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SNS를 뒤져보면 수많은 괴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부터, 히틀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도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도 있다. 십자군 기사단의 분파인 '템플 기사단' 과 이슬람 수니파의 '하사신' 들이 물밑에서 아직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조종하고 있는 '프리 메이슨' 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야기' 를 좋아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실체적 증거를 들이밀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괴담과 기담을 퍼뜨린다. 

설사 그것이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그 어떤 특별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저 '재미로' 혹은, '흥미로'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이야기' 는 어쩌면 인류의 특징이자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가는 인류의 이러한 특질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직업일터다.

이야기를 '지어내도', 또 그것을 '퍼뜨려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 

누구보다 그럴듯하고, 어떤 일들보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 

공인받은 이야기꾼들.


장용민 작가는 역사 속 괴담을 허투루 보아 넘기는 사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천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상과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의 건물에 얽힌 괴담을 활용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을 때 부터 말이다.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그의 수하들,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당시 독일의 과학기술에서 접점을 캐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9년 미국. 인파가 가득찬 극장에서 어린 소년을 쏘아죽인 살인범 오토 바우만. 

사형을 코앞에 둔 그는 몰락한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틴 하퍼드를 지명, 방문을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비록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일을 안하고 있지만, 뛰어난 언론인이었던 그녀는 죽음을 코앞에 둔 살인범의 이이야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바우만의 이야기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 바우만은 유태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했던 그는 패망한 독일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전후 처리를 돕고 있었다. 독일어를 비롯, 폴란드, 러시아, 체코,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소련측과 히틀러의 시신을 확인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고, 아직 그 어느곳에서도 히틀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히틀러를 뒤쫓는 연합군의 특수 부대 '아디 헌터(Ady Hunter)' 에 대해 알게 된다.(아디는 아돌프 히틀러의 아명)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디 헌터에 입대하게 된 바우만은 전후 처리 과정 중에 압수된 독일의 기밀문서들을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독일 최고의 뇌 전문의이자 수많은 유태인들과 포로를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을 거듭한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가 뇌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히틀러와 융케 등 나치의 핵심인사들이 뇌를 이식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수십년에 걸친 아디헌터의 '히틀러 사냥' 이 본격화된다. 


흥미진진하지만, 아주 새로운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원히 사는 존재' 가 인류 사회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설정은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다.

다만,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관건일 따름이다. 가장 흔한 존재는 물론 뱀파이어 같은 이들이 불멸의 삶을 이용해 아주 오랫동안 거대한 사업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정치계와 법조계를 좌우한다는 설정 정도일 것이다. 이는 혈통을 따라 대를 이어 기업체를 물려받는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 네트워크의 1차원적인 은유인 셈이다. 이런 존재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엔터테이너로 등장하는 정도가 좀 발전된 정도랄까.

[귀신나방]의 히틀러 역시 크게 신선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솔직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스트레인" 시리즈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눈에 띄였다.

하지만, 이 역시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이긴 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갑부가 시한부의 삶 속에서 영생을 주겠다는 이의 유혹에 넘어가는 클리셰는 고대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는 물론, 진시황의 역사적인 기록에도 등장하는 바이니... 


히틀러가 '자본' 의 힘을 깨닫고, 그에 다가가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캔자스 주 린츠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역시 실제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는데, 아이디어와 소재, 전개 모두 깔끔하게 접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방식은 주인공이 제3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사건을 설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허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엔 참 비효율적이다.

제 3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이기에, '나는 그때 기분이 이랬소, 저랬소, ' 라는 식으로 단순히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이해하기엔 좋지만, 작가의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감정이입이 참 어렵다.

이 작품 역시 이 장단점이 모두 부각된다. 

오토 바우만이나 크리스틴,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전형적인 성격인데, 작가가 이야기의 전달과 정서의 전달 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크리스틴에게 이입을 유도한 장치와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그도 정서의 전달이라기보다 드라마, 아니 '이력'전달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깊은 드라마나 정서적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족이나 연인 따위의-를 부여했다면, 어느정도 예상 가능했던 마지막 장면이 보다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는 저자의 선택으로 보인다.

사건도 전달하고, 정서도 전달하기보다, 장용민 작가가 정말 잘하는 것.

빠른 전개와,  적확한 구획, 요소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씬들을 위한 유려한 연출을 택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을때 즈음 인간의 뇌에서 두개골뼈로 향하는 림프관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지금까지는 없다고 여겨졌던 면역계의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건데,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아직 너무나 모르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뇌 이식 성공' 을 전제한 소설을 읽으니, 사실, 스토리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나는 SF와 판타지와 같은 장르를 무척 좋아하기에, '소설적 상상력' 에 대해 누구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다고 자신했지만, 뇌의 면역계조차 모르면서 뇌 이식을 성공할 수는 없을텐데, 그 존재 자체를 이제야 알았다는 기사를 봐버리니, 그 부분에서만큼은 소설적 상상력의 발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선택한 "뇌 이식" "히틀러 생존" "네오 나치" 라는 일련의 소재들이 더 진부하다고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미국의 금융,자본 시스템, '연방준비은행' 을 주 소재로 택한 점도 흥미로웠다. 이 역시 장용민 작가 특유의 적확하고 간명한 묘사와 등장인물을 통한 강렬한 장면들로 정말 잘 활용했다. 마침, 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에 "황금" 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어서 이 책에 간추린 미국의 통화정책이 쉽게 이해됐고, 그를 이용해 미국을 지배할 야심을 키우는 히틀러의 야욕 역시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금융시장 전체가 몇개의 은행으로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미국의 금태환은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폐기됐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들 중 하나였는데, 이전까지 미국의 달러는 금과 동가였다. 1달러의 지폐는 금 1달러어치와 동등했다는 뜻이다. 은행은 금을 맡고, 지폐는 금을 맡았다는 차용증서라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금은 희소성이 있어서 미국에서 발행된 돈은 세계 전체 금의 매장량을 쉽게 넘어버렸고, 이는 공황의 단초로 작용한다. 금과 지폐의 가치를 동등하다고 믿어온 시장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린 것. 금 본위제의 폐기는 시장을 위한 필수적인 선결과제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는 소설적 상상력을 가해 금태환 중지의 시기를 뒤로 많이 미루어 케네디 대통령과 연관시켰다. 케네디의 암살설 역시 이 쪽 장르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활용했던 소재이긴 한데, 네오 나치와 연결시키기 위해 금 본위제를 끌어들인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었고, 효과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에서 활용된 '귀신나방' 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음산한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매우 흥미로운 시도로 읽혔다.

