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전쟁 - 그들은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되었는가?
뤄위밍 지음, 김영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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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튀기는 처절한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런던타워의 전시관 끝의 전자 스크린에는 이런 질문이 떠 있다고 한다.

"반역자의 비참한 최후를 본 당신, 그래도 반란을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놀랍게도 응답자의 90% 이상은 "그렇다" 를 선택한다고 한다.

'권력의 유혹은 죽음보다 강렬하다'

 

책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중 일부분이다.

 

난 개인적으로 역사서를 참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역사서보다는 역사'소설' 을 좋아한다.

전에 다른 서평을 통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역사서와 역사소설은 뿌리는 같지만 그 흐름은 약간 다르다. 역사서는 저자가 '기록' 을 논거로 논지를 펼쳐 나가는 반면, 역사소설은 '기록' 을 근거로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즉, 역사서는 다른 역사학자가 논거의 빈약함을 가지고 반론을 펼칠 수 있지만, 역사소설은 그 어떤 역사학자의 할아버지가 강림하셔도 상상력에 딴지를 걸 수 없다. 차라리, 당대 최고의 판타지 소설 작가라면 가능할터다.

 

하지만, 모든 '과거' 는 윤색되기 마련이다.

사마천이 자신의 거시기를 난도질 당하면서까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인 '사기'. 하지만, 그 대단한 사기를 분석하는 후대의 학자들은 사마천이 난도질당한 '거시기' 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왜?' '누가?' '어디서?'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or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or 얼마나 열받았을까? or 얼마나 슬펐을까?' 등등 기록에 삿된 글귀가 들어앉을 구석을 샅샅이 뒤진다. 기록이란 그런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해도 유지할 수가 없다. 아침에 모닝덩을 제대로 못해도, 혹은 아침에 회사에 지각하거나, 와이프랑 말다툼을 했다거나, 길이 막혔다거나... 했다면 그 날 오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객관적으로' 우울해진다. 그런 복합적인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후대의 숱한 역사학자들은 '기록' 을 연구한다.

 

최대한, 그 당시의 문화와 생활, 환경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서 자신의 의식과 주관을 집중시킨다.

내가 그 시대의 이 인물이었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와 생활, 환경과 사상이 모두 달랐던 세계. 내가 그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이었다면. 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을 것인가?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온전한 역사서의 역할일 것이다.

 

이 책은 서두에 언급했던 런던 타워 전시관에 있는 질문과 그 답에서부터 출발한 다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조망한다.

일반 역사서들이 기록의 객관성, 즉 진실은 무엇인가? 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왜 그렇게 했을까?' 에 보다 집중한다. 그래서 책의 저자는 저서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디테일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이 사건에 연루된 이 인물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인 것이다.

 

조금 특이한 것은, 저자가 이미 결론을 내 놓았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얘네들은 모두 권력욕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대한 논거로 중국 역사의 큼직한 사건들. 특히 황위찬탈이나 역성혁명들을 인용하고 있다. 사실 어떤 연구들은 '가정' 을 바탕으로 한 '가설' 을 내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연구 결과를 통해 가설은 정설이 되고, 혹은 단순히 가설로 남는데, 역사연구의 경우는 화학이나 수학연구처럼 참이다 거짓이다를 딱 떨어지게 판단할 수 없다. 학계 전반적으로 흐르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정설이 거짓이 되고, 속설이나 통설이 정설이 되기도 한다.

 

저자도 서문에 언급하지만,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정설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방향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편이다.

때문에 우리가 사기나 다른 유수의 중국 역사서들에서 보았던 해석들과 약간 다른 인물상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1명의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들 중 3장에 등장하는 한 고조 유방에 대한 내용은 그야말로 '헐!' 할 정도이니,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열린 시각에서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 듯 하다.

