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 한 입 크기 철학 4
클레르 마랭 지음, 알프레드 그림, 손윤지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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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 발달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인간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


한 입 크기 철학 시리즈 네번째 책의 질문은 미래에 관한 질문이다. 『인간은 미래에 어떻게 될까?』.

책을 읽기 전에는 진화에 관련된 질문일까 생각해봤는데, 읽어보니 기술 발달이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용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어느 정도 진화와 관련된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물학과는 거리가 있지만 새로운 인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가 있을 곳을 결정할 수 있다. 현재의 순간에 집착하지 않아도 관심이 가는 것을 선택할 수 있다. 현실 세계는 이제 '원하는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더 이상 무언가를 놓칠까 봐 전전긍긍하지 않아도 된다. 원하는 것은 그 즉시 얻을 수 있고, 동시에 나중으로 미룰 수도 있다. (p.28)


인간이 더욱 편리하게 사는 삶을 위해,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왔다. 신기술들이 계속해서 개발되고 있고, 그 기술들은 인간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편리한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많은 것이 변했다. 그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기계를 받아들이고 있다.

인터넷의 등장 이후 네트워크 기술이 발달하면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여러 정보에 쉽게 접할 수 있었다. 데이터 저장 기술의 발달과 높은 화질의 영상들은 지나간 영상을 되돌려 볼 수도 있게 만들었다. 먼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보고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양한 데이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현재의 순간을 즐기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진정한 나의 존재는 여전히 화면 뒤에 가려진 채, 화면에 나란히 떠 있는 인터넷 창과 외부의 힘에 이끌려 좌지우지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살아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정말 존재하는 걸까? 우리는 마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순간을 재현하기 위하여 기록하고 모든 것을 저장한다. (p.28~29)


모든 것은 데이터화되어 기록된다. 스스로 기억할 필요를 덜어낼 수 있게 되자 생각하는 시간은 줄어드게 된 것 같다. 위에 언급한 부분을 읽으면서 데카르트의 유명한 말이 떠올랐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 우리는 기억을, 생각을 기계에 상당 부분 맡기게 되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을까? 기계를 사용하면서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 중 하나인 '사유하는 시간'을 잃어버리고 있다.


이렇게 인간은 수치화, 정량화할 수 있는 데이터와 체계화된 습관을 지닌 집합체가 되었다. (p.31)


우리가 이용하는 전 분야에 기술들이 있고, 그 기술들을 활용하며 다양한 데이터를 쌓게 된다. 그 데이터들로 인해 각 개인을 구분할 수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그게 곧 인간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데이터로 측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그것을 잃어버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기술의 편리함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멀리하고 이미 규격화한, 체계화한 습관을 따라가게 만들곤 한다.


책에서는 무분별하게 기술을 수용할 때의 문제에 대해 계속 경고하고 있다. 미래의 인간은 지금의 인간과 많이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SF 영화에서 보는 '인공지능'의 모습은 사실 기계가 발달한 것이 아니라 기계와 인간이 결합된 '하이브리드 인간'의 형태가 진화한 모습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미래가 오지 않도록, 인간이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결정짓고 행동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의문이 생긴다. '인간다움'의 정의도 주관적인 게 아닐까? 기계를 사용하면서 생겨난 새로운 특징들이 이 시대의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는 걸까? 문제점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마지막 부분에서 그런 생각에 대한 언급이 느껴지는 것 같다.


과학 기술 도구의 사용 방식과 목적을 바꾸는 것, 기술이 인간을 소외시키지 않도록 연결고리를 만드는 것, 그리고 지식을 확대하고 지능을 향상할 수 있는 방향으로 기술을 사용하는 것.... 이것은 모두 기술을 이용하여 '보수작업'을 거친 인간이 가진 가능성이다. 오늘날의 인류를 만든 연대와 교류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기술의 새로운 사용법을 찾는 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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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입 크기 철학 3
에마뉘엘 드 샹 지음, 알프레드 그림, 이수진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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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쯤 고민해보는 문제,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입 크기 철학 시리즈 세번째 책은 행복에 관해 질문하고 있다.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행복'이란 개념은 참 추상적인 것 같다. '행복'이 어떤 것인지 정의하기가 힘드니 어디서 행복이 오는 것인지도 잘 모를 수밖에.

책에서 행복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수수께끼처럼 나 자신도 알기 힘들지만, 그와 동시에 나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것이다. (p.9~10)


책에서는 행복을 '보편적'으로 정의하지 않는 것 같았다. 행복은 개인적인 문제다. 자신조차도 알기 힘들지만 나만이 알 수 있는 내밀한 것이 행복을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루소에 따르면 개인의 자아실현은 모두의 삶의 조건을 나아지게 만든다. 행복을 누릴 자유가 없다면 어떤 행복도 존재할 수 없다. (p.26)

 

여러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고민한 내용이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 중 루소의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 『고독한 산책자의 몽상』에서 '행복은 한 인간의 내면과 그가 소중히 여기는 추억에 존재한다'고 보았다고 했다. 이처럼 행복을 개인의 관점에서 본 것이다. 그러나 행복은 개인적인 문제만은 아니라고 했다. 행복을 누릴 '자유'는 그가 포함된 사회와도 연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롭게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지는 사회의 체재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상적인 사회', 유토피아를 꿈꾸지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는 존재하기 어렵다고도 이야기했다.