무엇보다 참 생소한 곤충이라서 전반적으로 평이한 소재들을 신선하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잘 해주었다.

정말 영리한 한 수 였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결성은 훌륭했다.

구성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서사를 플롯을 이용해 흥미진진하게 배열한 스토리 텔링 기술도 돋보였다. 

때문에, 약간 부족한 캐릭터가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대체역사물로 접근하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히는 면이 있다. 역사적 사실의 왜곡은 대체역사라면 충분히 허용되기도 하고. 장르의 속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하다. 

장용민 작가는 협소한 우리나라의 문학계 안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되는 장르물에 특화된 작가이다.

이제, '장용민' 하면 어느정도의 완결성과 재미는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랄까.

뭐, 이런저런 아쉬움들을 토로하긴 했지만, 충분히 웰메이드로 평가될 만한 작품이었다.

엘릭시르의 한국 작가 라인업은 믿고 볼만한 수준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올 한해는 실망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었으니.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젊은 시기에 쟁취한 노벨 물리학상의 성과로 얻은 부와 명예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마이클 비어드는 다섯번째 결혼의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외모는 그다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지만, 다소 특정한 취향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성에게 끌리는- 의 미인들에게 불가해한 매력을 풍기는 남자였다. 비어드의 다섯번째 결혼 상태인 퍼트리스는 '더이상' 그에게 그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 했다. '타킨' 이라는 젊은 배관 수리공과 바람피는 중이었으며 비어드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비어드는 사실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는 남자였다. 그 역시 여러번의 결혼생활 동안 많은 외도를 했었고, 그의 부인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 무렵은 서로에 대한 열정의 거의 사라진 뒤였기에,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헤어지는 절차를 밟으면 됐다. 

하지만, 퍼트리스에게만큼은 조금 달랐다.

비어드는 아직 그녀를 사랑했다. 물론 이 다섯번째 결혼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근본 원인도 비어드의 외도였지만, 퍼트리스의 '맞'외도를 알고도 비어드는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길 원했으나, 비어드의 심신은 피폐해져 있었고, 가뜩이나 볼품없던 외모는 세월의 직격탄과 폭음과 폭식, 운동부족으로 더욱 볼품없어진 터였다. 

 파탄난 결혼생활과는 별개로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 수상자의 명성으로 대학 명예 교수직은 물론 왕립 과학자협회 등에서 변함없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침 새로 신설된 기후 변화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기초과학 센터에 '간판' 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때는 2000년. 기후 변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는데, 비어드는 사실 기후변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센터의 활동도 그다지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별 상관 없었다. 그의 역할은 '간판' 으로서 센터가 주도하는 세미나에 얼굴을 비추거나 공공 사업 기금을 타내는 데에 집중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터 소속의 젊은 과학자들 중 한명인 '톰 올더스' 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광자, 즉 태양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해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고, 비효율적인 가정용 풍력 발전기 따위나 만들고 있는 센터의 활동에 실망하고 있는 참이었다. 톰 올더스는 센터장 그레이비보다 더 큰 사회적 위치와 힘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비어드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비어드는 그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다섯번째 부인 퍼트리스와 그의 애인인 타킨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에너지야, 뭐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온실효과는 주기적인 종말론처럼 부풀려진 괴담 정도로 생각하는 부류였으니까.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마이클 비어드는 마침내 톰 올더스의 모든 아이디어들을 훔치게 된다.    



[솔라]는 2000, 2005, 2009  시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세 챕터를 통해 마이클 비어드라는 명망 높은 엘리트의 삶을 관조한다.

내게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속죄]와 [넛셸] 이후 겨우 세번째이다. [넛셸]과 [솔라]를 통해서는 저자의 냉소주의와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넛셸]은 특히 '과학 엘리트'라는 특정 계층에 대한 냉소와 조소를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도 내가 읽었던 [속죄], [넛셸], [솔라] 의 세작품은 모두 '거짓말' 이 서사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다.

[속죄] 는 중심 화자가 독자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화자가 독자들에게 풀어내는 이야기 전체가 거짓말이었기에,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라] 는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거짓말을 하는 화자를 보여줌으로써 시한폭탄 하나를 휙 던져준다. 전자가 '독자를 속이는 것' 으로 흥미를 유발했다면, 후자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는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엔 시한폭탄이 반드시 터지고야 말 것이며,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리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도 이언 매큐언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약올리기를 시전한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서사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시한폭탄에 달려있는 시계가 00.01 카운트가 되자 이야기를 확 끝내버린다.

나는 이 책을 헬스장 싸이클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당황해하며 페달을 멈추고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론 '참 이언 매큐언 답다' 라며 만족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소재와 주제의 불편함과 난해함을 차치하고, 정말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마이클 비어드라는 한 남자가 거짓말을 이용해 어떻게 떠오르고, 결국 어떻게 추락하는지, 잘 짜여진 한편의 우화, 신화 같았다.

