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 : 웃는 남자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에드 브루베이커 지음, 김동욱 옮김, 더그 만케 그림 / 세미콜론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부정부패가 만연하고 폭력과 증오가 판치는 고담시에 짐 고든이 부임한 시기와 배트맨이 나타난 시기는 거의 같았다. 

그로부터 1년.

메트로 시티와 키스톤 시 등에서는 '슈퍼맨'이나 '플래시'같은 슈퍼 히어로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담시는 부패한 시의회와 밀착되어있는 경찰은 아직 완벽하게 믿을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짐 고든 반장이 직접 관리하는 부서는 쓸만한 경관들로 채워졌다. 고담시의 강력 범죄들은 짐 고든과 정의롭던 시절의 하비덴트를 계승한 몇몇 검찰들, 배트맨에 의해 조금씩 줄어들어가고 있었다. - 아니, 그런 것 처럼 보였다.



이엄청난 살육의 현장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죽은지 한달이 다 된 시신도 있던  지옥도와 같은 현장이 펼쳐져 있었다. 


그리고 그날, 하얀 얼굴의 괴인이 나타나 고담시에 선전포고를 한다.


"모두 죽여버리겠다!"

는 무시무시한 협박을 한다.


요구사항도, 교환조건도 없었다.

일방적인 '살육예고'.

그에 앞서 괴인은 몇몇 인물의 이름을 거론하며 그들을 먼저 죽이겠다고 예고한다.






배트맨과 짐 고든이 예고된 연쇄살인을 막기위해 노력하지만, 매번 한발씩 뒤쳐진다.

괴인이 예고한 인물들은 철통같은 보안 속에서도 속수무책으로 괴이한 죽음을 맞이했고, 고담시 언론들은 그 괴인을 '조커' 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배트맨 역시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광기어린 천재 싸이코 패스 범죄자를 맞아 고군분투하며 그의 정체와 최종 목표를 찾기 위해 노력하지만, 오히려 큰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럼 대체 내가 무슨 수로 광인의 속셈을 읽는단 말인가?

이런 상황은 결코 예상치 못했다.

애당초 이 일을 시작할 때 내가 예상한 상대는 어디까지나 살인자, 약물 중독자, 성범죄자 같은 자들이었다.

극한 상황에서 앞뒤 가리지 않고 발악하는 자들 말이다.


이번 조커 같은 상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p.53



'배트맨' 타이틀을 꾸준하게 펴내고 있는 '세미콜론' 에서 펴낸 이번 타이틀엔 표제이기도 한 [웃는 남자] 와 [나무로 만든 것] 이라는 두 작품이 실려있다. 그 중 [웃는 남자]는 배트맨과 조커의 첫 조우를 다루고 있는 작품으로, 이전에 국내에서 정식 출간되었던 [배트맨: 이어원] 과 [킬링 조크] 와 함께 보면 아주 좋다. 그림의 스타일과 분위기, 이야기의 흐름도 완벽하게 유기적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웃는 남자]의 전체적인 내용은 팀 버튼 감독이 연출했던 첫번째 [배트맨] 영화와 유사하다. 조커 역시 우리에게 잘 알려진 히스 레저의 조커보다는 당시 잭 니콜슨이 연기했던 조커와 상당히 비슷한 느낌이다. 

[웃는 남자] 에서 쓰인 대량 살인의 플롯은 사실 만화와 영화를 막론하고 가장 많이 쓰인 플롯이다. 클리셰에 가까운 플롯이지만, 사실 이 플롯 자체가 '조커' 라는 인물 그 자체와 다름없기에 백번이고 천번이고 되풀이될 수 밖에 없다. 조커는 이 작품 안에서도 기발한 양동작전으로 배트맨과 고든의 눈을 속이고 고담시의 시민 모두를 죽이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진행시켜 나간다.

배트맨은 '탐정' 기질을 앞세워 조커가 일전 자신이 마주쳤던 '브라더 후드' ([킬링 조크] 참조) 라는 범죄자임을 간파해내고, 그가 저지르는 연쇄 살인을 막고, 그 이면에 숨겨놓은 대량 살육의 계획을 분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두번째 작품인 [나무로 만든 것] 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고든이 고담시 경찰청장까지 맡았다가 정년 은퇴까지 한 뒤를 다룬다. 

