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10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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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서유기로 잘 알려져있는  [대당삼장취경시화] 를 각색한 '거장'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 - 대당편] 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시리즈물의 경우 완결편이 나오지 않으면 리뷰를 잘 안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2011년에 첫권의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발매 초기부터 상당한 기대작이었고, 햇수로 3년동안 꾸준하게 구입해서 감상한 몇 안되는 콜렉션이기도 하다. 사실 5~7권쯤엔 지나치게 스토리를 질질 끄는 듯한 면이 있어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10권까지 다 읽고 나니 대당편의 매조지를 위한 호흡 늘리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작가가 10권이라는 방대한 스토리 안에서 자유롭게 독자들의 호흡과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작품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행히 작품의 후반에는 한국판 발매 속도도 빨라서 지루함은 쉽게 사라졌다. 솔직히 8권쯤에선 '아 이제 그만 읽을까.' 싶기도 했지만, 10권을 읽은 지금은  "서역편 언제나오나요???" 의 심정이다.

 

 [서유요원전]의 주제의식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악마인가, 천사인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한다. 수많은 철인哲人 들은 예로부터 '인간은 나면서부터 선하다' 와 '인간은 나면서부터 악하다' , 혹은 '인간은 백짓장과 같고 자라면서 주변환경에 의해 선과 악이 변화한다'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나누었다. 그 모든 의견은 어쨌든 인간에게 선한면과 악한면이 모두 보여지기에 나온 것이다. 

 갓난 아이 였던 손오공이 화과산에서 원숭이들에게 납치당했다가 인연을 얻어 산골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끔찍한 참변을 목도했다가, 결국은 '무지기' 라는 신에게 선택되어 겪게되는 이 대서사는 실제 역사와 전설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서유요원전]의 주제의식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장면. 부처안에 사마...사마 안에 부처...

 

 

 

 

 이 거대한 대서사극을 보는 내내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이 떠오르기도 했고, 단테의 [신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도 떠올랐다. [서유요원전]에는 오공이 걷는 지옥도圖와 같은 당시의 시대상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었으며, 그런 시대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악귀같은 형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 길고 긴 여정은 끊임없는 시험이 반복되는 미답의 공간을 헤매이는 구원을 향한 여정과도 같고, 빨리 끝나기만을 소망하는 지옥의 여정과도 같으며, 영혼의 고향을 찾아 헤매이는 여정과도 같았다.

 [서유요원전]은 주인공 손오공이 자신의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끊임없이 지옥도道로 향하는 '제천대성' 이자 '무지기' 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자, 탐욕스럽고 사악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엾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들과 얽히고 설키는 은원의 이야기이다. 손오공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장면들도 재미있지만, 각기 사연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반복한 조연들의 이야기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손오공을 제천대성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던 제천대성의 수족과도 같았던 '통비공'을 비롯, 손오공과 살을 맞대며 정情을 알려주었던 '용아녀', 복수와 집념의 화신인 '금각', '은각' 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애증의 관계였던 '홍해아' 와 '황포'. 이 큰 이야기에서 손오공의 여정과 대척점을 이루며 균형을 맞춰가는 '혜안 행자' 와 손오공과 이어질 듯,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묘한 인연의 '현장' 은 물론, 중간 중간 등장하는 '황풍대왕' 과 '나타태자', '칠선고' 에 '팔계' 와 '손이랑', '일승금'. 그리고 [서역편] 과의 연결점이 되어줄 '나찰녀' 까지. 모두가 인간의 오욕칠정을 대변하는 듯 또렷한 욕망을 가지고 손오공과 은원을 쌓는다. 

 그렇다. 손오공이 받는 거대한 시험은 결국 언제나 '사람들' 이었다. 자아와의 싸움이자, 타자와의 싸움.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누구를 이겨야 진짜 이긴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겨야 하고,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야 한다. 손오공이 맞닥뜨린 지옥같은 여정에서, 머리에 씌워진 관과 그 무엇보다 강한 봉은 굴레이자 방향타였다. 손오공에게 그것들이 없었다면, 그는 현장을 만날 수도 없었고, 그 뒤를 따라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통과 해소는 같은 곳에 있다. 마치 사마와 부처가 함께 있는 것 처럼, 굴레와 키도 같은 곳에 있었고, 고통과 해소도 같은 곳에 있었으며, 지옥과 극락은 물론 삶과 죽음도 같은 곳에 있었다. 깨달음을 향해 천축으로 향하는 현장과, 구원을 위해 현장의 발자욱을 쫓는 오공. 동행할 듯 동행할 듯 동행하지 못하는 오공과 현장의 엇갈리는 인연은 마치 어긋나는 연인들을 보는 것 처럼 애틋하기까지 하다.  