과학자의 입을 통해, 과학이라는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과학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했어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뭐, 제자나 친구의 글을 훔쳐서 대박나는 이야기는 쌔고 쌨으니까.

한마디로, 소재와 주제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신선한 서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형식, 가장 핵심적인 갈등들을 회상으로 보여주는 대담함에서 노련한 이야깃꾼의 스토리 텔링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중간중간 마이클 비어드가 맞닥뜨리는 논쟁들을 통해 이 노작가가 시대와 빚었던 갈등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초반, '북위 80도 세미나'에서 메러디스라는 소설가와 나눈, 마치 이과와 문과의 대결과도 같은 격렬한 논쟁은 '대중과학'에 관한 내용 같았고, 광자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사보이 호텔에서 한 긴 연설은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들처럼 보였다. 그 직후 도시학-민속학자인 멜런과의 '이야기의 원형' 에 관한 대화는 마치 표절론, 창작론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비어드가 갖고 있는 '거짓말' 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이 이야기에 관한 저자의 본심을 일부 읽을 수도 있었다.
 

 비어드가 첫번째 이혼에 이르는 과정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작품 속 시간으로는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반으로 읽히는데, 여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에 대해 눈을 뜨고 일련의 행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초기 페미니스트 운동의 정신과 형식을 관찰할 수 있는데, 수십년 뒤에 비어드의 첫번째 추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비어드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변화하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수식을 발전시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비어드는 변화에 1도 적응하지 못했고, 애초에 적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추락 안에서 벌어지는 언론과의 갈등, 대중들과의 갈등, 자국의 과학계와의 갈등도 대단히 격렬하고, 그만큼 흥미로웠다.        

그 밖에 수많은 정크푸드들과 술, 담배. 나이를 먹어가며 겪게되는 수많은 '유해한 것들' 과의 사투.

결국은 악성 반점(ㅋㅋ)과의 사투에, 톰 올더스의 연구를 훔칠 수 있게 만들었던 타핀과의 갈등까지.

게다가, 수많은 결혼들, 그를 통해 만난 여자들. 그녀들과 겪는 갈등, 그리고 딸과의 갈등. 

최후의 최후까지 타이머가 째깍째깍 움직인, 거짓말의 폭탄까지.



우리의 삶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것 만큼 우리의 사회도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한 발만 삐끗하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천상으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한 사람의 삶은 지극히 작고 초라하며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누군가가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변화한다. 

이 작품에서 양자역학을 주된 테마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이다.

내가 양자역학에 대해 아는건, 관찰하기 위해 빛을 쪼이는 것만으로도 성질이 변하는 소립자의 세계;  빛의 입자에 의해 영향을 받아 우리가 '상식' 이라 생각했던 물리학의 법칙이 통하지 않지만, 존재하기는 하는 그 세계, 라는 것 정도이다.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미시의 세계. 이론과 상상으로만 만나볼 수 없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세계. 

마치 '신' 과도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종교와 과학, 미신이 모두 합치되는 세계.  

어떤 입자를 관찰하기 위해 빛을 보낸 순간 그 입자는 빛의 영향을 받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빛이 반사되어 인간에게 '관찰' 된 순간, 그 입자는 이미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특별한 성질을 지니게 된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관찰한 결과는 이미 과거의 것.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었던 너. 하지만, 내가 너를 보고, 네가 나를 보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우리 서로가 단 한번도 상상한 적 없는 세계로 빠져든다. 마이클 비어드의 삶이 과학자들에게 관찰된 순간, 그의 삶은 크게 변화했고, 그가 다시 대중과 언론에게 관찰된 순간 또 크게 변화했다. 그의 삶은 이미 한참 달라졌지만, 대중과 언론은 그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만다. 


마이클 비어드는 마치 관찰하기 위해 빛을 쪼인 소립자와도 같아보인다. 

신의 지문과도 같은 과학 원리를 이용해 인류 역사에 남을만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인 '거짓' 을 이용해 태양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다. 그래, 어쩌면 그가 발견한 새로운 융합 이론은 신이 그를 관찰하기 위해 비쳤던 신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과대해석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불확정원리 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사실 분단위, 아니 시단위로 쪼개봐도 우리의 오늘은 어제와 완전히 다르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마이클 비어드의 삶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과연 우리 각자의 삶이, 이 세상에, 이 역사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지구는 퍼트리스와 마이클 비어드가 없어도 그만이다. 지구가 다른 인간까지 모두 떨궈낸다고 해도 생물권은 계속 존재할 것이며 천만 년만 지나면 낯설고 새로운 생명체로 들끓을 테고, 영장류처럼 영리한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나 바흐, 아인슈타인, 비어드-아인슈타인 융합을 아무도 기억 못한다고 누가 안타까워하겠는가?"

p. 127


    

아니, 그렇다면 나는 반문한다.

꼭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하나?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나? 

이는 모든 창작물에 대한 작가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꼭 모든 작품에 의미나 가치가 있어야하나?

어쩌면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의미도, 가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오롯히 상대적인 것이니까.

거기 그저 그렇게 있지만, 누군가의 관찰을 통해, 필요에 의해 의미를 얻고 가치를 얻는다.

석유처럼, 바람처럼, 태양처럼.

그리고, 거짓말처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중국사 5 : 춘추에서 전국까지 이중톈 중국사 5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등학교 시절, '춘추전국시대' 라고 뭉뚱그려 배웠던 기억이 있다. 

춘추와 전국은 우리도 열심히 외웠던 '하. 은. 주. 진. 한...' 중, '주' 에 속해있는 시기다.

진시황이 출현하기 전까지의 그 시간들은 '춘추전국시대' 라고 배웠다.

하지만, 춘추와 전국은 완전히 분리된 시대였다.

애초에 시대정신 자체가 달랐고, 국가의 개념 자체가 달랐다. 

