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 빈의 동네 책방 이야기
페트라 하르틀리프 지음, 류동수 옮김 / 솔빛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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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책방이라는 단어가 주는 묘한 마력, 어느 날 서점 주인이 되었습니다

 

수많은 책과 함께 이곳에서는 늘 새로운 이야깃거리가 넘쳐났다. 이곳은 순수 예술이 살아 숨쉬는 경건한 사원이 아니라 큰 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고 웃는 곳, 서로 책 제목을 사람들 머리 위를 향해 외치는 곳이다. (p.136)

 

사람들은 누구나 충동구매를 한다.

저자는 살고 있지 않은 도시, 거기에 지금 돈이 있지도 않은데 동네 책방 경매에 입찰한다.

그런데, 그게 덜컥 그녀에게 와버린다!

책 제목 그대로, 저자는 '어느 날 갑자기' 서점주인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상치 못했던 일에 처음에는 당황하던 저자였지만, 결국 그녀는 서점을 인수해 운영하기로 결정하고 하나하나 일을 처리해나간다.

그리고 그 작은 서점을 운영하면서 겪어온 많은 에피소드들이 이어진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꿈꾸는 것 중 하나가 북카페나 서점을 운영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건 그저 막연한 꿈일 뿐이다. TV 속 드라마나 영화, 혹은 소설 속에서 보았던 서점을 통해 키운 꿈.

그와는 다른 너무나 현실적인 동네 책방의 운영에 대한 이야기가 이 책에 가득했다.

만약 내가 저자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결코 저자처럼 해내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저자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저자 자신의 의지와 능력 뿐 아니라 주변에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기도 하지만.

 

이런 책이야말로 손이 많이 가는 데 비해 버는 돈이 적어도 힘들다는 마음을 잊게 만드는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제품을 판매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야기를 판다. (p.167)

 

그래도 역시 동네 책방이라는 것에는 묘한 로망이 있고, 저자의 동네 책방 이야기는 현실적이지만 그 로망을 지워버리지는 않는다.

어쨌거나 저자를 포함해 서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들은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인물들이고, 그래서 저자의 작은 서점에도 책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특유의 책방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을 하나 이야기해보면, 각 서점 직원이 전문분야를 정해 손님에게 책을 추천해주는 것!

사실 취향의 문제라는 게 조심스러워서 누군가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는 편이고 추천을 받는 경우도 적지만, 어쩐지 동네 책방 직원의 추천은 뭔가 신뢰감이 더해질 것 같다. 그리고 그게 오프라인 서점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책에 대한 집착. 이것은 스스로 거기에 빠져본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 (p.271)

 

그 뿐 아니라 중간 중간 나오는 이런 글귀들 때문에, 이 책에 푹 빠져 읽을 수밖에 없었다.

서점 이야기 뿐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사람의 이야기였으니까.

서점을 운영하는 것에서도 책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작업들은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하는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동네 책방이 되었다는 이야기에 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2호점까지 내다니! 정말정말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그런 동네 책방을 만나볼 수는 없는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직은 잘 모르겠다.

분명 저자가 동네 책방을 운영하면서 시도한 많은 것들은 충분히 매력적인 요소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그게 빈에서 통했던 것처럼 우리 나라에도 통할지는 솔직히, 미지수라고 생각한다. 씁쓸한 생각이지만.

어쨌거나 언젠가는 분명, 저자의 동네 책방 같은 서점들이 우리 나라 사람들에게도 사랑받을 날이 올거라고 믿고 싶다.

이제 서평을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야기한 이 서점의 성공 비결로 마무리할까 한다. 오프라인 서점의 매력을 딱 보여주는 문장이었다고 생각했다.

 

역설적이지만 우리의 성공 비결은 우리 서점에서는 모든 게 "옛날"과 똑같다는 것을 손님들에게 보여주는 것에 있다. 좁은 공간에 있는 수많은 책들, 천장 아래까지 서가가 꽉 차 있는 책, 쉬는 시간에도 책 읽기 말고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열정적인 직원들. 예전에도 그랬듯이 말이다. (p.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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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건 -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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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모토 바나나의 따스한 말, 어른이 된다는 건

 

제목에 끌려 구입하게 된 책이었다.

요시모토 바나나에 대한 나의 이미지는 따스함, 힐링, 편안함 뭐 이런 것들이다.

그런 기대에 맞게, 이번에 읽은 <어른이 된다는 건>이라는 에세이도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특히 존댓말을 사용해 써내려갔다는 점이, 그런 느낌을 더 강화시켜준 부분이 있었다.이 책의 부제는 이거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을 담아낸 책인 것이다.