바로 윗 단락에도 언급했지만, 역사학계에서 정설과 속설은 의외로 쉽게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권력욕' 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패턴들 역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물론, 한 인간의 행동동기를 단순히 '권력욕' 으로 제한한 부분 또한 억지스러움이 없지 않음을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복잡한 여러가지 것들을 차치하고, 저자의 의도에 따라 풀어가는 그대로 따라가도 굉장히 재미있다.

기존에 중국역사를 잘 아는 분들께도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재해석이 상당히 신선해서 재미를 줄 것이고, 중국 역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도 사건의 포인트만 딱딱 짚어서 인과관계에 따라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국가' 는 '황제' 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황제란 자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든 것의 주인이자, 지상에서 가장 권력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에 수만명의 목숨을 오락가락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항상 눈 앞에서 바라봤던 수많은 사람들. 그 누군들 탐이 안 났을까?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에서부터 역사를 짚어나가고, 사건들을 파헤쳐본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의 친부로 추정되는 여불위와 한 고조 유방, 삼국지에 등장하며 종국에는 위나라를 집어삼키고야 마는 사마의와 우리에겐 고구려와의 일전으로 더욱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희대의 여장부 측천무후 등 이름만 들어도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인물들의 권력을 향한 치열한 일전이 소개되고 있다. 치밀한 음모와 천운이 따르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시각과 그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결정적인 실수. 그리고, 자식까지 베어내는 대담함과 잔인함.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위한 그들의 손끝은 매섭기 짝이 없다. 또한,  순간의 판단 착오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직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은 물론 자식들과 모든 가솔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게 된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은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들은 끝없이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머리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서려 한다.

권력욕.

한 인간을 천국으로 밀어 올려 주거나,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욕망의 한 줄기.

 

결국 역사의 기록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권력의 축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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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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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플롯에 대해 확실히 오해하고 있었다. 난 플롯이란 '뼈대' 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과 스토리와는 완벽히 별개로서, 플롯이라는 이야기의 흐름에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끼워 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뚱아리가 단순히 뼈와 근육, 피부로 되어있다고 가정한다면, 뼈는 플롯, 근육은 스토리, 피부는 등장인물,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문장은 옷이었을테지.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공식' 이라고 생각했다. 인수분해 공식처럼, 가속도를 구하거나 에너지를 구하는 공식처럼.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공식. 가장 깔끔하고 예쁘게 답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흐름의 공식'

 

아마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플롯이 빈약해" 라고 평을 내리는 작품들을 보면, 그 작품의 어디가 어떻게 약한지 정확히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지만, 대충 '이야기의 흐름이 빈약해' 라고 이해하지 않는가.  

 

이 책의 도입부분은 일단 플롯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내려준다.

마치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

 

"플롯이란 이야기를 공식에 따라 짜 맞추는 액세서리 같은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플롯은 코드만 꽂으면 작동하는 전자제품이 아니다. 플롯은 유기적인 작업 과정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창작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p. 23

 

"플롯은 이야기의 요소들을 걸어놓는 옷걸이가 아니다. 플롯은 구조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요소들을 섞어준다. 플롯을 뼈대에 비유하는 표현에는 플롯의 이러한 역할이 빠져있다. 플롯은 작품의 모든 원자에 스며들어간다.(...) 플롯은 모든 페이지, 문장, 단어에 고여있는 힘이다. 뼈대보다 더 좋은 플롯에 대한 비유는 전자기장에 대한 비유다. 이는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함께 엮는 힘이라는 뜻이다. 플롯은 이미지, 사건, 등장인물을 서로 연결시킨다." p. 26

 

이라고 바로잡아주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작가가 플롯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한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라는 아주 짧은 이야기만으로 보고도 책의 값어치를 다 했다고 평하곤 한다.

 

책에 실린 두 이야기를 인용하겠다.

 

<고래와 어부>

 한 어부가 이상한 고기를 잡아다 아내에게 요리를 하라고 주었다.

어부의 아내는 일을 마친 후 바다에 나가 손을 씻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을 잡아먹는 고래가 나타나 여자를 잡아가 버렸다.