 
배트맨 타이틀에서는 '짐 고든'이 '배트맨' 만큼 중요한 인물이다.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그의 시점에서부터 시작되는데, 이 작품집에 실린 두편의 작품 모두 그러하다. 배트맨 타이틀은 특히 '제 3자가 배트맨의 활약을 감상하는' 식의 스토리 텔링 기법이 많이 쓰이는데, 이번에 배트맨을 관찰하는 사람은 제 1대 그린 랜턴 '앨런 스콧' 이다. 




의문의 연쇄 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 전 청장 짐 고든. 그와 배트맨은 이번 연쇄 살인이 40여년전에 있었던 연쇄 살인사건의 연장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범인을 찾기 위해 각자 자기만의 방식대로 수사를 시작한다. 그러던 중, 40여년 전 연쇄 살인 사건에 직접 관여를 했던 당사자이자 반지의 힘 '스타하트' 덕에 조금도 늙지 않은 그린 랜턴 앨런 스콧이 배트맨과 행동을 함께 하게 된다. 


강력한 반지의 힘으로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는 앨런 스콧과는 달리 평범한 인간인 배트맨.

그는 현재와 과거의 접점을 찾아 범인을 파악하고, 범인의 심리 상태를 프로파일링 하며 정석대로 사건을 추리해 나가고, 초인인 그린 랜턴  앨런 스콧은 그런 배트맨의 방식에 큰 감명을 받게 된다. '인간 본연의 강함' 을 느끼게 된 것이다. 한편, 현직에서 물러났으나 사건을 모른척 할 수 없던 짐 고든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동원해 차근차근 범인을 추리해 나간 결과, 범인의 정체를 거의 알아내게 되고, 그 순간 크나큰 위험에 빠지게 된다. 

 

DC의 영웅 모임인 [저스티스 리그 오브 아메리카] 의 양대 거물인 슈퍼맨과 배트맨은 서로를 각각 '보이 스카우트' 와 '탐정 나으리' 로 부르곤 하는데, [나무로 만든 집] 은 배트맨이 왜 '탐정 나으리' 로 불리우는지 아주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배트맨의 탐정 기질을 아주 잘 드러내고 있다. 마치 고전 추리물처럼 차근차근 진실에 가까이 다가가는 정석적인 추리 서사 기법을 만화로 잘 풀어내고 있다. 외려 그렇기에 조금은 지루하게도 느껴지지만, 클래식한 스토리 텔링이 주는 즐거움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다.





이런식으로 충분히 상세하게 담긴 각주의 해설도 친절하다. 



개인적으로는 국내에 정발된 마블과 DC의 작품들 중, 보다 완성도 높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들은 대부분 DC의 작품들이라고 생각한다. 마블의 작품들이 영화 '어벤저스' 의 영향 때문인지 과거의 명작들보다는 비교적 최근에 진행되고 있는 대형 프로젝트 위주로 런칭하는 반면, DC의 작품들은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명확한 원 이슈의 작품들을 위주로 런칭하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들은 주로 뛰어난 스토리 텔러들을 영입하여 짜임새있는 이야기를 구성하기 때문에, 완성도가 상당하다. 

[배트맨: 웃는 남자] 도 상당히 깔끔하게 완성되는 두편의 이야기가 잘 담겨져 있다.

상당히 만족스러운 작품집.

배트맨과 조커에 대한 다른 시각을 또 느껴볼 수 있는 작품.

기회가 된다면 꼭 [배트맨: 이어 원] 과 [배트맨: 킬링 조크] 를 함께 읽는것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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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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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완벽한 서사. 처음부터 끝까지 꽉 조여진 탁월한 완성도. 무엇하나, 어디하나 흠잡을 데 없는 최고의 이야기였다. 

작품을 읽어가는 내내 기리노 나쓰오와 미야베 미유키같은 작가가 떠올랐다. 태생은 장르 문학이었으나, 그 틀을 가볍게 넘나들어 문학적 완성도와 장르적 재미를 자신의 품 안에 너끈히 쓸어담는 탁월한 이야깃꾼들. 

엄밀히 따지자면, 이 작품은 전형적인 '장르문학' 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최근 큰 주목을 받았던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 나 기리노 나쓰오의 [아웃] 을 동일한 선 상에 놓고 가늠해 볼 수 있으리라. 