주는 수도가 변한 시기에 따라 서주시대와 동주시대로 나뉘는데, 춘추와 전국은 동주에 속한다. 


우선, 춘추시대에는 한명의 왕과, 수많은 제후들이 있었다.

봉건사회였다. 이를 '방국邦國제도' 라 한다.

천자가 제후를 임명하고 영지를 하사한다. 제후는 대부를 임명해 영지를 다스렸다. 

즉, 천하를 여러개로 갈라 제후들에게 분봉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국國'  방국이다. 제후들은 그 방국을 여러개로 갈라 대부들에게 분봉했다. 그래서 세워진 것이 '가家'. 채읍采邑 이다. 이것이 바로 봉건이었다.

봉건의 결과로 천하, 국, 가가 생겨났다.

가와 국이 합쳐진 것이 방국이며, 방국들이 합쳐진 것이 천하였다.

천자 자신도 하나의 방국을 갖고 있었는데, 가장 높은 등급의 방국, '왕국' 이었다.

나머지 방국들은 다스리는 제후의 작위에 따라 공公국, 후侯국, 백伯국, 자子국, 남男국 이었다. 

가신이 대부를 떠받들고, 대부가 제후를 떠받들며, 제후가 천자를 떠받든다.

춘추 시대엔 왕이 오직 한명이었다. 전국시대와 가장 큰 차이가 이것이다. 


봉건제는 모든 제후들이 힘이 대등해야하고 그 제후들을 다스리는 군주, 왕의 힘이 가장 강한 상태로 균형을 이루어야 유지되지만, 이 시기에 이르러 방국들의 세력 균형이 크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 책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바로 이 시기에 철기 농기구가 발명, 보급됐다. 농지의 계획적인 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 농경정책에 따라 지역별 채산성이 크게 달라졌다.   
독립채산 시스템이었던 방국들은 제후와 대부의 역량에 따라 경제력이 크게 차이나기 시작했고, 군사력과 결부되었다. 

공자가 쓴 노나라의 역사서 [춘추] 의 원년은 기원전 770년.  노魯 은공隱公 원년이다.

이 책에서는 정鄭 장공莊 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생모와, 동생과 왕권 다툼을 했던 이야기다. 이를 통해 춘추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대표적으로 알 수 있다. 

정 장공은 어머니와 동생의 쿠데타를 진압해냈지만, 전국 각지에서 군주 시해사건이 일어난다. 
위, 노, 송에서 차례로 내란이 일어났고, 이 나라의 군주들은 정 장공과 달리 유명을 달리했다. 


진은 이미 여러 갈래로 쪼개져 나라다운 나라가 아니었고, 위, 노, 송은 내란으로 인해 내정이 피폐해 있었다.

반면, 정 장공은 어머니와 동생을 제압하고 강력한 권위를 손에 넣었, 주나라의 왕. 천하의 유일한 왕인 천자, 주 환왕은 상황을 오판했다.

정나라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 주나라였지만, 주 환왕은 계속해서 정나라를 자극했다. 


결국 정 장공도 참지 못하고 제후로서의 예의를 지키지 않자, 주 환왕은 춘추시대 최초이자 최후의 친정을 감행했다.

진, 채, 위와 연합군을 구성하여 기세좋게 정나라로 침공했지만, 오히려 정나라에게 대패하고 만다.   

그래도 이 시기엔 천자를 위하는 '척' 했다. '존왕양이' 의 기치를 내걸었고, 주나라 군대를 대파하고 주 환왕에게 상처를 입혔던 정 장공은 그를 생포하기는 커녕,  후퇴하는 적을 쫓지 않고, 오히려 제신들을 보내 적군을 위문했다.

이것이 '화하', 즉, 문명국의 도리였다.

비록 전쟁을 치르긴 했으나 주나라와 정나라는 엄연한 군신관계. 군주에게 최소한의 체면치레는 하게 해준 것이다. 

이 전쟁으로 시대가 크게 바뀌었다. 군주국가. 천자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다.

춘추시대의 핵심은 제후들이 천자를 끼고 방국들을 호령하고자 하는 '패업' 이었다.

패업으로 나가는 길은 '패도', 패업을 이뤄낸 제후는 '패주' 였다. 
춘추는 패도와 패업, 패주의 시대였다. 


춘추에 기록된 약 370여년간 패업을 이룬 패주들은 한손에 꼽을 정도이다. 이를 '춘추오패' 라고 한다.

제 환공과 진 문공, 초 장왕은 어느 설에서도 빠진 적 없는 패주였고, [순자],[왕패] 등에서는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을 더하고, [풍속통], [오백] 에서는 송 양공, 진 목공 을 더한다. 역대로 다양한 견해가 있어왔다고 한다.

이중톈은 이러한 경향을 '삼황, 오제, 삼왕, 오패, 이런식으로 3과 5의 짝을 맞추려는' 다소 억지스런 견해라고 주장한다. 

송 양공은 명예에 금이 가고, 결국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죽은 인물이고, 오왕 합려와 월왕 구천은 춘추시대 말기에 활약한데다 지방에 치우쳐 있었기에 제 환공과 진 문공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엔 적잖은 간극이 있다. 
수십년에 달한다. 적은 간극이 아니다. 로마 공화정의 전환기랄 수 있는 가이우스 마리우스에서부터 카이사르의 죽음까지는 고작 70년에 불과했으니.  다만, 사료가 부족하여 그 사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이중톈은 춘추 시대를 "팔씨름으로 영역 다툼을 하고 동생이 많은 자가 큰형님이 되는 식" 이라고 표현했다.

