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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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덜 성숙되었다는 뜻의 이 명칭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법적인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나이' 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성년' 이라는 말은 언제나 '미성숙' 이나 '미완성' 을 떠오르게 하는데,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한 성숙에 이를수가 있기는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은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은희경 작가가 자녀들을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불리우기도 하고, '2차 성징' 이라는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아, 요즘 아이들을 훨씬 더 빠르니, 이건 패스. 평범한 남녀공학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전형적인 인물 중심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애초에 그리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지 않다.

주인공인 연우. 마치 은희경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지는 이혼녀인 연우의 엄마 민아. 민아의 애인인 재욱과 연우의 절친이 되는 태수. 태수의 1살터울 여동생 마리. 그리고, 작품의 가장 큰 축을 떠맡고 있는 동급생 채영.

인물 중심의 작품답게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 한명, 한명은 작가의 고심과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평범하지만 섬세한 연우. 미국에서 거친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태수. 전형적인 모범생 마리. 그리고 일본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채영.

 

솔직히 소감을 딱 한마디로 말하면, '기대 이하' 라고 잘라 말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진심이다.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기대 이하' 라고 자른 이유는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을 맡고 있는 연우와 채영이라는 캐릭터의 진부함과 전형성 때문일터다.

이 두 캐릭터는 위에 언급한대로 최근의 일본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희경 소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라이트 노벨 느낌이다.

여기서 채영의 캐릭터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인물은 '츤데레' 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 한편, 매사에 의욕없고 연약한 연우의 모습은 역시 일본에서 유행하는 초식남의 그것을 꼭 닮아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숱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번득여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물론 연우라는 캐릭터는 또렷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태수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채영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마리의 성격도 확실했다. 하지만, 너무 정련된 캐릭터들로 인해 정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고등학생의 탈을 쓴 어른들 같아 보였달까. 연우는 지나치게 사색적이었고, 태수는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으며, 마리는 지나치게 똑 부러졌고, 채영은 지나치게 신비로웠다.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채영, 마리, 태수와의 관계는 일본만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그정도 였다.

 

한마디로, 연우와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이 지나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클라이맥스까지는 완만하고 서서하게 움직이다가 정작 클라이맥스에선 지나치게 휙휙 지나가버리고, 뭉뚱그러져서 성급하게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었다. 연우가 채영과의 관계에서 겪는 아픔과 혼란은 십수페이지를 할애해 묘사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태수와의 결말에서 겪는 수많은 혼란들은 고작 몇페이지에 불과한 부분이 특히 그랬다. 작가의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참 많이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은희경 작가는 예전부터 사색이나 고뇌, 혼란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내는 작가였다.

이 작품 역시 연우의 혼란 뿐 아니라, 연우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연인 재욱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탁월하고 세련된 묘사들이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분절성과 그로 인한 소외감. 고독함, 외로움, 혼란, 고통. 그런 것들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또한, 연우가 겪는 생애 첫 감정들 또한 혼란과 여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 혼란과 여백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그려져셔 감정의 이입을 방해하지만, 묘사만 놓고 보면 세련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적으로는 은희경 작가가 '남자 고등학생' 의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남고생이 느끼는 세상의 첫 감정들은 보다 거칠고 둔탁하며 투박하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거나, 받아들이고 다시 발산해 나가는 과정들은 여고생들의 그것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약함, 사랑이라는 감정, 어른들의 생각이나 조언들 모두 말이다. 연우가 그것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포용적이어서, 나름 조숙했고 섬세하고도 사색적인 남고생활(?)을 겪은 나로서도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 위주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연우의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실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예측만 할 뿐, 어떠한 확신도 얻을 수 없듯, 작품 안의 연우 또한 그 누구의 마음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게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참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태수나 채영의 마음이나 기분, 행동의 동기 등등은 작품 내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듯, 독자들 또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연우가 전해듣는 이야기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우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사건들은 단지 그 뿐이다. 이런 철저한 객관성이 이 독특한 성장이야기에 리얼함을 부여한다. 정말 여러가지 사건과 감정들이 연우의 주변을 스쳐 지나가지만, 일관된 연우의 시각에서 함께 겪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연우의 섬세한 감정선의 묘사나 엄마와 재욱간에 겪는 여러가지 갈등과 해소의 과정들이 정말 주옥같은 문장과 사색들로 펼쳐져 나간다.

물론 태수와 채영, 마리와 겪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들도 은희경 작가만의 섬세함이 아주 잘 살아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배우고 갈무리 하며 성장해 나간다.

우정, 사랑, 스킨쉽, 폭력, 경험, 목격, 획득과 상실, 탄생과 죽음 등. 생애 처음 겪는 수많은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렇게 한번 배운것도 되풀이 되면, 마치 처음이었던 것 처럼 받아들인다.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도 되풀이 된다. 아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대로 고교시절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난 여전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뒤에,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은 30대를 맞이할 것이다. 

 

운동을 오래 해서 근육을 잔뜩 키운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턱걸이를 10개 하던 사람이 20개를 할 정도로 힘이 세 졌다고 해도, 턱걸이 10개째에 느끼는 고통은 똑같다는 말이다.

전에는 11개째의 고통을 이겨낼 능력이 없었지만, 이젠 11개째는 물론 20개째까지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작품속에서 연우는 마라톤을 한다.

마라톤 역시 그렇다.

10km를 달리던 사람이 40km를 달리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10km째에 느끼는 고통은 동일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30km를 더 달릴 수 있느냐, 아니면 주저 앉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아마 영원히. 죽는 순간까지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를 되풀이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영원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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