 

 또한 [서유요원전]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총 열권의 '대당편' 중 한권에 수록되어 있던 저자와의 대담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정말 강한, 그래서 매우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작품의 서두를 장식하는 '용아녀-용화' 와 말미를 장식하는 '나찰녀' 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용아녀가 보다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나찰녀는 제천대성의 능력을 쓰는 손오공마저 압도할만한 강력한 힘을 가진 중성적인 마성을 자랑한다. 그 뿐 아니라, 여인들의 모성애를 다룬 '나타 태자' 와 그 어미인 '지용부인' 그리고 나타태자를 돌보는 요괴 '음도녀' 의 에피소드, '연리지'를 모티프로 한 듯 보이는 '부상부인'과 '동군' 의 애틋한 사연도 빼놓을 수 없고, 영원한 순정의 테마인 '보디가드' - 충직한 '석방상' 의 '백화수' 를 향한 순애보도 인상적이다. 사랑愛이 증오憎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줄 '일승금' 의 애완동물(?) 사랑도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 역시 마지막에야 엄청난 떡밥을 던져주는 나찰녀. 

누구지?? 누가 등장하는거지??(혹시 베지터가 등장하는건 아니겠지?ㅋㅋ)

 

 [대당편] 의 완결편은, 역시나 대가의 '대단원' 답게 한 권 만으로도 대단히 완성도 높은 한 단원의 마무리를 감상할 수 있다. 10권에 달하는 시간동안 은혜로, 또는 원수로 쌓여온 인연들이 차근차근 정리된다. 비록 1부격이긴 하지만, 최근엔 이렇듯 1권부터 10권을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의식, 통일성 있는 스토리 텔링, 일관성 있게 완성도 높은 작화로 완결되는 장편 명작은 쉽게 만나보기 힘들다. 성장해가는 손오공의 외모부터 대사와 행동까지 디테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일본 망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재적인 몇명의 작가들이 시대별로 명멸하며 '왕국' 의 위세를 이어왔다. 우리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망가의 신 '데츠카 오사무' 에서부터 '드래곤 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아키라' 에 '슬램덩크' 와 '배가본드' 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마다 그에 뒤지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뛰어난 작가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서유요원전] 의 모로호시 다이지로 역시 그 천재성에 비해 국내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개성 강한 그림체와 일본의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매니악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서유요원전] 을 필두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작품들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서유요원전] 은 가장 긴 장편으로, 단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대가다운 스토리 텔링을 유감없이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종의 '자아 찾기 여행' 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여행' 이며 '영웅 서사물' 이기도 한 현장과 손오공의 여정은 이제부터 [서역편] 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터다. 무지기의 끊임없는 유혹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는 손오공. 그 여정에 끝엔 무엇이 있으며, 그 곳에서 손오공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는 - '조금'은 뻔하고도 추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갈 테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그것이 아니다. 그 여정 '중' 에, 손오공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쌓아갈지. 그리고 그렇게 얽히고 설키는 인연들 속에서 손오공은 어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역시 장편은 쌓아놓고 읽는게 제맛. 1권은 장기 대여중.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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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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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성性적인 기호嗜好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이성에 대한 '매력포인트' 라고 하기엔 보다 농밀하고, 보다 관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딘가, 혹은 무언가 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성적인 기호' 야말로 인간이란 존재에게 있어 섹스가 단순히 본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섹스가 단순히 본능에 의한 행위라면 그 대상의 생식력과도 무관한 단순한 '기호' 라는 것이 필요할 리도 없을 것이다. 이 '성적인 기호'는 대부분 '최초의 기억'이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겨난다. 여성의 가슴이나 힙은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의 번식과 관련되었기에 종족의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성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손이나 발, 손가락과 발가락, 손톱, 복사뼈, 발목, 아킬레스건 등에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개개인의 기호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성의 목젖이나 잘록한 발목, 종아리, 얇은 손목, 가슴털 등에 섹시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별이 다름으로 인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 것일 수도 있다.  

 '페티시즘Fetishism'  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와 같이 조금은 '특별한' 성적 기호는 한때는 일종의 정신질환적인 집착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현대에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욕들 중 하나라는 것이 통설로 적용되고 있다. 인간은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간에 정도가 심하면 일종의 도착증세를 보이게 된다. 페티시즘 역시 마찬가지이다. 손이나 발, 손톱이나 털, 제복이나 스타킹, 레깅스, 타이즈, 속옷 정도라면 그나마 평범한 축이고, 때로 페티시즘은 특정 체위나 행위(목을 조른다거나 묶는 등 사디즘이나 마조히즘과 결합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대변이나 소변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정도가 어떻든간에, 이러한 성적인 기호가 사회가 용납하는 정도를  벗어나는 것들이 대상이 되면 당사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성적인 욕구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파트너와 공유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최소 구성원인 가족을 만드는 가장 상징적인 소통수단인 섹스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욕구에 심각하게 도착증세를 보이게 된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인 동시에, 사회적인 부분일 수 밖에 없다.    

 

 험버트는 '님펫' 이라는 존재를 갈구한다. 님펫이 아니면 성적인 욕구는 해갈되지 않는다.  

