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 52) 배트맨 4 : 제로 이어 - 비밀의 도시 세미콜론 배트맨 시리즈
스콧 스나이더 외 지음, 이규원 옮김 / 세미콜론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이제는 미국 그래픽 노블의 제작 시스템에 관해 많이 알려졌지만, 사실 미국 그래픽 노블은 마블이고 DC고, 그야말로 가지가 엄청나게 많은 나무와도 같았다. 회사가 저작권을 갖고 있는 캐릭터가 나무 줄기라면 각각의 스토리들은 모두 곁가지들. 줄기를 따라 위로 쭉 뻗어가는 스토리 없이 수많은 탄생, 모험, 죽음 이야기들이 수백, 수천명의 작가들을 통해 백여년 가까이 태어났다.

20세기에 들어서며 지금까지 축적된 이야기들을 정리할 필요를 느낀 회사와 소속 작가들은 일종의 다차원 평행우주론을 도입해 캐릭터별 탄생설화를 모으고 비슷한 성격의 이슈들을 모아 지구를 나누었다. 예를들어, 이렇게 탄생한 배트맨은 12차원의 지구 배트맨, 저렇게 탄생한 배트맨은 15차원의 지구 배트맨...등등 그야말로 억지 짜맞추기였지만, 당시에는 이러한 컨셉의 작품들이 영화와 드라마등에서 유행처럼 쏟아질 때라 외려 트렌디한 좋은 선택이기도 했다. 이런 컨셉은 마블과 DC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차원간의 충돌과 여러 차원에서 불러 모아놓은 캐릭터들이 총출동하는 초대형 크로스 오버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했는데, 특히 스파이더맨 TVA판에서는 각 차원의 여러 모습의 스파이디들이 모여 힘을 합치는 클라이맥스 에피소드는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마블의 경우엔 영화의 흥행에 힘입어 다차원의 마블 유니버스를 더욱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원칙적으로 영화의 세계관과 만화의 세계관은 독자적인 노선을 걸었지만, '영화의 세계관이 마블 유니버스의 지구0000번의 어벤저스와 같다~' 는 식으로 발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된 것이다. 실제로 마블에서는 영화의 성공 이후 영화의 세계관에 부합하는 이슈를 발간하기도 했고, 의도적으로 사뮤엘 잭슨을 연상시키는 닉 퓨리가 등장하는 작품을 이슈를 출간하기도했다.

 반면 DC의 경우엔 2011년을 기점으로 다차원 평행우주를 과감하게 접어버린다.

[플래시 포인트]라는 상징적인 초대형 프로젝트를 통해 그동안 차원 이동의 아이콘이었던 '플래시'를 내세워 그린랜턴, 배트맨 등 DC의 간판 캐릭터들을 리부트시킨 것이다. (참고로 [플래시 포인트]의 플래시 스토리는 새로 제작된 미드 [플래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후 DC의 이슈들은 표지에 죄다 'NEW52' 라는 작은 마크를 하나 달고 출간되기 시작했고, 간판 캐릭터 이슈들이 새로운 분위기에 새로운 이야기로 재정립되기 시작했다. 

 그 중 '배트맨' 은 특히 큰 호응을 받았는데, 배트맨의 뉴52 첫 작품인 '올빼미 법정'이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메인 스토리 작가 스콧 스나이더와 메인 펜슬러 그렉 카풀로가 페어를 이뤘던 '올빼미 법정' 은 후속 프로젝트인 '올빼미 도시' 까지 오랜 팬들의 큰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 현재까지도 배트맨 이슈를 도맡고 있다.


 [배트맨: 제로이어.비밀의 도시](이하[비밀의 도시])는 국내에서도 미국과 같은 순서로 발간되고 있는 뉴52의 배트맨 시리즈이다. 

'제로 이어' 답게 배트맨의 탄생기를 다루고 있다. 일전에는 '이어 원' 등의 부제를 통해 탄생기를 다루곤 했는데, 비슷한 방식으로 부제를 붙여 '탄생기' 임을 알려주고 있다. 이전의 작품들, [올빼미 법정][올빼미 도시][가족의 죽음] 을 통해 완성된 배트맨의 모습과 강력한 적, 새로운 빌런 '탈론' 과 영원한 숙적 '조커' 를 통해 새로운 프로젝트가 안정궤도에 오르자 캐릭터의 역사를 재정립하는 프로젝트로 들어간 것이다. 