국내 문학은 장르문학의 천국과 지옥이 공존한다. 대여점에 가보면 커다란 공간의 한쪽 면에 두겹 세겹으로 꽂혀져있는 수많은 킬링타임용  장르문학들을 목도할 수 있고, 장르 문학 작가들은 마치 70~80년대 대본소 만화 공장처럼 판타지, 무협 소설을 찍어내듯 써나가고 있다. 문학판에서는 당연히 이들을 천시하고 홀대한다. 'SF적' '판타지적' 이라는 애매모호한 형용사를 남발하면서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을 바득바득 나누고 있다. 'SF적' 상상력이 사용되었으나 이 소설은 절대 SF소설 같은 장르문학이 아님을 만천하에 알리고 싶은거다. 

애초에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과연 어떤 잣대로, 얼마나 객관적인 기준으로 나눌 수 있느냐의 문제는 차치하자. 애초에 나는 그런걸 뭣하러 나누냐는 쪽의 사람이다. 어쨌든 이 작품은 구태여 그런 틀에 맞춰 구분하자면, 분명 [화차] 나 [아웃] 과 같은 포커스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사건이 있고, 미스테리가 있으며, 액션도 있고, 복수와 과거와 비밀도 있다. 


제목처럼 이 이야기의 시작은 '7년전 어느 날 밤' 에 일어난 한 사건에서부터 시작된다.

야구선수 출신이었던 보안업체 관리팀장 '최현수' 가 가족들과 함께 '세령호' 라는 곳의 '세령댐' 에 댐 보안 팀장으로 부임 하면서부터이다. 현수에게는 아내 '강은주' 와의 사이에 '서원' 이라는 아들이 있었고, 현수의 가족은 댐 직원들을 위한 사택에 살게 되는데, 여러 이유때문에 부하직원인 '승환' 과 한 집에서 살게 된다. 방은 둘뿐인 작은 아파트여서 안방은 현수와 은주가, 작은 방에서는 아들 서원이가 승환과 함께 생활을 하게 된다. 

한편, 세령댐 직원을 위한 사택은 세령 수목원 내에 있었고, 그 거대한 부지는 치과 원장인 '오영제' 의 것이었다. 대를 이어온 거대한 동산과 부동산, 지방의 유지의 아들로 태어나 역시 그 지방의 유지로 자라난, 마치 한 지방의 영주처럼 군림하게 된 오영제에게는 아내 '문하영' 과의 사이에 '세령' 이라는 딸이 있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정석대로, 살인사건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것은 사고였다. 안개가 자욱한 밤, 술에 잔뜩 취해 자가용을 몰고 부임지로 향하던 현수가 영제의 딸 세령을 차로 친 것이다. 그리고 현수는 간신히 숨이 붙어있는 엉망진창이 된 세령을 확실히 죽여 아무도 없는 세령호에 던져버린다. 


 이야기는 7년 후.

서원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사건 당시 서원은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꼬마였다. 살인자의 자식으로 세상에 낙인찍힌 서원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 하지 않았다. 친척의 집을 전전하다가, 그 시절 같은 방에서 함께 지냈던 승화을 찾아 함께 지내게 된다. 서원에게 주홍글씨처럼 새겨진 낙인 '살인마의 아들' . 그렇다. 현수는 연쇄 살인마로 사형을 앞두고 있다.

 과연 7년 전 그날 밤 무슨 일이 있었는가?

그리고, 그 뒤 7년동안 어떤 일이 진행되고 있는걸까? 


'범죄자의 가족' 이라는 소재는 장르문학의 천국인 일본에서는 꽤나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기도 하다. 

단순히 사건 - 범죄자 - 형사 혹은 탐정 이었던 미스테리 추리물의 구도는 장르문학에 사회적인 메시지를 담아내는 이른바 '사회파 추리물' 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등장해왔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편지], 요시다 슈이치의 [사요나라 사요나라]등은 살인자의 가족들이 이야기의 중심 인물로 등장하면서 실제로 일본 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작품의 주인공 '서원' 도 그런 범죄자의 가족이다. 말 그대로, 단지 가족이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격리되고 고통을 당한다.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연좌제' 가 실제로 존재하는 시절이 있었다. 탈북자의 자식은 고스란히 탈북자와 마찬가지 취급을 당하며 '빨갱이' 로 낙인찍혀 사회의 주변부에서만 머물러야 했다. 서원 역시 그러한 연좌제와 같은 형벌을 당하게 된다. 