험버트가 님펫이라고 명명한 이 존재는 간단히 말해, 육체는 미성년이지만 정신은 성인인 독특한 기운을 뿜어내는 '여자아이'들을 일컫는다. 험버트가 갖고있는 이 님펫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즘은 어렸을때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린시절 겪었던 첫사랑의 감정과 첫 성경험의 쾌락이 합쳐진 결과로써 그 당시 사랑했던 소녀의 나이, 피부, 헤어컬러, 미묘한 뉘앙스, 분위기등이 깊이 각인된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험버트에게 각인된 성적인 대상이 반드시 '미성년' 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미성년자는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대상 1순위에 꼽히는 계층이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기때문에 인류라는 종족의 생물학적인 지상과제는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것' 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너댓배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인 미국에서는 그 수위가 훨씬 높다. 특히 미성년자와 갖는 성관계는 무조건 처벌대상이 된다. 험버트는 자신의 이러한 성적인 '각인' 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성인 여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본능적인 욕구와 연결된 심리적 각인은 쉬이 없앨 수 없었다. 험버트는 가능한 미성년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 부근에서 거주하며 그 안에서 님펫들을 찾아 눈으로 보고, 혼자 상상하며 욕구를 해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험버트는 운명과도 같이 '돌로레스 헤이즈' 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타고난 님펫. '롤-리-타'. 험버트는 욕구의 발현인지, 꿈같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한 운명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주석이 본편만큼 많은 문학동네판 롤리타는 20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우연히 문학동네 편집자들로부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체를 한글로 옮겨내는 데에 대한 어려움을 충분히 들었더랬고,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넉넉한 마음으로 충분히 기다렸기에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은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번역서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긴 서사시를 엮어내며 비슷한 구조의 문장이 거의 단 한 줄도 없을 정도로 모든 문장들을 공들였다고 한다. 새로운 방식의 묘사, 새로운 방식의 풍자, 수많은 단어들을 비틀고 꼬아 말장난을 하고, 수많은 실존 인물들과 문학작품들을 인용하고 차용하며 풍자하고, 심지어 문장의 구조와 문법까지 마치 레고 조각처럼 부수었다 조합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문학동네판 롤리타는 그런 부분들까지도 한국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는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문학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었고, 심한 평가를 받으며 심지어 법정까지 가서 판금조치(1955)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심에서 그 판결이 뒤집히며 1958년 드디어 뉴욕에서 처음으로 발매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 작품은 충분히 '포르노그래피' 라고 읽힐 만 하다. 만약 누군가 줄거리만 다이제스트로 뽑은 축양본을 낸다면, 엄청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포르노가 맞을 것이다. 사실 작품안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엄청난 문장력과 아이디어들로 점철된 관능적인 은유들이 꽉꽉 들어차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소아성애자의 욕망에 대한 포르노가 아니라, 사회가 용납할 수 없고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커다란 욕망을 안고 태어난 불운한 한 남자의 처절한 서사시이다. 험버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보지만 님펫에 대한 성적인 욕구를 제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나마 그는 분별력 있는 성인이었고, 충분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기에 해볼 수 있는 수단이 많았고, 또 그 모든 수단을 충분히 활용했었다. 그럼에도 불가능했다.

 성적인 욕구와 사랑(에로스)이라는 감정은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다. 성적인 욕구가 식으면 남녀간에 사랑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사랑' 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함께 있고 싶다.' 는 것이라면 성적인 욕구는 그 '함께 있고 싶다' 에 포함되는 것이다. 신이 흙으로 '몸' 을 빚은 순간부터 그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험버트는 하필이면, 운이 없게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그런 욕구를 갖게 된 것이고, 또 하필이면 롤리타를 만나게 된 것이리라. 험버트는 롤리타를 사랑하면서도 온갖 고뇌와 고충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게 된다. 연애란 그런 것 아니던가.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인에 대한 수많은 의심과 오해와 갈등, 서로의 현재에 대한 직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서로가 서로를 알기 전의 과거들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추측들, 거기에 험버트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는 자의식까지 결합되며, 그야말로 어마무지하게 고난스러운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까짓 사랑, 안하고 만다!! 했으면 좋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욕망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험버트는 어쩔 수 없이 이 고생스럽고 고단하고 유난스러운 관계를 1초라도 더 길게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롤리타를 제어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비위를 맞춰 '한 번 해볼' 구석을 찾아 안달복달 하는 모습은 같은 남자로서 안타깝고도 웃긴 모습들이다. 그 와중에도 법의 테두리에 걸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롤리타라는 소녀 역시 쉬이 보아 넘길 꼬맹이가 아니다. 

그녀는 내가 읽어본 모든 소설들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요부妖婦중의 요부이다.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남자를 '갖고 놀' 줄 안다. 아마 롤리타는 험버트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이 아저씨는 나한테 빠졌어' 라고 느꼈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롤리타의 무시무시함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남자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방법은 물론 섹스를 무기로 이용할 줄 알았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빠르게 체득해 낼 수 있었으리라. 호락호락해 보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름답고 강하고 위험한 롤리타.  

 

 결국 이 작품은 욕망에 허우적대는 가련한 한 중년 남자의 고되기 짝이 없는 연애사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어렵고 복잡하다. 어렵고, 복잡하지만 30대 중반을 코앞에 둔 나도 이것 한가지는 확언할 수 있다.