 [비밀의 도시]는 갱단이 장악하고 있는 고담시 외곽지역에서 시작된다.

당시 고담시는 코블팟의 갱단이 장악하고 있었지만, '레드후드 갱단'이 엄청난 속도로 세를 불려가고 있었다. 한편 도시의 재계를 주름 잡고 있는 웨인 엔터프라이즈는 브루스 웨인의 삼촌인 필립이 경영을 맡고 있었다. 꽤나 오랫동안 행방불명이었던 브루스 웨인은 비밀리에 고담시에 돌아와 웨인 저택의 지하에서 집사 알프레드와 함께 갱들로부터 도시를 되찾을 계획을 세운다. 


[비밀의 도시]에서는 배트맨의 시작점은 물론 배트맨 팬들이라면 잘 알만한 몇몇숙적들의 탄생기도 함께 그리고 있다. 

바로 코블팟과 화학 약품 속에 빠지는 레드후드 갱단의 보스, 그리고 니그마이다. 

코블팟은 바로 펭귄이고, 화학 약품 속에 빠지는 레드후드 갱단의 보스는 조커, 니그마는 리들러이다.


뉴52의 새로운 배트맨 시리즈가 사랑받은 이유는 다름아닌 안쓰러울 정도로 고통받는 배트맨 덕분이기도 하다.

[올빼미 법정] 부터 배트맨은 시종일관 터지고 떨어지고 부러지고 찢어지고 난리도 아니다. 그야말로 탈론에게 떡이 되게 얻어맞고, 죽음의 위기에서 몇번이나 간신히 살아나고, 조커에게는 정신적으로 농락당하기도 한다. [비밀의 도시] 에서는 수트를 입지 않은 상태에서도 철퇴로 얻어맞고, 총에 맞고, 불바다가 된 저택에서 간신히 도망쳐 나오고...처음 등장한 이유로 좀처럼 멀쩡한 얼굴을 볼 수가 없다.

배트맨의 진정한 매력이 바로 이것이었다.

평범한 인간의 몸으로 두뇌와 재력을 이용해 사건들은 힘겹게 힘겹게, 온 몸으로 부딪혀 이겨 나가는 것. 

'엉겁결에' 배트맨의 스토리를 담당했던 스콧 스나이더는 그야말로 놀란의 배트맨 못지 않게 리얼하고 어두운 배트맨을 훌륭하게 그려냈다. 그렉 카풀로의 그림체 역시 이 시리즈의 백미. 그동안 짐 리의 배트맨으로 섹시하게 인식되었던 배트맨은 그렉 카풀로의 투박하고 리얼한 배트맨으로 잘 교체된 듯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타워즈 : 제국의 와해 시공그래픽노블
그렉 루카 지음, 앙헬 언주에타 외 그림,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스타워즈 에피소드6: 제다이의 귀환' 의 클라이맥스인 엔도 전투가 한창이던 시기. 

제국의 황제 펠퍼틴과 다스베이더는 차세대 포스 센서빌러티인 루크 스카이워커를 데스 스타로 끌어들이고 그의 눈 앞에서 반란군들을 무참히 무너뜨리려 한다. 동료들이 제국군의 공격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루크의 마음속에 포스의 어두운면이 드러나면 그것을 이용하려는 심산이었다.  

 이야기는 바로 그 시점, 우주에서 속절없이 공격당하던 반란군 전투 비행단의 샤라 베이 소위의 시점에서 펼쳐진다. 

샤라는 제국군의 맹공을 무사히 버텨내고 데스 스타와 펠퍼틴 황제가 최후를 맞는 순간을 함께 한다.  

