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서유요원전 대당편 10 만화 서유요원전
모로호시 다이지로 지음 / 애니북스 / 2013년 4월
평점 :
품절


우리에게 서유기로 잘 알려져있는  [대당삼장취경시화] 를 각색한 '거장'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서유요원전 - 대당편] 이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개인적으로 시리즈물의 경우 완결편이 나오지 않으면 리뷰를 잘 안 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2011년에 첫권의 리뷰를 한 적이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발매 초기부터 상당한 기대작이었고, 햇수로 3년동안 꾸준하게 구입해서 감상한 몇 안되는 콜렉션이기도 하다. 사실 5~7권쯤엔 지나치게 스토리를 질질 끄는 듯한 면이 있어서 지루한 면이 없지 않았지만, 10권까지 다 읽고 나니 대당편의 매조지를 위한 호흡 늘리기였음을 알 수 있었다. 즉, 작가가 10권이라는 방대한 스토리 안에서 자유롭게 독자들의 호흡과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작품의 강약을 조절하기 위한 것이었고, 다행히 작품의 후반에는 한국판 발매 속도도 빨라서 지루함은 쉽게 사라졌다. 솔직히 8권쯤에선 '아 이제 그만 읽을까.' 싶기도 했지만, 10권을 읽은 지금은  "서역편 언제나오나요???" 의 심정이다.

 

 [서유요원전]의 주제의식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 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 악마인가, 천사인가?"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한 면과 악한 면이 공존한다. 수많은 철인哲人 들은 예로부터 '인간은 나면서부터 선하다' 와 '인간은 나면서부터 악하다' , 혹은 '인간은 백짓장과 같고 자라면서 주변환경에 의해 선과 악이 변화한다' 등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의견을 활발히 나누었다. 그 모든 의견은 어쨌든 인간에게 선한면과 악한면이 모두 보여지기에 나온 것이다. 

 갓난 아이 였던 손오공이 화과산에서 원숭이들에게 납치당했다가 인연을 얻어 산골 작은 마을에서 성장하고, 가족과 마을 사람들의 끔찍한 참변을 목도했다가, 결국은 '무지기' 라는 신에게 선택되어 겪게되는 이 대서사는 실제 역사와 전설을 넘나들며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서유요원전]의 주제의식이 명징하게 드러나는 장면. 부처안에 사마...사마 안에 부처...

 

 

 

 

 이 거대한 대서사극을 보는 내내 존 버니언의 [천로역정]이 떠오르기도 했고, 단테의 [신곡]이 떠오르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르 클레지오의 [황금 물고기]도 떠올랐다. [서유요원전]에는 오공이 걷는 지옥도圖와 같은 당시의 시대상이 매우 잘 표현되어 있었으며, 그런 시대에 태어나 거스를 수 없는 선택을 하고, 악귀같은 형상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인간들이 등장한다. 그 길고 긴 여정은 끊임없는 시험이 반복되는 미답의 공간을 헤매이는 구원을 향한 여정과도 같고, 빨리 끝나기만을 소망하는 지옥의 여정과도 같으며, 영혼의 고향을 찾아 헤매이는 여정과도 같았다.

 [서유요원전]은 주인공 손오공이 자신의 내면에 또아리를 틀고 끊임없이 지옥도道로 향하는 '제천대성' 이자 '무지기' 의 유혹과 맞서 싸우는 이야기이자, 탐욕스럽고 사악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엾고,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사람' 들과 얽히고 설키는 은원의 이야기이다. 손오공이 끊임없이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장면들도 재미있지만, 각기 사연을 가지고 역사의 흐름에 의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을 반복한 조연들의 이야기도 대단히 매력적이다. 

 손오공을 제천대성에게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던 제천대성의 수족과도 같았던 '통비공'을 비롯, 손오공과 살을 맞대며 정情을 알려주었던 '용아녀', 복수와 집념의 화신인 '금각', '은각' 과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애증의 관계였던 '홍해아' 와 '황포'. 이 큰 이야기에서 손오공의 여정과 대척점을 이루며 균형을 맞춰가는 '혜안 행자' 와 손오공과 이어질 듯,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묘한 인연의 '현장' 은 물론, 중간 중간 등장하는 '황풍대왕' 과 '나타태자', '칠선고' 에 '팔계' 와 '손이랑', '일승금'. 그리고 [서역편] 과의 연결점이 되어줄 '나찰녀' 까지. 모두가 인간의 오욕칠정을 대변하는 듯 또렷한 욕망을 가지고 손오공과 은원을 쌓는다. 

