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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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름부터 웃기다. '박 상' ....

그 책 작가가 누군데?

박상.

......

그냥 박상이야.

 

박상 뒤에 뭔가 한 자 더 올것 같아서 작가가 누구냐고 묻고 좀 기다렸는데, 그냥 박 상이 맞단다.

이름부터 '허걱' 하게 했던 이 독특한 단편집은, 매 작품들이 '허걱' 하게 할 정도로 '깬다'.

그래, 한국 문단에서도 이제 색다른 시도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관념을 뒤집는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했는데, 급기야 이런 작품까지 나왔다.

 

첫 단편인 '치통, 락소년, 꽃나무' 를 시작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원식씨의 타격폼' 그리고 '홈런왕B'  생각지도 못한 쇼킹한 러브행각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연애왕C' 그리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외계로 사라질테다' 와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  그리고 마이너한 감성을 듬뿍 담아내며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사랑과 연애, 고민과 삶들을 잘 담아낸 '춤을 추면 쉽지 않아 '체면 좀 세워줘' ,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

모든 작품들이 통통튀는 상상력과 슬럼가의 흑인 랩처럼 말 그대로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문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어떤 문화 장르에서건 작가가 데뷔하기 위해서는 '단편' 이 필요하다.

영화, 소설, 만화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모든 역량을 부어 자신의 경험과 숨결을 한정된 지면 안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모든게 '압축' 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단편은 한두번 읽어서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또한 소설 단편은 수필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플롯을 압축하고, 장면들을 나누어 이중 삼중의 장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메시지를 드러낸다.

좋은 단편일수록 플롯은 단순하고, 담겨있는 것들은 많다.

양파를 벗기듯, 단순한 모양 속에 새로운 면들이 계속해서 솟아난다.

 

소설가 박상이라는 인물을 세상으로 끌어올린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이 딱 그런 작품이다.

냉동된 닭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였던 주인공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얻어오면서 시작되는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속에,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사랑과 우정이 있다.

 

"그는 공간을 장악해가고 시간까지 장악해간다.

목소리가 시공을 초월하면서 완벽한 절정에 다다른다.

인간의 삶도 없고, 짝짝이 구두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여자의 얼굴도 없고 사투리를 쓰는 배송과장도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

무겁게 퍼지는 하드락처럼 도도하게 존재할뿐.

p.264"

 

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내일도 짝짝이 구두를 목도할 것이고,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사투리로 까대는 배공과장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락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너 뒈지면 죽여버린다!' 고 말하는 친구도 있으며, '자신의 삶에 기대어드는' 따뜻한 체온의 고양이도 있을것이다.

 

"기분 좋은 웃음이 잠깐 그의 심장 박동에 감흥을 싣는다.

바람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간다.

P. 265"

 

 

이 등단작이 이 책의 말미에 실려져 있다는 것 또한 유머러스한 편집이다.

편집자와 작가간의 소통이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는데, 비교적 서정적이고 담담한 내용의 등단작과는 달리 나머지 8편의 작품들은 모두 파격에 가까운 상상력과 구조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는듯한 얼얼함, 손바닥을 치게 만들 유머. 거기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현실을 담고, 그것을 교묘하게 조소하는 문체를 뒤섞으면 '박상' 표 '밥상' 이 완성된다.

 

최고의 밥상. 최고의 밥상은 뒤 엎는게 제격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이해, 라는 것은 무조건 쌍방이다.

일방적인 이해는 폭력이나 돈이나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 이해를 바랄때는반드시 쌍방이어야 한다.

p. 106p"

 

"사랑이란,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 사랑때문에 아픈데 그 사랑을 지키겠노라고, 믿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행복이 다운되어 버린다.

세상에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데 뭣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걸 해야한단 말인가.

p. 110"

 

"작은 고양이와 그의 눈이 처음으로 맞부딪힌다.

그는 밥공기를 놓고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준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눈물을 닦을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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