하지만, 황제가 죽었다고 은하계 전체를 지배하던 제국이 끝장난 것은 아니었다. 이후로 샤라 소위는 한 솔로가 이끄는 특별 부대에 들어가 제국의 잔당 퇴치에 나서는데, 레아 공주와 나부 행성을 방문하기도 하고, 새로운 세대의 제다이 루크 스카이워커와 비밀 임무를 함께 수행하기도 한다. 


 말미에 실려있는 레아공주 이슈를 빼면 전반적으로 엄청난 수준의 작화를 자랑하고, 무엇보다 스타워즈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특히 '스타워즈 에피소드7: 깨어난 포스' 와 연관이 있어 보이는 이슈가 등장한다. 

영화를 본 많은 팬들이 레이의 태생은 어느정도 짐작하는데, 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레이는 일찌감치 포스 센서빌러티로써 루크에게 포스 수련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는데, 포는 평범한 파일럿인데 갑자기 광선검을 엄청 잘 사용하게 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드러냈다.


해서 많은 해외 팬들이 바로 이 작품 '스타워즈:제국의 와해' 에 등장한 이슈 한가지를 핀의 숨겨진 과거와 연관시켜 해석하고 있다. 

제국의 와해의 주인공인 샤라와 남편 케스는 짙은 피부색으로 나오고, 결정적으로 루크 스카이워커와 수행했던 마지막 임무에서 제국군이 탈취했던 '포스가 깃들어있는 나무'를 되찾게 된다. 이 나무는 코러선트의 제다이 사원에 있던 것으로, 루크 스카이워커는 새로운 제다이 사원을 세우기 위해 이 나무가 필요했던 것이다. 루크 스카이워커는 샤라와 함께 무사히 포스의 나무를 되찾게 되는데, 제국군이 탈취한 이 나무가 한그루가 아니라 두그루였다. 루크는 한 그루는 자신이 가져가고, 다른 한 그루는 전역을 생각하고 있는 샤라와 케스 부부에게 선물한다. 

 

 '만약 포가 샤라와 케스 부부 사이의 아들이라면, 포스의 나무 곁에서 태어나 자랐을 것이고, 선천적으로 포스를 다룰 수 있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여튼, 스타워즈의 오랜 팬으로 이 시리즈가 다시 시작되며 정식 세계관으로 인정받은 그래픽 노블 이슈들이 국내에까지 출간된 것은 정말 기쁜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유명한 테드 창을 드디어 만나봤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바빌론의 탑] 부터 그야말로 쑤욱 빨려들어갔다.

무엇보다 원시적인 기술로 거대한 탑을 쌓아가는 공정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작은 세계에 관한 통찰력이 돋보였다. 

현실인듯 아닌듯, 오묘한 세계관도 맘에 들었고,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주제의식도 새롭고 신선했다.

대부분의 SF소설들은 인류의 미래에 관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으로 대표되는 인류 진보의 정점에 관한 축이 한 편을 담당한다. 

인류의 '진보' 라는 개념은 기독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운명에 '시작' 과 '끝' 이라는 직선의 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끝' 에 다다를 때 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신에 가까워질 ;진보할 것이라는 신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반면 힌두교와 불교의 개념에 진보는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행을 반복하며 동식물을 넘나드는 광대한 윤회의 고리에 갇혀있고, 인간의 삶이란 단순히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행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 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류 공통의 과제라기보다 개개인의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때문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명백해 보이는 이야기속에서 주인공이 결국 깨닫게 되는 진리는 지극히 동양적이어서 많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두번째 [이해] 는 21세기 들어 영화와 만화로 가장 많이 다뤄진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현재의 과학 세계관 안에서 인류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려내고 있다.

[바빌론의 탑] 에서 인간들이 신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가 연대하며 바닥에서부터 돌을 한장씩 쌓아 올라가는 것이라면, [이해]에서는 화학 약물을 통해 뇌의 기능을 급속도로 높여내는 방법으로 다루었다. 

한편의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초장부터 종장까지 쉴 틈 없이 거침없이 내달린다. 