그래서 책은 삶을 살아가면서 생겨날 법한 여덟가지 의문과 그에 대해 답하는 요시모토 바나나의 글로 구성되어 있다.

그 여덟가지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공부는 꼭 해야 될까? 친구란 뭘까? 똑같다는 건 뭘까?

죽으면 어떻게 될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좋은 일일까? 산다는 것에 의미는 있을까? 열심히 한다는 건 뭘까?

요시모토 바나나는 이 질문들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소소하지만 따뜻한 답변들을 내어놓고 있었다.

 

사실 이런 류의 편안한 느낌을 주는 책들은 서평 쓰기가 참 어렵다.

이 책을 통해 받은 힐링을 글로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정확히 특정 부분에서 감동받았다기보다는, 그냥 물흐르듯 자연스럽게 읽어가다보니 힐링이 되는 느낌이라서.

저자의 소소한 에피소드들, 따뜻한 생각들이 가슴속에 차곡차곡 쌓이며 나에게 그 착하고 맑은 이미지가 전이되는 느낌이다.

그렇게 글을 읽으며 이렇게 저렇게 생각도 뻗어나간다.

이 책의 분량은 너무 과하지도 않고, 딱 적정했다.

 

이 책은 일본 작가의 글이었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이들은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게 했다.

'어른'이 힘겨운 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어렸을 때의 생각과는 다르게도, 어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것의 답을 알지는 못한다.

아니, 삶이라는 것 자체가 정답이 있는 게 아니었다.

이 책은 답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자기 자신의 답을 찾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이런 답도 있다'고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게 '요시모토 바나나의 즐거운 어른 탐구'는 결국 '독자 자신의 어른 탐구'로 자연스레 넘어가게 되는 것이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보면 언젠가 어른에 조금 더 가까워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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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0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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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변 같은 이야기 속의 진실성,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그동안 사두기만 하고 끝까지 읽지는 못했던 책을 읽고 있는 중인데, 덕분에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을 하나하나 독파하고 있는 중이다. 몇 년전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던 책들인데, 그 동안 내가 정신적으로도 자라긴 한 모양인지 조금은 이해가 갈 듯도 한 것 같아 나름 뿌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바야르의 주장에 동의하는 입장은 아니지만.

이번에 읽은 책은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이라는 책이었다. 제목을 보면 이전에 읽었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뭔가 비슷한 형식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의 논리적 속편이라고 저자가 언급하고 있다. 결국 저자는 이전의 주장을 더욱 강화시키기 위해 실제적인 상황에서의 사례로 '여행'이라는 소재를 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주장은 바로 이것이다.

 

두 책 모두 핵심은, 구체적인 삶의 여러 상황에서 출발하여, 어떤 주제에 대한 우리의 부분적이거나 완전한 무지가 반드시 그것을 일관성 있게 논하는 데 장애가 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이 세계를 좀 더 잘 아는 용도로 활용될 수 있음을 제시하는 데 있다. (p.20~21)

 

결국 실제적인 경험이 항상 어떤 것의 진실된 의미를 파악하는 최고의 방법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이야기하려 하고 있다.

먼저, 그는 여행하지 않은 네 가지 여행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그것은 각각 '가보지 않은 곳', '대충 지나친 곳', '귀동냥으로 들은 곳', '잊어버린 곳'인데, 이 것은 그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 이야기한 읽지 않은 사례를 여행 버전으로 바꾼 것이다. 또한 이 사례들은 모두 '책'과 관련된 방향으로 제시된다. 이 각각의 사례는 여행을 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행지에 대한 내용을 이야기 혹은 서술하는 형태를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이 책은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과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는 만큼 그 책도 읽어보면 책의 이해에 상당히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본다.

 

이 네 가지 사례는 각각 마르코 폴로,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의 주인공 필리어스 포그, 자신의 아내를 대신 이스터 섬으로 보낸 에두아르 글리상, 어느 한 섬에 대한 기억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위치에 있는 것으로 서술한 샤토브리앙의 사례이다. 각각의 사례는 모두 인상적이지만 특히 이해가 비교적 쉬웠던 것은 '정보원'을 활용한 세번째 사례였다.

