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행복한책읽기 작가선집 1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행복한책읽기 / 2004년 11월
평점 :
절판


그 유명한 테드 창을 드디어 만나봤다.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있는 [바빌론의 탑] 부터 그야말로 쑤욱 빨려들어갔다.

무엇보다 원시적인 기술로 거대한 탑을 쌓아가는 공정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그들만의 작은 세계에 관한 통찰력이 돋보였다. 

현실인듯 아닌듯, 오묘한 세계관도 맘에 들었고, "인간은 아무리 오랫동안 여행을 해도 결국은 출발점으로 되돌아오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라는 문장으로 대변되는 주제의식도 새롭고 신선했다.

대부분의 SF소설들은 인류의 미래에 관한 테마를 다루고 있다.

그 중에는 아서 클라크의 [유년기의 끝]으로 대표되는 인류 진보의 정점에 관한 축이 한 편을 담당한다. 

인류의 '진보' 라는 개념은 기독교에서 출발한다. 인간의 운명에 '시작' 과 '끝' 이라는 직선의 계획이 존재한다는 것은 지극히 기독교적인 세계관이다. '끝' 에 다다를 때 까지 인간은 끊임없이 신에 가까워질 ;진보할 것이라는 신념이 기저에 깔려있다.  

반면 힌두교와 불교의 개념에 진보는 없다. 인간은 끊임없이 우행을 반복하며 동식물을 넘나드는 광대한 윤회의 고리에 갇혀있고, 인간의 삶이란 단순히 윤회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행에 불과하다. '다음 단계' 가 존재하지만, 그것은 인류 공통의 과제라기보다 개개인의 영혼에 관한 문제이다. 

때문에 기독교적인 세계관이 명백해 보이는 이야기속에서 주인공이 결국 깨닫게 되는 진리는 지극히 동양적이어서 많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두번째 [이해] 는 21세기 들어 영화와 만화로 가장 많이 다뤄진 소재를 다루고 있다.

이 작품 역시 현재의 과학 세계관 안에서 인류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 수 있을지 그려내고 있다.

[바빌론의 탑] 에서 인간들이 신에 가까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서로가 연대하며 바닥에서부터 돌을 한장씩 쌓아 올라가는 것이라면, [이해]에서는 화학 약물을 통해 뇌의 기능을 급속도로 높여내는 방법으로 다루었다. 

한편의 서스펜스 스릴러처럼 초장부터 종장까지 쉴 틈 없이 거침없이 내달린다. 

영화 [루시]와 [트렌센던스]가 떠올랐다. 약물을 통해 인간의 신체능력을 극대화시키는 소재는 넘쳐났지만, 뇌의 처리속도를 통해 감각으로 와닿는 정보들을 모두 종합해 순식간에 계산해내고, 귀에 들리는 소리, 시각정보의 패턴, 호르몬의 분비 등을 통해 상황을 조립하고, 결국 그걸 이용해 누군가와 대결까지 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숨막힐 정도였다.

물론, 펼쳐내는 지식의 양이 너무 방대해서 어떤 부분은 몇 번을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다음 작품인 [영으로 나누면] 은 그 이해 되지 않음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수학의 결정적 오류를 깨달은 수학자의 이야기인데, 개인적으로 아주아주 어렸을 적에 수학을 포기했던 한 사람이지만, 수학의 가치와 논리적 즐거움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작품의 주인공이 발견한 수학의 오류와, 그것을 설명하는 내용은 도통 이해가 잘 되지 않았지만,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명징하게 와닿았다. 

"아직도 모르겠어? 난 방금 수학 대부분이 오류라는 것을 증명했어. 이젠 그것들 모두가 무의미해진 거야." 

수학자들은 수학이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고 생각한다. 

숫자와 등식으로 모든 것이 논리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세계. 때문에 수많은 학자들은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숫자로 치환하고 풀이한다. 그리고 그것들 대부분은 정말로 진리인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은 수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여성 수학자 레네와, 그 수학자보다 재능은 떨어지지만 동료 수학자이자 그녀를 사랑하는 남편 칼의 이야기이다. 수학의 중대한 오류를 이해하고 증명한 레네는 조금씩 히스테릭해져가고 칼은 그와 함께 자신의 결혼생활도 조금씩 파괴되어 감을 느낀다. 