이 작품이 시종일관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며 긴장의 끈을 놓치 못하게 만드는 요소는 '세령을 죽인 현수'보다 '딸을 잃은 영제'가 더 나쁘고 더 악독한 놈이라는 데에 있다. 작품이 진행될수록 현수의 순간의 실수가 점점 더 아쉽게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현수는 순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 고통스러운 유년기를 이겨내 프로 야구로 성장했으나, 정작 중요한 순간에 행운은 그를 비껴가기만 했다. 은주와의 만남조차도 불운에 가까웠고, 세령을 차로 친 것도 불운이었다. 그는 천성이 순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반면, 딸을 잃은 영제는 현수의 완벽한 반대편에 있는 사람이었다. 유년시절부터 풍족했고, 약삭빠르고,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손에 넣는 사람이었다. 성정이 잔혹했고, 아내와 딸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싸이코 패스 기질이 다분한 놈이었다. 

 결국 독자들은 가해자, 즉 살인자의 편에서 이야기를 따라가게 되기 때문에 심한 불편함을 느낄 수 밖에 없다. 이것과 함께 위에서 언급한 서원이 범죄자의 가족이기때문에 당하는 부당한 사회적인 배척 또한 불편하게 느끼게 되고, 그 사건이 있은 지 7년간 서원의 등 뒤에 어른거리는 위태로운 검은 그림자에 또 불편하게 된다. 

이러한 불편함들이 작품 내내 독자를 잔뜩 긴장하게 만드는 요소가 되고, 세련된 액자식 구성의 연출은 이야기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면서 독자들을 강력하게 빨아들인다. 


 시간의 흐름은 서사에 맞게 차근차근 진행되지만 시종일관 꿈과 현실, 상상과 실재를 복잡하게 오고가며 사건들의 인과관계와 등장인물들의 행동 요인을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묘사로서 풀어낸다.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작품 여기저기 뿌려져있던 미스테리적인 요소들이 차근차근 모여나가며 클라이맥스의 대폭발을 예고한다.   


근래에 읽어본 미스테리물 중에서는 가장 완벽한 완성도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싶다. 

확실히, 정유정 작가도 정말 엄청난 이야깃꾼이다. 완급조절도 훌륭하고, 달음박질 치는 듯 힘있는 문장력도 참 좋다. 그 와중에도 여성 작가 특유의 섬세한 인물묘사가 철저한 사전 준비작업을 통해 태어난 치밀한 디테일과 어우러져 엄청난 리얼리티를 뿜어낸다. 

개인적으로는 미스테리-추리 장르물의 결정판 처럼 느껴졌다. 수년간 그 장르만 파온 미야베 미유키나 기리노 나쓰오 같은 여성 작가들은 물론, 요시다 슈이치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장점들을 다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과연 정유정 작가가 이 작품을 능가할 만한 작품을 또 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이다. 세계 어디에 내놔도 충분히 먹힐만한 보편적인 소재들을 아주 잘 활용했다고 느껴진다. 


때로 우리는 '운명' 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결코 피할 수 없는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성공' 이 운명이라면, 당연히 그 반대편 '파멸' 도 운명일터.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는 경기 안에 성공과 파멸의 운명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승패를 떠나 손가락에서 떠난 주먹만한 야구공 하나에 운명이 오락가락한다. 절호의 찬스를 놓친 4번타자는 빨리 다음 찾아올 운명의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이번에 놓친 찬스에 연연하다가는 다음 찬스에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할 뿐이다. 복기는 하되, 얽매여서는 안된다. 홈런을 맞은 투수 역시 마찬가지이다. 다음 타자를 상대해야 한다. 포수는 재빠르게 경기의 흐름을 읽고, 운명의 순간을 맞이한 투수의 심경을 헤아려야 한다. 역시, 운명의 순간을 맞은 상대편 타자의 심경도 헤아려야 한다. 그에게는 파멸의 운명을, 우리 투수에게는 성공의 운명을 이끌어야 한다. 현수는 7년간. 2500여일의 밤 동안 다음 기회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 자신이 놓친 절호의 찬스는 이미 그의 머릿속에서는 새까맣게 잊힌 지 오래였다. 그 시간동안 현수는 끊임없이 상대 타자를 분석하고, 우리편 투수의 심경을 헤아렸다. 

그리고, 사인을 냈다.

이제 투수는 공을 던질 것이고, 타자는 배트를 휘두를 것이다.

9회 말 투아웃. 

7년간의 경기는 그렇게 막을 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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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연속 세계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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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정말. 정말정말, 정말정말정말이다, 정말. 정말 이야깃꾼이구나. 이 사람은 정말정말 정말 정~~말 이야깃꾼이구나. 라는 생각을 온다 리쿠의 책을 한번 읽을때마다 100번씩 생각했는데, 이번 책에서도 100번쯤 되뇌었다. 