사랑은 가장 폭력적인 감정이다. 위험한 감정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연적과 목숨을 건 대결을 하는 일은 흔하디 흔했다. 수많은 그들은 그녀들을 위해 검을 빼들고 총을 빼들었다. 심장을 바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폭행하는 일은 현대에서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돌로레스 헤이즈 -; 롤 - 리 - 타'

그 이름은 험버트에게 있어 쾌락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여신의 이름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욕망이란 쾌락과 두려움이 공존해야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험버트가 님펫이란 존재에 집착하게 된 최초의 기억에도 쾌락과 두려움은 공존했었으니.  

 

 

 

ps. 롤리타의 엄마 --> 험버트 --> 롤리타  사이의 묘한 일방적인 삼각관계도 꽤나 재미있는 그림이다. 롤리타의 엄마가 험버트에게 보내는 욕망의 시선과, '엄마' 로서 '여자' 로서 발휘하는 자제력과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보내는 욕망의 시선과, '범죄' 로서 발휘하는 자제력과 '남자' 로서 취하는 행동들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대조된다. 무엇보다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욕망에 관한' 남녀의 시각과 정서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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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팔이 소녀 말로센 시리즈 3
다니엘 페낙 지음, 이충민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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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런 작품일거라고는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카피에 나와있듯, 코믹 - 스릴러 - 판타지라길래, 쑥쑥 잘 읽히겠거니, 하며 헬스장에서 고정 싸이클에 앉아 읽을 책으로 찜해둔 터였다. 계획대로 헬스장에 들고가서 고정 싸이클에 앉아 가볍게 펴들었는데, 잠깐 사이에 땀을 뚝뚝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책을 좀 더 읽기 위해 워밍업으로는 꽤 과한 30분동안 페달을 돌렸고, 그 뒤로부터는 헬스장에 갈때마다 고정 싸이클을 꼭 30분 이상씩 하게 되었다.(집에 가지고 가서 읽을 생각은 안했다. 사실 내겐 그 시간이 가장 집중이 잘 되는 시간이라서.) 

 

 끔찍하게 난자당한 샹프롱 교도소의 소장 생티베르의 시체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결혼식날 천국같은 교도소에서 천사같은 신랑을 잃어버린 신부 클라라와 그의 오빠 뱅자맹 말로센, 그리고 그의 연인 쥘리와 그의 사랑스러운 가족들, 그리고 뱅자맹의 일터인 탈리옹 출판사의 여러 사람들이 폭풍같은 연쇄살인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작품은 평이한 소재와 신선한 아이디어들, 평범한 서사와 유려한 묘사들이 모두 적재적소에서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작가인 다니엘 페냑의 문장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우며, 문장마다 위트와 유머가 송알송알 박혀있다. 게다가, 주인공인 뱅자맹 말로센의 가족 구성원들이 참 재미있다. 장르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는 예지력을 지닌 꼬마가 등장해 이야기의 큰 흐름에는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이야기 전체의 정서를 절묘하게 컨트롤 해 내고, 산전수전 다 겪은 종군기자 출신의 연인 쥘리는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미스테리 스릴러는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 작품의 주인공 격인 뱅자맹 말로센을 이야기 초반부터 배재시키는 대담함도 놀랍다.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뱅자맹의 일터인 탈리옹 출판사의 '자보 여왕' 이다. 그녀가 바로 타이틀의 주인공인 '산문팔이 소녀' 이다. 

 

 이 작품은 장르소설의 관점으로만 보아도 대단히 잘 짜여진 수준높은 이야기이다. 여러 복선과 트릭을 심어 독자의 뒷발을 잡아채고, 뒤통수를 후려치고, 코와 입을 막고, 개성강하고 사랑스러운 인물들을 등장시켜 마음을 잡아끌고, 손을 잡아당기고, 반전에 반전으로 독자들을 와락 껴안았다, 확 밀쳐낸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전체를 관통하는 소재인 '상업적인 소설' 에 대한 이야기와 '다른 사람의 탈을 쓰고 살아가는 현대인' 에 대한 주제가 작품 전반을 묵직하게 잡아당기고 있다. 

 

 각종 SNS가 범람하는 요즘에는 '온라인 인격, 사이버 인격' 이라는 것이 발현된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실제 만나보면 얌전하고 조용하지만, 인터넷 공간 안에서는 활발하고 넉살좋기도 하고, 파괴적이고 인신공격적인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을 실제 만나보면 착하고 온순한 사람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나 역시 내가 올리는 글들을 봐도 '이게 내가 썼나?' 싶은 것들이 많다. 지나치게 공격적인 어조로 글을 쓰고, 잰체, 난체하는 글을 쓴다던지, 실제 만나면 결코 못 건넬법한 오글거리는 댓글을 달기도 한다. 평소에 컴플렉스가 많아 조금 내성적이고 소심한 면이 있는 나는 항상 자신감에 차있고, 아는게 많고, 매사에 쿨한 사람들이 좋았고, 닮고 싶어했다. 인터넷 공간 안에서 닉네임의 뒤에 숨어 내가 원하는 나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의 생활 공간에서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 직장 상사 앞에서는 얌전한 부하직원이어야 하고, 한편, 이런 업무 저런 업무들이 잔뜩 몰려들때엔 무능한 사원을 연기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인사평가가 달린 프로젝트 앞에서는 자신만만한 연기를 해야하고, 맘에 드는 소개팅녀 앞에서는 뭔가 있는 든든한 남자를 연기해야 한다. 만원 지하철 안에서 간신히 찾아내 비집고 앉은 의자 위에서는 잠자는 연기를 해야 하기도 하고, 명절 즈음에는 회사일이 잔뜩 쌓인 연기를 해야 하기도 한다. 그런 모든 연기들이 어쩌면 모두 각자의 본질일수도 있다. 

