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안에 자원봉사하러 가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다. 바쁘다는 건 핑계에 불과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마음을 덜어내지 않고 고스란히 담아두는 건 나의 몫이다. 대신, 태안 환경오염 사태의 좀더 본질적인 문제를 이번에 작은 기획으로 만들어 다음호에 싣도록 주장해 관철시켰다. 그런다고 마음의 짐이 덜어질리는 없다.

- 조중동은 물론 모든 매스미디어가 나서 '자원봉사'를 예찬한다. 마치 97년 IMF외환위기 사태 직후 벌어졌던 온 국민의 금 모으기 행사처럼 자원봉사를 나라 안의 모든 매스미디어가 나서서 상찬하고, 외국의 방제전문가가 했다는 '열흘 만에 두 달 작업할 양을 소화해냈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인용해 내뱉는다. '자원봉사'란 무엇인가? 그 성스런 본질을 애써 깍아내리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직접 가서 기름때 한 방울 거둬내지 못했으면서 그 자리에 계신 분들, 가신 분들을 욕되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자원봉사'가 이토록 과잉상찬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외환위기를 불러들였던 통치자들의 실책이 온 나라의 '금 모으기'로 뒤덮이는 동안, 언론이 '단군 이래 최대 국난'이라며 전 국민을 동원하는 동안 진실은 규명되지 않았고, 널뛰듯 올라버린 금리 속에 옷장 속, 금고 속에 꽁꽁 감춰둔 재화를 지켜낸 이들만 양극화의 혜택을 받았다. 본질은 열풍 속에 사라져 버렸고, 국난은 극복되었으나 거리엔 노숙자들이 넘쳐났다. 그것과 이번 태안 사태가 다르게 진행될 거라고 믿을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 97년 외환사태 이후 국가는 더욱더 많은 공공의 영역에서 후퇴하고 있다.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수많은 일들로부터 멀어지는 동안 자원봉사와 자발적 기부는 더욱 아름다운 행위가 되어가고 있다. 정부는 이번 태안 사태에 대해 사실상 아무런 보상도, 대책도 마련하고 있지 않다. 선박회사가 들어둔 해상보험으로 보상처리되고, 제도권 언론들이 입을 모아 대중을 해변으로 소환하여 기름떼를 제거한 뒤 어민들은 다시 버려질 것이다.

기부와 자원봉사는 물론 아름다운 행위이고, 공동체를 위한 민중의 자기구제 활동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출 때 아름다운 기부와 자원봉사는 세계 제일의 갑부 빌 게이츠와 소로스의 기부와 마찬가지로 자원봉사 역시 본의 아니게 민영화된 국가체제를 지탱해주는 마지막 보루가 된다. 선행은 언제나 아름답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이 같은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했어야 했고, 사태가 벌어진 뒤엔 이를 해결할 책무가 있으며, 사태가 해결된 뒤엔 이같은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언론이 해야 할 책무는 단순히 현상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 그러나 지금 예수님은 그곳에 계시다.

                                                                    12월 25일 <바람구두>서재에서 퍼 오다.

--------------------------------------------------------------------------------------

한 인터뷰가 생각난다. 자갈밭과 바위틈 구석구석 기름을 닦아내고 있던 한 어민에게 한 기자가 질문을 했다 .

" 이 모든 일이 무엇때문에 생긴 것 같나요?"

그 어부가 대답했다.

" 다 바람 때문이지유, 바람 때문... 바람이 이쪽으로 불어서....."

순식간에 목숨줄을 앗아가버린 인재 앞에서, 감히 그 원망과 울분의 화살을 국가에 돌리지 못하고 바람을 탓하고야 마는 어민의 순박함에 속터져하면서도, 모래벌과 갯벌을 뒤덮는 아름다운 봉사의 물결에 대한 언론의 "과잉 상찬!"에 잠시잠시 넋을 놓았던 것이 부끄럽다. 곧 신문 지상에는 국민의 자발적 봉사로 이뤄진 기적에 대한 여운만이 메아리 칠 것이고, 어민들의 피해 보상과 국가의 대책, 기름 유출로 인한 2,3차의 환경 파괴 문제는 슬며시 자취를 감출 것이다. 10여년 전 기름 유출 사고 때에도 어민들은 피해액의 10% 정도밖에 보상을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바닷속에 가라앉았던 기름들은 조금씩 해류를 따라 이동하고 있다. 남해로.. 공해로....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7-12-28 22: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점순이 2007-12-28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계를 핑계로 저역시 바라만 보고 있기 때문에 죄짓는 기분으로 뉴스만 지켜보고 있습니다. 유출된 기름을 뒤집어쓰고 죽어 널부러진 가마우지의 주검 위로, 곧 흙더미와 아스팔트로 뒤덮혀 질식해 갈 새만금의 생태계 참사도 자꾸 오버랩됩니다. 어쩌면, 아니 틀림없이 더큰 참사가 벌어지고 있는데도 언론은 어떤 호들갑도 떨지 않지요...

바람돌이 2008-01-07 2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디갔냐? 안보이네.... 여기서라도 보면 반가운데말이다. ㅎㅎ

2008-01-09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