개인적으로 온다 리쿠 작품의 특색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대화]를, 그 뒤로 [회상] [여행] [고교생] 을 꼽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이고, 어쩌면 온다 리쿠의 작품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할 터다.

음반 기획자인 '다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집은 안에 실려있는 작품들 또한 그러한 온다 리쿠만의 색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단편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섯편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는 이 작품집은 주인공 다몬이 겪는 다섯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들어있다고 해도 좋고, 연작 단편 소설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섯 작품 모두에 다몬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작품간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나무지킴이 사내]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환영 시네마] [사구 피크닉] [새벽의 가스파르] 라는 작품들이 모여있는데, 각 작품들 모두 주인공 다몬이 개인적인 관계로, 혹은 일 관계로 알게되는 사람들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겪는 수수깨끼 같은 일들을 풀어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작은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은 대부분 다몬의 추리력과, 주변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져 나간다.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두 페이지짜리 작가의 노트를 통해 주인공 '다몬' 이 이미 한참 전에  [달의 뒷면] 이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 다몬은 주변 상황에 예민하고 민감하지만, 성격은 느긋하고 모나지 않아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어디에나 잘 스며드는 물과 같은 사내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변 모두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관조하는 듯한 자세를 가진, 중성적인 느낌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주변에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상상력도 풍부하고 논리적인, 어떤 면에서는 초월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온다 리쿠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 전체가 조금은 몽환적이고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곤 한다.  

이 작품집에 모여있는 다섯편의 작품 모두 그런 온다 리쿠 작품만의 독특한 색채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고, 말장난처럼 아주 사소한 것도 등골이 오싹 해 질 정도로 철렁이게 만드는 탁월한 스토리 텔링도 여전하다. 


역시 작가 노트를 통해 작가가 작품집 전체의 제목인 '불연속 세계'를 상징할 만한 작품으로 [새벽의 가스파르]라는 작품을 꼽았는데, [달의 뒷면] 에서부터 주이공 '다몬'에 이입해온 독자라면 쇼킹할 정도로 재미있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이 단편집이자 옴니버스식의 장편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반전때문이랄 수 있겠다. 

다몬은 작품 안에서 사실 쭉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고, 사실은 그 때문에 모든 작품들이 분절성을 갖게되지만 [새벽의 가스파르] 에서는 그 공식이 깨어지기 때문에 앞의 네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집은 몇년간 써 온 작품들이 묶인 것이기에 사실 작가가 처음부터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닐터이지만, 묘하게도 그런 즐거움이 생겨버린것이다.  

   

이제 다몬이 처음 등장했다는 [달의 뒷면]을 읽으려고 준비중이다.

언제나 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이다. 세상 모든 것이 미스테리. 아니, 세상 모든 것에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같은 작품을 여러차례 읽어도 그 독특한 위화감이 뱃속을 간질인다. 

작품이 쌓여갈수록 온다 리쿠의 필력도 나날이 높아지는 것도 확실히 느껴진다. 이야기의 힘을 충분히 전달해준다. 

그녀에게 온 세상 모든 것은 미스테리고, 수수깨끼고, 이야깃거리일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나날이 기대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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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티미츠 Vol.1 : 슈퍼휴먼 시공그래픽노블
마크 밀러 지음, 이규원 옮김, 브라이언 힛치 그림 / 시공사(만화)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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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2차 세계대전의 말미. 독일군이 전세를 뒤집을만한 가공할 비밀무기를 개발하고 있다는 첩보를 입수한다. 

미군이 보유하고 있는 원자 폭탄을 만들어낼 정도의 과학력을 상회할만한 가공할 초대형 수소폭탄. 연합군은  슈퍼 솔저인 캡틴 아메리카의 지휘 아래 독일군의 비밀무기 공장을 총공격한다. 결국 독일의 수소폭탄은 발사되고, 캡틴 아메리카는 맨몸으로 로켓에 달라붙어 공중분해를 시켜내고야 만다. 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캡틴 아메리카는 행방불명되고, 전쟁은 끝난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2002년. 

S.H.I.L.D (이하 '쉴드')의 수장인 닉 퓨리는 브루스 배너를 만나고 있었다. 브루스 배너는 이전까지 슈퍼 솔저 혈청 개발의 팀장이었다. 하지만 브루스 배너가 개발한 혈청은 포악한 거인 헐크를 만들어내며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닉 퓨리는 '실패자' 인 브루스 배너를 팀장이 아닌 부팀장 정도로 권한을 낮추어 재영입하려 한다. 