 소설이란, 그런 것 아닐까?

작가라는 한 사람이 익힌 모든 삶의 경험과 교훈들, 보고 듣고 느낀 것들, 순간마다 했던 수많은 연기들, 사회의 통념과 정해진 윤리관 안에서 밀어넣고, 숨겨놓고, 밀봉하고, 상상했던 그 모든 일들.

 

 뱅자맹 말로센은 좋은 오빠이자, 좋은 아빠이자, 좋은 연인이자, 좋은 편집자이자, 좋은 부하직원이자, 좋은 친구였다.

그 모든게 어쩌면 다 다른 탈과 연기였을 수도 있고, 다 뱅자맹이 가지고 있던 본질일 수도 있다. 그런 그가 '소설'을 만드는 일을 했고, 다른 작가인 척 연기를 했으며, 결국 정말로 다른 사람의 장기를 몸 안에 넣기도 했다니. 본질을 찾는 과정을 참으로 멀고도 험하고, 복잡했고, 다난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돌아간 자리는 좋은 아빠이자, 좋은 연인이자, 좋은 편집자이자, 좋은 부하직원이자, 좋은 친구로 연기하는 바로 그 자리였다.   

 

 사람들은 소설을 읽는다.

소설을 읽으며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자기 친구를 발견한다.

자기 과거를 발견하고, 자기 현재를 발견하며, 자기 미래를 발견한다.

인류의 역사를 발견하고, 지구의 역사를 발견하고, 인류의 미래를 발견한다. 

'산문팔이 소녀' 자보여왕이 책에 빠져든 이유는 바로 그것이었다. 그녀는 작품'들' 안에서 한 작가의 삶 전체를 느껴냈다.

 

 사실, 딱히, 내가 꼭 '나' 일 필요는 없어도 상관 없지 않을까 싶다.

연인에게는 영원히 든든하고 사랑스러운 연인이어도 좋고, 자식들에게는 영원히 이 자리에 서 있는 버팀목이어도 좋고, 가끔은 쿨하고 시크한 척 해도 좋고, 소심하게 삐진 척 해도 좋고, 부모님 앞에서는 언제나 재롱떨고 귀염떠는 아이인 척 해도 좋고, 힘들고 지칠땐 병약하고 허약한 척 해도 좋다. 사회가 용인하는 범주를 벗어나거나 도덕적, 법적 기준을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그 어떤 연기를 해도 된다. 

타인과 사회에 맞춰 각기 다른 자신을 연기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간의 본질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가장 '나 다운 것' 이란 것은 연기하고 또 연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최악 중에서도 최악은 최악의 일을 기다리는 것이다."

p.81

 

"사랑이 죽고 나면 인생은 끝없는 고통뿐이야."

 p.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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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셋 파크
폴 오스터 지음, 송은주 옮김 / 열린책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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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년 전, 폴 오스터의 책만 몇만원어치를 사서 쌓아놓고 미친듯이 읽어제꼈던 후로 오랜만에 다시 접한 폴 오스터였다.

[달의 궁전] 을 시작으로 [폐허의 도시],[우연의 음악],[환상의 책],[뉴욕 삼부작] 과 [거대한 괴물]에 [어둠속의 남자] 까지 쉬지 않고 한번에 몰아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폴 오스터의 많은 작품들에서는 화자인 주인공이 마치 고행을 갈구하는 구도자처럼 스스로를 지나칠 정도로 가혹하게 몰아부치는 상황들이 종종 등장한다. 


 '선셋파크' 역시 그와 같이 스스로가 일종의 '징역형' 이라고 명명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마일스 헬러' 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결코 스스로를 용서할 수 없는 크나큰 죄의식속에 빠져있는 마일스는, 어느날 갑자기 주변과 모든 연락을 끊고 잠적하게 된다. 무려 7년이라는 시간동안 가족들의 곁을 떠난 마일스. 마일스는 정들었던 고향과 가족, 좋아하던 대학생활과 전도 유망하던 미래 전체를 거부하며 7년동안 미국 여기저기를 떠돌이처럼 돌아다니다가 플로리다에서 '필라' 라는 고등학생 소녀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그녀와 얽힌 어떤 사건으로 인해, 플로리다를 떠나야 할 상황이 벌어지게 되고, 그나마 오랜기간 쭉 연락을 해오던 고등학교 동창인 '빙 네이선'의 도움으로 고향 뉴욕으로 귀향하게 된다.