 그렇다. 손오공이 받는 거대한 시험은 결국 언제나 '사람들' 이었다. 자아와의 싸움이자, 타자와의 싸움.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가늠할 수 없다. 누구를 이겨야 진짜 이긴 것인지도 알 수 없다. 남을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을 이겨야 하고, 자신을 이기기 위해서는 남을 이겨야 한다. 손오공이 맞닥뜨린 지옥같은 여정에서, 머리에 씌워진 관과 그 무엇보다 강한 봉은 굴레이자 방향타였다. 손오공에게 그것들이 없었다면, 그는 현장을 만날 수도 없었고, 그 뒤를 따라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고통과 해소는 같은 곳에 있다. 마치 사마와 부처가 함께 있는 것 처럼, 굴레와 키도 같은 곳에 있었고, 고통과 해소도 같은 곳에 있었으며, 지옥과 극락은 물론 삶과 죽음도 같은 곳에 있었다. 깨달음을 향해 천축으로 향하는 현장과, 구원을 위해 현장의 발자욱을 쫓는 오공. 동행할 듯 동행할 듯 동행하지 못하는 오공과 현장의 엇갈리는 인연은 마치 어긋나는 연인들을 보는 것 처럼 애틋하기까지 하다.  

 

 또한 [서유요원전]의 세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강한' 여성 캐릭터들이다. 총 열권의 '대당편' 중 한권에 수록되어 있던 저자와의 대담에서 모로호시 다이지로가 직접 밝히기도 했는데, 정말 강한, 그래서 매우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한다. 거의 모든 에피소드에 중요한 역할을 맡는 여성들이 등장하는데, 작품의 서두를 장식하는 '용아녀-용화' 와 말미를 장식하는 '나찰녀' 는 치명적인 매력의 소유자들이다. 용아녀가 보다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한다면, 나찰녀는 제천대성의 능력을 쓰는 손오공마저 압도할만한 강력한 힘을 가진 중성적인 마성을 자랑한다. 그 뿐 아니라, 여인들의 모성애를 다룬 '나타 태자' 와 그 어미인 '지용부인' 그리고 나타태자를 돌보는 요괴 '음도녀' 의 에피소드, '연리지'를 모티프로 한 듯 보이는 '부상부인'과 '동군' 의 애틋한 사연도 빼놓을 수 없고, 영원한 순정의 테마인 '보디가드' - 충직한 '석방상' 의 '백화수' 를 향한 순애보도 인상적이다. 사랑愛이 증오憎로 변화하는 과정을 그려줄 '일승금' 의 애완동물(?) 사랑도 빼먹을 수는 없는 일이다. 


 

 


 

△ 역시 마지막에야 엄청난 떡밥을 던져주는 나찰녀. 

누구지?? 누가 등장하는거지??(혹시 베지터가 등장하는건 아니겠지?ㅋㅋ)

 

 [대당편] 의 완결편은, 역시나 대가의 '대단원' 답게 한 권 만으로도 대단히 완성도 높은 한 단원의 마무리를 감상할 수 있다. 10권에 달하는 시간동안 은혜로, 또는 원수로 쌓여온 인연들이 차근차근 정리된다. 비록 1부격이긴 하지만, 최근엔 이렇듯 1권부터 10권을 관통하는 뚜렷한 주제의식, 통일성 있는 스토리 텔링, 일관성 있게 완성도 높은 작화로 완결되는 장편 명작은 쉽게 만나보기 힘들다. 성장해가는 손오공의 외모부터 대사와 행동까지 디테일하게 지켜볼 수 있다.  

 
 일본 망가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천재적인 몇명의 작가들이 시대별로 명멸하며 '왕국' 의 위세를 이어왔다. 우리에게도 매우 잘 알려진 망가의 신 '데츠카 오사무' 에서부터 '드래곤 볼'의 아버지 '토리야마 아키라' 에 '슬램덩크' 와 '배가본드' 의 '이노우에 다케히코' 까지. 그리고 그 사이사이 마다 그에 뒤지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뛰어난 작가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서유요원전] 의 모로호시 다이지로 역시 그 천재성에 비해 국내엔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 개성 강한 그림체와 일본의 전통적인 색채가 짙은 매니악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었기 때문인데, 다행히 [서유요원전] 을 필두로 다양한 출판사에서 여러 작품들이 출간되었다. 그 중에서도 [서유요원전] 은 가장 긴 장편으로, 단연 모로호시 다이지로의 대가다운 스토리 텔링을 유감없이 맛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일종의 '자아 찾기 여행' 이자 '진리를 추구하는 여행' 이며 '영웅 서사물' 이기도 한 현장과 손오공의 여정은 이제부터 [서역편] 을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게 될 터다. 무지기의 끊임없는 유혹 속에서도 인간으로서의 본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쓰고, 또 애쓰는 손오공. 그 여정에 끝엔 무엇이 있으며, 그 곳에서 손오공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는 - '조금'은 뻔하고도 추측 가능한 결말을 향해 나아갈 테지만, 이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그것이 아니다. 그 여정 '중' 에, 손오공은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이야기들을 쌓아갈지. 그리고 그렇게 얽히고 설키는 인연들 속에서 손오공은 어떤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역시 장편은 쌓아놓고 읽는게 제맛. 1권은 장기 대여중.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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