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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기피증이지만 탐정입니다
니타도리 케이 지음, 구수영 옮김 / 내친구의서재 / 2022년 11월
평점 :
대인기피증이 있어도 추리는 가능해, 『대인 기피증이지만 탐정입니다』
이 책을 읽기로 마음 먹은 이유. 설정이 독특해서. 『대인 기피증이지만 탐정입니다』라는 제목 그대로, 주인공 탐정은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있는 대학생이다. 남들과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어려워하고, 단순히 말하는 것부터 힘든 사람. 책 첫머리에서, 강의 첫시간 자기 소개부터 어려워하며 순서가 하나씩 다가오는 동안 별의별 생각을 다한다. 남들 앞에서 '나'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긴장되고 어렵다는 건 항상 느꼈던 일이지만 이렇게까지 생각한다고? 싶을 정도의 독백. 이 주인공에 호감을 가질 일은 없을 거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리 그래도 자기소개의 레퍼토리 문구 몇 문장으로 우산 주인을 알아내다니, 무슨 셜록 홈스도 아니고. (p.30)
호감도와는 별개로 이 주인공의 능력에는 첫 에피소드 사건부터 감탄했다. 자기소개 문구로 우산 주인을 어떻게 알아내냐고 혼자서 생각해놓고서는 결국 해결해냈고, 저 말은 자화자찬이 된다. 셜록 홈스에 빗댈만큼의 추리력을 소유한 주인공이라고, 은근히 생각하게 만드는 건가.
첫번째 에피소드인 '논리의 우산은 쓰더라도 젖는다'에서 우산 주인 찾기를 해결해내며 동기 미하루, 가고시 교수와의 친분을 갖게 된 주인공. 대학 생활을 이어가며 마주한 일상 속 사건들을 해결해간다. 그 사건들은 일견 가벼워보이지만, 위험성이 담겨 있다.
옷가게 탈의실에서 사라지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문의 진상을 밝힌 '니시지바의 프랑스'의 경우, 옷가게 주인이 중국인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사건에서 찾을 수 있는 위험성이 있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놀러갔는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친구가 술을 마시게 된 경위를 찾아낸 '노래방에서 마왕을 부르다'는 해당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과정이 살짝 씁쓸하다. 고의와 우연한 실수가 겹쳐지며 생긴 문제였으니까.
축제 속에서 동행했던 학교 친구가 소매치기를 당했고, 인파 속으로 사라진 범인을 찾아내는 '부채 속으로 사라진 사람'은 사건 자체보다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드러난 주인공 일행의 성격들이 눈에 띈다. 이 부분은 다음 에피소드에서 더 깊게 풀어낸다.
마지막 에피소드인 '눈을 보고 추리를 말하지 못하는 탐정'은 주인공의 대인기피증이 생겨나게 된 과거의 사건에, 현재 일어난 도난 사건, 마지막으로 도난 사건 뒤에 숨어있던 사건까지 풀어내는 내용을 담았다. 이 에피소드의 사건 풀이도 인상적이지만 그보다 더 기억에 남는 건 주인공 일행의 모습들로 보여주는 다양한 '대인기피증'의 형태.
"나, 사실은 낯가림이 심하거든. 사람들이랑 사귀는 게 거북해서 반대로 주절주절 떠든다고 할까."
나로서는 전혀 알 수 없다. 주절주절 떠들 수 있다면 대인기피증이 아니다.
하지만 사토나카는 진심으로 말하는 듯했다. "미움받는 게 싫으니까 어찌 됐든 계속해서 떠들면서 얼버무린다고 할까. 비웃음당해도 좋다고 반쯤 포기한 상태이기에 누구에게든 돌격하고 말이야. 긴장하면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p.319)
"폐가 되지 않는다는 게 어느 정도까지인지...... 너무 어려워." (p.319)
대인기피증은 타인에게 말조차 걸기 어려운 모습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런 형태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를 어려워해서 반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겉으로 보이는 것과 속내가 항상 같은 건 아니다. 고민하는 마음을 숨기고 아닌척, 더 가볍게 보이도록 이야기할 수도 있다. 이 책은 추리 소설적인 면모도 나쁘지 않았지만 '대인기피증'에 대해 보여준 부분들이 점점 흥미를 끈다.
꽤 좋은 사람들과 친구가 됐다. 모두가 제각각의 방식으로 대인기피증인 듯하지만. (p.393)
중간중간 나오는 대인기피증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들에 의외로 공감했다. 책을 읽을수록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점점 짙어진 건 그 영향일지도 모른다. 나와 전혀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깨달아서.
대인기피증은 인파에 약해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걸어갈 수 없기 ??문에 동행인과 걷다가 인파에 떠밀리며 어느순간 조용히 사라지게 된다는 이야기는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무엇보다 대인기피증은 '주문'에 약하다는 이야기. 이건 정말 공감 100퍼였다. 말 꺼내는 것부터 어려운데 점원이 포인트 카드나 테이크 아웃 관련 이야기 등을 빠르게 이어가면 혼란스럽다. 자주 가는 곳이라면 익숙하겠지만 처음 가는 곳이라면 긴장은 배가 된다. 그런 기분 느낀 적이 여러번이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그러니까, 정도와 방식은 다르겠지만 대인기피증을 갖고 있는지도 모른다. 결국 주인공이 친구들도 그런 부분을 가졌다는 걸 알게 된 것처럼, 나도 알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