이론 세계의 파괴와 현실 세계의 파괴가 서서히 닿아가는 과정이 절묘하게 그려져 있었다.

무엇보다, 도통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저자의 수학에 대한 사랑과 깊이에 대해 잘 느낄 수 있었다.


네번째 작품은 표제작이자, 드디어 테드 창에게 네뷸러 프라이즈를 안겨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이다. 

이 작품은 아주아주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한다.

우주에서 외계인이 내려왔는데, 중력과 대기를 포함, 살아온 환경이 다른 것은 물론 신체의 크기와 특징, 구조 자체가 다르다. 

바디랭귀지도 통하지 않고, 아무리 관찰해도 서로의 습성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데, 과연 어떻게 의사 소통을 해낼 것인가? 

뭔가 문자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뭔가 비교할 사물이 있긴 있는데, 그 사물이 대체 어디에 쓰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거다. 외계인들이 그 사물로 뭔가 하긴 하는데, 뭘 하는건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 대뜸 뭔가 때려부수지 않는 것으로 보아 호전적인 종족은 아닌 것 같고, 대화를 하고 싶어하긴 하는 듯 한데, 도무지 방법이 없다. 

각지에서 뛰어난 언어학자와 수학자, 물리학자들이 동원되어 커뮤니케이션 창구를 개설한다. 

그것은, 외계인들이 개설해 준 것이긴 하지만, 인간들은 그들을 '헵타포드' 라고 칭하며 대화를 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함과 동시에, 이들이 과연 인류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언젠가 공격을 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우주여행을 위한 어마어마한 기술을 사사해 줄 것인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애쓴다. 이 작품에서 역시 수학이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그나마 이 작품은 언어와 문자에 대한 작품이었어서 전작보다는 술술 이해됐다. 특히 표의문자와 표음문자에 관한 부분은 언듯 한글과 비슷한 개념이 등장해서 외려 이해하기 쉬웠다. 이 작품은 단편만 발표했던 테드 창이 6년만에 낸 작품이라던데, 그동안 문자에 관한 자료를 얼마나 많이 수집했을까, 싶을 정도로 방대한 지식이 담겨있었다. 

학술적인 이야기들 속에서도 남녀의 묘한 케미스트리나 감정, 정서적인 묘사들이 양념처럼 얼마나 잘 들어가 있는지, 이야기꾼의 면모가 느껴졌다. 

또한, 새삼 언어와 문장이 인간의 사물인식에 관한 사고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섯번째 작품 역시 문자, 언어에 관련된 작품이다.

[일흔 두 글자] 는 과학 소설이라기보다 판타지 소설의 느낌이 물씬 나는 '골렘' 을 소재로 삼고 있다. 

진흙인형에 특별한 문자를 적어 넣으면 살아 움직인다는 아이디어가 돋보였는데, 판타지 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언령言聆마법을 떠오르게 했다. 그와 함께 진흙 인형이 일종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골렘을 움직이는 키워드가 마치 프로그램 코딩으로 읽히기도 했다. 골렘을 디자인하는 과학자들과 골렘을 신의 영역으로 여기는 카발리스트의 대립이 서스펜스를 불어 넣으며 결국 생명의 근원이라는 주제의식을 관통하는 줄기의 이야기 전체를 긴장감 넘치게 이끌어갔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기본적으로 독자들의 호흡을 쥐락펴락하는 스토리텔링 센스가 무척이나 돋보였다. 이 세계관 안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읽고 싶을 정도로 내게도 꽤 많은 영감을 주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자동인형에 관한 아이디어도 그리 신선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접붙여진 아주 작은 신선함과 탁월한 스토리텔링 기술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느낌의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보면 테드 창이라는 젊은 작가가 왜 이렇게 큰 주목을 받게 되었는지 수긍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작품은 그 다음의 [지옥은 신의 부재] 라는 작품이다.

