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버 - 개정판 VivaVivo (비바비보) 6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뜨인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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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베트남에 참전했던 상이군인이었다.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훤칠한 외모와 준수한 학력으로 나름대로 전도유망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동료가 떨어뜨린 수류탄. 이 수류탄이 루벤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미래까지 바꾸어버렸다.

베트남에서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루벤은 한쪽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버린 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해적선장처럼 안대를 해야했고, 움직이기 불편한 왼팔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응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 했다.

간신히 부상에서 회복된 루벤은 약혼녀와 이별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의 상이용사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사회선생님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베트남 참전용사에 흑인이었고, 독신남인 사회선생님이었다.

 

아를렌은 사람들이 보면 한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시골동네에 살고 있었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리키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남들처럼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리키는 이미 쉐릴이라는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것.

리키는 얼마 뒤 쉐릴과 이혼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를렌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키는 말 그대로 '망나니' 에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었던 것이다.

아를렌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지만, 리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트레버' 는 달랐다.

 

열두살 트레버는 보다 사려깊고, 주의력이 좋은 소년이었다.

여기엔 아를렌의 통렬한 자기반성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아를렌은 자기가 인생을 망쳤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고, 자식에게 그것들 되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미혼모로 내연남인 리키가 저질러놓은 뒷처리를 하느라 아침이나 낮이나 정신없이 일을 해야했지만, 끊임없이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사랑으로 보살폈으며, 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리키로부터 배운 못된 버릇인 알콜중독이 있었지만, 끊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이제 빛을 보고 있었다.

 

트레버가 다니는 학교에 사회 선생님으로 부임한 루벤은 한 학기짜리 과제를 내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시오.'

 

트레버가 생각해낸 아니디어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였다.'

우선, 한 사람이 다른 세 사람에게 댓가없이 무언가를 베푼다.

그게 무엇이 됐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도움을 받은 상대방은 그 베풂의 댓가를 또 다른 타인에게 베푸는 것으로 갚는다.

마치 피라미드식 다단계 마케팅처럼, 베풂이 피라미드 처럼 확산된다.

 

트레버는 일단 세사람을 선택한다.

 

과연, 트레버의 계획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어떤 열매를 얻게 될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되게 옛날에 봤던 것 같은데, 2001년 작이다.

'식스 센스' 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작품이다

.

이 영화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지나치게 보편적인 캐릭터를 작위적으로 사건들과 연계시키는 연출로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따뜻한 메시지와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살린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 작품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작년에야 알았다.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온라인 서점의 DVD 코너를 뒤적이다가 연관 검색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고, 구판은 죄다 품절이었고, 개정판은 한 곳에서만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트레버' 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가 부족했던 50%을 완벽하게 메꿔주는 것이었다.

일단 캐릭터도 달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구조도 완벽히 달랐다.

책을 보고 영화를 평하니, 이건 완벽히 원작을 망친 케이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기자의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된다.

사회에 일어난 작고도 큰 변화.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관련된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서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인터뷰는 시간대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고, 트레버는 알지 못했지만, 관계를 미친 인물들 역시 포함된다. 매 챕터의 마지막엔 트레버의 일기가 첨부되어 있다. 이 방식은 인물들이 난립하는 듯도 보이지만, 짜임새 있고 흡인력이 있어서 시종일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살짝 도톰한 볼륨의 이 책은, 페이지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단 한명도 우리의 관점에서 '정상적으로 채워진' 사람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루벤은 흑인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추하게 변한 외모때문에 이중 삼중의 방어벽을 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아를렌은 망쳐버린 인생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알콜 중독 경력까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트레버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마약 중독자, 노숙자, 독거노인, 동성애자 등이다.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소외의 기준은 언제나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색깔, 성별, 선호하는 것, 태어난 곳, 입고있는 옷, 갖고있는 돈, 키.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와 그 사람의 과거까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 작품은 루벤과 아를렌을 통해 단단하게 감춰진 상대방의 마음을 파고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고,

트레버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을 하고 마음을 열고, 진심에 다가서는 방법.

그 방법은 단순하고도 어려운 '차별없이 바라보는' 법이다.

 

타인에게 가지게 되는 편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우리가 노숙자나 부랑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순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마음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분들 대부분은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노숙자나 부랑인들 역시 자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의를 갖게 된다.

실제로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역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게다가 어쩌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신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적대적인 감정들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많은 경험과 간접경험들을 겪게되고, 그것은 모두 편견이 된다.

 

이 작품속에서 루벤과 아를렌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 보편적인 편견을 갖고 상대방을 대한다.

아직 순수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트레버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엄마와 세인트 클레어(루벤) 선생님은 서로 좋아한다. 난 안다.

한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정작 두 사람은 그걸 모르냐는 거다.

두 사람을 붙잡고 '그러지 말고 인정하라고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P. 79

 

남녀가 만나 소통을 하고 사랑을 하는 과정은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무는 과정과 일치한다.

루벤과 아를렌이 '정작 두 사람이 그걸 몰랐던 이유' 는 서로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순수한 트레버의 눈에는 루벤과 아를렌이 완벽한 한쌍이 될 수 있지만, 루벤은 자신의 흉칙한 외모를 아름다운 아를렌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아를렌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루벤이 젊은 시절 몸을 막 굴린 댓가를 치르고 있으며, 트레버의 친부인 리키와의 관계조차 정리되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자신을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다.

자존심과 편견의 벽 때문에.

 

트레버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소통' 을 위한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화' 를 시도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모두 '말' 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심을 담은 말' 은 결코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를 정말로 돕고 싶다면 그리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세요?

엄마한테 몹시 화가 났는데 엄마를 돕는다면 그게 큰일이 되는거라구요."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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