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마음을 사로잡는 스무 가지 플롯
로널드 B.토비아스 지음, 김석만 옮김 / 풀빛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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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고백하자면,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플롯에 대해 확실히 오해하고 있었다. 난 플롯이란 '뼈대' 라고 생각했다. 등장인물과 스토리와는 완벽히 별개로서, 플롯이라는 이야기의 흐름에 등장인물과 스토리를 끼워 넣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인간의 몸뚱아리가 단순히 뼈와 근육, 피부로 되어있다고 가정한다면, 뼈는 플롯, 근육은 스토리, 피부는 등장인물, 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문장은 옷이었을테지.

개인적으로는 일종의 '공식' 이라고 생각했다. 인수분해 공식처럼, 가속도를 구하거나 에너지를 구하는 공식처럼.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가장 효과적으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공식. 가장 깔끔하고 예쁘게 답이 툭 튀어나오는 그런 '흐름의 공식'

 

아마 나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흔히 "플롯이 빈약해" 라고 평을 내리는 작품들을 보면, 그 작품의 어디가 어떻게 약한지 정확히 구체적으로 와닿지 않지만, 대충 '이야기의 흐름이 빈약해' 라고 이해하지 않는가.  

 

이 책의 도입부분은 일단 플롯에 대한 정의를 확실히 내려준다.

마치 내 생각을 꿰뚫고 있었다는 듯,

 

"플롯이란 이야기를 공식에 따라 짜 맞추는 액세서리 같은 도구가 아니라는 점이다. 플롯은 코드만 꽂으면 작동하는 전자제품이 아니다. 플롯은 유기적인 작업 과정이다. 이는 작가의 의도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창작의 첫 단계에 해당하는 작업이다." p. 23

 

"플롯은 이야기의 요소들을 걸어놓는 옷걸이가 아니다. 플롯은 구조로 작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의 요소들을 섞어준다. 플롯을 뼈대에 비유하는 표현에는 플롯의 이러한 역할이 빠져있다. 플롯은 작품의 모든 원자에 스며들어간다.(...) 플롯은 모든 페이지, 문장, 단어에 고여있는 힘이다. 뼈대보다 더 좋은 플롯에 대한 비유는 전자기장에 대한 비유다. 이는 이야기의 모든 요소를 함께 엮는 힘이라는 뜻이다. 플롯은 이미지, 사건, 등장인물을 서로 연결시킨다." p. 26

 

이라고 바로잡아주며 이야기를 시작해 나간다.

 

이 책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작가가 플롯에 대해 이해시키기 위해 사용한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라는 아주 짧은 이야기만으로 보고도 책의 값어치를 다 했다고 평하곤 한다.

 

책에 실린 두 이야기를 인용하겠다.

 

<고래와 어부>

 한 어부가 이상한 고기를 잡아다 아내에게 요리를 하라고 주었다.

어부의 아내는 일을 마친 후 바다에 나가 손을 씻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을 잡아먹는 고래가 나타나 여자를 잡아가 버렸다.

고래는 어부의 아내를 바다 밑의 자기 집으로 데려가 종으로 삼고 일을 시켰다.

어부는 친구인 상어의도움을 받아 고래를 쫓아 아내를 구하러 내려갔다.

상어는 꾀를 내 고래의 집에 켜져 있던 불을 꺼버리고 어부의 아내를 구했다.

p. 35

 

북서태평양 연안의 인디언들에게 인기 있었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다음은, 책의 서두를 장식했던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다.

 

<숨이 막힌 도베르만>

어느 날 한 아주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와보니 집에서 기르는 도베르만이 목에 뭔가 걸려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가 개를 동물병원에 맡기고 집에 돌아오자 마자 전화벨이 울렸다. 조금 전 다녀온 동물병원의 수의사였다.

그는 소리를 지르며 말했다.

 "당장 집 밖으로 나가세요!!"

 "무슨 일이에요?"

그녀가 깜짝 놀라 물었다.

 "제 말대로 하시고 당장 옆집에 가 계세요. 곧 갈게요."

수의사는 아주머니의 질문에는 대답을 않고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무슨 일인지 놀랍고 궁금했지만 수의사가 시키는 대로 이웃집으로 갔다.

