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킬링 조크 BATMAN The Killing Joke : 디럭스 에디션 The Deluxe Edition (양장)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앨런 무어 지음, 박중서 옮김, 브라이언 볼런드 그림 / 세미콜론 / 2010년 11월
평점 :
절판


흔히 '코믹스 ' ,'코믹 이슈' , '코믹북' 정도로 불리웠던 미국의 만화가 '그래픽 노블' 이라는 고급스러운 명칭을 얻은건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미국에서의 만화는 주로 교육적인 목적을 가지고 발전해 나갔다.

글과 그림의 조합이 지식이나 정보를 전달할때 훨씬 강력한 수단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에 입각한 실용주의의 서양식 사고방식다운 접근이다. 광고선전물과 교육자료등으로 발전한 미국의 만화는 그 틀 안에서 쉬이 벗어나지 못했고, 제2차 세계대전과 함께 붐을 일으켰던 '슈퍼 히어로' 들의 등장도 그 안에서 멤돌았던 것이다.

망토를 입은 초능력자들은 말 그대로 권선징악의 메시지를 담고있는 무적의 사나이들이었고, 만화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것이어야 했다.

 

1980년대 말기, 프랭크 밀러, 앨런 무어, 존 히긴스등으로 대표되는 몇몇 천재적인 스토리 텔러들이 등장했다.

미국 대중문화계에서는 이들을 가리켜, 온갖 경의를 담아 '미치광이' 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정도로 보통 작가들이 상상할 수 없는 관점으로 '문학예술' 의 범주 안에서 만화라는 장르를 조망했던 것이다.

 앨런 무어는 일찌감치 'V 포 벤데타' '왓치맨' 등으로 사회적 메시지를 직유에 가깝게 만화에 담아내는데 성공했고, 프랭크 밀러가 재창조해낸 배트맨은 망또를 걸친 강력한 사나이에서 어렸을때의 트라우마와 인간적인 고뇌를 안은 남자로 재창조 되었다.

이를 통해, 수많은 독자들은 현실을 그대로 담아놓은 도시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하는 슈퍼 히어로들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배트맨' 은 미국 내에서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인기있는 캐릭터이다.

아니, 캐릭터라기 보다 '인물' 이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위인' . 즉 '히어로' 인 것이다.

배트맨과 슈퍼맨은 미국 안에서는 단순히 캐릭터의 가치를 넘어서서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의 메타포이자, 심볼이다.

 

1980년대의 스토리 텔러들은 배트맨의 이중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검은 가면을 쓴 냉혹하고 강력한 징벌자이지만, 가면을 벗으면 그는 브루스 웨인이라는 부잣집 도련님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검은 가면은 그의 정체를 가려줌과 동시에 연약함을 가려주는 장치가 된다.

그런 그의 이중성은 인간다움 그 자체였다. 익명성에 가려 악당들을 처단하지만, 검은 마스크가 대변하는 그 익명성이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안에 내재되어있는 악마성을 불어 일으키는 장치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브루스 웨인' 으로서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는 분노와 증오를 잉태하고, 그것은 당연히 폭력을 낳는다.

'배트맨' 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으로 간신히 분노와 증오를 어느정도 제어하고 있지만, 이 균형은 언제나 위태롭다.

 

프랭크 밀러는 배트맨의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그의 탄생에 집중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은 이중성이 있고, 그 감정의 분화에는 마땅한 인과관계가 필요하다.

브루스 웨인이 평탄한 인생을 버리고, 마스크를 쓴 두얼굴의 사나이로 살며, 밤마다 온 몸이 상처와 멍투성이가 되며 악당들을 사냥하는데는 보다 설득력있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게 배트맨 '이어 원Year One' 이라는 작품이 탄생했고, 비로소 캐릭터가 생명력을 얻고, 현실성을 획득하기 시작한다.

그 작품 안에서 마스크를 쓴지 얼마 안된 초기의 배트맨은 밤마다 악당들에게 쥐어 터지고, 칼에 찔리고, 총에 맞으며 아슬아슬한 시간들을 보낸다. 이런 배트맨의 인간적인 모습에 수많은 팬들은 실망했지만, 또다른 수많은 팬들이 생겨났다.

또한, 늙고 은퇴한 배트맨의 모습을 그려낸 ' 다크나이트 리턴즈' 와 '다크나이트 스트라이크 어게인' 같은 작품들을 통해 보다 더 현실적인 배트맨의 모습을 마주하게 된 것이었다.

