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가야사 - 신화 시대부터 가야의 후손 김유신까지
이희근.김경복 지음 / 청아출판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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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굉장히 낯익지만, 상대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역사.

가야에 대한 역사적인 사료들이 많지 않은것은, 한반도에 깊이 새겨있는 슬픈 역사와 그 맥을 같이한다.

일본이 야마토 정권 시대에 남부지방을 지배했었다는 주장인 '임나일본부'의 '임나'의 위치가 바로 가야가 있던 바로 그 위치였기 때문이다. 임나일본부가 성립하려면, 야먀토 정권 이전에 한국 남부지방에 그보다 앞선 문명이 있어선 안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일제 강점기 시절, 자신들의 한반도 식민지화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임나일본부설에 집착했고, 한국 남부지방, 특히 김해지방의 고고학적 발굴에 힘썼다.

하지만, 김해지방에서 나오는 가야의 유물과 유적들은 야마토 정권 당시의 일본보다 훨씬 앞선 문명의 흔적들이 발견되었고, 특히 철기문명은 동시대의 고구려, 백제, 신라보다 빨랐다. 하지만, 다른 국가들이 왕권을 정립시키고 중앙집권의 기틀을 마련하던 시기에도 부족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해, 정치적으로 삼국보다 뒤쳐졌던 가야연맹은 백제와 신라의 치밀한 외교전략에 말리다가 결국 신라에 복속되고 말았다.

 

아마 한국 고대사에 크게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신라와 백제의 문명적 토대이기도 했던 금관가야에 대해 이정도는 들어본 적이 있을것이다. 그리고, 가야를 통합해서 가야연맹을 이뤄냈던 가야의 왕 김수로. 다른 삼국의 태조들과 마찬가지고 알에서 깨어난 수로신화 역시 들어본 적 있을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 시점. 김수로가 가야의 왕으로 등극해 강력한 철기문명을 바탕으로 한반도의 남부지방을 한데로 아울러 한때 삼국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강력한 연합국가를 세우는 과정이 비교적 상세하게 서술되고 있다.

 

이 작품은 일단 크게 네 단락으로 나뉘어 있다.

첫째 단락에서는 개괄의 의미를 갖고, 가야라는 국가가 가지고 있던 특징과 김수로의 신화가 의미하는 사실적인 것들, 그리고 가야의 철기문화와 그것들을 뒷받침하는 유적과 유물들에 대해 쉽고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그렇게 가야에 대해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것을 설명한 뒤에, 두번째 단락을 통해 한국사와 일본사 사이의 핫이슈인 임나일본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일본이 왜 그토록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지, 그 근거는 어디에 있고, 양 국 사학자들의 입장은 어떤지, 그리고 우리 입장에서 그 허구성은 어떻게 증명하는지 등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다.

 

가야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는 나머지 두 단락을 통해 나타난다.

전기 가야연맹과 후기 가야연맹 속에서 부족사회가 어떻게 성립되고 유지되어 왔는지, 당시의 사회 모습은 어떠했으며, 주변국가들이 강력한 왕권체제를 수립하는동안 가야연맹은 왜 끝까지 연맹체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으며, 후기, 대가야와 금관가야를 주축으로 결집되어 있던 가야연맹들이 결국 어떻게 무너져서 신라에 편입되었는지가 드러난다.

 

전반적으로 주장과 근거들이 역사적 사료와 유적, 유물들을 통해 쉽고 설득력있게 서술되고 있으나, '이야기' 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는건 사실이다. 일단 가야의 역사 자체가 연합국가이기 때문에 각 연합국(부족)들에 대한 충분한 사료가 전해지지 않고 있고, 남아있는 사료라고는 신라에 편입된 이후에 단편적으로 등장할 뿐이다.

큰 흐름이라는 것을 잡아서 풀어내기가 까다로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까지의 고대사들에 비해 비교적 설득력있고 상세하게 풀어낸 것임은 사실이다.

우리 민족들은 예로부터 아주 뛰어난 능력들을 지니고 있었다.

그 민족적 우수함은 한반도라는 지정학적 불리함, 숫적으로 많지 않은 불리함을 딛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에서도 알아주는 국가를 건설하는데 기반이 되었음은 자명하다.