고래는 어부의 아내를 바다 밑의 자기 집으로 데려가 종으로 삼고 일을 시켰다.

어부는 친구인 상어의도움을 받아 고래를 쫓아 아내를 구하러 내려갔다.

상어는 꾀를 내 고래의 집에 켜져 있던 불을 꺼버리고 어부의 아내를 구했다.

p. 35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들에게 인기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다음은, 책의 서두를 장식했던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다.

 

<숨이 막힌 도베르만>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보니 집에서 기르는 도베르만이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이웃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차4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겁에 질린 채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도베르만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도베르만이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p. 21

 

 

 

자, 이 두 이야기의 차이점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플롯의 힘이 작용한 이야기와 그렇지 못한 이야기의 차이점이다.

작가는 플롯이 이야기와 등장인물 전체를 잡아끄는 파워풀한 역동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플롯이 없는 이야기에는 의문도, 긴장감도, 감정과 정서도 없다.

결국 플롯은 인간의 이야기 하고 듣는 본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우리도 항상 이야기를 할때 이렇게 마무리 하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어떻게 됐게???"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어떻게 됐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랑 얘기해~" 라고 묻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 또한,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뻔하면 화를 내며 "야! 너무 뻔하잖아!" 라고 말한다. 자신들을 절묘하게 속여 넘기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깜짝 놀랄만한 반전에 찬사를 보낸다. 플롯이란 바로 그런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이야기 그 자체인 것이다. 수많은 설정들과 등장인물들, 성격들, 모든 인과관계들, 그리고 반전과 결말들.

이 모든 것들을 이끄는 힘이 바로 플롯인 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몇가지나 있을까??

플롯에 관한 이야기는 나 역시 이 책을 통하지 않고서도 여러번 들어본 적이 있다.

[정글북] 의 노벨상 수상자 키플링은 예순 몇가지라고 그랬었고, 희곡의 할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딱 두가지라는 주장도 사랑받고 있다. 반면, 어떤 책에서는 셀수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 리뷰만 봐도 알겠지만, 플롯이란 그 개념이 모호해서 수를 헤아릴 수는 없다. 플롯이 섞이고 섞인 작품들도 있고, 아예 없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섞이고 섞였다고 하더라도, 파헤쳐보면 마스터 플롯과 서브 플롯을 구분할 수 있으며, 플롯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플롯으로 정립될 수도 있다. 무한대일 수도 있고, 키플링의 말처럼 예순 아홉개일 수도 있고, 카를로 고치의 주장처럼 서른 여섯개일 수도 있고, 두가지일수도 있다.

 

저자는 일단 플롯의 공공재로서의 개념을 먼저 짚어준다. 플롯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고,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다.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야기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작가들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도둑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각종 장비를 이용해, 문을 열고 의기양양하게 집안으로 들어간 도둑.

귀금속과 패물을 챙기는데, 시커먼 어둠속에서 두개의 눈빛이 번득인다.

그리고, 낮게 으르릉거리는 무시무시한 소리. 지옥에서 온 케르베로스 같은 괴물같이 커다란 도베르만이 송곳니 사이로 침을 흘리고 있다.

도둑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수의사의 시점에서 풀어나갈 수도 있다.

 

숨이 막혀 컥컥대는 도베르만을 불쌍하게 내려다보는 수의사.

하얀 동물 수술대 위에 도베르만을 올려놓는다. 푸르스름한 형광등 빛이 하얀 수술실 안에 깔려있고, 잠을 자다 나온 의사는 잠옷 위에 수술 가운을 걸친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달려있는 주사기에 마취액을 넣어, 부드러운 도베르만의 허벅지에 찌른다. 곧, 새근새근 잠드는 도베르만.

개구기를 도베르만의 입 안에 넣고 개의 식도를 살피는 의사.

곧, 의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가 적어놓은 이 두 도입부만 해도,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나가지만, 책이 언급된 플롯의 힘을 확실하게 이용했다.