에두아르 글리상은 이스터 섬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는데, 가는 데에 현실적 어려움이 있어 대신 그의 아내가 이스터 섬에 가서 그 곳의 상황을 전하게 되었다. 동시에 그의 아내는 이스터 섬의 주민으로부터 들은 이야기까지 전달한다. 결국 에두아르 글리상에게 이스터 섬에 대한 정보를 주는 정보원은 두 사람이 되는데, 사실 이 '정보' 자체는 정보원이 가진 주관에 따라 오염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에르 바야르는 에두아르 글리상이 이스터 섬을 직접 방문한 것 이상으로 멋지게 이스터 섬에 대한 묘사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얼마든지 우리는 그가 그곳을 안다고, 어쩌면 섬의 어느 주민보다도 더 잘 안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섬 주민은 지각 대상에 너무 가까이 있어, 감상에 필요한 거리를 두고 섬에 대해 말하기가 불가능하니 말이다. (p.76)

 

여행은 직접 가보지 않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고 흔히 생각한다. 그런데 모든 여행지는 동시에 누군가의 일상의 공간이다. 그런데 잠시 스쳐가는 여행자는 발견하게 되는 것들을 그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인물들은 오히려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여행 에세이들을 읽을 때 이미 많이 보았던 사례들이다. 결국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볼 때 그 대상에 대해 좀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고 다각도의 정보를 분석해 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해가 가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피에르 바야르의 책에서 주장하는 이론은 머리로는 나름의 이해가 가지만 몇몇 사례에서 일반적인 상식의 범위, 특히 윤리적인 측면을 넘어서는 내용이 있어 온전히 공감하기 쉽지 않다. 이 책의 경우, 특히 이 책에서 실제적인 적용 내용 사례로 등장했던 저널리스트의 사례와 마라토너의 사례가 그랬다.

특히 저널리스트의 사례. 이 저널리스트는 기사를 지어서 썼다. 기자의 직업윤리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취재에 대한 최대한의 정보를 모아서 썼다. 다만 직접적인 정보를 얻어서 쓴 것이 아닐 뿐이다. 그런데 그의 기사는 심지어 신문 1면에 나기도 했다. 그만큼 진실성이 느껴지는 글이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피에르 바야르는 그 점에 의이를 둔다. 하지만 그건 기사가 아니다. 기사와 문학은 전혀 다른 유형의 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어서 쓴' 기사가 가지고 있을 위험성을 고려해야만 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렇게 윤리적인 문제가 있는 사례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점이 있기 때문에 그다지 설득력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피에르 바야르의 주장 자체는 흥미롭다. 그가 주장하는 '텍스트'의 의미에 대한 재해석은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런 경우를 접한 적이 분명히 있고, 또 이 주장을 펼치기 전 풀어놓은 사례들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사실 텍스트란 단지 어떤 장소와 어떤 상상세계의 만남인 것만이 아니라, 어떤 독특한 담론의 상황의 틀 안에서 독자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p.216)

 

피에르 바야르의 책을 읽다보면 어쩌면 이제까지 궤변이라고 치부해온 이야기들 안에 나름의 진실성이 담겨 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게 된다. 읽으면서 찬성하는 마음과 반대하는 마음이 계속 충돌을 일으킨다. 이번에도 역시 그랬고, 결국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도 확실한 입장을 정할 수 없었다. 어쩄든, 독서에 대한 획기적인 가능성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방향으로 생각이 펼쳐져 나갔는데, 그 내용을 리뷰에 다 담지 못한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만약 독서에 대한 흥미로운 관점을 만나보고 싶다면, 피에르 바야르의 책들을 하나하나 읽어가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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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패러독스 1
피에르 바야르 지음, 김병욱 옮김 / 여름언덕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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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에 대한 새로운 시선,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의 책은 생각지도 못한 부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서 참 흥미롭다.

그의 추리 비평 세 가지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햄릿을 수사한다>, <셜록 홈즈가 틀렸다>를 읽으면서 느꼈었던 색다른 시각을 이 책을 통해서도 발견할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었던 선입견 내지는 고정관념에 균열을 내준 책이었다고나 할까.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은 제목을 보면 방법이나 기술에 대해 이야기할 것 같지만, 사실은 독서와 비독서에 대한 관점에 대해 소개하는 책이다. 완전한 독서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다. 저자가 분류한 네 가지 비독서의 종류 중 하나가 '읽었지만 잊어버린 경우'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성은 비독서의 방식들 네 가지를 먼저 소개하고, 담론의 상황들 네 가지를 제시한 뒤, 대처 요령 네 가지를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어렵다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조금씩 공감이 가기 시작하는 것이 흥미롭다.

책에 소개된 비독서의 방식 네 가지는 다음과 같다. 책을 전혀 읽지 않는 경우, 책을 대충 훑어보는 경우, 다른 사람들이 하는 책 얘기를 귀동냥한 경우, 책의 내용을 잊어버린 경우.