패업과 패주에 대한 가장 재미있고도 간명한 비유라고 생각한다. 
"춘추 시대의 전쟁은 스포츠 경기와 흡사해서 외교적인 예의와 게임의 규칙을 중시했다." 
사신을 죽이지 않고, 부상자를 제외시키고, 상대가 진용을 갖추기 전에 공격하지 않고, 도망치는 상대를 쫓지 않고, 나이많은 병사는 포로로 붙잡지 않고 풀어줬다고 한다. 제후들의 전쟁은 힘을 과시하여 다른 방국들을 '동생으로' 삼는 것이었다. 많은 동생을 거느린 큰 형님이 되는 것이 목적이었다. 당연히 대규모의 양민 학살은 커녕, 궤멸수준의 군인 학살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점차 전쟁의 목적이 부를 약탈하고 세력을 확장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춘추 시대 초기엔 가장 비열한 짓으로 여겨지던 행위였다. 이런 식의 과시는 패업으로 인정받지 못했고, 패주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열한 군주는 비열한 부하에 의해 쫓겨나기도 했으나, 춘추 시대 말기에 이르러 100여개에 달하던 나라들이 20여개로 줄어들었다. 전국 시대로 가는 과정이었다. 대국들이 소국들에 독립권을 주고 단순히 '관리' 하던 시기는 지났다. 그야말로 약육강식. 약한 국가는 강한 국가에 먹히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었다.  


저자는 국가의 형태는 오직 두가지라고 봤다. 

하나의 도시를 거점으로 삼은 '도시국가'와 여러개의 도시를 거느린 '영토국가'다.

이 관점에서 "춘추시대는 도시국가와 영토국가가 병존하던 시기였다."

패권국들은 영토국가였고, 나중에 그들에 병합된 소국들은 도시국가였다. 

하지만, 전국시대엔 그런 소국들이 없었다.

대국들이 작은 도시국가들 뿐 아니라 중간 크기의 영토국가를 합병하거나 위성국가로 거느렸다. 정나라는 한나라에게 멸망당하고, 위나라는 꼭두각시 국가가 되었다. 

화하에 속하지 않았던 '만이' 의 국가였던 초나라는 동주 시대에 이미 왕이라고 칭했지만, 전국 시대에 접어들자 북방의 나라들이 줄줄이 왕이라 칭했다. 결국 전국 시대가 3분의 1쯤 경과하자 공국 전체가 왕국이 되었다. 

  이제 천자의 제후국, 방국이 아니라 독립 왕국이 되었다. 

주나라는 쇠퇴를 거듭해 두개의 도시국가로 분열되어 더이상 왕이라 칭하지도 못했다. 만이였던 초나라는 존왕양이조차 관심이 없었다.  

봉건제도 혹은 방국제도가 해체됐고, 천자가 제후를 봉하는일은 통용되지 않았다. 제후들이 스스로 정벌했고, 그 자체로 예악의 붕괴였다. 국제 질서는 무너졌고, 게임의 규칙 역시 무너졌다.  

주나라와 '왕실'이 무너졌고, 진나라의 '공실'(군주의 일가)이 와해되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존왕양이' 를 말했다. 

모두가 왕인 것은 왕이 없는 것과 같았다. 한 명의 왕. 천자가 남을 때까지 왕들은 전쟁을 계속 할 수 밖에 없다.

'존왕' 을 위한 유일한 왕이 되어야만 했다.


진나라의 상앙은 평소 교분이 있었던 위나라군의 총사령관 공자 앙을 친구의 이름으로 연회에 초대하여 사로잡고, 위나라군을 기습해 크게 승리했다. 이 전쟁으로 위나라는 대부분의 영토를 잃고 도시국가 수준으로 작아졌다. 

이렇듯, 전국 시대는 음모와 배신, 하극상의 시대였다. 
예악은 물론, 도덕도 무너졌다.

'전쟁은 속임수' 라는 말이 당연하게 쓰였다. 

이웃나라보다 강해야 했다. 강해져서, 먹어 치워야 했다.
 오직 군사력만이 국력의 바로미터였다.

군사력- 즉, 군량미와 병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해낼 제도가 필요했다. 
이것은 춘추시대 초기부터 활발하게 논의되었는데, 우리도 너무나 잘 아는 '관중과 포숙아' 의 그 관중이 춘추시대의 초기에 '행정 관리' 의 개념을 정립했다면, 전국 시대에는 '상앙' 이 있었다.
 

저자는 상앙의 개혁에서부터 중앙집권체제와 군국주의의 뿌리를 읽어낸다. 

위나라 출신의 상앙이 진나라에서 행한 개혁은 경제와 군사를 포괄하는 전면적인 계획이었다.

진 효공은 상앙과 면담을 한 뒤, 그를 파격적으로 중용했다.

전국시대는 또한 말과 정치의 시대이기도 했다. 
맹상군 같은 이가 수많은 식객들을 거느렸고, 뜻 있는 식객들이 왕들을 찾아 떠돌았다.

이름난 천재들이 왕들로부터 구애를 받았다. 패도의 시대. 출신도, 신분도 상관없었다. 능력만 있으면 어디서든 중용될 수 있었다.


상앙은 엄격한 법치주의를 표방했다. 

"상앙이 재상이 되어 처음으로 반포한 법령은 '보갑제保甲制' 와 연좌법의 시행이었다.  

상앙은 가구를 기준으로 서민들을 편성하여 5가구를 보保로 삼고 10가구를 상호 연결했다.

그래서 한 사람이 죄를 지어도 전체에게 연대 책임을 물었으므로 이웃들은 즉시 정부에 보고해야 했다.

고발하지 않은 자는 허리가 잘렸고 범죄자를 은닉해준 자는 적에게 투항한 자와 똑같이 취급했으며 고발자는 사형당한 자들의 수급 숫자에 따라 상을 받았다. 진나라에서 '길에 물건이 떨어져 있어도 줍는 사람이 없고 산에서 도적이 사라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이웃이 이웃을 고발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 시기의 진나라를 나치 독일과 비교한다. 