영화 [루시]와 [트렌센던스]가 떠올랐다. 약물을 통해 인간의 신체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소재는 넘쳐났지만, 뇌의 처리속도를 통해 감각으로 와닿는 정보들을 모두 종합해 순식간에 계산해내고, 귀에 들리는 소리, 시각정보의 패턴, 호르몬의 분비 등을 통해 상황을 조립하고, 결국 그걸 이용해 누군가와 대결까지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숨막힐 정도였다.

물론, 펼쳐내는 지식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어떤 부분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 작품인 [영으로 나누면] 은 그 이해 되지 않음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학의 결정적 오류를 깨달은 수학자의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아주아주 어렸을 적에 수학을 포기했던 한 사람이지만, 수학의 가치와 논리적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작품의 주인공이 발견한 수학의 오류와, 그것을 설명하는 내용은 도통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명징하게 와닿았다. 

"아직도 모르겠어? 난 방금 수학 대부분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했어. 이젠 그것들 모두가 무의미해진 거야." 

수학자들은 수학이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숫자와 등식으로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세계.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숫자로 치환하고 풀이한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정말로 진리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여성 수학자 레네와, 그 수학자보다 재능은 떨어지지만 동료 수학자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 칼의 이야기이다. 수학의 중대한 오류를 이해하고 증명한 레네는 조금씩 히스테릭해져가고 칼은 그와 함께 자신의 결혼생활도 조금씩 파괴되어 감을 느낀다. 

이론 세계의 파괴와 현실 세계의 파괴가 서서히 닿아가는 과정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도통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의 수학에 대한 사랑과 깊이에 대해 잘 느낄 수 있었다.


네번째 작품은 표제작이자, 드디어 테드 창에게 네뷸러 프라이즈를 안겨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다. 

이 작품은 아주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내려왔는데, 중력과 대기를 포함,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은 물론 신체의 크기와 특징, 구조 자체가 다르다. 

바디랭귀지도 통하지 않고, 아무리 관찰해도 서로의 습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과연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해낼 것인가? 

뭔가 문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뭔가 비교할 사물이 있긴 있는데, 그 사물이 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거다. 외계인들이 그 사물로 뭔가 하긴 하는데, 뭘 하는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대뜸 뭔가 때려부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호전적인 종족은 아닌 것 같고, 대화를 하고 싶어하긴 하는 듯 한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각지에서 뛰어난 언어학자와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동원되어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개설한다. 

그것은, 외계인들이 개설해 준 것이긴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을 '헵타포드' 라고 칭하며 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들이 과연 인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언젠가 공격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우주여행을 위한 어마어마한 기술을 사사해 줄 것인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이 작품에서 역시 수학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나마 이 작품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작품이었어서 전작보다는 술술 이해됐다. 특히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에 관한 부분은 언듯 한글과 비슷한 개념이 등장해서 외려 이해하기 쉬웠다. 이 작품은 단편만 발표했던 테드 창이 6년만에 낸 작품이라던데, 그동안 문자에 관한 자료를 얼마나 많이 수집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었다. 

학술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도 남녀의 묘한 케미스트리나 감정, 정서적인 묘사들이 양념처럼 얼마나 잘 들어가 있는지, 이야기꾼의 면모가 느껴졌다. 

또한, 새삼 언어와 문장이 인간의 사물인식에 관한 사고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섯번째 작품 역시 문자, 언어에 관련된 작품이다.

[일흔 두 글자] 는 과학 소설이라기보다 판타지 소설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골렘' 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진흙인형에 특별한 문자를 적어 넣으면 살아 움직인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는데,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언령言聆마법을 떠오르게 했다. 그와 함께 진흙 인형이 일종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골렘을 움직이는 키워드가 마치 프로그램 코딩으로 읽히기도 했다. 골렘을 디자인하는 과학자들과 골렘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카발리스트의 대립이 서스펜스를 불어 넣으며 결국 생명의 근원이라는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줄기의 이야기 전체를 긴장감 넘치게 이끌어갔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독자들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텔링 센스가 무척이나 돋보였다. 이 세계관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을 정도로 내게도 꽤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자동인형에 관한 아이디어도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접붙여진 아주 작은 신선함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술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테드 창이라는 젊은 작가가 왜 이렇게 큰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수긍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그 다음의 [지옥은 신의 부재] 라는 작품이다.