과거가 없이 현재는 있을 수 없다. 그리고, 과거는 언제나 미래의 거울이기도 하다.

이렇게 끊임없이 과거에 대한 탐구와 연구가 있을때, 우리 민족의 우수성은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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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신곡 - 영원의 구원을 노래한 불멸의 고전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양억관 옮김, 구스타브 도레 그림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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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클래식.

이 단어만큼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말이 또 어디 있던가.

하지만, 이 단어만큼 가치있고, 뛰어나다는 의미를 가진 말 또한 없을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지만, 고전은 영원지 죽지 않는다. 아마 서기 5000년의 인간들도 '단테' 라는 이름을 배울 것이고, 이 작품 '신곡' 또한 읽히든, 아니면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뇌에 주입되든 할 터이다. 뭐, 지금의 인류가 그때까지 멸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ㅋㅋ

 

 

130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유럽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천하의 부가 모이며, 그 부를 둘러싸고 수많은 가문들이 정치,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큰 파벌을 이루며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많은 파벌들 중 '백파' 와 '흑파' 가 있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단테' 는 백파의 리더들 중 한사람이었다.

백파는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일부 귀족과 부호들의 이익을 위해 암약하는 흑파의 모략과 음모로 인한 군사 쿠데타로 지도자 전원이 투옥되고 추방당하고 만다.

단테 또한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어, 방랑의 길을 떠나, 결국 베로나를 거쳐 라베나에 정착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것은 단테가 보고 겪었던 이야기이다.

 

단테는 깊은 숲속을 헤매이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애매모호했다.

깊은 숲속에서 거대한 늑대와 사자를 만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때, 로마시대 뛰어난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 를 만나게 된다.

역시 '시' 를 공부했던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경의 마음과 신뢰를 갖게 되고, 그의 인도로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길고 끔찍한 지옥과 연옥의 여행이 끝난 뒤에는 지금은 죽고 만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베아트리체' 를 만나 천국을 여행하고 삶의 의미와 사람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 .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아마 유명한 게임인 '데빌 메이 크라이' 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단테' 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테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4대 시성으로 꼽히며, 이탈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는 위대한 인물이다.

(세계 4대는 좀 그렇고, 서양 4대라고 해야 맞을 터다 사실은.ㅋㅋㅋ 지들이 이백이나 두보의 한시를 접하지도 못했으면서...대체 누가 세계 4대 시성을 뽑았는지 원..ㅋㅋㅋ)

 

여튼, 이 작품 '신곡' 은 단테가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완성항 '대서사시' 라고 알려져 있고, 10몇년간 집필에 몰두했던 역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소문' 만으로도 '와 어렵겠다' '와 엄청 두껍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단테는 '시인' 이고,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정말 그냥 대서사'시' 인 것이다.

두께도 얇고, 사실 글자도 별로 없다. ;;;

 

처음 신곡을 접했을때, 솔직히 읽긴 읽었으되, 머리가 하얀...그런 느낌이었다.

대강 맥락은 이해되지만, 시란 함축된 단어들의 나열이지 않은가?

100 중에 20만 이해한 셈이니, 재미있을리 만무했다.

일단 단테를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망자들도 '얜 또 누꼬?' 수준이었으며, 감탄사와 오래된 성경처럼, '누가 뭐뭐 하였으니~~ 하였으되~~' 로 끝나는 애매모호한 종결어미들 역시 몰입을 방해했었다.

 

정말로 '주석' 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책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밑줄 쫙 쫙 거가며, 화자가 처한 상황, 함축적 의미, 상징성, 작품 외적인 상황, 내적인 심리...등등 우리고 고등학교때 배웠던 시에 대한 모든 것들을 쥐뿔정도는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신곡' 인 것이다.

 

 

이번에 리뷰를 하게 된 다니구치 에리야의 '단테의 신곡' 은 위에 언급한 곤란한 요소들을 상당히 해소시켜주는 좋은 작품이다.

일단 19세기 최고의 일러스레이터인 '구스타브 도레' 의 세밀 목판화도 함께 해 예술적 가치가 상승되었고, 다니구치의 세밀한 주석도 신곡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 란 함축된 언어로 쓰여진 것이기에 이거 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애매한 부분들이 있고, 저자의 의도도 애매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하나하나. 등장인물 한명한명까지 상세한 주석이 붙어있어 전반적인 이야기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구스타브 도레의 놀라운 상상력이 표현된 세밀한 목판화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일조한다.

