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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당 7년 - 문(問):지승호 답(答):김의성
김의성.지승호 지음 / 안나푸르나 / 2018년 2월
평점 :
태어나서 처음으로 읽었던 대담집은 '촘스키, 누가 세상을 무엇으로 지배하는가' 였다.
얇지만 더디 읽혔고, 분량도 적었지만 오래 읽었더랬다. 그래도 유익하긴 했다. 촘스키의 책은 너무나 어려웠는데, 적어도 대담집은 쉬운 편이었다. 눈 앞에 대화 상대가 있다는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맞춰서 이야기를 한다는 뜻이다. 그 상대의 반응을 보며 단어를 고르고, 어려운 부분은 쉽게 풀며, 과거에 있었던 주요한 발언과 그 발언이 나오게 된 계기들을 주관적으로 상세히 풀어준다. 그리고 상대방은 그 이야기들을 들으며 역시 자신의 주관대로 최대한 이해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나눈 이야기들이 차례차례 실린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의 주관이 실리고, 그걸 읽는 독자의 주관이 섞인다.
소위 '객관적' 이라고 주장했던 그것들이 그 안에서 산산히 깨진다.
수학 공식도 아니고.
철학과 사상에 객관성이 존재할 리 없다.
그렇다면, 거기에 대중성을 끼얹어볼까?
대중성은 얼핏, 객관성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은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인기가 많은 사람으로 여겨지고,
대중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객관적으로도 성공했다고 여겨진다.
자신이 그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도, 자신이 스스로를 실패했다고 주장해도 말이다.
김의성 배우는, 나에겐 어느날 갑자기 툭 떨어진 배우였다.
[관상] 에서 처음 봤지. 고개를 한쪽으로 꺾고, 얼굴은 거의 마지막에 등장하지만, 아주 강렬했다.
그 다음은 [육룡이 나르샤]였다.
정몽주 역이었는데, 선하게도 보였다가, 비열하게도 보이는 마스크가 굉장히 신선했다. 마침 그 작품에서는 정도전 역을 김명민 배우가 했었는데, 사료에 따르면 정도전은 풍채가 당당하고 뚱뚱한 편이었다고 하니, 싱크로율롷는 조재현 배우의 정도전보다 더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김명민 배우와 김의성 배우의 조합은 고려 왕조의 온건개혁 세력이었던 정몽주와 급진개혁 세력이었던 정도전으로 무척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나는 트위터를 거의 안하는 탓에 김의성 배우의 SNS 활약은 잘 몰랐다.
하지만, 설리를 두둔하고, 굴뚝에서 농성하던 쌍차 노조원을 지원하는 1인 시위를 하고, 명치를 존나 쎄게 맞겠다는 공약 정도는 알았다.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에, 이 책 소식이 조금 의아했지만, 쉽게 손이 갔다.
영화 감독이나 배우들은 인터뷰에 특화된 직업들이기도 하다.
이동진 평론가는 수많은 감독과 배우의 인터뷰를 담은 무시무시하게 두꺼운 책을 펴내기도 했고, 한 때는 영화 잡지를 통해 매주 수많은 배우와 감독들의 인터뷰를 볼 수 있었다.
[악당 7년] 은 그러한 숱한 인터뷰들 중 일부다. 단, 한 자리에 앉아 반나절, 한나절을 이야기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수개월에 걸쳐 꾸준히 만나면서 내용들을 쌓았다. 몇주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하고, 며칠만에 다시 만나 이어가기도 한 것 같다.
그 때문에, 전에 나왔던 내용이 되풀이되는 경우도 있고, 이야기의 화제가 촛불 집회에서 박근혜 탄핵으로, 대선으로, 문재인 당선과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변해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연극은 우리 문화에서 가장 진보적인 예술장르였다.
많은 연극들이 노동집회 현장에서 노동자들을 위해 상영되었고, 정치적, 이념적으로 민감한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김의성 배우는 그런 우리나라의 연극판에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몸담은 연극판은 노동운동 현장으로 향했고, 그 와중에 두번의 결혼과 두번의 이혼을 했고, TV드라마와 연극배우로 데뷔하고, 영화판을 떠나기도 했다. 무일푼으로 떠난 베트남에서 드라마를 제작했고, 무일푼으로 돌아와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 로 자신을 영화계로 이끌었던 홍상수에게 다시 이끌려 [북촌 방향] 으로 컴백했다.
그 이후 몇편의 영화에 더 출연했고, [관상] 으로 대중들에게 깊은 각인을 새겼고, [부산행] 으로 지난 해 백상영화대상 조연상을 받으며 대중적 인지도를 끌어올렸다.
그래선지, 김의성 배우는 배우이지만, 배우답지 않은 발언이 많았고, 당시 정부에 대한 비판도 숨기지 않았다.
비록 주연급은 아니라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반응은 아니지만, 그의 발언과 캐릭터는 호불호가 명확하다. 두번의 결혼과 이혼 경력부터 설리, 홍상수에 대한 의견, 주진우와 이승환등 '강동모임' 과의 관계, 쌍차 해고 노동운동가들과의 관계, 베트남 국민 드라마의 제작자, 여러 연극단과 얽힌 배우들과의 인연 등 상당히 광범위하게 까고 씹을 거리가 넘치기 때문이다.
지승호 인터뷰어와의 대담을 통해 그런 이야기들이 보다 넓고 깊게 조망된다.
특히 '연기철학' 을 묻는 대화에선, '그런건 없다' 고 말하지만, 그가 살아온 삶 자체를 담담하게 풀어내는 과정 속에서 충분히 묻어난다.
김의성 배우의 어린시절부터 50을 넘은 현재까지, SNS, 직접 겪은 노동운동과 메갈리안, 연극판, 영화판 스텝들과 함께 한 배우들의 이야기, 결혼관과 연애관, 연기와 철학, 나아가 예술관까지.
차분히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었고, 개인적으로 나와 생각이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 부분들을 논리적이면서도 명확하게,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부분들이 인상적이었다.
이 책을 통해 대담을 읽는 재미가 생겼다.
다른 책들도 찾아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