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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갇히다 -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김성일 외 지음 / 구픽 / 2021년 1월
평점 :
책과 서점에 관한 독특한 상상! 책에 갇히다
『책에 갇히다』는 8인의 작가가 8가지 색깔을 담은 SF 단편을 묶어낸 책이다.
부제는 '책과 서점에 관한 SF 앤솔러지'. 각 단편들은 독특한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신화는 정말로 있었던 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부족민들은 신화를 듣고 어떤 마음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배운다. 신화는 우리를 만들어 준다. (p.55, 붉은 구두를 기다리다)
첫번째 단편인 김성일 작가의 「붉은 구두를 기다리다」는 문명이 쇠퇴한 먼 미래의 일을 그렸다. 배경이 먼 미래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이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신화'를 통해서다. 글은 잊히고, 이야기만 남아 전해진다. '신화'의 내용은 익숙하다. 오즈의 마법사, 로미오와 줄리엣,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맥베스. 익숙한 이야기를 '신화'라는 이름의 낯선 모습으로 읽어가는 것이 흥미롭다. 책, 나아가 그것이 담은 '이야기'가 독자들에게 일으킬 수 있는 긍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가장 재미있게 읽었던 단편이다.
이어지는 문녹주 작가의 「금서의 계승자」는 조금 우울한 내용이다. '나무'가 멸종된 세계와 이어진 전쟁. 나무로 종이를 만들 수 없게 되어 '책'은 다른 형태가 되었다. 수많은 전쟁 고아들에게 책의 내용을 외우게 해 '사람 책'으로 만든 것이다. 이들은 사람이라기보다는 '책노예'로 물건처럼 다뤄진다. 거부감이 많이 느껴져서 읽기 힘겨웠다.
세번째는 송경아 작가의 「12월, 길모퉁이 서점」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오마주가 느껴지는 단편이었다. 갈곳 없는 소녀가 도피처로 찾아간 서점. 서점에서 이상한 나라로 빠져들고, 여러 가지 일을 겪으며 성장하는 주인공. 마지막에 밝혀지는 서점의 비밀은 단편에 SF적인 터치를 담았다.
"당신은 인생 책이 있는가?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준 책 말일세. 보통은 그런 책들을 가장 손 닿기 쉬운 곳에 꽂아 두게 마련이지. 오다가다 흘끗 보기만 해도 혹은 잊고 살다가 얼핏 내용을 떠올리기만 해도 그 향기가 다시 올라오는 책." (p.178, 켠)
네번째 단편인 오승현의 「켠」은 전자책을 넘어 가상현실로 감각을 자극하는 VI북이 등장한 세계이다. VI북의 등장으로 종이책의 자리는 점점 사라지지만 지키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 인물들의 매력은 느끼지 못했지만 VI북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갔고, 작중에서 『빨간 머리 앤』의 '다이애나'에 대한 생각이 흥미로웠다.
다음은 이경희 작가의 「바벨의 도서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였다. 혼란스러운 느낌을 받았던 내용이었다.
여섯번째는 이지연 작가의 「역표절자들」. 사람의 인생을 책처럼 편집할 수 있다는 생각을 담은 내용이 특이했다.
일곱번째는 전혜진 작가의 「모든 무지개를 넘어서」로, 저자의 다른 단편인 「바이센테니얼 비블리오필」 윤현의 어린 시절 이야기라고 한다. 그 단편이 궁금해진다. 함께 읽으면 내용을 더 잘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마지막은 천선란 작가의 「두 세계」. 현실 세계와 책 속 세계의 연결에 대한 상상이 흥미로웠다.
모두 SF 단편인데,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것이 흥미롭다.
배경부터 제각각이다. 현대와 비교적 가까운 단편들도 있고, 반대로 먼 미래의 모습도 있다. 그 먼 미래도 나뉜다. 아예 과학 기술의 발달과 멀어진 상태가 있고, 다양한 기술들을 적용해 책의 새로운 형태들을 만들어낸 세계도 있다.
중심 소재인 '책'의 형태도 다양하다. 구전문학만 남고 책은 '유물'로 취급되는 모습. 사람 자체가 책이 된 경우. 가상현실로 체험하는 책. 종이책에 한정짓지 않았다. 한번쯤 생각해본 스타일도 있어서 신기했다.
다양한 상상력을 접할 수 있어서 책에 관한 생각들을 여러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든 점이 좋았다.
책과 서점, 그리고 SF의 결합은 성공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