 

이런 시도가 한 발 나아간 작품이 바로 이 작품, '킬링 조크' 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트맨' 의 가장 강력한 적은 바로 '조커' 이다.

놀란감독의 '다크 나이트' 에서 히스레저가 생명의 불꽃을 태우며 열연했던 바로 그 하얀 얼굴의 광대.

조커는 배트맨의 이중성 중, 악마성이 현신한 듯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배트맨이 지키는 '선line' 은 '살생' 이다. 그는 아무리 증오스러운 범죄를 저지른 악당이라고 할 지라도 절대 자신의 손으로 죽이지 않는다.

이미 법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악당들을 징벌하는 배트맨은 스스로가 어둠에 속해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다.

그는 악당과 영웅의 가장자리에서 위태롭게 걷고있다. '사회' 의 시스템이 이미 모든 악을 처단할 수 없음을 인지한, 시스템 밖에 있는 존재인 것이다.

한 발만 내딛으면, 더이상 그에게 악당과 영웅의 경계는 사라져 버리고 마는것이다.

그리고 그 선이 바로 살생. 살인인 것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조커는 배트맨이 가지고 있는 그 '선' 을 언제나 교묘하게 조종한다.

'나만 죽이면 1000명을 구할 수 있어!'

라고 유혹하는 것이다.

조커는 배트맨으로 인해 점점 더 악랄한 범죄를 구상하게 된다.

배트맨은 항상 조커를 잡지만, 결국 죽이지 못한다.

그리고 조커는 언제나 법정에서는 정신분열을 이유로 사형이나 중형을 선고받지 못하고, 정신병원 수용 정도의 형량만 받는다.

천재적인 범죄자인 조커는 언제나처럼 정신병원을 탈출하여, 악랄한 범죄를 구상하고, 배트맨을 괴롭힌다.

 

50p에 지나지 않는 짤막한 이 작품은 그런 '조커' 의 탄생을 재해석하고 있다.

히어로가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 중에서도 보기 힘들정도의 단편이지만, '배트맨' 이라는 캐릭터를 언급할때 '꼭 읽어야 할 작품'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명작중의 명작이다.

'조커' 라는 인물의 탄생을 그려냈다는 부분도 중요하지만, 평범한 코미디언인 지구상 최악의 악당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사실적으로 묘사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트맨이라는 캐릭터의 역사 뿐 아니라, '그래픽 노블' 이라는 장르 전체를 봐서도 기념비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미국의 만화 생산 시스템은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식 망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발전되어왔다.

그들은 '캐릭터' 가 가지고있는 상업성에 주목했다.

캐릭터의 탄생배경, 가지고 있는 특수능력, 디자인의 독창성, 이름등을 하나의 '상품' 으로 규정하고 회사가 소유했다.

그리고, 이 인물을 가지고 이야기들을 만들어 줄 작가들을 고용한 것이다.

물론 가장 처음에는 이야기와 인물이 함께 있었지만, 그 후부터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을 위한 이야기가 구상되었던 것이다.

배트맨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연하게도,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 따라 배트맨은 항상 조금씩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그가  ' 고담시에 사는 검은 마스크를 쓴 재벌 브루스 웨인 ' 이라는 설정만 제외하고는 모두가 조금씩 달라진 것이다.

주변 인물 또한 마찬가지였다. 조커나 펭귄, 캣우먼, 포이즌 아이비, 하비 덴트 같은 익숙한 인물들이 모두 등장은 하지만, 이들이 어떻게 악당이 되었는지, 어떤 성격이며, 외모는 어떤지 매번 달라진 것은 자명한 일이다.

결국, 첫번째 배트맨이 등장한지 십수년이 지나자, 수십종류의 배트맨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모두 고담시에 살고있었고, 박쥐모양의 무기들을 가지고 있었으며, 마스크를 벗으면 재벌인 브루스 웨인이었다.

결국 '배트맨' 이란 캐릭터를 소유한 회사는 이 세계관을 정리하고 하나로 묶을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그런 와중에 주인공 캐릭터가 아닌 '악당 캐릭터' 의 정립 역시 시도된 셈이다.

 

미국의 히어로 만화에서 악당 캐릭터는 일회성이었다.