 뉴욕 변두리 '선셋파크' 라는 외진 동네에서도 아주 구석에 위치하고 있는 버려진 건물에 불법으로 무단점거하게 된 빙과 그의 친구들 - '엘런', '앨리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합류하게 되는 마일스. 어찌보면 '홈리스' 들이기도 한 20대 후반의 젊은이들이 각자의 사연과 절망과 희망을 안고 삶을 꾸려 나간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마일스 헬러' 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엄청난 죄의식을 지니고 큰 상처를 입은 마일스.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죄의식은 2차 세계대전 당시의 귀환병이나 베트남 전쟁 당시의 파병 군인들과 다를 바 없다. 작품 안에서도 끊임없이 마일스가 겪은 일을 '전쟁' 과 비교하곤 한다. 과거의 죄의식에 묶여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연명' 해나가는 마일스. 마일스가 작품 초반 가지고 있던 직업인 "주택보존 서비스" 가 버려진 집들을 정리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작품 후반, 선셋 파크에서 시간떼우기로 주로 했던 일이 "공동묘지 배회하기" 와, 결국 마지막에는 빙의 직업이었던 "망가진(버려진) 물건들의 병원" 이라는 점도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마일스는 '버려진 것들' 즉 과거에 묶여있는 삶을 살고 있다. 과거에 겪었던 사건의 죄의식에 묶여 있기도 하고, 하는 일들과 갖는 직업들도 하나같이 '과거'이다. 스스로를 계속 과거의 기억에 가두면서 끊임없이 죄의식을 불러 일으키게 만든다.  

 

 이런 절망적인 상태에서 마일스는 '필라' 라는 희망을 만나게 된다.  아직 10대인 필라는 마일스로 하여금 '미래' 를 꿈꾸게 만든다. 앞으로 쌓아갈 수많은 지식들, 그리고 둘이서 키워나갈 커다란 사랑. 미래를 바라봄으로써 마일스는 비로소 죽음에서 벗어나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된다. 그리고 마일스가 삶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해주는 통로는 아이러니하게도 '불법 거주' 중인 선셋파크의 버려진 주택이었다. 

짧은 시간이지만 빙과 엘런, 앨리스와 함께 불법 거주하게 되는 마일스의 상황은 전 세계적인 불경기로 삶의 어려움을 겪고있는 젊은이들에게 하나의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는 이른바 '생협 - 생활협동조합' 을 떠오르게 한다. 사정과 나이가 비슷한 젊은이들이 서로 상호간에 생활을 보조해주는 일종의 공동체를 꾸리는 것이다. 버려진 건물을 불법점유하고 있는 것이긴 하지만, 이 친구들은 서로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고받으며 힘겹지만 착실하게 하루하루를 꾸려내는 이른바 '생활 자체' 를 위한 일종의 공동체 생활을 하게 된다. 

 이에 대비되는 세대가 바로 마일스의 부모인 '모리스'와 '메리-리' 일 것이다. 각자의 위치에서 어느정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지금까지 누려온 것도, 이뤄낸 것들도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게 순탄하고 탄탄하지만은 않다. 사업체는 휘청거리고, 자식들은 통제할 수 없고, 부부관계마저 위태롭기도 하다.    

  

  폴 오스터의 작품들은 읽고 나면 가슴 한켠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든다. 읽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아, 그렇다고 문장이 난해하다거나 서사구조가 복잡한 건 절대 아니다. 폴 오스터의 문장은 매우 매끄럽다. 한편으로는 현학적이기도 하고 지나치게 유려한 면도 있지만, 그의 문장은 언제나 앞뒤가 딱딱 맞아 떨어지고, 이해하기 쉬운 표현들이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다. 엄청나게 잘 읽히는 문장이다. 서사구조 역시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실험적인 시도를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에는 주로 시간의 흐름 순이나 인물의 변화 순으로 읽기 쉬운 서사구조를 사용하고 있다. 한마디로, 그는 '기술' 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작가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주 애용하는 '열린결말' 역시 독자의 취향에 따라 상당히 호불호가 갈릴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굉장히 좋아한다.) 서두에 언급했듯, 스스로를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주인공들 역시 마음이 불편하게 만드는 한 요인이기도 하고. 틀림없이, 그의 작품들은 펴들고 읽다보면 정신없이 빠져들어 순식간에 한 권을 덮게하는 엄청난 몰입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그렇게 다 읽고 책을 덮으면, 아득한 마음속 어딘가에 큼지막한 바위가 떡, 놓여지는 느낌이다. 그 바위에는 아마 '인생 별거 없어.' 라고 새겨져 있을것만 같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소설들이 그렇듯, 읽는 사람의 감정 상태에 따름일 것이다.

폴 오스터의 작품이 갖고있는 큰 장점들 중 하나는 등장인물들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선셋파크' 의 주인공 마일즈도 마찬가지이다. 조금만 덜 고집부려도 좋을텐데, 저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을텐데, 답답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지만, 그가 그런 행동을 하는 요인과 그런 생각을 갖게 된 상황들을 매우 세세하게 풀어내주는 작가의 따스한 시각이 충분히 느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책 속 인물들이 비록 지금은 매우 절망적이고, 하루하루 살아내기가 버겁지만, 그 안에 소소한 행복들이 있고, 즐거운 시간들이 있으며, 언듯언듯 내비쳐지는 행복과 희망이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만든다. 

