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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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자신만의 성性적인 기호嗜好를 가지고 있다. 

단순히 이성에 대한 '매력포인트' 라고 하기엔 보다 농밀하고, 보다 관능적으로 '느끼게 되는' 어딘가, 혹은 무언가 가 있다는 뜻이다. 개인적으로는 바로 이 '성적인 기호' 야말로 인간이란 존재에게 있어 섹스가 단순히 본능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섹스가 단순히 본능에 의한 행위라면 그 대상의 생식력과도 무관한 단순한 '기호' 라는 것이 필요할 리도 없을 것이다. 이 '성적인 기호'는 대부분 '최초의 기억'이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겨난다. 여성의 가슴이나 힙은 인간이라는 종족 자체의 번식과 관련되었기에 종족의 유지를 위해 기본적으로 성적인 매력을 갖고 있다고는 하지만, 손이나 발, 손가락과 발가락, 손톱, 복사뼈, 발목, 아킬레스건 등에 성적인 매력을 느끼는 것은 분명히 개개인의 기호가 발현되는 것이다. 이성의 목젖이나 잘록한 발목, 종아리, 얇은 손목, 가슴털 등에 섹시함을 느낀다면 그것은 성별이 다름으로 인해 '갖고 있지 못한 것'에 대한 욕구가 포함된 것일 수도 있다.  

 '페티시즘Fetishism'  의 개념에 포함시킬 수 있는 이와 같이 조금은 '특별한' 성적 기호는 한때는 일종의 정신질환적인 집착으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현대에는 사람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성욕들 중 하나라는 것이 통설로 적용되고 있다. 인간은 그 대상이 어떤 것이든간에 정도가 심하면 일종의 도착증세를 보이게 된다. 페티시즘 역시 마찬가지이다. 손이나 발, 손톱이나 털, 제복이나 스타킹, 레깅스, 타이즈, 속옷 정도라면 그나마 평범한 축이고, 때로 페티시즘은 특정 체위나 행위(목을 조른다거나 묶는 등 사디즘이나 마조히즘과 결합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는 대변이나 소변이 그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게 무엇이든, 정도가 어떻든간에, 이러한 성적인 기호가 사회가 용납하는 정도를  벗어나는 것들이 대상이 되면 당사자는 심각한 위기에 처하게 된다. 성적인 욕구란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지만, 파트너와 공유되어야 하고, 결과적으로는 사회의 최소 구성원인 가족을 만드는 가장 상징적인 소통수단인 섹스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성적인 욕구에 심각하게 도착증세를 보이게 된다면 당연히 그 결과는 폭행이나 살인과 같은 강력 범죄로 이어지기 때문에 개인적인 부분인 동시에, 사회적인 부분일 수 밖에 없다.    

 

 험버트는 '님펫' 이라는 존재를 갈구한다. 님펫이 아니면 성적인 욕구는 해갈되지 않는다.  

험버트가 님펫이라고 명명한 이 존재는 간단히 말해, 육체는 미성년이지만 정신은 성인인 독특한 기운을 뿜어내는 '여자아이'들을 일컫는다. 험버트가 갖고있는 이 님펫에 대한 일종의 페티시즘은 어렸을때의 경험으로부터 기인한다. 어린시절 겪었던 첫사랑의 감정과 첫 성경험의 쾌락이 합쳐진 결과로써 그 당시 사랑했던 소녀의 나이, 피부, 헤어컬러, 미묘한 뉘앙스, 분위기등이 깊이 각인된 것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부분은 험버트에게 각인된 성적인 대상이 반드시 '미성년' 이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미성년자는 대부분의 문명사회에서 가장 보호받아야 할 대상 1순위에 꼽히는 계층이다.  당연하게도, 인간은 필멸의 존재이기때문에 인류라는 종족의 생물학적인 지상과제는 '다음세대를 키워내는 것' 이기 때문이다. 미성년자에 대한 범죄는 그게 무엇이든 간에 너댓배로 강력한 처벌을 받게 된다. 특히 이 작품의 배경인 미국에서는 그 수위가 훨씬 높다. 특히 미성년자와 갖는 성관계는 무조건 처벌대상이 된다. 험버트는 자신의 이러한 성적인 '각인' 의 심각성을 알아채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하고, 성인 여성과 정상적인 관계를 갖기 위해 노력하며 심지어 결혼을 하기도 하지만, 이처럼 본능적인 욕구와 연결된 심리적 각인은 쉬이 없앨 수 없었다. 험버트는 가능한 미성년자들이 많이 모이는 곳 부근에서 거주하며 그 안에서 님펫들을 찾아 눈으로 보고, 혼자 상상하며 욕구를 해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험버트는 운명과도 같이 '돌로레스 헤이즈' 라는 소녀를 만나게 된다. 