그런데 그녀가 밖으로 나가자마자 경찰차4대가 달려와 급브레이크를 밟으며 집 앞에 섰다. 경찰들이 권총을 뽑아들고 차에서 내리더니 집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녀는 겁에 질린 채 밖으로 나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곧 수의사가 도착해 상황을 설명했다.

그가 도베르만의 목구멍을 검사해보니 거기에 사람 손가락 두 개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아마도 도베르만이 도둑을 놀라게 했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곧 피 흘리는 손을 움켜쥐고 공포에 질린 채 옷장에 숨어 있던 도둑을 잡아냈다.

p. 21

 

 

 

자, 이 두 이야기의 차이점을 알 수 있겠는가?

 

바로 이것이 플롯의 힘이 작용한 이야기와 그렇지 못한 이야기의 차이점이다.

작가는 플롯이 이야기와 등장인물 전체를 잡아끄는 파워풀한 역동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플롯이 없는 이야기에는 의문도, 긴장감도, 감정과 정서도 없다.

결국 플롯은 인간의 이야기 하고 듣는 본능으로부터 출발한 것이다.

우리도 항상 이야기를 할때 이렇게 마무리 하곤 하지 않는가?

"그래서 어떻게 됐게???"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이 "어떻게 됐는데?? 뜸 들이지 말고 빨랑 얘기해~" 라고 묻기를 원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상대방 또한, 어떻게 되었는지 너무 뻔하면 화를 내며 "야! 너무 뻔하잖아!" 라고 말한다. 자신들을 절묘하게 속여 넘기는 이야기에 열광하고, 깜짝 놀랄만한 반전에 찬사를 보낸다. 플롯이란 바로 그런 인간의 본능에 충실한 이야기 그 자체인 것이다. 수많은 설정들과 등장인물들, 성격들, 모든 인과관계들, 그리고 반전과 결말들.

이 모든 것들을 이끄는 힘이 바로 플롯인 것이다.

 

그렇다면, 플롯은 몇가지나 있을까??

플롯에 관한 이야기는 나 역시 이 책을 통하지 않고서도 여러번 들어본 적이 있다.

[정글북] 의 노벨상 수상자 키플링은 예순 몇가지라고 그랬었고, 희곡의 할아버지인 아리스토텔레스 시대 이래로 딱 두가지라는 주장도 사랑받고 있다. 반면, 어떤 책에서는 셀수없을 정도로 많다고 했다.  하지만, 이 리뷰만 봐도 알겠지만, 플롯이란 그 개념이 모호해서 수를 헤아릴 수는 없다. 플롯이 섞이고 섞인 작품들도 있고, 아예 없는 작품들도 있다. 하지만, 섞이고 섞였다고 하더라도, 파헤쳐보면 마스터 플롯과 서브 플롯을 구분할 수 있으며, 플롯이 없다고 해도, 그것이 새로운 플롯으로 정립될 수도 있다. 무한대일 수도 있고, 키플링의 말처럼 예순 아홉개일 수도 있고, 카를로 고치의 주장처럼 서른 여섯개일 수도 있고, 두가지일수도 있다.

 

저자는 일단 플롯의 공공재로서의 개념을 먼저 짚어준다. 플롯이라는 것이 아무리 많고, 존재하고 있다고 해도 그것을 활용하는 작가들의 성향이 너무나 다르다. <숨이 막힌 도베르만> 이야기만 생각해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작가들에 따라 이야기를 하는 방식은 전혀 달라질 것이다.

 

도둑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도 있다.

 

각종 장비를 이용해, 문을 열고 의기양양하게 집안으로 들어간 도둑.

귀금속과 패물을 챙기는데, 시커먼 어둠속에서 두개의 눈빛이 번득인다.

그리고, 낮게 으르릉거리는 무시무시한 소리. 지옥에서 온 케르베로스 같은 괴물같이 커다란 도베르만이 송곳니 사이로 침을 흘리고 있다.

도둑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주루룩 흘러내린다.

 

수의사의 시점에서 풀어나갈 수도 있다.

 

숨이 막혀 컥컥대는 도베르만을 불쌍하게 내려다보는 수의사.