역동성, 의구심, 수수깨끼. 모두 적용되어있다. 이처럼, 플롯이란 작가 개개인마다 개성이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플롯들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어떤 성격의 등장인물이, 또다른 어떤 성격의 등장인물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연유로 얽히며, 그것들이 어떤 감정과 정서를 낳고, 어떤 식으로 인과관계를 맺어가며, 결국 이러한 결말을 맺는다... 는 식의 규칙 말이다. 이런 구조는 수백년 동안 수천번이 반복되어왔지만, 꾸준히 새로운 세대에게 공통적으로 사랑받는다.  여기서 우리가 "클리셰" 라고 부르는 '벽' 이 탄생한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 말이다.

 

좋은 플롯이 가지고 있는 여덟가지 원칙을 시작으로

 

돈키호테로 대표되는 "추구"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의 "모험"

도망자의 뒤를 쫓는 "추적"

희생자를 둘러싼 대결을 다룬 "구출"

처절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탈출"

범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복수"

치밀하게 짜여진 미스테리 "수수깨끼"

갈등과 경쟁구도의 "라이벌"

고통스러운 현실의 보상을 원하는 "희생자"

치명적인 "유혹"

감정에 의해 인격이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변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 "변모"

수많은 시험을 통해 맞게되는 "성숙"

시련과 역경을 겪으며 얻게되는 "사랑"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

인간의 가장 숭고한 선택 "희생"

인생을 바꿔놓는 순간 "발견"

몰락을 부르는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발견되는 "지독한 행위"

한 인간의 성공에서 실패까지, 혹은 실패에서 성공까지 "상승과 몰락"

 

이렇게 스무가지의 플롯이 파헤쳐진다.

 

이 책은 애초에 공부하기 위해 샀던 책이라 매일 매일 일정 부분씩 최대한 정독을 하며 읽었다. 중요한 부분에 줄도 치고, 한 문단을 몇번이나 읽기도 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플롯이 나올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본능적인 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본능적인 능력을 보다 효과적이고 짜임새있게 발휘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도 강조하지만, 플롯은 공공재이다. 또한, 뼈대나 아이빔 같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이야기란 정답을 써내는 수학문제가 아니다. 플롯이란 정답을 도출해내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플롯이란 공작용 점토라고 비유한다. 플롯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위한 플롯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 등장한 스무가지 플롯에 자신의 작품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 스무가지 플롯은 물론 흥미롭고 모범적이며,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얽매일 필요는 없다. 부디 이 책이, 창작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무엇을 쓰든지 어떻게 쓰든지 플롯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플롯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플롯이 작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플롯이 작가를 돕게 하라."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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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 Green Lantern : 시크릿 오리진 Secret Origin 시공그래픽노블
제프 존스 지음, 이규원 옮김, 이반 레이스.오클에어 알버트 그림 / 시공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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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미국의 히어로가 찾아든 것은 헐리웃 영화를 통해서 였다.
"슈퍼맨" "배트맨" 과 같은 히어로들은 지금 보면 조악하기 짝이없지만, 당시에는 컬쳐 쇼크에 가까울 정도의 영상기술로 스크린 안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응징했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나 박쥐 마스크를 쓰고 시커먼 망또를 둘러맨 배트맨의 외견은 유치해 보였으나, 그 스토리는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슈퍼맨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배트맨은 자신의 마음속 깊이에 위치해 있는 죄책감과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영상 기술은 보다 더 발전했고, 우리는 보다 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발 맞춰서 미국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 문화의 본질, 슈퍼 히어로의 코믹북과 그래픽 노블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생소한 슈퍼 히어로인 '그린 랜턴' 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은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인 동시에, 그린랜턴은 슈퍼맨, DC의 경쟁사인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등 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국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그린랜턴인 '할 조던' 이 어떻게 그린랜턴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눈 앞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 아버지를 목격했던 할 조던.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동경했던 하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지만, 남편을 잃게 한 하늘과 공군을 그의 어머니는 좋아할 리 없었다. 할 조던은 어머니와 형, 동생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하게 된 할 조던은 가족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작은 지역 항공사에 취직하게 되고, 항공사의 여 사장이자 소꼽친구이기도 한 '캐롤 패리스' 와 대립하게 된다.
한편, 지구를 포함한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전사인 그린랜턴 '아빈 수르' 는 우주선에 악당인 '아트로시터스' 를 태우고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언을 접하고 그 악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구에 다다랐을 무렵, 아트로시터스는 아빈수르를 공격하여 우주선을 탈출하고, 아빈 수르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우주선이 사람이 없는 황무지에 추락시키기 위해 남은 생명력을 짜낸다. 우주를 수호해야 하는 그린랜턴은 한시도 공석이 되면 안되기 때문에, 의지가 있는 그린랜턴의 반지는 임무를 물려받을 지성체를 찾아나서고, 그 대상으로 할 조던이 선택된다.
할 조던은 아빈 수르의 임무를 넘겨받아 그린랜턴이 되기로 하고, 우주 어딘가에 있는 그린랜턴의 훈련소에서 짧은 훈련을 마친 뒤 지구로 복귀한다.
지구로 돌아온 할 조던은 아빈수르의 제자이자 다른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그린랜턴인 '시네스트로' 를 만나게 된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은 2009~2010 미국 DC의 메인 이벤트인 '가장 어두운 밤(Blackest Night)' 의 중심 캐릭터인 그린랜턴의 기원에 대한 내용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시리즈를 위한 미드의 파일럿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아빈수르의 지구행에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조던이 그린랜턴이 된 원인이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었고, 이 작품 '시크릿 오리진' 에서 '가장 어두운 밤' 을 이끌어 내는 복선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들은 미국 만화의 시스템을 모르시는 분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랜턴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된다.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될 것이고, 이 작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영화를 보기 전에 한번쯤 봐두면 좋을 듯한 작품이다. 아마 영화에서도 특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의 내용을 많이 차용해서 각본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와 할 조던이라는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우주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외계의 다른 그린랜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국 히어로들과 그린랜턴이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강추!
 