타고난 님펫. '롤-리-타'. 험버트는 욕구의 발현인지, 꿈같은 사랑인지 알 수 없는 열병에 시달리며 아슬아슬한 운명의 외나무다리를 건너기 시작한다. 

 

 주석이 본편만큼 많은 문학동네판 롤리타는 20대 초반에 읽었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충족감을 안겨주었다. 

우연히 문학동네 편집자들로부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문체를 한글로 옮겨내는 데에 대한 어려움을 충분히 들었더랬고, 커뮤니티를 통해 여러 정보들을 얻을 수 있었기에 넉넉한 마음으로 충분히 기다렸기에 엄청나게 부풀어 올랐던 기대감은 완벽하게 충족시켜주는 훌륭한 번역서였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이 긴 서사시를 엮어내며 비슷한 구조의 문장이 거의 단 한 줄도 없을 정도로 모든 문장들을 공들였다고 한다. 새로운 방식의 묘사, 새로운 방식의 풍자, 수많은 단어들을 비틀고 꼬아 말장난을 하고, 수많은 실존 인물들과 문학작품들을 인용하고 차용하며 풍자하고, 심지어 문장의 구조와 문법까지 마치 레고 조각처럼 부수었다 조합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문학동네판 롤리타는 그런 부분들까지도 한국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갖은 애를 다 썼다는 점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이 작품은 출간되었을 당시에도 문학계 전체가 큰 충격을 받았었고, 심한 평가를 받으며 심지어 법정까지 가서 판금조치(1955)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2심에서 그 판결이 뒤집히며 1958년 드디어 뉴욕에서 처음으로 발매되어 엄청난 베스트셀러가 된다. 전체적인 내용을 보면 이 작품은 충분히 '포르노그래피' 라고 읽힐 만 하다. 만약 누군가 줄거리만 다이제스트로 뽑은 축양본을 낸다면, 엄청나게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포르노가 맞을 것이다. 사실 작품안에는 지나치게 노골적인 성행위에 대한 묘사는 없지만, 엄청난 문장력과 아이디어들로 점철된 관능적인 은유들이 꽉꽉 들어차있다. 

 그렇지만, 이 작품은 단순히 소아성애자의 욕망에 대한 포르노가 아니라, 사회가 용납할 수 없고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커다란 욕망을 안고 태어난 불운한 한 남자의 처절한 서사시이다. 험버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 기울여보지만 님펫에 대한 성적인 욕구를 제어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나마 그는 분별력 있는 성인이었고, 충분한 교육을 받은 엘리트였기에 해볼 수 있는 수단이 많았고, 또 그 모든 수단을 충분히 활용했었다. 그럼에도 불가능했다.

 성적인 욕구와 사랑(에로스)이라는 감정은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다. 성적인 욕구가 식으면 남녀간에 사랑은 더이상 유지될 수 없게 된다. '사랑' 이 '다른 누구도 아닌 너와 함께 있고 싶다.' 는 것이라면 성적인 욕구는 그 '함께 있고 싶다' 에 포함되는 것이다. 신이 흙으로 '몸' 을 빚은 순간부터 그것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다. 