진나라 전체를 병영으로 나아가 감옥으로 만들었다. 사회에 남아도는 무력을 집중시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상앙이 길러낸 자들은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살인기계였을 것이다. 

상앙 자신도 기록에 의하면 700여 명을 사형시킨 적도 있다고 한다. 

물론, 저자는 '위 기록이 신빙성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고, 전혀 근거가 없거나 과장됐다고 증명해줄 이도 없다' 고 말한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상앙이 철혈재상' 이었던 것만은 확실할 것이다.

저자는 이런 식으로 과거의 기록들을 접근한다. 


 이 책은 저자 후기에도 '정말 어려웠다'고 고백한다. 
어디부터 어떻게, 무엇을 기준으로 덜어내야 하는가.

이중톈 중국사 시리즈의 강점은 철저한 사료 중심의 서술이다.

수많은 대중들에게 강연한 이력답게 그의 글은 담백하고 간결하다. 너무너무 쉽다.

대중들의 언어로, 대중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한다.

그리고, 언제나 기록을 설명할 땐 둘 이상의 사료를 비교하고, 그로 인해 도출해낸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구분한다. 


역사에 진실이 있는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있다' 또는 '없다' 고 명확히 말할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이 명확히 존재한다.

예를들어, 어떠한 구체적 사건의 경우엔 여러 기록들을 교차 검증하여 '일어났다' 고 명확히 이야기 할 수는 있겠지만, 그 사건에 관련된 사람들을 단정지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김지운 감독의 [밀정] 이라는 영화처럼 말이다. 

황옥이란 인물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기록' 에 비춰도 명확히 단정지을 수 없잖은가.

사람의 행동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기록들을 통해 공백을 합리적으로 '추론' 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시의 상황은?  기록에 드러난 인물들의 행동을 바탕으로 '추론' 할 뿐이다. 추론을 바탕으로 기록을 검증하고, 기록을 바탕으로 추론을 검증한다. 역사 기록은 컨텍스트 없이 텍스트를 받아들여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각 권의 후미에 실린 저자 후기와 역자 후기를 읽는 즐거움이 쏠쏠한 이유이다.

저자와 역자들의 고뇌가 짧지만 풍성하게 실려있다.

사실 저자가 속내를 드러내는 유일한 순간이기도 하다. 


"내가 보기에 훌륭한 역사책은 역사관이 없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영혼이다.

역사적 식견도 없어서는 안되며 그것은 뼈대다.

또한 사료와 역사적 감수성도 없어서는 안 되는데 그것들은 각기 피와 살, 그리고 분위기에 해당한다.

분위기가 없으면 매력이 없으므로 역사가 수술대 위의 미라처럼 느껴지게 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다.

 역사적 감수성은 당연히 공감을 통해 얻어지지만 한 가지 기법도 필요하다. 그것은 현장의 환원이다.

현장을 환원해야만 당시 상황을 추체험할 수 있고 당시 상황을 추체험해야만 공감이 강화된다. 

바로 이것이 본서를 무미건조한 줄거리 요약이 아닌, 생생하고 감동적인 텍스트로 만들어준다."

p. 252  저자후기 

 

 

그래, 사실 나는 상앙이 만든. 

결국 거열형에 쳐해지고 마는 상앙이 토대를 닦은 진나라의 통일 과정을 보고싶었다.

(7권 진시황의 천하)


다음 권은 6권. '백가쟁명' 이다.

나는 춘추, 전국 시대를 읽으면서 양차 대전을 겪은 유럽의 철학자들을 떠올렸다.

이성이 인류의 기본이자 본성이며, 끊임없이 인간의 삶을 진보시킬 수 있으리라 믿었던 시대. 

하지만, 그 이성이 수만의 젊은이들을 떨어지는 폭탄 아래로 밀어넣는 것을 1도 막을 수 없음을 깨달은 시대. 

춘추시대는 그보다 훨씬 전에 인간의 기본 도리라 여겼던 예악과 도덕이 무너지는 광경을 목도한 시대였다. 

수많은 사상가들이 탄생했다. 

공자, 맹자, 순자, 묵자, 노자, 한비.


자, 이제 [춘추에서 전국까지]를 통해 예악과 도덕이 무너지고 천하가 무너지는 과정을 봤다.

다음은 그 안에서 예악과 도덕을 살리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학자들. 무너진 천하를 돌이키고자 하는 이들.
그리고 새로운 규칙을 창조해내는 천재들을 볼 차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당 7년 - 문(問):지승호 답(答):김의성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던 대담집은 '촘스키, 누가 세상을 무엇으로 지배하는가' 였다.

얇지만 더디 읽혔고, 분량도 적었지만 오래 읽었더랬다. 그래도 유익하긴 했다. 촘스키의 책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적어도 대담집은 쉬운 편이었다.  눈 앞에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그 상대의 반응을 보며 단어를 고르고,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며,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발언과 그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들을 주관적으로 상세히 풀어준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역시 자신의 주관대로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실린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주관이 실리고, 그걸 읽는 독자의 주관이 섞인다. 

소위 '객관적' 이라고 주장했던 그것들이 그 안에서 산산히 깨진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철학과 사상에 객관성이 존재할 리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중성을 끼얹어볼까? 

대중성은 얼핏, 객관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도, 자신이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김의성 배우는, 나에겐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진 배우였다.

[관상] 에서 처음 봤지.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얼굴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지만, 아주 강렬했다.

그 다음은 [육룡이 나르샤]였다.