 

 
무엇보다 번역이 참 좋다. 화면에 잘 안보이지만, 이렇게 칸 아랫부분에 작품에 관련된 여러가지 해설들이 적혀있다.
그린랜턴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 미국 만화 자체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매끄러운 번역은 물론, 미국 만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려는 번역자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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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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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덜 성숙되었다는 뜻의 이 명칭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법적인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나이' 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성년' 이라는 말은 언제나 '미성숙' 이나 '미완성' 을 떠오르게 하는데,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한 성숙에 이를수가 있기는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은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은희경 작가가 자녀들을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불리우기도 하고, '2차 성징' 이라는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아, 요즘 아이들을 훨씬 더 빠르니, 이건 패스. 평범한 남녀공학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전형적인 인물 중심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애초에 그리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지 않다.

주인공인 연우. 마치 은희경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지는 이혼녀인 연우의 엄마 민아. 민아의 애인인 재욱과 연우의 절친이 되는 태수. 태수의 1살터울 여동생 마리. 그리고, 작품의 가장 큰 축을 떠맡고 있는 동급생 채영.

인물 중심의 작품답게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 한명, 한명은 작가의 고심과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평범하지만 섬세한 연우. 미국에서 거친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태수. 전형적인 모범생 마리. 그리고 일본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채영.

 

솔직히 소감을 딱 한마디로 말하면, '기대 이하' 라고 잘라 말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진심이다.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기대 이하' 라고 자른 이유는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을 맡고 있는 연우와 채영이라는 캐릭터의 진부함과 전형성 때문일터다.

이 두 캐릭터는 위에 언급한대로 최근의 일본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희경 소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라이트 노벨 느낌이다.

