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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평점 :
SNS를 뒤져보면 수많은 괴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부터, 히틀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도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도 있다. 십자군 기사단의 분파인 '템플 기사단' 과 이슬람 수니파의 '하사신' 들이 물밑에서 아직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조종하고 있는 '프리 메이슨' 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야기' 를 좋아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실체적 증거를 들이밀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괴담과 기담을 퍼뜨린다.
설사 그것이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그 어떤 특별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저 '재미로' 혹은, '흥미로'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이야기' 는 어쩌면 인류의 특징이자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가는 인류의 이러한 특질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직업일터다.
이야기를 '지어내도', 또 그것을 '퍼뜨려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
누구보다 그럴듯하고, 어떤 일들보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
공인받은 이야기꾼들.
장용민 작가는 역사 속 괴담을 허투루 보아 넘기는 사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천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상과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의 건물에 얽힌 괴담을 활용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을 때 부터 말이다.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그의 수하들,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당시 독일의 과학기술에서 접점을 캐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9년 미국. 인파가 가득찬 극장에서 어린 소년을 쏘아죽인 살인범 오토 바우만.
사형을 코앞에 둔 그는 몰락한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틴 하퍼드를 지명, 방문을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비록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일을 안하고 있지만, 뛰어난 언론인이었던 그녀는 죽음을 코앞에 둔 살인범의 이이야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바우만의 이야기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 바우만은 유태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했던 그는 패망한 독일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전후 처리를 돕고 있었다. 독일어를 비롯, 폴란드, 러시아, 체코,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소련측과 히틀러의 시신을 확인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고, 아직 그 어느곳에서도 히틀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히틀러를 뒤쫓는 연합군의 특수 부대 '아디 헌터(Ady Hunter)' 에 대해 알게 된다.(아디는 아돌프 히틀러의 아명)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디 헌터에 입대하게 된 바우만은 전후 처리 과정 중에 압수된 독일의 기밀문서들을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독일 최고의 뇌 전문의이자 수많은 유태인들과 포로를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을 거듭한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가 뇌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히틀러와 융케 등 나치의 핵심인사들이 뇌를 이식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수십년에 걸친 아디헌터의 '히틀러 사냥' 이 본격화된다.
흥미진진하지만, 아주 새로운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원히 사는 존재' 가 인류 사회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설정은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다.
다만,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관건일 따름이다. 가장 흔한 존재는 물론 뱀파이어 같은 이들이 불멸의 삶을 이용해 아주 오랫동안 거대한 사업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정치계와 법조계를 좌우한다는 설정 정도일 것이다. 이는 혈통을 따라 대를 이어 기업체를 물려받는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 네트워크의 1차원적인 은유인 셈이다. 이런 존재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엔터테이너로 등장하는 정도가 좀 발전된 정도랄까.
[귀신나방]의 히틀러 역시 크게 신선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솔직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스트레인" 시리즈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눈에 띄였다.
하지만, 이 역시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이긴 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갑부가 시한부의 삶 속에서 영생을 주겠다는 이의 유혹에 넘어가는 클리셰는 고대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는 물론, 진시황의 역사적인 기록에도 등장하는 바이니...
히틀러가 '자본' 의 힘을 깨닫고, 그에 다가가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캔자스 주 린츠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역시 실제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는데, 아이디어와 소재, 전개 모두 깔끔하게 접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방식은 주인공이 제3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사건을 설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허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엔 참 비효율적이다.
제 3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이기에, '나는 그때 기분이 이랬소, 저랬소, ' 라는 식으로 단순히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이해하기엔 좋지만, 작가의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감정이입이 참 어렵다.
이 작품 역시 이 장단점이 모두 부각된다.
오토 바우만이나 크리스틴,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전형적인 성격인데, 작가가 이야기의 전달과 정서의 전달 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크리스틴에게 이입을 유도한 장치와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그도 정서의 전달이라기보다 드라마, 아니 '이력'전달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깊은 드라마나 정서적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족이나 연인 따위의-를 부여했다면, 어느정도 예상 가능했던 마지막 장면이 보다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는 저자의 선택으로 보인다.
사건도 전달하고, 정서도 전달하기보다, 장용민 작가가 정말 잘하는 것.
빠른 전개와, 적확한 구획, 요소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씬들을 위한 유려한 연출을 택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을때 즈음 인간의 뇌에서 두개골뼈로 향하는 림프관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지금까지는 없다고 여겨졌던 면역계의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건데,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아직 너무나 모르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뇌 이식 성공' 을 전제한 소설을 읽으니, 사실, 스토리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나는 SF와 판타지와 같은 장르를 무척 좋아하기에, '소설적 상상력' 에 대해 누구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다고 자신했지만, 뇌의 면역계조차 모르면서 뇌 이식을 성공할 수는 없을텐데, 그 존재 자체를 이제야 알았다는 기사를 봐버리니, 그 부분에서만큼은 소설적 상상력의 발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선택한 "뇌 이식" "히틀러 생존" "네오 나치" 라는 일련의 소재들이 더 진부하다고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미국의 금융,자본 시스템, '연방준비은행' 을 주 소재로 택한 점도 흥미로웠다. 이 역시 장용민 작가 특유의 적확하고 간명한 묘사와 등장인물을 통한 강렬한 장면들로 정말 잘 활용했다. 마침, 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에 "황금" 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어서 이 책에 간추린 미국의 통화정책이 쉽게 이해됐고, 그를 이용해 미국을 지배할 야심을 키우는 히틀러의 야욕 역시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금융시장 전체가 몇개의 은행으로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미국의 금태환은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폐기됐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들 중 하나였는데, 이전까지 미국의 달러는 금과 동가였다. 1달러의 지폐는 금 1달러어치와 동등했다는 뜻이다. 은행은 금을 맡고, 지폐는 금을 맡았다는 차용증서라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금은 희소성이 있어서 미국에서 발행된 돈은 세계 전체 금의 매장량을 쉽게 넘어버렸고, 이는 공황의 단초로 작용한다. 금과 지폐의 가치를 동등하다고 믿어온 시장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린 것. 금 본위제의 폐기는 시장을 위한 필수적인 선결과제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는 소설적 상상력을 가해 금태환 중지의 시기를 뒤로 많이 미루어 케네디 대통령과 연관시켰다. 케네디의 암살설 역시 이 쪽 장르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활용했던 소재이긴 한데, 네오 나치와 연결시키기 위해 금 본위제를 끌어들인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었고, 효과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에서 활용된 '귀신나방' 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음산한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매우 흥미로운 시도로 읽혔다.
무엇보다 참 생소한 곤충이라서 전반적으로 평이한 소재들을 신선하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잘 해주었다.
정말 영리한 한 수 였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결성은 훌륭했다.
구성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서사를 플롯을 이용해 흥미진진하게 배열한 스토리 텔링 기술도 돋보였다.
때문에, 약간 부족한 캐릭터가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대체역사물로 접근하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히는 면이 있다. 역사적 사실의 왜곡은 대체역사라면 충분히 허용되기도 하고. 장르의 속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하다.
장용민 작가는 협소한 우리나라의 문학계 안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되는 장르물에 특화된 작가이다.
이제, '장용민' 하면 어느정도의 완결성과 재미는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랄까.
뭐, 이런저런 아쉬움들을 토로하긴 했지만, 충분히 웰메이드로 평가될 만한 작품이었다.
엘릭시르의 한국 작가 라인업은 믿고 볼만한 수준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올 한해는 실망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