정몽주 역이었는데, 선하게도 보였다가, 비열하게도 보이는 마스크가 굉장히 신선했다. 마침 그 작품에서는 정도전 역을 김명민 배우가 했었는데, 사료에 따르면 정도전은 풍채가 당당하고 뚱뚱한 편이었다고 하니, 싱크로율롷는 조재현 배우의 정도전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명민 배우와 김의성 배우의 조합은 고려 왕조의 온건개혁 세력이었던 정몽주와 급진개혁 세력이었던 정도전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나는 트위터를 거의 안하는 탓에 김의성 배우의 SNS 활약은 잘 몰랐다. 

하지만, 설리를 두둔하고, 굴뚝에서 농성하던 쌍차 노조원을 지원하는 1인 시위를 하고, 명치를 존나 쎄게 맞겠다는 공약 정도는 알았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책 소식이 조금 의아했지만, 쉽게 손이 갔다.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은 인터뷰에 특화된 직업들이기도 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담은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펴내기도 했고, 한 때는 영화 잡지를 통해 매주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악당 7년] 은 그러한 숱한 인터뷰들 중 일부다. 단, 한 자리에 앉아 반나절, 한나절을 이야기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꾸준히 만나면서 내용들을 쌓았다. 몇주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하고, 며칠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전에 나왔던 내용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의 화제가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으로, 문재인 당선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연극은 우리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장르였다.

많은 연극들이 노동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상영되었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민감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의성 배우는 그런 우리나라의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몸담은 연극판은 노동운동 현장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TV드라마와 연극배우로 데뷔하고, 영화판을 떠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떠난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제작했고, 무일푼으로 돌아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었던 홍상수에게 다시 이끌려 [북촌 방향] 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고, [관상] 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겼고, [부산행] 으로 지난 해 백상영화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그래선지, 김의성 배우는 배우이지만, 배우답지 않은 발언이 많았고,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주연급은 아니라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반응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과 캐릭터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부터 설리, 홍상수에 대한 의견, 주진우와 이승환등 '강동모임' 과의 관계, 쌍차 해고 노동운동가들과의 관계, 베트남 국민 드라마의 제작자, 여러 연극단과 얽힌 배우들과의 인연 등 상당히 광범위하게 까고 씹을 거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지승호 인터뷰어와의 대담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이 보다 넓고 깊게 조망된다.

특히 '연기철학' 을 묻는 대화에선, '그런건 없다' 고 말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묻어난다. 


김의성 배우의 어린시절부터 50을 넘은 현재까지, SNS, 직접 겪은 노동운동과 메갈리안, 연극판, 영화판 스텝들과 함께 한 배우들의 이야기, 결혼관과 연애관, 연기와 철학, 나아가 예술관까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들을 논리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대담을 읽는 재미가 생겼다.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중국사 10 : 삼국시대 이중톈 중국사 10
이중텐 지음, 김택규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실 모든 정치투쟁은 근본적으로는 다 이익을 둘러싼 투쟁이다. 이익을 다투면서 의를 얘기하는 것은 허풍과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위선' 이다. 이것이 바로 [삼국연의]의 병폐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모씨본 [삼국연의]의 문제는 역사의 사실을 바꾼 데에 있지 않고 역사의 본성을 바꾼 데에 있다.

역사의 사실은 바꿔도 되지만 본성은 바꾸면 안된다."


"앞부분은 조조와 원소의 노선 투쟁이고 뒷부분은 조조, 촉한, 동오의 권력 투쟁이다. 나중에 삼국이 하나로 통일된 것은 역사의 원래 추세로 돌아온 것일 뿐이다. 그 추세를 가리키고 그 뒤편의 깊은 의미와 지배적인 힘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의 임무다."


 p. 263. 저자 후기 중.



중국 문화권에 걸친 대부분의 사람들은 유비, 조조, 손권의 이름 정도는 들어봤을 것이다.

적어도, 유비, 관우, 장비의 도원결의나, 영화로도 수차례 만들어진 적벽대전, 제갈량이 등장하는 삼고초려 정도도.

우리가 자주 쓰는 고사성어의 대부분도 연의에서 빌려온 것들이 많다. 

헌데, 중국 역사를 크게 나눌때 삼국시대는 없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비록 대충 배우는 것일지라도 중국 역사를 겉핥기로 싹 훑는데, 삼국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진시황이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항우와 유방이 패권을 놓고 싸우다가, 유방이 한나라를 세우고, 한나라가 당분간 쭉~ 가다가 위진남북조시대가 도래한다. 삼국시대는 이 한나라와 위진남북조 시대 사이에 껴있다. 

따지고 보면 진나라 말기, 항우와 유방이 초나라와 한나라로 패권을 다투던 시기와 별반 다르지 않다.

초나라와 한나라가 장기놀이를 통해 각인된 것 처럼, 삼국시대도 나관중-모씨본의 [삼국연의]를 통해 각인된 것이다. 

이 책은 면밀히 말해 삼국시대의 전반은 후한에, 후반은 위진남북조에 속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조조는 자신이 죽을때까지 황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한나라 황제를 '끼워' 제후들을 호령했다. 한 황조가 쭉 유지되고 있었던 것이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 후, 뒤이어 촉의 유비가 제위에 올랐고, 오의 손권이 제위에 올랐다. 

조비가 제위에 오른지 45년뒤인 265년에 위가 망했고, 유비가 제위에 오른지 42년 뒤인 263년에 촉이 망했다. 손권이 제위에 오른지 51년뒤인 280년에 오가 망했으니, 한 시대로 통칭하기엔 너무 짧았고, 무엇보다 시대정신의 전환이 나타나지 않았다.

조조와 제갈량은 법가를 통해 유교 중심의 한나라의 정치를 뒤엎으려 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했고, 대다수의 사족들은 한나라의 초기 정치로 복귀하고자 했다. 