여기서 채영의 캐릭터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인물은 '츤데레' 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 한편, 매사에 의욕없고 연약한 연우의 모습은 역시 일본에서 유행하는 초식남의 그것을 꼭 닮아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숱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번득여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물론 연우라는 캐릭터는 또렷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태수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채영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마리의 성격도 확실했다. 하지만, 너무 정련된 캐릭터들로 인해 정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고등학생의 탈을 쓴 어른들 같아 보였달까. 연우는 지나치게 사색적이었고, 태수는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으며, 마리는 지나치게 똑 부러졌고, 채영은 지나치게 신비로웠다.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채영, 마리, 태수와의 관계는 일본만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그정도 였다.

 

한마디로, 연우와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이 지나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클라이맥스까지는 완만하고 서서하게 움직이다가 정작 클라이맥스에선 지나치게 휙휙 지나가버리고, 뭉뚱그러져서 성급하게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었다. 연우가 채영과의 관계에서 겪는 아픔과 혼란은 십수페이지를 할애해 묘사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태수와의 결말에서 겪는 수많은 혼란들은 고작 몇페이지에 불과한 부분이 특히 그랬다. 작가의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참 많이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은희경 작가는 예전부터 사색이나 고뇌, 혼란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내는 작가였다.

이 작품 역시 연우의 혼란 뿐 아니라, 연우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연인 재욱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탁월하고 세련된 묘사들이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분절성과 그로 인한 소외감. 고독함, 외로움, 혼란, 고통. 그런 것들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또한, 연우가 겪는 생애 첫 감정들 또한 혼란과 여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 혼란과 여백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그려져셔 감정의 이입을 방해하지만, 묘사만 놓고 보면 세련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적으로는 은희경 작가가 '남자 고등학생' 의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남고생이 느끼는 세상의 첫 감정들은 보다 거칠고 둔탁하며 투박하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거나, 받아들이고 다시 발산해 나가는 과정들은 여고생들의 그것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약함, 사랑이라는 감정, 어른들의 생각이나 조언들 모두 말이다. 연우가 그것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포용적이어서, 나름 조숙했고 섬세하고도 사색적인 남고생활(?)을 겪은 나로서도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 위주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연우의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실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예측만 할 뿐, 어떠한 확신도 얻을 수 없듯, 작품 안의 연우 또한 그 누구의 마음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게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참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태수나 채영의 마음이나 기분, 행동의 동기 등등은 작품 내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듯, 독자들 또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연우가 전해듣는 이야기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우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사건들은 단지 그 뿐이다. 이런 철저한 객관성이 이 독특한 성장이야기에 리얼함을 부여한다. 정말 여러가지 사건과 감정들이 연우의 주변을 스쳐 지나가지만, 일관된 연우의 시각에서 함께 겪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연우의 섬세한 감정선의 묘사나 엄마와 재욱간에 겪는 여러가지 갈등과 해소의 과정들이 정말 주옥같은 문장과 사색들로 펼쳐져 나간다.

물론 태수와 채영, 마리와 겪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들도 은희경 작가만의 섬세함이 아주 잘 살아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배우고 갈무리 하며 성장해 나간다.

우정, 사랑, 스킨쉽, 폭력, 경험, 목격, 획득과 상실, 탄생과 죽음 등. 생애 처음 겪는 수많은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렇게 한번 배운것도 되풀이 되면, 마치 처음이었던 것 처럼 받아들인다.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도 되풀이 된다. 아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대로 고교시절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난 여전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뒤에,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은 30대를 맞이할 것이다. 

 

운동을 오래 해서 근육을 잔뜩 키운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턱걸이를 10개 하던 사람이 20개를 할 정도로 힘이 세 졌다고 해도, 턱걸이 10개째에 느끼는 고통은 똑같다는 말이다.

전에는 11개째의 고통을 이겨낼 능력이 없었지만, 이젠 11개째는 물론 20개째까지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작품속에서 연우는 마라톤을 한다.

마라톤 역시 그렇다.