정교하고 디테일한 정묘한 판화들은 그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표정까지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끔찍한 지옥과 연옥, 그리고 환상적인 천국의 정경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가치는 그 '순수성' 에 있다.

작가가 나름대로 탐구하고 도출해낸 교훈들, 가르침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들. 

그것들은 순수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했고, 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그것을 담아낸 것이다.

 

고전문학은 서사적인 재미에 있어서는 현대문학보다 못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어느 부위를 어떤 무기로 어떻게 쑤셨으며, 그것을 어떤 트릭으로 숨겨내고,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데, 그와의 관계는 이렇고 저렇고 블라블라.

하지만, 과연 그런 서사적 '재미' 속에 인류에게 주는 보편타당한 메시지가 고전에 비할바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있다고 쳐도, 그것은 이미 수백년전 작가들이 한 서너번쯤 써먹었던 것들에 불과할것이다.

 

 

인간에게 정말 영혼이라는 것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내가 키우는 예쁜 고양이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그리고 사후세계란 존재할까?

그 사후세계에는 인간만 가는걸까? 그럼 우리 고양이는? 얜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걸까?

질문에 질문이 끊이지 않고, 종교의 도움은 사실 그닥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교 또한 그 질문들에 속시원한 도움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냥 개인의 믿음에 맡기게 되고, 그 믿음을 굳혀줄 무언가를 내밀 뿐이다.

 

이 작품 '신곡' 은 기본적으로 가톨릭 세계관에서 쓰여졌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관이 역시 뒤섞여있다.

지옥, 연옥, 천국은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말하고 있는 사후세계의 모습이며, 뱃사공 카론은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뿐만아니라 여러 곳에서 가톨릭의 세계관과 그리스 로마신화의 세계관이 큰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욕망과 탐욕이 인간은 어떤 길로 이끌고, 선행과 자비가 역시 인간을 어떤 길로 이끄는지에 대한 교훈인 동시에,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이 생보다 죽은 뒤를 더 생각해보라는 가톨릭 적인 종교관이 함께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베르길리우스가 주는 교훈이나 베아트리체의 말 한마디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에 대한 메시지들도 아주 풍부하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해.

논리를 넘어서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네. 그 이유를 생각하는 건 좊지만, 그럴 때도 쓸데없는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돼.

논리를 따르면, 사람이 나아갈 길은 너무도 좁아.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의 경지처럼 바라보면 된다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의 경지처럼 바라보면 된다네. 모든 것은 불가사의, 모든 것은 자연, 마음에 비치는 그대로를 아는 게 중요한 일이라네."

P. 188

 

 

다니구치 에리야와 구스타브 도레의 신곡.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많지 않다.

인류가 순수하게 추구하던 문학을 접해보기에 더 없이 좋은 교재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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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 개정판 VivaVivo (비바비보) 6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뜨인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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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베트남에 참전했던 상이군인이었다.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훤칠한 외모와 준수한 학력으로 나름대로 전도유망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동료가 떨어뜨린 수류탄. 이 수류탄이 루벤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미래까지 바꾸어버렸다.

베트남에서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루벤은 한쪽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버린 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해적선장처럼 안대를 해야했고, 움직이기 불편한 왼팔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응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 했다.

간신히 부상에서 회복된 루벤은 약혼녀와 이별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의 상이용사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사회선생님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베트남 참전용사에 흑인이었고, 독신남인 사회선생님이었다.

 

아를렌은 사람들이 보면 한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시골동네에 살고 있었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리키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남들처럼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리키는 이미 쉐릴이라는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것.

리키는 얼마 뒤 쉐릴과 이혼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를렌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키는 말 그대로 '망나니' 에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었던 것이다.

아를렌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지만, 리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트레버' 는 달랐다.

 

열두살 트레버는 보다 사려깊고, 주의력이 좋은 소년이었다.

여기엔 아를렌의 통렬한 자기반성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아를렌은 자기가 인생을 망쳤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고, 자식에게 그것들 되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미혼모로 내연남인 리키가 저질러놓은 뒷처리를 하느라 아침이나 낮이나 정신없이 일을 해야했지만, 끊임없이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사랑으로 보살폈으며, 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리키로부터 배운 못된 버릇인 알콜중독이 있었지만, 끊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이제 빛을 보고 있었다.

