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전쟁 - 그들은 어떻게 시대의 주인이 되었는가?
뤄위밍 지음, 김영화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피튀기는 처절한 역사가 고스란히 기록되어있는 런던타워의 전시관 끝의 전자 스크린에는 이런 질문이 떠 있다고 한다.

"반역자의 비참한 최후를 본 당신, 그래도 반란을 선택하겠는가?"

그리고, 놀랍게도 응답자의 90% 이상은 "그렇다" 를 선택한다고 한다.

'권력의 유혹은 죽음보다 강렬하다'

 

책의 서문에 나오는 내용중 일부분이다.

 

난 개인적으로 역사서를 참 좋아한다.

아니, 사실은 역사서보다는 역사'소설' 을 좋아한다.

전에 다른 서평을 통해 언급한 적이 있지만, 역사서와 역사소설은 뿌리는 같지만 그 흐름은 약간 다르다. 역사서는 저자가 '기록' 을 논거로 논지를 펼쳐 나가는 반면, 역사소설은 '기록' 을 근거로 상상력을 펼쳐 나간다. 즉, 역사서는 다른 역사학자가 논거의 빈약함을 가지고 반론을 펼칠 수 있지만, 역사소설은 그 어떤 역사학자의 할아버지가 강림하셔도 상상력에 딴지를 걸 수 없다. 차라리, 당대 최고의 판타지 소설 작가라면 가능할터다.

 

하지만, 모든 '과거' 는 윤색되기 마련이다.

사마천이 자신의 거시기를 난도질 당하면서까지 이룩한 위대한 업적인 '사기'. 하지만, 그 대단한 사기를 분석하는 후대의 학자들은 사마천이 난도질당한 '거시기' 을 그냥 넘어갈 수 없다. '왜?' '누가?' '어디서?' '세상에 얼마나 아팠을까? or 얼마나 절망적이었을까? or 얼마나 열받았을까? or 얼마나 슬펐을까?' 등등 기록에 삿된 글귀가 들어앉을 구석을 샅샅이 뒤진다. 기록이란 그런것이다. 아무리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하려 해도 유지할 수가 없다. 아침에 모닝덩을 제대로 못해도, 혹은 아침에 회사에 지각하거나, 와이프랑 말다툼을 했다거나, 길이 막혔다거나... 했다면 그 날 오전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객관적으로' 우울해진다. 그런 복합적인 수많은 가능성을 두고 후대의 숱한 역사학자들은 '기록' 을 연구한다.

 

최대한, 그 당시의 문화와 생활, 환경을 상상하고 또 상상해서 자신의 의식과 주관을 집중시킨다.

내가 그 시대의 이 인물이었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지금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화와 생활, 환경과 사상이 모두 달랐던 세계. 내가 그 세계에 속해있는 사람이었다면. 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삶을 살아갔을 것인가? 

이런 지적 호기심을 채워주는 것이 온전한 역사서의 역할일 것이다.

 

이 책은 서두에 언급했던 런던 타워 전시관에 있는 질문과 그 답에서부터 출발한 다른 관점에서 역사적 사건들을 조망한다.

일반 역사서들이 기록의 객관성, 즉 진실은 무엇인가? 에 집중한다면, 이 책은 '왜 그렇게 했을까?' 에 보다 집중한다. 그래서 책의 저자는 저서에 등장하는 사건들의 디테일을 설명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하지 않는다. '사건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이 사건은 '왜?' 일어났을까? 이 사건에 연루된 이 인물들은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인 것이다.

 

조금 특이한 것은, 저자가 이미 결론을 내 놓았다는 것이다. 즉, 이 책은 "얘네들은 모두 권력욕 때문에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이다" 라는 결론에 대한 논거로 중국 역사의 큼직한 사건들. 특히 황위찬탈이나 역성혁명들을 인용하고 있다. 사실 어떤 연구들은 '가정' 을 바탕으로 한 '가설' 을 내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과정을 통해 진행된다. 연구 결과를 통해 가설은 정설이 되고, 혹은 단순히 가설로 남는데, 역사연구의 경우는 화학이나 수학연구처럼 참이다 거짓이다를 딱 떨어지게 판단할 수 없다. 학계 전반적으로 흐르는 패러다임의 변화에 따라 정설이 거짓이 되고, 속설이나 통설이 정설이 되기도 한다.

 

저자도 서문에 언급하지만, 이 책이 취하고 있는 자세는 정설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방향으로 역사를 해석하고 있는 편이다.

때문에 우리가 사기나 다른 유수의 중국 역사서들에서 보았던 해석들과 약간 다른 인물상을 볼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1명의 유명한 역사적인 인물들 중 3장에 등장하는 한 고조 유방에 대한 내용은 그야말로 '헐!' 할 정도이니, 이 책을 접하는 독자들은 열린 시각에서 저자의 의견을 받아들여야 할 듯 하다.

바로 윗 단락에도 언급했지만, 역사학계에서 정설과 속설은 의외로 쉽게 뒤집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주장하고 있는 '권력욕' 에 대한 부분도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책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행동패턴들 역시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물론, 한 인간의 행동동기를 단순히 '권력욕' 으로 제한한 부분 또한 억지스러움이 없지 않음을 확실히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런 복잡한 여러가지 것들을 차치하고, 저자의 의도에 따라 풀어가는 그대로 따라가도 굉장히 재미있다.

기존에 중국역사를 잘 아는 분들께도 기존에 알고 있던 것들에 대한 재해석이 상당히 신선해서 재미를 줄 것이고, 중국 역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께도 사건의 포인트만 딱딱 짚어서 인과관계에 따라 속도감있게 전개되어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중국 역사에서 '국가' 는 '황제' 의 개인 소유물이었다.

황제란 자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모든 것의 주인이자, 지상에서 가장 권력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손가락 하나에 수만명의 목숨을 오락가락 할 수 있는 자리. 그 자리를 항상 눈 앞에서 바라봤던 수많은 사람들. 그 누군들 탐이 안 났을까? 이 책은 그러한 사람들의 심리에서부터 역사를 짚어나가고, 사건들을 파헤쳐본다.

우리가 잘 아는 진시황의 친부로 추정되는 여불위와 한 고조 유방, 삼국지에 등장하며 종국에는 위나라를 집어삼키고야 마는 사마의와 우리에겐 고구려와의 일전으로 더욱 유명한 당태종 이세민, 그리고 희대의 여장부 측천무후 등 이름만 들어도 어느정도는 짐작할 수 있는 인물들의 권력을 향한 치열한 일전이 소개되고 있다. 치밀한 음모와 천운이 따르는 순간, 그리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는 날카로운 시각과 그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결정적인 실수. 그리고, 자식까지 베어내는 대담함과 잔인함.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위한 그들의 손끝은 매섭기 짝이 없다. 또한,  순간의 판단 착오는 모든 것을 손에 넣기 직전이라 하더라도, 자신의 목숨은 물론 자식들과 모든 가솔들의 목숨으로 값을 치르게 된다.

권력을 손에 넣기 위한 사람들의 치열한 투쟁은 수백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들은 끝없이 조금이라도 누군가의 머리를 밟고 그 위에 올라서려 한다.

권력욕.

한 인간을 천국으로 밀어 올려 주거나, 단숨에 나락으로 떨어뜨리기도 하는 무시무시한 욕망의 한 줄기.

 

결국 역사의 기록이란, 끊임없이 변화하는 권력의 축에 대한 기록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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