 

우리는 모두 행복을 바라지만, 완벽한 행복이란 그 누구에게도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행복은 꼭 필요하지만 절대로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어느 정도 욕망과 연관되어 있고, 욕망이란 결핍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욕망이란 우리가 매 순간 바라는 것이며, 일시적으로만 충족될 수 있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욕망은 이토록 철저히 인간적이다. (p.50)

 

행복 자체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행복은 결코 완벽할 수 없다.

인간은 끝없이 행복을 추구하지만, 우리가 가진 욕망은 끝이 없기에 완벽한 행복은 찰나만 가능하다. 잠깐 행복을 누리고 곧이어 다른 행복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이 행복의 모순이 결국 인간이 계속 발전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책속에는 중심 주제에 관한 명언 내지는 생각들을 일러스트 컷으로 담아둔 것이 있었다.

이번 책에서 인상깊었던 말이 있어서 기록해 두었다.

"우리는 행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설령 그것이 타의 모범이 되기 위함일지라도." 자크 프레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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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종으로 나누려고 할까? 한 입 크기 철학 2
마갈리 베손느 지음, 알프레드 그림, 손윤지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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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다소 낯설던 주제, 왜 인종으로 나누려고 할까?


『왜 인종으로 나누려고 할까?』. 한입 크기 철학 시리즈 두번째 책은 인종에 관한 사유를 다루고 있다.

2015년 6월 미국은 흑인민권단체장이었던 '레이첼 돌레잘'이 사실 백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져 뜨거운 논쟁이 있었다고 한다.

인종 정체성을 위조하는 거짓된 인생을 산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의 정체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것인지.

미국에서는 '어떤 인종'이느냐가 중요한 사안이기 때문에 큰 논란이 되었던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각기 다른 피부색을 관찰해 보면, 사람들은 결국 하나의 연속적인 '컬러 라인' 위에 놓여 있으며, 그 사이에 정확한 색의 경계를 설정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p.27)


비교적 인종 논란이 없는 나라에서 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 책에 나오는 인종 관련 이슈들이 모두 낯설었고, 다소 충격을 주는 부분들이 많았다. 가장 놀랐던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2010년에 진행한 미국의 인구조사에서도 가구원의 인종을 묻는 질문이 있었다는 것. 심지어 단순히 컬러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어느 계통인지 세세하게 구분하고 있었다. 그런 것들이 실제 제도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조사했을 것이다.


'인종'은 공간이나 시간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흑인종이든 황인종이든 피부색은 모든 곳에서 똑같이 정해져 있지 않으며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p.28)


그런데 그 인종 구분이라는 것이 객관적인 기준을 세울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자신이 '어떤' 인종인지는 살고 있는 지역에 따라 결정된다. 살고 있는 지역의 컬러라인을 쭉 나열했을 때, 자신이 어느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인종은 다르게 구분될 수 있다.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다수의 인식 의해 인종의 기준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인종은 상황에 따라 달라지고 지역에서 원하는 기준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적 범주라고 할 수 있다. (p.29)


책을 읽으면서 인종을 나누는 것이 지극히 주관적일수밖에 없구나 새삼 느끼게 되었다. 그렇다면 그 기준은 누가, 왜, 어떤 상황에서 정하게 되는가.


인종은 어떤 개인이나 특정 집단을 배척하고 차별하기 위해, 삶의 방식 혹은 외양적으로 알아볼 수 있는 일종의 표식으로 이용되고 있다. 어떤 집단이나 문화의 다양성은 인종주의의 원인도, 구실도 될 수 없다. 인종주의를 탄생시킨 것은 인종이 아니다. 오히려 인종주의가 인종을 만들었다. (p.39)


외양적으로 확연히 구분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건 확실한 구분이 아니다. 피부 색은 한 가지 색이 아니다. 스펙트럼이기 때문에 기준을 세울 수 없다. 그리고 그 기준을 통해 다른 문제까지 판단해서는 안된다. 인종으로 하나의 집단, 문화의 특성을 규정해서는 안된다. 그건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종주의는 과거의 골상학을 떠오르게 하기도 했다. 외부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들까지 규정하고 설명하려는 점에서. 잘못된 판단의 근거로 사용될 위험이 있다는 점에서.