저자는 천하가 세 나라로 변한 원인도, 조조와 제갈량, 원소가 실패한 원인도 그들이 추구했던 사상이 시대가 바라는 이데올로기가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수당 이후의 정치 노선은 원소의 '유가적 사족' 도 조조의 '법가적 서족' 도 아니고 '유가적 서족' 이나 유, 불, 도를 아우리는 서족지주였다.  

 하지만 그것은 위진남북조시대에 369년간의 시행착오를 거듭한 뒤에야 실현되었다."

p.253

즉, 저자는 삼국시대가 흥미본위로 각인된 것에 대해 심심한 우려를 표하고 있는 것이지, 시대가 대중들에게 크게 각인된 것을 문제삼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중들의 관심과 흥미를 위해 지나치게 윤색된 것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책이 정말 재미있게 읽히는 지점이 여기에 있다.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연의의 대표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통해 시대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을 일러주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한 인물의 한 사건과 인평에 대해 최소한 두가지 이상의 판본을 비교, 대조하는 방법으로 전후를 추론하고, 결론을 도출해낸다.

연의 안에서 과장되고 윤색된 부분을 도려내고, 사실을 읽는 방법을 소개하지만, 책 말미 저자의 말을 통한다면, 저자는 결코 [삼국연의]를 다시 읽기를 권하지 않고 있다.(ㅋㅋ) 
당연히 유비나 조조, 제갈량, 손권 등에 대한 지나친 비하는 전혀 없다.

그들이 했던 선택들이 충이나 의가 아닌,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시대적 흐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일종의 '시대적 재평가' 를 권하는 정도다. 연의의 팬들이 열폭할 이유는 전혀 없는 정도. 

서두에 언급했듯, 저자는 연의가 시대정신을 왜곡하고, 흥미본위의 역사 컨텐츠는 무의하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저자가 역사와 전혀 무관하다고 언급한다면 괜찮다고 말하고 있다. 그런 작가가 없어서 문제인 것이지, 라며.)

[삼국연의]를 그 대표적인 사례로 도마위에 올린 것이다.


우리가 읽는 [삼국연의] 는 삼국시대에 쓰여진 책이 아니다.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약 1500년대인 명나라 시대. 무려 1200여년 뒤에 쓰여진 책이다. 그리고 그것이 널리 퍼진 것은 1600년대 후반인 청나라시대 모성산, 모종강 부자가 수많은 주석을 붙였을 대라고 한다. 

저자는 삼국연의가 그 과정을 통해 역사의 본성이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현듯, 우리 주변의 수많은 역사소설들이 떠올랐다.

가끔 지나친 국수주의와 배타주의에 젖은 소설들이 '역사' 라는 이름으로 출간되는 것을 본다.

심지어, 교과서까지. 

대중들의 시각에 영합하는 짓은 작가라면 결코 해서는 안될 일이다. 심지어, '실제 역사와 무관할리 없다' 고 주장하는 역사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라면 더더욱. 독자를 특정하고, 그 독자들의 입맛에 따라간다면, 그 시대엔 인정받을지 몰라고, 다음 시대엔 반드시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다. 심지어, 그 독자가 대중이 아닌, 권력자라면 더더욱 안될 것이고.

(반면, 이중톈이라는 학자가 중국 관영매체인 CCTV의 TV강연을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기에, 중국 당국에 의해 키워진 어용학자라는 의심을 사고 있다는 건 재미있는 현상이다. 이 역시 후대에 평가받겠지.)   

그런 의심과는 별개로, 그의 역사서는 너무너무 재미있다. 
'이중톈 중국사' 는 총 16권에 달하는 출간 예정 목록 중, 이게 10권째의 책이다.

10권의 목록 중 가장 잘 아는 분야를 먼저 골랐다.

다음으로는 시황제의 진나라가 가장 흥미가 돋는다. 여불위와 영정의 이야기 역시 대중들에게는 아주 많이 알려진 인물들이니 이중톈 박사가 산산히 깨주겠지!! 
하지만, 좀 더 내려가서 춘추 전국시대인 5권부터 다시 차근차근 읽어볼 셈이다.

이중톈이라는 사학자가 대중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것이, 공자와 맹자를 한 테이블 위에 올린 '백가쟁명' 강좌를 통해서였다고 한다. 아마 제 5권인 '춘추에서 전국까지'  역시 그 기조가 유지되겠지. 

역사서지만 정말정말 쉽고 재미있다.

대중 강좌에 익숙한 사람이어선지, 시간의 흐름에 구애없이 명확한 주제별로 짧게짧게 이어가는데, 굉장히 이해가 쉽다.

물론, 이 저자가 일부러 아주아주 잘 알려진 인물들을 도마위에 올리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5권부터 10권까지 올라오다 보면 11권.12권도 나오겠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18-07-10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조는 죽는 날까지 헌제를 끼고 돌면서,
한왕조의 충신이라는 코스프레를 했죠.

아마 찬탈자라는 오명은 쓰고 싶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뭐 그런 오명은 선양이라는 형식
으로 아들에게 갔지만 말입니다.

나관중에 그렇게 추켜 세우는 유비 역시 지방
군벌에 지나지 않았다는게 현실 아닐까요.

그나저나 16권이나 된다고 하니 징하네요.

열혈명호 2018-08-27 18:02   좋아요 0 | URL
앗 레삭매냐님 댓글 이제 봤어요! ㅋㅋㅋ 죄송죄송.
유비, 손권, 조조는 물론 제갈량, 곽가, 가후, 사마의, 순욱, 원술에 대한 색다른 풀이들이 있어서 재미있더라고요. 특히, 당시 지방 호족들이 가장 싫어했던 부류인 조조에게, 당대 가장 명망있는 선비집안이었던 순욱이 가세한 이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흥미로웠어요.

참고로, 이 시리즈는 아마 국내에선 16권 분량만 계약이 되어있나봐요.

중국에선 이미 30권 가까이 나왔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