각각의 케이스는 관련된 책 속의 내용과 작가들을 중심으로 소개된다. 비독서의 방식을 알아가는 과정에서 새로운 책을 접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참 재미있다. 무질의 소설, 발레리의 사례, 에코의 장미의 이름, 몽테뉴의 사례들을 통해 독서와 비독서는 결국 구분지을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담론의 상황 네 가지도 흥미로운 사례들이 제시된다. 제시되는 상황은 '사교 생활에서, 선생 앞에서, 작가 앞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인데, 마지막의 사례였던 영화도 마찬가지지만, 각각의 상황의 사례로 드는 책 내용을 읽어보니 모두 참 궁금해진다. 알지 못하는 책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는 상황들, 그런데 신기하게도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서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차이는 존재한다. 인식의 차이들로 인해 빚어지는 오해들이 있지만 이야기가 가능한 것이 놀랍다.

마지막은 대처상황이다. 부끄러워하지 말 것, 자기 생각을 말할 것, 책을 꾸며낼 것, 자기 얘기를 할 것. 저자는 무의미하게 책을 많이 읽는 것보다, 얼마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수 있는 지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에, 책을 많이 읽은 것을 교양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특히 책을 읽으면서 그 책 속의 내용에 함몰되어 자신의 생각이 묻혀버릴 것을 우려한다.

책 속에 나오는 다양한 사례로 저자가 말하는 바를 좀더 쉽게 이해할 수 있어서 좋았다. 완전한 독서는 결국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독서가 하나의 미덕으로 이야기되고, 독서를 많이 한 것이 교양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잘못된 생각일 수 있음을 알았다. 수많은 책을 읽어가다가 자신의 생각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경계도 하게 되었다.

우리가 읽어서, 들어서, 스쳐지나가서 알게 된 책들. 각각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를 나눌 때 결코 같은 책일 수 없다는 것. 이제까지 읽어온 기억에 관한 책들의 내용, 예전에 읽었다가도 최근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느껴졌던 책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의 생각이다. 자기 자신의 생각이다.

어렵지만, 그래서 조금 더 머릿속에 무언가 쌓인 것 같아서 좋았다. 어쩌면 저자는 이런 것을 경계할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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셜록 홈즈가 틀렸다 패러독스 4
피에르 바야르 지음, 백선희 옮김 / 여름언덕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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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탐정의 추리는 항상 정답인가, 셜록 홈즈가 틀렸다

 

어떤 문학작품에도 절대적인 진실은 존재할 수 없다.

문학작품들은 기본적으로 허구적인 것을 토대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추리 소설, 특히 탐정 소설을 읽을 때마다 주인공 탐정의 추리 내용에 전적으로 동의하면서 읽는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 피에르 바야르는 그것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선다.

탐정 소설에서 난 결론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 그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의 전작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에서도 그랬지만, 이번에 읽은 <셜록 홈즈가 틀렸다>에서도, 난 탐정의 추리가 틀렸다는 저자의 의견에 어느새 동조되고 있었다. 왜 난 피에르 바야르의 책을 읽을 때마다 어느새 그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되는 것일까?

그건 작품이 작가의 것이 아닌, 독자에 의해 재창조 되는 것이라는 의견을 내가 지지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안 그렇다면, 셜록 홈즈라는 캐릭터를 너무나 사랑하는 내가 셜록의 추리에 의심을 갖는 글을 관심읽게 읽지 못했을테니 말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에 어색한 점이 많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왓슨의 신상에 대한 것도 그렇고, 추리에서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고도 하니까. 그래서 셜록 홈즈의 추리에 문제가 있다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이의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진짜 범인에 관해서는 동의할 수가 없다. 현재로서는 아마도, Never.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저자의 전작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를 인상 깊게 읽었기 때문이었는데, 그 책보다는 별로라서 조금 아쉬웠다.

사실 다시 재수사를 하는 부분들은 아쉬운 부분들이 많았다. 어쩌면 환상적인 내용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재수사를 위해 필요한 이론적 토대를 설명하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다.

작품과 현실 사이에 존재한다는 '중간 세계'에 관한 내용과, 작중 인물들이 자율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부분들이 그랬다.

하긴, 그 부분에서 환상적인 내용과 꽤 줄타기를 많이 했다. 그래서 이 책은 셜록 홈즈 작품을 환상 소설과 거의 비슷한 단계까지 올려놓기도 한다. 그 부분이 망상적으로 느껴지기도 해서 약간 불편한 면도 있었다.

 

이 책을 읽고 내린 결론은, 이론 면에서는 과연 흥미로운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저자의 의견에 100퍼센트 동의할 수는 없겠다는 것이다.

셜록 홈즈 시리즈의 <바스커빌가의 개>를 읽은 지 시간이 좀 흘러서, 정확한 판단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의 글을 읽다보면, 그 또한 '해석 망상'에 빠져버린 것은 아닌지, 수많은 가능성 중 그가 원하는 한 가지 가능성만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들이 든다. 결국 저자 자신이 제기한 문제에 저자 또한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책은 추리 소설 읽기의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조금은 만족스러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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