누구도 악당의 성격이 어땠는지, 그 기원이 어디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히어로에게 어떤 식의 고통을 주며, 결국은 어떤 방식으로 응징되는지가 궁금할 따름이지 않은가?!

하지만, 많은 독자들은 '킬링 조크' 를 통해 악당들이 가지고 있는 캐릭터와 그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처음의 조커는 별 다를 것 없는 아주아주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가 아내를 잃고, 우연한 사건에 어이없이 휘말리면서 내재된 악마성을 끄집어내는 과정은 소름끼칠 정도로 사실적이다.

물론 앨런 무어의 뛰어난 시나리오도 좋지만, 최고의 작화가 중 한명으로 손꼽히는 브라이언 볼런드의 그림도 아주 기가 막히다.

그의 작화는 그야말로 그래픽 내러티브의 교과서적인 장면들을 그려낸다.

컷, 구도, 앵글. 그야말로 정석적인 화면연출을 구사하는데, 일본 만화와는 다른 '정련' 되고 '제련' 된 섬세한 장면들을 엿볼 수 있다.

 

최근 수많은 작품들이 '그래픽 노블' 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내에 정식 발매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역동적이고 찰나적인 만화에 익숙해져있는 우리에겐 한 컷 한 컷을 세심하게 '읽어' 야 하는 그래픽 노블은 절대적인 매력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게다가 이미 수십년동안 역사를 만들어온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일회성 프로젝트로는 그 매력을 충분히 읽어낼 수 조차 없다.

그런 관점들에서, 이 작품 '킬링 조크' 는 그래픽 노블에 입문하려는 독자들에게도 큰 즐거움을 주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한 인물에 대한 몰입도 높은 묘사, 국내에도 어느정도 정보가 알려져있는 '조커' 라는 캐릭터성에 비춰, 진정한 의미로서의 그래픽 노블을 즐길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좋은 질의 종이와 완벽한 인쇄와 번역. 수준높은 대사들과 연출은 '명작' 이라는 수식어 앞에서는 당연히 뒤따르는 것들일테고 말이다.

부담없는 두께 또한 마찬가지일터.

 

히스 레저의 '조커' 가 인상적이었던 분들에게도 최고의 작품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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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상 미사일
야마시타 타카미츠 지음, 김수현 옮김 / 북홀릭(bookholic) / 2010년 9월
평점 :
품절


종합 고등학교의 미술디자인과에 재학중인 여고생 '츠지오'는 점심시간을 틈타 미술 과제를 위해 옥상을 찾았다.

2층에 불과한 미술디자인과 건물이 아닌 보통과 학생들이 쓰는 4층 건물의 옥상이었다.

고교 2학년생이 되어서야 생전 처음으로 옥상이라는 곳에 올라간 독특한 소녀, 츠지오.

그리고 그곳에서 불량배 기질이 다분하며, 온갖 악소문을 달고다니는 싸움꾼 '쿠니시게' 와 그의 절친인 '준노스케' 를 만나게 된다.

점심시간마다 햇빛을 즐기기라도 하듯 옥상을 찾는 쿠니시게. 그리고 준노스케는 점심시간마다 연모하는 운동부 여학생 '미야세' 의 달리는 모습을 보기 위해 옥상을 찾곤했다. 거의 매일 옥상을 찾게되는 삼인조. 거기에 자살시도를 하는 듯 보였던 1학년 '히라하라' 가 끼어들며 '옥상부' 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그들과는 달리 세계 정세는 위험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괴 테러집단에 납치당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군 부대를 방문중이었던 대통령과 함께 요새 전체가 테러집단에게 점령당한 상황.

그들은 미국의 우방국에 미사일을 날리겠다는 협박을 전세계에 날리고 있었다.

일본도 미사일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은 상태.

 

언제 미사일이 날아들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속에서, 쿠니시게와 친구들은 변함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그러던 중, 쿠니시게가 왠 권총 한자루와 죽은 것으로 보이는 사람의 사진을 주워오면서 옥상부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사건속에 휘말리게 된다.

 

 

 

 

 

※여기부터는 개인적인 감상이기에 작품을 읽기 전이시라면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음을 미리 밝혀드립니다.

 

 

 

 

 

 

개성적인 인물들이 우루루 등장하는 전형적인 일본식 엔터테인먼트 소설.