주인공 닐 휘트먼이 몸 담고 있는 세상은 때때로 천사가 강림하는 세상이다. 천사는 랜덤하게 지상에 강림했고, 대기와 지면에 물리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강림의 순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때로 불가피한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고, 불치병이나 장애가 낫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강림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천사의 빛에 의지해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었고, 천사는 때떄로 '주의 힘을 보라' 따위를 외쳤기 때문에 신의 존재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세상이었다.

강림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천국이나 지옥의 단편을 볼 수도 있었는데, 지옥은 이 세상과 별 다를 바 없는 똑같이 생긴 세상이었지만, 그 곳에는 신이 부재한 세상이었다. 강림이 일어나지도 않고 기적도 없는, 신의 숨결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세상이었다. 

닐은 그러한 세상에서도 신의 의지를 크게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의 존재는 확실했지만, 신이 인간에게 어떠한 목표나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 역시 단순히 우연일 뿐이고, 천사의 강림이나 그로 인해 사고를 당하거나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오롯히 우연의 산물이라 믿었다. 그는 신을 사랑하거나 비난할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일어났던 천사 나다니엘의 강림때 휘몰아치는 불길의 장막에 산산조각 난 카페의 창문에 직격당해 사랑하는 아내인 사라가 즉사하면서 닐의 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종교'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이토록 신선하고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은 없었다.

너무나 인상적이고, 여운이 길게 남아서 좀처럼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기독교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에도 나는 신이 자애롭거나 사랑이 많다는 표현을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성경을 기록한 자들의 해석일 뿐,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행동 자체를 보면 그것이 과연 '사랑' 일까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인간에게 뭔가 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었고, 인간 한명 한명을 지켜본다는 것도 무책임한 해석이라고 여겼다. 신에 대한 믿음의 크기로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짓는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졸속적이었고, 예수를 걸고 갖가지 구원론을 갖다 붙이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사후세계조차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20대를 열심히 바쳤던 교회를 미련없이 떠났다.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 종교가 내린 신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옥은 신의 부재] 는 1차원적으로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신' 을 내세워서 '신의 존재' 가 아닌 '신앙심' 그 자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신이 눈에 보인다고 사랑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다고 대기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앙심' 이란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기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듯 하다. 대기는 나에게 완벽하게 무관심하다. 우연의 산물로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기체들이 모여 있을 뿐이고, 내가 대기를 사랑한다고, 대기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는 않는다. 신앙심은,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두터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칼리그노시아' 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실인증' 이라는 병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병인데, 이걸 접목시켜 사람의 얼굴에 대한 미추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미증(칼리그노시아)' 이라는 조어를 만든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대놓고 풍자한 이 작품은 시종일관 해학이 흘러 넘쳐 보는 내내 키들거리게 된다. 한편 실제로 얼굴의 생김새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정말 어디서 본 듯 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진부' 와 '진보' 는 한 끗 차이라는 금언을 되새길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도남의 날개 십이국기 6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공왕 슈쇼는 십이국기 세계관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린 왕이다.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에서 잠깐 등장하길래 '다음편은 공왕이나 공국 기린 이야기가 나오겠군' 했더니 역시나 예상을 크게 빗나가지 않았다. 십이국기 시리즈는 요코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변 인물들이 다음 연작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패턴이 있기 때문이다.

경국의 요코가 왕이 되는 이야기(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모험 활극에 가깝고, 태국의 기린 다이키를 통해 전해지는 태왕 교소의 이야기(바람의 바다 미궁의 기슭)는 신화나 전설, 안국의 연왕의 이야기(동의 해신 서의 창해)는 대하 역사물 느낌이라면, 공왕 슈쇼의 이야기는 버디 무비풍의 이야기이다. 