10km를 달리던 사람이 40km를 달리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10km째에 느끼는 고통은 동일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30km를 더 달릴 수 있느냐, 아니면 주저 앉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아마 영원히. 죽는 순간까지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를 되풀이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영원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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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 Green Lantern : 시크릿 오리진 Secret Origin 시공그래픽노블
제프 존스 지음, 이규원 옮김, 이반 레이스.오클에어 알버트 그림 / 시공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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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미국의 히어로가 찾아든 것은 헐리웃 영화를 통해서 였다.

"슈퍼맨" "배트맨" 과 같은 히어로들은 지금 보면 조악하기 짝이없지만, 당시에는 컬쳐 쇼크에 가까울 정도의 영상기술로 스크린 안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응징했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나 박쥐 마스크를 쓰고 시커먼 망또를 둘러맨 배트맨의 외견은 유치해 보였으나, 그 스토리는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슈퍼맨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배트맨은 자신의 마음속 깊이에 위치해 있는 죄책감과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영상 기술은 보다 더 발전했고, 우리는 보다 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발 맞춰서 미국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 문화의 본질, 슈퍼 히어로의 코믹북과 그래픽 노블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생소한 슈퍼 히어로인 '그린 랜턴' 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은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인 동시에, 그린랜턴은 슈퍼맨, DC의 경쟁사인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등 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국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그린랜턴인 '할 조던' 이 어떻게 그린랜턴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눈 앞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 아버지를 목격했던 할 조던.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동경했던 하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지만, 남편을 잃게 한 하늘과 공군을 그의 어머니는 좋아할 리 없었다. 할 조던은 어머니와 형, 동생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하게 된 할 조던은 가족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작은 지역 항공사에 취직하게 되고, 항공사의 여 사장이자 소꼽친구이기도 한 '캐롤 패리스' 와 대립하게 된다.

한편, 지구를 포함한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전사인 그린랜턴 '아빈 수르' 는 우주선에 악당인 '아트로시터스' 를 태우고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언을 접하고 그 악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구에 다다랐을 무렵, 아트로시터스는 아빈수르를 공격하여 우주선을 탈출하고, 아빈 수르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우주선이 사람이 없는 황무지에 추락시키기 위해 남은 생명력을 짜낸다. 우주를 수호해야 하는 그린랜턴은 한시도 공석이 되면 안되기 때문에, 의지가 있는 그린랜턴의 반지는 임무를 물려받을 지성체를 찾아나서고, 그 대상으로 할 조던이 선택된다.

할 조던은 아빈 수르의 임무를 넘겨받아 그린랜턴이 되기로 하고, 우주 어딘가에 있는 그린랜턴의 훈련소에서 짧은 훈련을 마친 뒤 지구로 복귀한다.

지구로 돌아온 할 조던은 아빈수르의 제자이자 다른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그린랜턴인 '시네스트로' 를 만나게 된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은 2009~2010 미국 DC의 메인 이벤트인 '가장 어두운 밤(Blackest Night)' 의 중심 캐릭터인 그린랜턴의 기원에 대한 내용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시리즈를 위한 미드의 파일럿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아빈수르의 지구행에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조던이 그린랜턴이 된 원인이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었고, 이 작품 '시크릿 오리진' 에서 '가장 어두운 밤' 을 이끌어 내는 복선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들은 미국 만화의 시스템을 모르시는 분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랜턴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된다.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될 것이고, 이 작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영화를 보기 전에 한번쯤 봐두면 좋을 듯한 작품이다. 아마 영화에서도 특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의 내용을 많이 차용해서 각본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와 할 조던이라는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우주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외계의 다른 그린랜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국 히어로들과 그린랜턴이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강추!

 

 

 
 
무엇보다 번역이 참 좋다. 화면에 잘 안보이지만, 이렇게 칸 아랫부분에 작품에 관련된 여러가지 해설들이 적혀있다.
그린랜턴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 미국 만화 자체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매끄러운 번역은 물론, 미국 만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려는 번역자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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