만화를 보는 듯한 구체적인 시각적 묘사와 개성 뚜렷한 캐릭터들,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타넘는 사건설정도 대단히 흥미롭다.

언제라도 미사일이 날아들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황속으로 밀어넣어진 독자들은 시종일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가지고 작품에 몰입된다.

그 덕분인지 별 거 아닌 사건들도 보다 크게 느껴지고, 복잡하지 않은 관계들이 보다 복잡하게 다가온다.

작가의 재치와 명민함이 돋보이는 설정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미국 대통령이 납치된 상황- 이라는 설정만 빼고 보면 이야기 자체는 크게 뛰어난 점은 없다.

평범한 고등학생들이 어이없는 이유로 사건에 휘말리고, 그것들이 주변들과 얼키고 설켜 사건은 점점 더 애매모호한 방향으로 이끌려가고, 결국은 누구누구가 배후였다더라!! 라는 식의 전형적인 추리물의 플롯을 아주 고지식할 정도로 단계적으로 밟아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서로 달라 보이는 일련의 사건들이 결국은 하나로 모아진다는 식의 전개 또한 너무나 많이 봐왔고, 뻔하지 않은가?

 

바로 그 점이 이 장르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결국 엔터테인먼트를 위한 소설은 온전히 '재미' 에 초점을 맞춰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메시지나 성찰은 보다 원숙한 필력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기 때문이다.

작가가 자신의 메시지에 스스로 도취되거나 함몰되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작품이 되어버리는 경우는, 한국 문학에서 오히려 더 많이 볼 수 있다.

일찌감치부터 재미를 위한 엔터테인먼트 장르문학이 잘 발달되어있는 일본에서는 왠만한 필력의 작가가 아니고서는 추리, 미스테리물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으려는 시도 따위는 애초에 하지도 않는다.

 

[옥상 미사일] 또한 그런 범주 안에서 차근차근 이야기를 잘 풀어나간다.

언듯, 분위기를 깨는 - 거의 즉흥적으로 생각냈다고 보여지는 아이디어들이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러프하게 담겨있기도 한데, 그런 점들이 오히려 이 작품의 매력이 되기도 한다. (특히, 킬러의 이야기는 정말 어이없으면서도 재미있었다. 작가가 가지고 있는 생생한 아이디어들이 어떤 모습으로 튀어나오는지 느낄 수 있는 부분이었다.)

거기에, 정말 과도하지 않은 만큼의 사회적 메시지가 들어있다.

이 밸런스가 정말 절묘한데, 이야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아슬아슬하게 유지해 가면서, 일본 내 교육, 사회, 문화 등을 꼬집는다.

거기에 미국과 테러집단과의 미묘한 신경전, 정말 '깬다' 고 밖에 말할 수 없는 테러집단의 요구조건.

이런 무거운 주제들이 가볍고 경쾌한 이야깃속에 절묘하게 녹아들어 있다.

 

사실, 이런 미스테리, 추리물들은 어쩌면 삶에 대한 다른 관점에서의 접근일지도 모른다.

주인공들은 "왜 죽였을까? 어떻게 죽였을까?" 라는 의문에서부터 사건에 다가선다.

이것은 문득 수많은 철학서들이 '왜 태어났을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라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과 닮아있다.

 

얼마전 우리에게는 연평도에서 충격적인 소식을 들어왔다.

오늘(11월 28일) 부터는 서해에서 미국 항공모함을 포함한 대규모의 군사훈련이 진행된다.

이것은 분명 북한을 자극할 것이고, 중국 또한 자극받을 것이다.

바야흐로 일촉즉발의 시기는 이제부터인 셈이다.

이 상황이 바로 [옥상 미사일] 속에서 등장하는, 언제라도 도쿄에 미사일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과 같지 않은가??

개인적으로는 이런 대치상태가 북한과 남한의 본격적인 전면전쟁으로 발전하기를 원치는 않지만,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는 일.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가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 필요는 없다.

내일 미사일이 날아올지도 모른다고, 오늘 눈 앞의 위기를 무시할 수는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뿐만 아니라, 오늘 눈 앞의 즐거움과 사랑, 기쁨과 행복을 무시할 수도 없다는 뜻.

 

삶은, 언제나 일방통행이다.

가끔은 옥상에 올라가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하다.

내일 미사일이 날아온다면, 옥상에서 하늘을 한번 바라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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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필요없는, 이시대 최고의 판타지 만화. 