왕이 없어져버린 공국은 날로 피폐해지고 있었지만, 슈쇼는 워낙 부잣집에서 자라 여전히 부족함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슈쇼는 그 안에서 상당한 부조리를 느끼게 된다. 주위의 이웃들은 날이 다르게 수척해져가고, 요마의 습격에 빈번하게 죽어나가지만 자신과 가족들은 부유하고 안전하다. 이 세계는 아이들의 세계가 아닌 어른들의 세계. 부조리함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어른들은 무책임하다. 자기 자신의 몸 하나만, 가족들만, 울타리 안에서만 안전하고 부유하면 만족하는 부모님을, 어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슈쇼는 스스로 온실을 박차고 나와 대체 어른들은 이런 세상에서 뭣하고 자빠졌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결국 자신이 왕이 되어야 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결국 봉산에 도착해 간큐와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슈쇼는 시리즈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매력적인 인물이다.

'도남의 날개' 또한 십이국기 시리즈 중 '히쇼의 새' 와 더불어 가장 좋아하게 된 작품인데, 재독 삼독을 해도 재미있었다. 

경왕 요코가 엉겁결에 왕으로 선택받고, 수동적인 입장에서 어쩔 수 없이 왕도王道를 따라 걷는다면, 슈쇼는 스스로 왕이 되기를 결정하고 적극적으로, 그야말로 패기 넘치게 왕좌로 향한다. 

왕이 되는 길. 기린에게 선택받기 위한 지원자들이 스스로의 능력과 운을 시험받기 위한 봉산행은 그 시작부터 녹록치 않았다. 한 달에 한 번, 인간들의 인육과 피를 잔뜩 먹을 수 있는 봉산의 요마들에게는 성찬의 날이나 다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는 피비린내 나는 산행에서 오만에 가까운 자기애로 무장하고, 어린아이 다운 천진함으로 생각하는 바를 서슴치 않고 내지르던 슈쇼는 간큐와의 산행을 통해 진정한 리더쉽에 대해 진지하게 고뇌하게 된다.  


요코 이야기는 아예 왕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소녀가 왕으로 성장하는 내용이라면, 슈쇼 이야기는 이론과 사상으로 무장된 소녀가 경험을 통해 성숙되는 내용이었다. 요코 이야기가 전형적인 성장의 플롯이라면 슈쇼 이야기는 역시 전형적인 성숙의 플롯을 가지고 있다. 

슈쇼는 스스로 택한 고난과 고통스러운 경험들 속에서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고, 의지를 다듬고, 심지를 굳건히 한다.

경청을 배우고, 사과를 배우며, 포용을 배운다. 



제아무리 훌륭한 사상으로 무장되어 있다 한들, 현실과는 다르다.

이론은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삶은 텍스트가 아니다. 슈쇼는 올곧은 생각을 가지고 당당하게 걸어나갈 수 있는 사람이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벽을 맞닥뜨릴 것이다. 하지만, 작품의 마지막 대사 한방으로 슈쇼와 공국에 대한 걱정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러면 어째서 내가 태어났을 때 오지 않았어, 이 멍청아!"






+덧: 조금 거슬렸던 부분은, 슈쇼는 전형적인 금수저라는 점이었다. 

금수저로 태어나긴 했으나, 누리기 전에 다 빼앗기고 맨몸으로 흙바닥에서 굴러 왕이 되는 이야기가 요코 스토리였다면, 금수저로 태어나 그 모든 것들을 풍족하게 다 누리며 최고의 길잡이들까지 얻어 왕이 되는 이야기.... 이긴 한데, 그냥 이 책을 읽던 시기에 내 심사가 좀 뒤틀려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아하는 타이틀이라니까.ㅎㅎ

전형적인 금수저 마인드가 얄밉기도 했지만, 어른들 틈에서 무시당하는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고, 말수가 적은 간큐가 충분한 설명을 해주지 않는 것도 얄미웠으니, 밉상 둘이 어우러져 한 편의 재미난 버디무비를 이끌어 냈으니, 좋은 점수를 줄 만 하지!   



댓글(1)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장소] 2016-02-22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형적이나 역시 전형적이다 ...라는 말에 지극한 동감!^^
 
히쇼의 새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만나는 십이국기 세계관의 단편집이다. 


십이국기는 기본적으로 장편은 왕과 기린 등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한 사건이 펼쳐지고, 단편들을 통해 세계관 내의 다양한 인종과 계층들을 보여주곤 한다.

