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연속 세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40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12년 3월
평점 :
아... 정말. 정말정말, 정말정말정말이다, 정말. 정말 이야깃꾼이구나. 이 사람은 정말정말 정말 정~~말 이야깃꾼이구나. 라는 생각을 온다 리쿠의 책을 한번 읽을때마다 100번씩 생각했는데, 이번 책에서도 100번쯤 되뇌었다.
개인적으로 온다 리쿠 작품의 특색을 꼽아보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대화]를, 그 뒤로 [회상] [여행] [고교생] 을 꼽을 것이다. 그녀의 작품 전체를 아우르는 단어이고, 어쩌면 온다 리쿠의 작품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이기도 할 터다.
음반 기획자인 '다몬'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이 작품집은 안에 실려있는 작품들 또한 그러한 온다 리쿠만의 색채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단편의 형태를 가지고 있는 다섯편의 이야기들이 실려있는 이 작품집은 주인공 다몬이 겪는 다섯가지의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들어있다고 해도 좋고, 연작 단편 소설집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다섯 작품 모두에 다몬을 중심으로 그 주변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작품간의 연관성은 전혀 없다.
[나무지킴이 사내] [악마를 동정하는 노래] [환영 시네마] [사구 피크닉] [새벽의 가스파르] 라는 작품들이 모여있는데, 각 작품들 모두 주인공 다몬이 개인적인 관계로, 혹은 일 관계로 알게되는 사람들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겪는 수수깨끼 같은 일들을 풀어내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이야기에는 작은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은 대부분 다몬의 추리력과, 주변인물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져 나간다.
책의 말미에 붙어있는 두 페이지짜리 작가의 노트를 통해 주인공 '다몬' 이 이미 한참 전에 [달의 뒷면] 이라는 작품에 처음 등장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인공 다몬은 주변 상황에 예민하고 민감하지만, 성격은 느긋하고 모나지 않아 누구에게나 잘 어울리고 어디에나 잘 스며드는 물과 같은 사내이다. 온다 리쿠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하는 주변 모두는 물론 자기 자신까지 관조하는 듯한 자세를 가진, 중성적인 느낌의 인물이다. 그럼에도 언제나 주변에 따뜻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상상력도 풍부하고 논리적인, 어떤 면에서는 초월자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온다 리쿠는 이런 인물들을 통해 이야기 전체가 조금은 몽환적이고 어딘가 붕 떠있는 듯한 분위기를 이끌어 내곤 한다.
이 작품집에 모여있는 다섯편의 작품 모두 그런 온다 리쿠 작품만의 독특한 색채를 풍부하게 담아내고 있고, 말장난처럼 아주 사소한 것도 등골이 오싹 해 질 정도로 철렁이게 만드는 탁월한 스토리 텔링도 여전하다.
역시 작가 노트를 통해 작가가 작품집 전체의 제목인 '불연속 세계'를 상징할 만한 작품으로 [새벽의 가스파르]라는 작품을 꼽았는데, [달의 뒷면] 에서부터 주이공 '다몬'에 이입해온 독자라면 쇼킹할 정도로 재미있는 반전을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작품이 단편집이자 옴니버스식의 장편이 될 수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반전때문이랄 수 있겠다.
다몬은 작품 안에서 사실 쭉 객관적인 관찰자의 시점을 유지하고, 사실은 그 때문에 모든 작품들이 분절성을 갖게되지만 [새벽의 가스파르] 에서는 그 공식이 깨어지기 때문에 앞의 네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할 수 있게 된다.
이 작품집은 몇년간 써 온 작품들이 묶인 것이기에 사실 작가가 처음부터 그걸 의도한 것은 아닐터이지만, 묘하게도 그런 즐거움이 생겨버린것이다.
이제 다몬이 처음 등장했다는 [달의 뒷면]을 읽으려고 준비중이다.
언제나 온다 리쿠의 이야기는 기대 이상이다. 세상 모든 것이 미스테리. 아니, 세상 모든 것에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준다.
같은 작품을 여러차례 읽어도 그 독특한 위화감이 뱃속을 간질인다.
작품이 쌓여갈수록 온다 리쿠의 필력도 나날이 높아지는 것도 확실히 느껴진다. 이야기의 힘을 충분히 전달해준다.
그녀에게 온 세상 모든 것은 미스테리고, 수수깨끼고, 이야깃거리일터.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까??
나날이 기대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