 

트레버가 다니는 학교에 사회 선생님으로 부임한 루벤은 한 학기짜리 과제를 내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시오.'

 

트레버가 생각해낸 아니디어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였다.'

우선, 한 사람이 다른 세 사람에게 댓가없이 무언가를 베푼다.

그게 무엇이 됐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도움을 받은 상대방은 그 베풂의 댓가를 또 다른 타인에게 베푸는 것으로 갚는다.

마치 피라미드식 다단계 마케팅처럼, 베풂이 피라미드 처럼 확산된다.

 

트레버는 일단 세사람을 선택한다.

 

과연, 트레버의 계획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어떤 열매를 얻게 될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되게 옛날에 봤던 것 같은데, 2001년 작이다.

'식스 센스' 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작품이다

.

이 영화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지나치게 보편적인 캐릭터를 작위적으로 사건들과 연계시키는 연출로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따뜻한 메시지와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살린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 작품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작년에야 알았다.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온라인 서점의 DVD 코너를 뒤적이다가 연관 검색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고, 구판은 죄다 품절이었고, 개정판은 한 곳에서만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트레버' 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가 부족했던 50%을 완벽하게 메꿔주는 것이었다.

일단 캐릭터도 달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구조도 완벽히 달랐다.

책을 보고 영화를 평하니, 이건 완벽히 원작을 망친 케이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기자의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된다.

사회에 일어난 작고도 큰 변화.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관련된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서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인터뷰는 시간대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고, 트레버는 알지 못했지만, 관계를 미친 인물들 역시 포함된다. 매 챕터의 마지막엔 트레버의 일기가 첨부되어 있다. 이 방식은 인물들이 난립하는 듯도 보이지만, 짜임새 있고 흡인력이 있어서 시종일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살짝 도톰한 볼륨의 이 책은, 페이지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단 한명도 우리의 관점에서 '정상적으로 채워진' 사람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루벤은 흑인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추하게 변한 외모때문에 이중 삼중의 방어벽을 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아를렌은 망쳐버린 인생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알콜 중독 경력까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트레버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마약 중독자, 노숙자, 독거노인, 동성애자 등이다.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소외의 기준은 언제나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색깔, 성별, 선호하는 것, 태어난 곳, 입고있는 옷, 갖고있는 돈, 키.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와 그 사람의 과거까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 작품은 루벤과 아를렌을 통해 단단하게 감춰진 상대방의 마음을 파고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고,

트레버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을 하고 마음을 열고, 진심에 다가서는 방법.

그 방법은 단순하고도 어려운 '차별없이 바라보는' 법이다.

 

타인에게 가지게 되는 편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우리가 노숙자나 부랑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순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마음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분들 대부분은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노숙자나 부랑인들 역시 자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의를 갖게 된다.

실제로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역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게다가 어쩌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신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적대적인 감정들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많은 경험과 간접경험들을 겪게되고, 그것은 모두 편견이 된다.

 

이 작품속에서 루벤과 아를렌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 보편적인 편견을 갖고 상대방을 대한다.

아직 순수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트레버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엄마와 세인트 클레어(루벤) 선생님은 서로 좋아한다. 난 안다.

한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정작 두 사람은 그걸 모르냐는 거다.

두 사람을 붙잡고 '그러지 말고 인정하라고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P. 79

 

남녀가 만나 소통을 하고 사랑을 하는 과정은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무는 과정과 일치한다.

루벤과 아를렌이 '정작 두 사람이 그걸 몰랐던 이유' 는 서로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순수한 트레버의 눈에는 루벤과 아를렌이 완벽한 한쌍이 될 수 있지만, 루벤은 자신의 흉칙한 외모를 아름다운 아를렌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아를렌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루벤이 젊은 시절 몸을 막 굴린 댓가를 치르고 있으며, 트레버의 친부인 리키와의 관계조차 정리되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자신을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다.

자존심과 편견의 벽 때문에.

 

트레버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소통' 을 위한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화' 를 시도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모두 '말' 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심을 담은 말' 은 결코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를 정말로 돕고 싶다면 그리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세요?