 큰 상처만 남기고 실패한 프로젝트에 국가적 지원이 다시 이루어 질 수 있었던 이유는 1945년에 행방불명되었던 캡틴 아메리카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완전 냉동된 상태였기에, 완전한 상태로, 게다가 살아있는 상태로 조국의 품에 안긴 것이다. 성공한 슈퍼솔저 캡틴 아메리카의 원형이 발견되었으니, 실험이 재개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슈퍼 솔저' 실험은 언젠가 닥쳐올 전 지구적인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얼티미츠' 라는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얼티미츠는 평범한 사람에게 특수한 능력을 부여하는 '슈퍼 휴먼' 의 개발과, 연합을 위해 만들어졌다. 거인 혈청에 성공해 '자이언트 맨'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된 행크와 원자 단위로까지 몸을 축소시킬 수 있는 뮤턴트인 '와스프' 자넷. 캡틴 아메리카를 만들어냈던 '슈퍼 솔저' 혈청을 연구하고 있는 '헐크' 브루스 배너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와 스스로를 신의 아들이라고 자처하던 떠돌이 '토르'. 그리고 살아있는 슈퍼 솔저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 까지 포함되면서, 슈퍼 히어로 팀다운 모습을 갖추게 된다.

   







그래픽 노블을 조금 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봤을 탁월한 스토리 텔러인 '마크 밀라' 가 스토리를 맡은 '얼티미츠' 는 마블 코믹스가 본격적으로 영화 산업에 뛰어들며, 영화화를 충분히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프로젝트이다.

기존의 '어벤져스' 와는 다른 노선의 작품으로, 쉴드의 수장은 닉 퓨리의 외형부터 영화에서 등장했던 사뮤엘 L 잭슨과 비슷한 인상으로 디자인 되었다.



[얼티미츠]의 닉 퓨리. 사뮤엘 잭슨과 판박이처럼 닮아있다.




[시크릿 워]의 닉 퓨리.

원래의 닉 퓨리는 각이 뚜렷한 거구의 백인이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크로스 오버 이벤트 중,

[헐크: 플래닛 헐크] - [시크릿 워] - [시빌 워 ] - [엑스맨: 하우스 오브 엠] -[씨크릿 인베이전] - [엑스맨: 메시아 컴플렉스 ] - [헐크: 월드 워 헐크] - [썬더볼츠] 는 모두 동일한 흐름을 가지고 있는 작품군으로 작품을 면밀하게 감상하면 연대표를 짜 맞추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얼티미츠] 의 경우는 그 흐름과 함께 보기보다는, 완전히 독립된 개별적인 작품으로 보는게 좋다.

그 사이의 간극을 메꿀만한 작품들이 국내에 발매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만화 시장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흐름들이 각자 생명력을 갖고 움직이기 때문에, 이렇게 크로스 오버 이벤트 위주로- 게다가 발매 순서도 약간 난해하고- 봐서는 그 흐름을 완벽히 파악할 수 없다.

애초에 이 프로젝트 자체가 영화를 염두에 두었던 것은 분명하므로, 독립된 작품으로 읽는 것이 맞을 것이다.

국내에도 최근에는 네이버의 '마블&DC' 같은 온라인 카페나 전문 번역자이신 이규원님께서 활동하시는 블로그를 통해서도 미국 만화계의 상황을 거의 비슷한 시점에서 리뷰들을 만나볼 수 있기때문에 보다 디테일한 흐름이 궁금하신 분들은 찾아보면 될 것이다. 


다른건 다 차치하고, [얼티미츠] 라는 작품만 보아도 그 재미는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마크 밀라의 스토리는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하지만 그 기반은 현실에 단단히 지지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성격이나 행동요인들이 디테일하고도 리얼하게 묘사되어 있다. 작화도 매니악하지 않은 노멀하면서도 포멀한 스타일을 유지하고 있고, 무엇보다 영화와 비슷해서 영화를 보시거나, 보실 분들도 가깝게 느끼실 수 있을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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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의 왕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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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세계가 화려할수록 기반은 허약하고 몰락은 거대하다" P. 020 


 여느 대한민국 고등학교의 교실에는 크게 네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먼저 공부를 잘하는 엘리트 부류

그야말로, 교실의 10%에 해당하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의 사랑과 관심은 이 아이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학교의 시스템도 이 아이들을 위해 움직인다. 아니지, 이 아이들을 명문 대학에 보내기 위한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고 해야 맞을 것이다. 