하앍 하앍!!! 보고싶다!!!!! 언능!!!! >.<  

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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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미 울음소리 그칠 무렵 : 바닷마을 다이어리 1 바닷마을 다이어리 1
요시다 아키미 지음, 조은하 옮김 / 애니북스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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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는 갑작스럽게 아버지의 부음 소식을 듣는다.

이미 십수년전에 어머니를 버리고 도망치듯 떠나버렸던 아버지.

장녀인 사치는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아직 가득차 있고, 차녀인 요시노는 어렸을때의 일이라 크게 자각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심지어 막내인 치카는 거의 아기때 겪었던 일이라 아빠의 얼굴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엄마는 이미 재혼해서 다른 남자와 살고 있었고, 세 자매는 이미 부모와 떨어져 조모 밑에서 어른으로 성장한 터였다.

그런 세 자매가 십수년 전 헤어진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아버지가 재혼한 여자를 만나고, 그 사이에 낳은 아이들을 만난다.

아버지가 자신들의 어머니를 버리고 얻은 새 부인의 장녀인 '아사노 스즈'.

즉, 배다른 여동생인 스즈가 사치, 요시노, 치카 세 자매와 함께 살게 된다.

 

그러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담담하게 펼쳐져 나간다.

소아과의 베테랑 간호사인 사치와, 새마을금고 직원인 요시노. 그리고 스포츠 용품점에서 일하는 치카.

거기에 고등학생인 스즈.

개성이 뚜렷한 네 자매가 함께 살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들.

 

이제는 거장의 반열에 올라선 요시다 아키미의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은 이제 왠만한 드라마 작가를 압도하는 수준이다.

장면과 대사의 흐름들이 어찌나 디테일하고 자연스러운지 정신없이 빠져들어 읽게 된다.

 

삶이란 원래가 소소한 드라마의 연속이다.

작고 작은, 티끌과도 같이 소소해 보이는 사건들이 켜켜히 쌓이고,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감정들이 흘러 넘치도록 모인다.

그것이 바로 '인생'.

바로 삶일터.

 

요시다 아키미는 '현재' 를 살아가는 여류 작가로서, 역시 '현실' 을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일, 가족, 사랑, 친구, 우정 등.

우리가 겪는 일상적인 모든 것들이 그녀에게는 이야깃거리가 되고, 독자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소재가 된다.

 

그녀의 그런 재능이 엄청 부럽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이런 장면들이 간간히 나오는데 정말 재미있다.

이런 가로 컷들이 다음 페이지까지 4~5컷정도 이어지면서 사건이 전개되는데, 비슷한 나이대의 네 자매가 모이면 이렇게 시끌벅적 할 것 같다.

디테일이 살아있어서 대단한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정말 흡인력이 엄청나다.

 

 

 



 

매력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등장인물들.

 

정말정말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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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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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을 논할때 대부분 '승부' 로 비유하곤 한다.

때문에, 그 승부가 주 목적인 스포츠들은 언제나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장인이 벼른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집중력으로 매 순간을 주시하고, 때로는 뚜렷하고 정확한 통찰력과 현명하고 숙련된 기술로, 거기에 처절한 노력과 하늘이 주는 천운이 깃들어야 기나긴 승부에 '승리' 라는 방점을 찍을 수 있다.

여기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운'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약하다.

제아무리 통찰력이 뛰어난들, 숙련된 기술을 지녔다 한들, 몰려드는 해일은 견뎌낼 수 없고, 무너지는 눈사태를 이겨낼 수는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숙명론자가 되기도 하고, 허무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 모든 인생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모든 것을 한가지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뜨겁게 타오르며, 자신이 인생을 건 그것을 위해 날카롭게 벼려진 투쟁심으로 매 순간을 집중한다.

 

개마고원의 포수 '산' 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호랑이 한마리에 걸게 된다.

애초에 사냥꾼으로 성장한 그는 개마공원의 지배자인 백호 '흰머리' 와 예기치 않은 악연의 고리를 엮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사납고 강력한 맹수인 호랑이. 그리고, 한반도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개마고원.

그 개마고원의 지배자인 백호 흰머리와, 그로 인해 가족들을 잃은 산의 외로운 복수의 여정.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애초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태어났는가?' 등의 질문들은 인류가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근원적인 질문이다.