 험버트는 하필이면, 운이 없게 '사회가 용납할 수 없는' 미성년자에게 그런 욕구를 갖게 된 것이고, 또 하필이면 롤리타를 만나게 된 것이리라. 험버트는 롤리타를 사랑하면서도 온갖 고뇌와 고충으로 가득 찬 생활을 하게 된다. 연애란 그런 것 아니던가. 마냥 행복하고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연인에 대한 수많은 의심과 오해와 갈등, 서로의 현재에 대한 직시와 미래에 대한 고민, 서로가 서로를 알기 전의 과거들에 대한 수많은 의문과 추측들, 거기에 험버트는 실제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 는 자의식까지 결합되며, 그야말로 어마무지하게 고난스러운 연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이까짓 사랑, 안하고 만다!! 했으면 좋겠지만, 사랑이라는 감정, 욕망이라는 감정은 그렇게 쉽게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험버트는 어쩔 수 없이 이 고생스럽고 고단하고 유난스러운 관계를 1초라도 더 길게 유지하고 싶을 뿐이다. 롤리타를 제어하기 위해 갖은 고생을 다 하고, 비위를 맞춰 '한 번 해볼' 구석을 찾아 안달복달 하는 모습은 같은 남자로서 안타깝고도 웃긴 모습들이다. 그 와중에도 법의 테두리에 걸치지 않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은 전형적인 범죄자의 모습이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롤리타라는 소녀 역시 쉬이 보아 넘길 꼬맹이가 아니다. 

그녀는 내가 읽어본 모든 소설들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요부妖婦중의 요부이다. 무엇보다 사랑에 빠진 남자를 '갖고 놀' 줄 안다. 아마 롤리타는 험버트를 처음 만난 그 순간, '이 아저씨는 나한테 빠졌어' 라고 느꼈으리라.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을 다시 읽어보면 롤리타의 무시무시함을 더욱 절절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이미 남자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방법은 물론 섹스를 무기로 이용할 줄 알았다. 몰랐다고 하더라도, 굉장히 빠르게 체득해 낼 수 있었으리라. 호락호락해 보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아름답고 강하고 위험한 롤리타.  

 

 결국 이 작품은 욕망에 허우적대는 가련한 한 중년 남자의 고되기 짝이 없는 연애사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어렵고 복잡하다. 어렵고, 복잡하지만 30대 중반을 코앞에 둔 나도 이것 한가지는 확언할 수 있다.

사랑은 가장 폭력적인 감정이다. 위험한 감정이다. 중세시대만 해도, 사랑하는 연인을 위해 연적과 목숨을 건 대결을 하는 일은 흔하디 흔했다. 수많은 그들은 그녀들을 위해 검을 빼들고 총을 빼들었다. 심장을 바친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고, 폭행하는 일은 현대에서도 흔치 않게 볼 수 있다. 

'돌로레스 헤이즈 -; 롤 - 리 - 타'

그 이름은 험버트에게 있어 쾌락과 두려움을 동시에 주는 여신의 이름이었다.

그렇다. 어쩌면 욕망이란 쾌락과 두려움이 공존해야만 가능한 것일지도 모른다.

험버트가 님펫이란 존재에 집착하게 된 최초의 기억에도 쾌락과 두려움은 공존했었으니.  

 

 

 

ps. 롤리타의 엄마 --> 험버트 --> 롤리타  사이의 묘한 일방적인 삼각관계도 꽤나 재미있는 그림이다. 롤리타의 엄마가 험버트에게 보내는 욕망의 시선과, '엄마' 로서 '여자' 로서 발휘하는 자제력과 험버트가 롤리타에게 보내는 욕망의 시선과, '범죄' 로서 발휘하는 자제력과 '남자' 로서 취하는 행동들이 묘하게 비슷하면서도 대조된다. 무엇보다 작가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욕망에 관한' 남녀의 시각과 정서에 대한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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