 두번째 부류는 소위 '일진' 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역시 교실의 10%에 해당하는 아이들일 것이다.

선생님은 이 친구들은 아예 없는 학생으로 친다. 잘못 건드렸다가는, 선생 그 자신도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이 친구들을 힘으로 휘어잡을 수 있었지만, 교권이 추락하고, 교원조차 여성들이 대부분이기에 10대 후반의 덩치크고 혈기좋은 학생들을 힘으로 휘어잡는다는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세번째 부류는 '셔틀' 이라고 불리는 아이들. 이 친구들 역시 교실의 10%에 해당한다. 

일진들에게 돈을 뺏기고, 심심풀이 대상으로 샌드백이 되어 얻어터지고, 교실이 지옥처럼 느껴지는 아이들이다. 

선생님은 이 친구들을 도와주고 싶지만, 제도적으로 불가능하다. 일단, 교무실도 일종의 교실과 같다. 교장을 중심으로 계급과 체계가 잡혀있다. 우리반에 문제아 - 특히 왕따 당하는 학생이 있다고 알려지만, 그 선생님 역시 교무실 안에서 비슷한 처지가 될수도 있다. 그 밖에 여러 제도적, 장치적, 교육부 전체적인 문제로 인해 사실상 이 친구들을 구제한다는건 불가능에 가깝다. 교실은 학생들만의 정글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 정글 자체를 갈아 엎지 못하는 한, 약육강식의 논리에 따라 이 학생들은 언제나 먹잇감이 될 수 밖에 없다.

 네번째 부류는 위의 30%정도는 제외한 나머지들이다.

이 아이들은 어떤 분야에도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지만, 주로 문제풀이에 재능이 없어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고, 운동신경도 보통정도에, 일련의 사건을 통해 내재된 폭력성을 발휘하지 못했으며, 운이 좋아 '셔틀'은 면한, 조용히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일진들 눈에 띄지 않게 운신하며 학교를 출퇴근 하듯 등하교하는 아이들이다.


 '태식' 은 네번째 부류에 속해있는 70%의 부류에 속해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부모님께 받은 도서관비를 삥땅치고, 시험기간에 게임을 하며, 친구들과 어울려 수다떨고, 여자 연예인을 좋아한다. 하지만 가출이나 큰 반항을 하지는 않고, 부모님께 죄송스러운 마음도 있고, 공부를 잘 하고 싶기도 하지만, 부모님은 내 부모님이니까 괜찮고, 공부는 너무 재미가 없어서, 어쩔 수 없는. 잠재된 폭력성은 소심함과 상식으로 누르며 사는 일개 소시민, 아니, 정말 그야말로 평범한 소년이다. 

 

 태식이 즐기는 게임 '판타지 온라인' 은 대한민국 최고의 온라인 게임이었다. 

지금은 개발사의 여러 이유로 서서히 인기가 하락해 가고 있지만, 온라인 게임 대부분의 장르인 MMORPG의 선구자 격인 작품이었고, 아이템의 현금거래와 유저들간의 전투를 허용하고, 길드와 같은 커뮤니티를 지원하고, 게임속 경제구조를 적절하게 통제하면서 탄탄한 회원풀을 구축하고 있는 게임이었다. '중경' 은 이 게임의 개발자이자 개발사인 '폴룩스 엔터'의 대표이기도 했다. 판타지 온라인의 인기 하락과 함께 폴룩스 엔터도 자금난을 겪고 있었고, 중경은 이 사태를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쓰는 중이다.


  판타지 온라인의 세계를 양분하는 거대 세력은 '훈남 길드' 와 '인맥 길드'였다. 게임의 내로라 하는 고수들은 대부분이 이 양대 길드 소속이었고, 게임 내 경제구조를 좌지우지 하는 최강자들이었다. 이들은 게임을 취미로 한다기보다 사업처럼 하는 사업가들이었다. 게임의 세계도 현실세계와 똑같다. 무기 아이템 하나를 얻으려고 해도, 실제로 광산에 가서 광물을 캐야 하고, 필요한 여러가지 다른 재료들을 적절한 비율로 섞어 대장간에서 제련을 해야 한다. 게임 유저들은 게임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세계관 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다. 어떤  유저는 광산에서 광물만 캐서 다른 유저들에게 팔아 골드를 모으고, 그걸로 더 좋은 아이템을 구한다. 길드의 수익원은 이런데에서 나온다. 