인종은 허구의 개념이 아니다. 인종은 실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조직화하고 있다. 인종은 현실이다.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이 현실을 변화시킬 힘이 있다! (p.42)


그렇지만 주관적이라는 것은 장점도 있다. 더 바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결국 눈에 보이는 어느 정도의 구분을 외면할 수는 없다. 현실이다. 받아들여야한다. 다만 그것이 절대적이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직 인종 문제가 우리 나라에서는 다소 먼 문제 같지만,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 만큼 인종 문제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인종 구분을 통한 배척과 차별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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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르시시스트일까? 한 입 크기 철학 1
피에르 페주 지음, 알프레드 그림, 이수진 옮김 / 돌배나무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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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사회에서 자기애의 의미에 관하여, 누가 나르시시스트일까

 

철학적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얇은 책 한 권으로 담아내는 '한 입 크기 철학 시리즈'.

그 첫번째 책 『누가 나르시시스트 일까?』는 현대사회에서 '자기애'가 어떤 양상으로 발현되고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표지 일러스트를 통해 어떤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예측할 수 있다.

서로 가까이 있으면서도 시선은 각자의 휴대폰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

 

어디에나 있지만 그 누구도 아닌, 수천 개의 얼굴 없는 눈을 신경 쓴다. (중략) 개인의 진정한 자질을 인정하거나 고유한 특성을 존중하는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직 남들에게 보이는 이미지에만 열망한다. 나이를 불문하고 오늘날의 나르키소스는 오직 타인을 만족시킬 때만 자신에게 만족하고, 또 스스로 만족하기 위해 타인을 만족시키려고 한다. 일종의 최면과도 같은 이런 생각이 사회에 널리 퍼져 있다. 상이 사유를 대체하고 만 것이다. (p.14)

 

현대 사회에서의 나르시시스트들은 '자기애'의 기준점이 자신보다는 타인에게 맞춰져 있다.

가장 가까운 예로 우리가 자주 이용하는 SNS를 생각해보면 된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일상 사진들을 SNS에 올린다. 그건 어떻게 보면 '꾸며진' 일상이다. 나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물적 요소들을 담아 '남에게 보이는 이미지'를 만든다. 그리고 많은 공감을 받으면, 스스로도 만족감을 느낀다. 나에 대해 아는 것보다, 보여주는 것에 더 중점을 두려고 하는 모습이다.

현대의 자기애에 관한 이런 관점이 흥미롭다. 기술 발달로 타인과 쉽게 연결될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것이 스스로 사유하는 것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이 시리즈는 뒷부분의 표지 일러스트가 더 마음에 드는데, 책 속에서의 주요 질문들을 이미지와 함께 배치했다.

나르키소스는 왜 타인의 사랑을 거부했을까?

프로이트가 말한 두 가지 나르시시즘은 무엇일까?

자기애에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을까?

인류는 거대한 나르키소스 집단일까?

자기애에 관해서도 다양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인간은 모두 나르시시스트일까? 그렇다! 누구나 삶이 시작하는 시기부터 절대 사라지지 않는 기억을 가지니 말이다. (p.40)

 

그 중 흥미로웠던 내용은 '인간은 모두 나르시시스트일까'란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프로이트의 사상과 관련지어 이야기한 부분인데, 애초에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애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자라면서 경험을 통해 변화해가는데, 다시 자기애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있다.

 

뒷부분에서는 나르키소스의 유형에 대해 다룬 부분이 인상적이다.

총 여섯 가지 정도를 소개하고 있었다.

오로지 자신을 동경의 대상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해바라기형 나르시시스트'.

자신에 대한 이상이 너무 높아 아예 나서지 않으며 드러내려 하지 않으려는 '그림자형 나르시시스트'.

모두의 눈뿐만 아니라 자신의 눈에도 타의 모범이 되려하며, 남을 위해 자신이 희생하는 걸 알아주길 원하는 '성인군자형 나르시시스트'.

말솜씨가 뛰어나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신의 가치가 올라간다고 믿는 '질투형 나르시시스트'.

자신이 무한한 힘을 가졌다고 믿으며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힘에 굴복한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확인하려 하는 '조종자형 나르시시스트'.

상상속의 나쁜 일로부터 항상 고통받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신경쇠약형 나르시시스트'.

다양한 나르시시스트의 유형을 보다보면 많은 인간들의 모습들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모두 나르시시스트라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리즈 책은 어떤 질문에 대한 여러 가지 사유를 한 권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어느 부분을 깊게 알고 싶다면 관련 주제, 키워드를 바탕으로 다른 책들도 찾아보는 게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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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위로 - 산책길 동식물에게서 찾은 자연의 항우울제
에마 미첼 지음, 신소희 옮김 / 심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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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에서 자연을 가까이 하며 오랜 우울증을 치유해가는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자연물 세밀화와 사진들은 저자가 느낀 자연의 모습을 독자도 누릴 수 있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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