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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무정 1
김탁환 지음 / 다산책방 / 2010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수많은 사람들이 '인생' 을 논할때 대부분 '승부' 로 비유하곤 한다.
때문에, 그 승부가 주 목적인 스포츠들은 언제나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부른다.
장인이 벼른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은 집중력으로 매 순간을 주시하고, 때로는 뚜렷하고 정확한 통찰력과 현명하고 숙련된 기술로, 거기에 처절한 노력과 하늘이 주는 천운이 깃들어야 기나긴 승부에 '승리' 라는 방점을 찍을 수 있다.
여기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천운' 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인간은 너무나도 미약하고 나약하다.
제아무리 통찰력이 뛰어난들, 숙련된 기술을 지녔다 한들, 몰려드는 해일은 견뎌낼 수 없고, 무너지는 눈사태를 이겨낼 수는 없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가면서 숙명론자가 되기도 하고, 허무주의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면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남들이 보기에는 어이없을 정도로 무의미해 보이는 것에 모든 인생을 걸기도 한다.
그리고, 그렇게 인생의 모든 것을 한가지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뜨겁게 타오르며, 자신이 인생을 건 그것을 위해 날카롭게 벼려진 투쟁심으로 매 순간을 집중한다.
개마고원의 포수 '산' 이 바로 그런 인물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인생을 호랑이 한마리에 걸게 된다.
애초에 사냥꾼으로 성장한 그는 개마공원의 지배자인 백호 '흰머리' 와 예기치 않은 악연의 고리를 엮게 된다.
지상에서 가장 사납고 강력한 맹수인 호랑이. 그리고, 한반도의 지붕이라고 불리우는 개마고원.
그 개마고원의 지배자인 백호 흰머리와, 그로 인해 가족들을 잃은 산의 외로운 복수의 여정.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애초에,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왜 태어났는가?' 등의 질문들은 인류가 역사시대에 접어들면서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어왔던 근원적인 질문이다.
형이상학적이고 근원적인건 마찬가지이지만, 조금은 다음 단계라고 할 수 있는 '무엇' 에는 - 역시나 형이상학적이고 근원적이지만 얼추 대답할만한 답이 있다. 당연하게도 그것은 '희망' 혹은 '꿈' 혹은 '행복' 등일 것이다.
결국은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으로 살아간다.
한편, 그렇게 밝은 이미지들 외의 것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분노' '욕망' '증오' '복수' 등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그것 역시 결국은 사람이다.
포수 '산' 은 무엇으로 살아가는가?
그가 그리는 종착역에는 언제나 시신이 되어 누운 백호 '흰머리'와 그 앞에 서있는 '산' 자신의 모습이 아로새겨 있다.
맹수를 잡기 위해서는 맹수가 되어야 한다.
호랑이를 잡기 위해, 산은 호랑이가 되어야 한다.
밀림의 형세를 익히고, 호랑이의 배설물 냄새를 익혀야 하며, 바람소리, 다른 동물들의 수많은 소리들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살기를 감지할 줄 알아야 하고, 배고픔과 추위를 견뎌낼 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 호랑이의 마음을 잘 알야 한다.
증오와 사랑은 언제나 백짓장 하나 차이다.
증오하는 대상을 쫓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대상을 쫓는 사람이 밟아나가는 과정은 비슷하다.
냄새를 익히고, 동선을 파악하고, 일과를 기억한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위해 애쓰고, 주변관계가 어떤지 파악하기 위해 노력한다.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해도 죽음을 꿈꾸고, 누군가를 미치도록 미워해도 죽음을 꿈꾼다.
인간에게 가장 극한 감정은 증오이기도 하고, 사랑이기도 하다.
그렇게 극한 감정으로 모든 젊음을 다 바쳐 흰머리를 뒤쫓는 산.
그런 그의 앞에 '주홍' 이라는 여인이 내려선다.
그리고, 자신과 꼭 닮은. '군율' 이라는 것 한가지에 모든 인생을 건 일본군 장교 '히데오' 가 끼어든다.
이야기의 큰 두 축을 이루는 히데오와 산은 굉장히 다르지만, 놀랍도록 닮아있다.
또한 산이 주홍에게 갖는 마음과 흰머리에게 갖는 마음도 놀랍도록 닮아있다.
이 세 사람의 인생이 '개마고원' 이라는 거대한 밀림속에서 촘촘하게 얼키고 설크러진다.
호랑이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와, 실제 밀림 속에 있는 듯한 철저한 현장검증을 통해 이루어진 꼼꼼한 묘사가 압권이다.
마치 흙바닥에 흩어져있는 눈가루와 조그마한 나무조각 하나까지 꼼꼼히 그려넣은 극사실주의의 세밀한 풍경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
특히 매서운 추위를 묘사하는 부분에서는 책을 읽고 있는 방 안에서 입김을 불어보고 싶었을 정도로 사실적이다.
저자의 서문에서도 밝히지만, 한국에서도 손꼽히는 이야기꾼인 김탁환 작가의 메시지는 명징하다.
'인생이라는 승부 안에서, 당신이 쫓는건 무엇인가?'
산처럼, 주홍처럼, 히데오처럼. 열정적으로, 최선을 다해, 매 순간 그것을 쫓고 있는가??
아니,
쫓을게 있긴 있나??
이, 인생이라는 길고도 거대한 승부.
아니, 승부를 하고 있긴 있어?
그냥 되는대로 대강 살다가면 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거 아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우리 대신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고 승부하고 있는 스포츠에 열광하는 것일지도.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내 일생을 걸고 대적하고 있는건 무엇인가??
모든 인생의 결말은 정해져있다.
난 반드시 흙이 될것이다.
어쩌면 재가 될수도있겠지만, 어쨌든 넉넉잡아 70년쯤 뒤에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지워지고 잊혀질 것이다.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든, 그것은 명명백백한 진실이고 현실이다.
내 이름 세글자를 가지고 있는 '나' 라는 존재는 지상 위에서 영영 잊혀지는 것이다.
이영도 작가가 이야기했던 '그림자 자국' 처럼 말이다.
어떠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인생이라는 것도 결국엔 아무런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어있다.
치열하게 살아도 되고, 대강 살다가 가도 된다.
어떻게 사는지 질문할 필요도 없다. 어차피 100년뒤엔 흙이되고 먼지가 되어있을텐데.
하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더 아둥바둥, 치열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너무나 명징하게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자연의 섭리는 적확하기 짝이없어서, 죽음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동일하다.
눈감고,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그 순간은 모든 존재들에게 동일하다.
한 사람의 인생은 그 사람의 것이다.
타인에게 평가받을 수도, 평가받을 이유도 없다.
혹여 누군가 평가하더라도 흔들릴 필요따위는 없다.
오롯히 자기 자신의 것이기 때문이다.
애초에 '치열' 이란 단어는 무엇인가?
난 정말 '치열' 한 삶을 살고 있는가?
매 순간.
내가 긋는 한 획, 한 획에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가?
정말? 끝의 끝까지, 끝의 끝의 끝까지??
덧:
책장을 덮고 나니 문득 인생을 승부로 비유하는 족속들은 남자라는 종족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는 본능 자체가 경쟁과 투쟁, 대결과 분열이지만, 여자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당연하게도, 그렇기때문에 신은 여자와 남자를 창조하셨을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