주인공 닐 휘트먼이 몸 담고 있는 세상은 때때로 천사가 강림하는 세상이다. 천사는 랜덤하게 지상에 강림했고, 대기와 지면에 물리적인 충격을 가져왔다. 강림의 순간 근처에 있던 사람들은 때로 불가피한 사고로 목숨을 잃기도 했고, 불치병이나 장애가 낫는 기적을 경험하기도 했다. 강림에 휘말려 목숨을 잃는 사람들은 천사의 빛에 의지해 영혼이 천국이나 지옥으로 향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도 있었고, 천사는 때떄로 '주의 힘을 보라' 따위를 외쳤기 때문에 신의 존재가 명명백백히 드러나는 세상이었다.

강림이 일어나는 순간에는 천국이나 지옥의 단편을 볼 수도 있었는데, 지옥은 이 세상과 별 다를 바 없는 똑같이 생긴 세상이었지만, 그 곳에는 신이 부재한 세상이었다. 강림이 일어나지도 않고 기적도 없는, 신의 숨결을 전혀 느낄 수 없는 세상이었다. 

닐은 그러한 세상에서도 신의 의지를 크게 믿는 사람이 아니었다. 신의 존재는 확실했지만, 신이 인간에게 어떠한 목표나 의지를 갖고 있다고 믿지는 않았다. 그는 장애를 안고 태어났는데, 그것 역시 단순히 우연일 뿐이고, 천사의 강림이나 그로 인해 사고를 당하거나 기적을 체험하는 사람들도 오롯히 우연의 산물이라 믿었다. 그는 신을 사랑하거나 비난할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전 일어났던 천사 나다니엘의 강림때 휘몰아치는 불길의 장막에 산산조각 난 카페의 창문에 직격당해 사랑하는 아내인 사라가 즉사하면서 닐의 심경에 크나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종교'를 다룬 소설은 많지만 이토록 신선하고 충격으로 다가온 작품은 없었다.

너무나 인상적이고, 여운이 길게 남아서 좀처럼 책장을 넘길 수 없었다. 

꽤나 오랫동안 기독교에 심취했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 때에도 나는 신이 자애롭거나 사랑이 많다는 표현을 좀처럼 믿기 힘들었다. 성경을 아무리 읽어도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찾기가 힘들었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단지 성경을 기록한 자들의 해석일 뿐, 하나님이 인간에게 한 행동 자체를 보면 그것이 과연 '사랑' 일까 싶은 것들이 참 많았다. 인간에게 뭔가 거대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힘들었고, 인간 한명 한명을 지켜본다는 것도 무책임한 해석이라고 여겼다. 신에 대한 믿음의 크기로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짓는다는 것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졸속적이었고, 예수를 걸고 갖가지 구원론을 갖다 붙이는 것도 참을 수 없었다. 결국, 사후세계조차도 믿을 수 없었기 때문에 20대를 열심히 바쳤던 교회를 미련없이 떠났다.

 신의 존재를 믿을 수 없었던 것이 아니라, 한 종교가 내린 신에 대한 정의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지옥은 신의 부재] 는 1차원적으로 완벽하게 느낄 수 있는 '신' 을 내세워서 '신의 존재' 가 아닌 '신앙심' 그 자체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신이 눈에 보인다고 사랑할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숨을 쉴 수 있게 해 준다고 대기를 사랑하지는 않는 것 처럼 말이다.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신앙심' 이란 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기를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하는 듯 하다. 대기는 나에게 완벽하게 무관심하다. 우연의 산물로 내가 호흡할 수 있는 기체들이 모여 있을 뿐이고, 내가 대기를 사랑한다고, 대기가 나에게 더 많은 것을 베풀어주지는 않는다. 신앙심은, 신에 대한 무조건적인 사랑은 바로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두터운 책의 마지막 챕터를 장식하고 있는 [외모 지상주의에 관한 소고: 다큐멘터리]는 제목 그대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그려진 작품이다.

'칼리그노시아' 라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실인증' 이라는 병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하는 병인데, 이걸 접목시켜 사람의 얼굴에 대한 미추를 구분하지 못하는 '실미증(칼리그노시아)' 이라는 조어를 만든 것이다.  

외모지상주의를 대놓고 풍자한 이 작품은 시종일관 해학이 흘러 넘쳐 보는 내내 키들거리게 된다. 한편 실제로 얼굴의 생김새가 한 사람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새삼 돌아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정말 어디서 본 듯 하면서도 신선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진부' 와 '진보' 는 한 끗 차이라는 금언을 되새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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