십이국기의 세계 자체가 작가가 단편을 한편씩 완성해 나가며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고, 논리를 맞추어 나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장편보다 단편을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장편보다 단편을 좀 더 좋아한다.

지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편을 리뷰하면서 전체적인 세계관을 정리했었는데, [히쇼의 새] 에서는 십이국기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하급 관리들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펼쳐지며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어 간다. 

표제작인 '히쇼의 새' 를 필두로 '낙조의 옥', '청조란' ,'풍신' 이렇게 네 편의 단편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히쇼의 새' 에서는 요코가 까메오처럼 등장해서 당시 일본의 팬들에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으리라 생각된다.(띠지에 적혀있듯 히쇼의 새는 오노 후유미의 12년만에 발표된 십이국기 제목을 달고 나온 작품이었으니!!.)


'히쇼의 새' 는 궁전의 큰 행사때 사용되는 일종의 제의를 관장하는 하급 실무 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자기로 만든 새를 날려 화살로 맞춰 부수는 일종의 쇼인데, 죽지도 않고 영원히 그 일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 지기도 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죽지도 않고 영원히 뭔가를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일을 한다는 건 꽤나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다. 특히 히쇼의 경우처럼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봐주는 이를 만난다면 더더욱. 


작품 속에 등장하는 히쇼는 마치 오노 후유미 본인처럼 느껴진다. 

십이국기라는 방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 나가는 일 말이다. '십이국기' 는 한 이름을 가진 거대한 시리즈이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연작이라 부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매 작품들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 

창작자에게 창작물은 언제나 찰나의 산물이다.

그것은 문학이든 미술이든 마찬가지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에 따라 감상할 때 마다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독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의 자유일 뿐, 창작자에게는 창작하는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 한번 그린 그림은 결코 두 번 다시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디지털의 시대로 넘어와 복사+붙이기라는 신공이 있지만, 복사해서 붙여넣은 그림은 창조가 아니라 복제일 뿐이다. 같은 종이 위에 같은 붓으로 같은 터치를 했다고 해도 순간에 불과하다.

히쇼가 날리는 도자기 새 역시 마찬가지. 깨뜨리기 위해 만드는 도자기라니.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지만, 예술이란 관점에 따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다. 

히쇼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찰나를 영위하기 위한 영생이라니. 그 역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지만, 인생이란 관점에 따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다.  

도자기가 만든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화살에 맞아 조각나는 순간 히쇼는 끝났다고 말했지만, 요코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보는 군주를 위해 죽는다지만, 예술은 자신을 알아보고 즐기는 이를 통해 살아난다.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예술이라 불리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쓰레기' 라 이름 붙여져 재가 되어 사라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했으며,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못한 채 사라졌을까.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단 한 작품도 인정받지 못한 채 괴로움 속에서 굶어 죽어갔을까? 

창작자의 입장에서 타인에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새삼재삼 통감하는 요즘이기에 정말 깊이 와닿았던 작품이다.

한시간 사이에 서너번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또 생각에 잠겼던 작품이다.

앞으로도 여러번 되 읽어 보게 될 것 같다. 


'낙조의 옥', '청조란' ,'풍신' 역시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직급의 관리들이 등장한다. 

현대의 공무원들이 관리직부터 기술직까지 다양하게 있듯 십이국기의 세계 안에서도 다양한 일을 하는 관리들이 등장한다.

관리가 되어 선적에 들어가면 평범한 이전의 삶과 일별해야 한다. 가족들과 동반해서 선적에 들 수도 있지만, 모두가 영생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뿐 아니라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권태로운 일. 관리도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영생을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유쾌한 일은 아닌 듯, 남편을 버리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일도 잦은 듯 하다. 

비교적 한직에 머무는 하급 기술 관리들의 삶도 꽤나 흥미로웠다. '풍신' 은 나라의 수목을 관리는 기술직 관리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십이국기 세계에서 선적에 든 관리들은 어지간하면 나무만큼 오래 산다. 나무가 돌처럼 단단히 굳어버리는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