니다~ 유시민을 일컬어 "정말 옳은 말을 정말 삐리리 없이 한다"고 한다던데 그 점에선 선배 역시 당할 사람이 없을 거에요~ 이건 생일 축하을 받은 걸로 해야할지 욕 먹은 걸로 해야할지..^^;
 

혼자 가을을 타다...

혼자 사는 거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다. 혼자지만 외롭지는 않다고.. 씩씩하게 잘 살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 생각해보면 그런 순간에도 옆에는 늘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 줬던 거 같다.

하나 둘 곁을 떠나 가면 어김없이 또 하나 둘 새로운 사람들이 그 자리를 메워줬던 것도 같다.

올 가을은 메워지지 않은 빈 자리들이 자꾸 날 텅 비게 만든다...

하루 종일... 허전함에 혼자 몸둘 곳을 몰라하던 내게 아이들이 왔다.

일이 보배라고 했던가..

생각만 많은 낮보다 아이들과 눈 맞추고 싸우고 웃고 떠드는 수업은 나를 잡아준다.

집중하게 하고 긍정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준다.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이 직업에서 순간순간 난 얼마나 벗어나고 싶어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수업을 잘 마무리하고 난 새벽이면 

하루 중 어느 때보다도 난 밝고 씩씩해진다.

이 중독성이 학원 생활 10년을 가능하게 한 것도 같다.

날 엄마처럼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이 아이들과 곧 또 이별을 해야 한다.

새로 만날 아이들과 정이 들 때까지는

올 고3들과의 이별로, 겨울 쯤 나 혼자 또 가을을 타게 될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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