 

 우리의 삶을 이루고 있는 시간들 중 대부분은 불행하다.

아니, 말을 바꿔야겠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대체로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불행에 관련된 통증, 고통, 괴로움, 슬픔, 미움, 증오, 외로움, 두려움 등의 감정들은 행복감을 주는 기쁨, 쾌락, 환희, 즐거움, 들뜸, 설렘, 애정, 부드러움 같은 감정들보다 훨씬 오랫동안 기억 속에 머물게 된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된다. 좋은 감정들은 쉽게 잊혀지지만 나쁜 감정들은 오래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글쎄, 어쩌면 그런 '나쁜 감정' 들이 '죽음' 과 더 연관이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음을 최대한 피하기 위해 나쁜 감정을 주는 것들은 최대한 조심해야 할테니, 본능적으로 뇌가 나쁜 것들을 오래토록 기억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그렇게 나쁜 감정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삶의 대부분이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마일스는, 더더욱 그럴 수 밖에 없었을 터이고. 

 

어쩌면 마일스가 끊임없이 부모를 거부하는 것은 과거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어기제가 아니었을까?

 

과거에 얽매여 살고 있으면서, 과거를 필사적으로 끊어내기를 갈구하는 욕망이 부모를 거부하는 현상으로 나타났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마일스의 부모는 미래를 향한 디딤돌 역할을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마일스는 결국 그 사실을 깨닫게 될까? 

책의 마지막 단락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듯 하다.

 

" 미래가 없을 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는 것이 가치 있을까 생각해 보았다. 지금부터 어떤 것에도 희망을 갖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이 스쳐 지나가는 순간, 지금 여기 있지만 곧 사라지는 순간,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지금만을 위해 살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P.328

 