엄마한테 몹시 화가 났는데 엄마를 돕는다면 그게 큰일이 되는거라구요."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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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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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름부터 웃기다. '박 상' ....

그 책 작가가 누군데?

박상.

......

그냥 박상이야.

 

박상 뒤에 뭔가 한 자 더 올것 같아서 작가가 누구냐고 묻고 좀 기다렸는데, 그냥 박 상이 맞단다.

이름부터 '허걱' 하게 했던 이 독특한 단편집은, 매 작품들이 '허걱' 하게 할 정도로 '깬다'.

그래, 한국 문단에서도 이제 색다른 시도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관념을 뒤집는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했는데, 급기야 이런 작품까지 나왔다.

 

첫 단편인 '치통, 락소년, 꽃나무' 를 시작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원식씨의 타격폼' 그리고 '홈런왕B'  생각지도 못한 쇼킹한 러브행각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연애왕C' 그리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외계로 사라질테다' 와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  그리고 마이너한 감성을 듬뿍 담아내며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사랑과 연애, 고민과 삶들을 잘 담아낸 '춤을 추면 쉽지 않아 '체면 좀 세워줘' ,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

모든 작품들이 통통튀는 상상력과 슬럼가의 흑인 랩처럼 말 그대로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문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어떤 문화 장르에서건 작가가 데뷔하기 위해서는 '단편' 이 필요하다.

영화, 소설, 만화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모든 역량을 부어 자신의 경험과 숨결을 한정된 지면 안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모든게 '압축' 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단편은 한두번 읽어서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또한 소설 단편은 수필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플롯을 압축하고, 장면들을 나누어 이중 삼중의 장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메시지를 드러낸다.

좋은 단편일수록 플롯은 단순하고, 담겨있는 것들은 많다.

양파를 벗기듯, 단순한 모양 속에 새로운 면들이 계속해서 솟아난다.

 

소설가 박상이라는 인물을 세상으로 끌어올린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이 딱 그런 작품이다.

냉동된 닭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였던 주인공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얻어오면서 시작되는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속에,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사랑과 우정이 있다.

 

"그는 공간을 장악해가고 시간까지 장악해간다.

목소리가 시공을 초월하면서 완벽한 절정에 다다른다.

인간의 삶도 없고, 짝짝이 구두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여자의 얼굴도 없고 사투리를 쓰는 배송과장도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

무겁게 퍼지는 하드락처럼 도도하게 존재할뿐.

p.264"

 

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내일도 짝짝이 구두를 목도할 것이고,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사투리로 까대는 배공과장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락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너 뒈지면 죽여버린다!' 고 말하는 친구도 있으며, '자신의 삶에 기대어드는' 따뜻한 체온의 고양이도 있을것이다.

 

"기분 좋은 웃음이 잠깐 그의 심장 박동에 감흥을 싣는다.

바람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간다.

P. 265"

 

 

이 등단작이 이 책의 말미에 실려져 있다는 것 또한 유머러스한 편집이다.

편집자와 작가간의 소통이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는데, 비교적 서정적이고 담담한 내용의 등단작과는 달리 나머지 8편의 작품들은 모두 파격에 가까운 상상력과 구조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는듯한 얼얼함, 손바닥을 치게 만들 유머. 거기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현실을 담고, 그것을 교묘하게 조소하는 문체를 뒤섞으면 '박상' 표 '밥상' 이 완성된다.

 

최고의 밥상. 최고의 밥상은 뒤 엎는게 제격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이해, 라는 것은 무조건 쌍방이다.

일방적인 이해는 폭력이나 돈이나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 이해를 바랄때는반드시 쌍방이어야 한다.

p. 106p"

 

"사랑이란,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 사랑때문에 아픈데 그 사랑을 지키겠노라고, 믿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행복이 다운되어 버린다.

세상에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데 뭣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걸 해야한단 말인가.

p. 110"

 

"작은 고양이와 그의 눈이 처음으로 맞부딪힌다.

그는 밥공기를 놓고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준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눈물을 닦을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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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 플래닛 헐크 시공그래픽노블
Pagulayan, Carlo 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9년 11월
평점 :
품절


통쾌하고 강렬한 액션! 글래디에이터를 뛰어넘는 짜임새있고 완성도 높은 영웅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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