하얀 동물 수술대 위에 도베르만을 올려놓는다. 푸르스름한 형광등 빛이 하얀 수술실 안에 깔려있고, 잠을 자다 나온 의사는 잠옷 위에 수술 가운을 걸친다.

날카로운 주삿바늘이 달려있는 주사기에 마취액을 넣어, 부드러운 도베르만의 허벅지에 찌른다. 곧, 새근새근 잠드는 도베르만.

개구기를 도베르만의 입 안에 넣고 개의 식도를 살피는 의사.

곧, 의사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내가 적어놓은 이 두 도입부만 해도, 완전히 다른 양상으로 흘러나가지만, 책이 언급된 플롯의 힘을 확실하게 이용했다.

역동성, 의구심, 수수깨끼. 모두 적용되어있다. 이처럼, 플롯이란 작가 개개인마다 개성이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는 플롯들에는 일정한 규칙이 있었다.

어떤 성격의 등장인물이, 또다른 어떤 성격의 등장인물과,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슨 연유로 얽히며, 그것들이 어떤 감정과 정서를 낳고, 어떤 식으로 인과관계를 맺어가며, 결국 이러한 결말을 맺는다... 는 식의 규칙 말이다. 이런 구조는 수백년 동안 수천번이 반복되어왔지만, 꾸준히 새로운 세대에게 공통적으로 사랑받는다.  여기서 우리가 "클리셰" 라고 부르는 '벽' 이 탄생한 것이다. 가장 효과적이고 재미있게, 그리고 매력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구조 말이다.

 

좋은 플롯이 가지고 있는 여덟가지 원칙을 시작으로

 

돈키호테로 대표되는 "추구"

여행을 떠나는 인물들의 "모험"

도망자의 뒤를 쫓는 "추적"

희생자를 둘러싼 대결을 다룬 "구출"

처절한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탈출"

범죄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복수"

치밀하게 짜여진 미스테리 "수수깨끼"

갈등과 경쟁구도의 "라이벌"

고통스러운 현실의 보상을 원하는 "희생자"

치명적인 "유혹"

감정에 의해 인격이 변화하는 인물을 보여주는 "변신"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사건 "변모"

수많은 시험을 통해 맞게되는 "성숙"

시련과 역경을 겪으며 얻게되는 "사랑"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금지된 사랑"

인간의 가장 숭고한 선택 "희생"

인생을 바꿔놓는 순간 "발견"

몰락을 부르는 사소한 성격적 결함이 발견되는 "지독한 행위"

한 인간의 성공에서 실패까지, 혹은 실패에서 성공까지 "상승과 몰락"

 

이렇게 스무가지의 플롯이 파헤쳐진다.

 

이 책은 애초에 공부하기 위해 샀던 책이라 매일 매일 일정 부분씩 최대한 정독을 하며 읽었다. 중요한 부분에 줄도 치고, 한 문단을 몇번이나 읽기도 했다. 분명 어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플롯이 나올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모든 사람에게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대한 본능적인 추구가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런 본능적인 능력을 보다 효과적이고 짜임새있게 발휘하는데 상당한 도움을 줄 것이다.

 

마지막으로, 작가도 강조하지만, 플롯은 공공재이다. 또한, 뼈대나 아이빔 같은 고정된 사물이 아니다. 이야기란 정답을 써내는 수학문제가 아니다. 플롯이란 정답을 도출해내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작가는 플롯이란 공작용 점토라고 비유한다. 플롯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위한 플롯이 되어야 한다. 이 책에 등장한 스무가지 플롯에 자신의 작품을 끼워 맞출 필요는 없다는 의미이다. 이 스무가지 플롯은 물론 흥미롭고 모범적이며, 실제로 엄청나게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았던 것들이지만, 그렇다고 얽매일 필요는 없다. 부디 이 책이, 창작을 하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좋은 지침서가 되길 바란다.

물론 나에게도 말이다.

 

"무엇을 쓰든지 어떻게 쓰든지 플롯의 노예는 되지 말아야 한다.

작가는 플롯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다.

플롯이 작가를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플롯이 작가를 돕게 하라."

p.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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