형이상학적이고 근원적인건 마찬가지이지만, 조금은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무엇' 에는 - 역시나 형이상학적이고 근원적이지만 얼추 대답할만한 답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희망' 혹은 '꿈' 혹은 '행복' 등일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한편, 그렇게 밝은 이미지들 외의 것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분노' '욕망' '증오' '복수' 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 역시 결국은 사람이다.

 

포수 '산' 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그가 그리는 종착역에는 언제나 시신이 되어 누운 백호 '흰머리'와 그 앞에 서있는 '산' 자신의 모습이 아로새겨 있다.

맹수를 잡기 위해서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산은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밀림의 형세를 익히고, 호랑이의 배설물 냄새를 익혀야 하며, 바람소리, 다른 동물들의 수많은 소리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살기를 감지할 줄 알아야 하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호랑이의 마음을 잘 알야 한다.

 

증오와 사랑은 언제나 백짓장 하나 차이다.

증오하는 대상을 쫓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대상을 쫓는 사람이 밟아나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냄새를 익히고, 동선을 파악하고, 일과를 기억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위해 애쓰고, 주변관계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도 죽음을 꿈꾸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미워해도 죽음을 꿈꾼다.

인간에게 가장 극한 감정은 증오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그렇게 극한 감정으로 모든 젊음을 다 바쳐 흰머리를 뒤쫓는 산.

그런 그의 앞에 '주홍' 이라는 여인이 내려선다.

그리고, 자신과 꼭 닮은. '군율' 이라는 것 한가지에 모든 인생을 건 일본군 장교 '히데오' 가 끼어든다.

이야기의 큰 두 축을 이루는 히데오와 산은 굉장히 다르지만, 놀랍도록 닮아있다.

또한 산이 주홍에게 갖는 마음과 흰머리에게 갖는 마음도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 세 사람의 인생이 '개마고원' 이라는 거대한 밀림속에서 촘촘하게 얼키고 설크러진다.

 

호랑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실제 밀림 속에 있는 듯한 철저한 현장검증을 통해 이루어진 꼼꼼한 묘사가 압권이다.

마치 흙바닥에 흩어져있는 눈가루와 조그마한 나무조각 하나까지 꼼꼼히 그려넣은 극사실주의의 세밀한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 매서운 추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방 안에서 입김을 불어보고 싶었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저자의 서문에서도 밝히지만,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이야기꾼인 김탁환 작가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인생이라는 승부 안에서, 당신이 쫓는건 무엇인가?'

산처럼, 주홍처럼, 히데오처럼.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매 순간 그것을 쫓고 있는가??

아니,

쫓을게 있긴 있나??

이, 인생이라는 길고도 거대한 승부.

아니, 승부를 하고 있긴 있어?

그냥 되는대로 대강 살다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거 아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대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승부하고 있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내 일생을 걸고 대적하고 있는건 무엇인가??

모든 인생의 결말은 정해져있다.

난 반드시 흙이 될것이다.

어쩌면 재가 될수도있겠지만, 어쨌든 넉넉잡아 70년쯤 뒤에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지워지고 잊혀질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것은 명명백백한 진실이고 현실이다.

내 이름 세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 라는 존재는 지상 위에서 영영 잊혀지는 것이다.

이영도 작가가 이야기했던 '그림자 자국' 처럼 말이다.

어떠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엔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어있다.

치열하게 살아도 되고, 대강 살다가 가도 된다.

어떻게 사는지 질문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100년뒤엔 흙이되고 먼지가 되어있을텐데.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 아둥바둥, 치열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나 명징하게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는 적확하기 짝이없어서,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눈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 순간은 모든 존재들에게 동일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것이다.

타인에게 평가받을 수도, 평가받을 이유도 없다.

혹여 누군가 평가하더라도 흔들릴 필요따위는 없다.

오롯히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치열' 이란 단어는 무엇인가?

난 정말 '치열' 한 삶을 살고 있는가?

매 순간.

내가 긋는 한 획, 한 획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가?

정말? 끝의 끝까지, 끝의 끝의 끝까지??

 

 

 

 

덧:

책장을 덮고 나니 문득 인생을 승부로 비유하는 족속들은 남자라는 종족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본능 자체가 경쟁과 투쟁, 대결과 분열이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렇기때문에 신은 여자와 남자를 창조하셨을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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