거대 길드가 광산을 장악하고, 몬스터들이 출몰하는 사냥터를 장악해, 골드를 모으고, 희귀한 무기들을 보유한 뒤, 그것들을 현금을 받고 판다. 이것은 실제로 돈이 된다. '훈남 길드' 의 리더인 아이디 '인투더레인' 은 판타지 온라인 게임의 초기부터 뛰어난 명성을 떨치던 고수였다. 레벨 10차이가 나는 상대를 거뜬히 이겨낼 정도로 컨트롤이 뛰어났고, 공격과 회피의 타이밍을 잡는 기술이 탁월했다. '인투더레인'-'정준'은  실제로 조직 폭력배 출신이었다. 훈남길드를 만들고, 건물 지하에 컴퓨터를 여러대 놓고 유령회사로 사업자 등록까지 한, 게임으로 사업을 하는 인물이었다. 


 태식과 중경, 정준은 각자 자신의 눈 앞에 있는 사건들을 맞닥뜨려 가면서, 서서히 서로에게 얽히게 된다.


 한상운 작가의 장점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작품이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긴박감 있게 펼쳐지고, 다음 페이지를 미치도록 궁금하게 만든다. 중경과 정준은 다소 전형적인 인물이지만, 태식의 변화를 극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완벽한 소스를 제공하고, 간결하고 속도감있는 문장력과 어우러져 상당한 흡입력을 발휘한다.

게다가 이야기의 밸런스를 맞추는 능력은 역시 명불허전이다. 

무엇보다, 현재 대한민국 고교생들의 현실과 온라인 게임계의 상황을 면밀하게 꿰뚫고 있는 통찰력이 대단하다. 그리고 그것들을 이렇게 이야기로 빚어내는 능력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한상운 작가의 재능. 이야기 전체의 짜임새도 아주 탄탄하다. 


사건과 일이 겹쳐가며 차근차근 변화해 나가는 태식의 모습을 보는것도 상당히 재미있다.

특히 에필로그와 같은 작품의 엔딩은 한상운 작가다운 위트와 캐릭터들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묻어있어 정말 좋았다. 

앞으로 태식의 삶은 어떤 식으로 변화할까? 이 리뷰의 서두에 인용한 문장, '화려한 세계' 의 주인인 중경과 정준의 앞에는 어떠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까? 

[미스테리 소년 추격전] 이라는 시리즈 타이틀을 가지고 만나보게 되는 한상운 작가의 작품. 번외편까지 총 네 편으로 기획되었다는데, 나머지 권들이 엄청나게 기대된다!!! 


고교시절은 누구에게나 인생을 좌우할만큼 큰 선택을 하게 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폴룩스 엔터의 대표인 중경은 고교때는 전국 석차 100등안에 들 정도의 엘리트 부류였고, 인투더레인으로 게임 안에서 명성을 떨치는 정준은 고교시절부터 조폭 지망생이었고, 결국 고교를 중퇴하고 조폭이 된 인물이었다. 그들의 현재를 만든건 고교시절이라는 과거.

 그리고 태식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꿀만한 선택의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숱한 중고등학생들이 급우들의 폭력에 못이겨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기사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져 나온다. 한창 자아를 찾아나갈 시기, 그들의 삶은 폭력으로 멍들어가고 있다. 숱한 선택의 순간들을 인격적, 육체적 모독으로 물들여가고 있다.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풀지 못해 안달인데, 소년들의 스트레스는 누가, 어떻게 풀어줄 것인가?

육체적으로 우위에 있는 '일진'들은 동급생들을 괴롭히면서 풀어내고, 두배 세배의 스트레스를 받는 '셔틀' 은 결국 이 괴로움만 가득한 세상을 떠나기로 결정한다. 그들이 적어놓은 유서들은 그들이 명백히 스스로 삶을 포기했음을 알려주는 단서가 되지 않는가.

누가 그들의 삶을, 숨쉬는 모든 순간이 괴로워지게 만들었는가? 

 '재미' 안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이 가슴 한켠을 짓누른다. 

 


"때린 놈은 다리를 오그리고 자도 맞은 놈은 발 뻗고 잔다고? 거짓말이다.

때린 놈이 맞은 놈 얼굴도 기억 못하는데 무슨 소리냐.

평생 때려보기만 한 놈들이 만든 말이다.

맞은 놈만 평생 치욕에 떨며 괴로워할 뿐이다." P. 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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