그래, 어쩌면, 불안하기 짝이 없는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을 꿈꾸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만을 위해 사는 것이 정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지옥같은 현실을 하루하루 버텨내는 마일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옥같은 현실을 이겨내는 방법은, 주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야. 너를 사랑하고 챙기는 빙과 너와 비슷한 처지에서 현실을 바득바득 살아내고 있는 비슷한 또래의 엘런과 앨리스. 그리고, 너를 지켜보는 아버지. 그들이 바로, 네가 현실을 버티게 해주는 기둥이 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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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더볼츠 Thunderbolts 2 : 우리 안의 천사 시공그래픽노블
워런 엘리스, 마이크 데오타토 주니어 지음, 임태현 옮김 / 시공사(만화) / 2012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마블 유니버스에 가장 큰 사건이었던 '시빌 워(내전)' 은 슈퍼 히어로들에게 엄청나게 큰 후폭풍을 몰고 왔다. 어벤져스의 양대 거목이었던 '아이언 맨' 과 '캡틴 아메리카' 가 '초인등록법안' 을 두고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파벌을 형성해 격렬하게 대립했던 시빌 워는 캡틴 아메리카의 죽음으로 아이언맨이 이끄는 찬성파가 승리한 것처럼 보였지만, 초인등록법안 이라는 법안 상정 자체가 정부는 '히어로' 와 '빌런(슈퍼 파워를 지니고 있는 슈퍼 악당)' 이 동전의 양면과 같다고 정의했다는 증거였다. 닉 퓨리에 이어 초인 국가기관인 'S.H.I.L.D(이하 '쉴드')' 의 국장을 맡게 된 아이언맨은  초인등록법안에 찬성하고, 반대파를 일소하며 신뢰를 쌓는 듯 했지만, 오히려 시빌워를 통해 발생한 사회적 혼란의 책임을 떠안고 쉴드라는 단체 자체가 사실상 기능이 정지되기에 이른다. 
 그 빈 자리를 차지한 것이 바로 슈퍼 빌런 '그린 고블린' 의 이중 인격체인 '노먼 오스본(스파이더맨의 숙적)'이었다. 시빌워 때 캡틴 아메리카와 스파이더맨, 데어 데블 등을 위시한 초인등록법안의 반대파들을 숙청할 때 실제로 빌런들을 활용한 작전이 정부 고위 인사에 의해 시행 되었었, 당시 노먼 오스본은 이 작전을 비교적 잘 통제하며 상당한 신임을 얻었던 터였다. 캡틴 아메리카가 죽고 데어 데블 등이 체포되며 초인 등록법안 반대파는 와해된 것으로 보였으나, 아직 등록하지 않은 히어로들은 너무나 많았고, 그들 중 누가 반대파인지는 알 수 없었다. 초인등록법안의 주체가 되고 남은 반대파들을 숙청해야 할 쉴드가 기능이 정지되어 버린 판에, 노먼 오스본이 '통제'하는 빌런 팀 '썬더볼츠' 가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다. 
  이이제이. 악당으로 영웅들을 때려잡는 상황이었지만 , 정부의 입장에선 법안에 반대하는 자들은 빌런과 다를바 없었다. 실제로 노먼 오스본은 제어하기 힘든 사악하고 강력한 악당들을 비교적 잘 통제하며 등록하지 않은 히어로들을 '죽이지 않고' 합법적으로 체포하는 등 상당한 성과를 이뤄낸다.  하지만, 악당은 어디까지나 악당. 썬더볼츠의 가장 핵심적인 멤버 중 하나였던 '불즈 아이(데어데블의 숙적)'가 심각한 부상을 입고, 노먼 오스본의 또다른 인격체인 그린 고블린이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며 깊은 곳에서부터 어두운 기운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썬더볼츠' 는 완벽하게 악당들이 주인공과 화자로 전면에 등장하는 타이틀이다. 'JOKER' 나 '웃는 남자' 처럼 악당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그래픽 노블들은 종종 봐왔지만, 악당들이 팀을 짜서 등장하는 타이틀은 꽤나 생소했다. 사실 미국 히어로 그래픽 노블들이 큰 인기를 얻는 이유는 강력한 주인공에 버금가는 강력한 악당이다. 배트맨을 '가지고 노는' 조커나 슈퍼맨의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드는 렉스 루터, 아이언맨을 떡실신 시키는 만다린, 캡틴 아메리카를 지속적으로 괴롭히는 레드 스컬 등 슈퍼 히어로를 상회하는 능력을 지닌 악당들이야말로 이야기의 꽃이랄 수 있다. 
 '썬더볼츠' 는 이러한 미국 그래픽 노블들의 생리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스파이더맨의 가장 강력한 숙적인 '노먼 오스본'은 스파이더맨의 세계관 속에서 거대한 과학 테크놀로지 기업인 오스코프사社의 평범한 연구원이었지만, 방사능 실험과 오컬트적인 영향으로 인해 엄청난 파워와 광기를 지닌 '그린 고블린' 이라는 존재가 되고 만다. 그린 고블린이라는 악당이 재미있는 부분은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처럼 평소엔 노먼 오스본의 인격 아래 숨어있다는 점이다. 그린 고블린은 노먼 오스본의 이면에 자리잡고 마음 깊숙히 숨어있는 악마성과 광기를 이용한다. 샘 레이미의 첫번째 스파이더맨 영화 시리즈에서는 '웰렘 데포'가 그러한 양면성을 굉장히 잘 표현해냈다. 노먼 오스본은 처음에는 그린 고블린의 힘을 두려워하고 거부하지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주는 강력함에 유혹을 느끼며 결국 그 스스로도 진정한 악당이 되어가는 인물이다. 아무리 공포스러운 힘이 있더라도 거대기업의 일반 연구원이 회사를 통째로 집어삼키기는 힘들다. 그는 그만큼 술수에도 능한 인물로서 뛰어난 모략과 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한 무기들로 끊임없이 스파이더맨을 괴롭힌다. 심지어 이 인격은 아들에게 유전이 되기도 하는데, 스파이더맨의 본래 모습인 스콧 파커와 노먼 오스본의 아들인 해리 오스본과는 절친으로써, 두 부자 고블린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지경에 몰리기도 한다.
 이런 캐릭터인 노먼 오스본이 썬더볼츠의 수장으로 악당들을 통제할 수 있었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거대 기업의 오너로써 정치계에도 줄이 닿아 있었고, 모략과 최첨단 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악당들의 약점을 잡고 협박하여 통제한다.  

사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악당들은 그 수가 꽤 많아서, 어떤 악당이 어떤 히어로와 관계가 있는지는 쉽게 파악할 수는 없다. 꽤나 많은 수가 등장할 뿐 아니라, 진짜 거물급 악당은 노먼 오스본과 불스아이, 베놈 정도에 불과하다. 이야기의 흐름에 맞춰서도, 그게 맞는 설정이긴 하다. 진짜 강한 거물들은 이런 혼란기에 섣불리 운신했다가 불똥을 얻어맞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노먼 오스본은 그런 틈새를 노려 정치적인 술수를 발휘해 상당한 권한을 획득한 것이다. 

악당들이 왜 악당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악당들은 왜 항상 질 수 밖에 없는지를 악당들 내부에서 상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노먼 오스본이 아슬아슬하게 악당들을 통제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상당히 스릴있고, 노먼 오스본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자기 자신 안의 그린 고블린을 제어하기 위한 노력도 상당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물론 등장하는 악당들의 여러가지 슈퍼 파워들을 감상하는 것도, 히어로들의 슈퍼 파워들을 즐기는 것 만큼 재미있다.  

항상 슈퍼 히어로들이 등장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결국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의 그래픽 노블들에 질리셨다면, 이 작품을 추천한다. 이 사악한 악당은 어떤 방식으로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결국 어떤 결과를 향해 나아가게 될것인지 꽤나 비교해 보는 재미가 있다. 악당은 왜 악당일 수 밖에 없는지, 그리고 악당들의 회합은 결국 어떤 식으로 무너지는지, 직접 감상해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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