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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쇼의 새 ㅣ 십이국기 5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8월
평점 :
오랜만에 만나는 십이국기 세계관의 단편집이다.
십이국기는 기본적으로 장편은 왕과 기린 등 지배계층을 중심으로 한 사건이 펼쳐지고, 단편들을 통해 세계관 내의 다양한 인종과 계층들을 보여주곤 한다.
십이국기의 세계 자체가 작가가 단편을 한편씩 완성해 나가며 아이디어를 확장시키고, 논리를 맞추어 나간 것이라는 느낌이 들어서 개인적으로는 장편보다 단편을 좀 더 높이 평가하고, 장편보다 단편을 좀 더 좋아한다.
지난 [바람의 만리 여명의 하늘] 편을 리뷰하면서 전체적인 세계관을 정리했었는데, [히쇼의 새] 에서는 십이국기 세계속에서 살아가는 하급 관리들의 이야기가 소소하게 펼쳐지며 세계관을 두텁게 만들어 간다.
표제작인 '히쇼의 새' 를 필두로 '낙조의 옥', '청조란' ,'풍신' 이렇게 네 편의 단편들이 자리잡고 있는데, 특히 '히쇼의 새' 에서는 요코가 까메오처럼 등장해서 당시 일본의 팬들에게는 마치 선물과도 같았으리라 생각된다.(띠지에 적혀있듯 히쇼의 새는 오노 후유미의 12년만에 발표된 십이국기 제목을 달고 나온 작품이었으니!!.)
'히쇼의 새' 는 궁전의 큰 행사때 사용되는 일종의 제의를 관장하는 하급 실무 관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도자기로 만든 새를 날려 화살로 맞춰 부수는 일종의 쇼인데, 죽지도 않고 영원히 그 일만 해야한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아득해 지기도 하지만 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죽지도 않고 영원히 뭔가를 만들어내고 보여주는 일을 한다는 건 꽤나 행복할 수도 있겠다 싶다. 특히 히쇼의 경우처럼 자신의 작품을 제대로 알아봐주는 이를 만난다면 더더욱.
작품 속에 등장하는 히쇼는 마치 오노 후유미 본인처럼 느껴진다.
십이국기라는 방대한 세계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 나가는 일 말이다. '십이국기' 는 한 이름을 가진 거대한 시리즈이지만 면밀히 따져보면 연작이라 부르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매 작품들이 뚜렷하게 구별되어 있다.
창작자에게 창작물은 언제나 찰나의 산물이다.
그것은 문학이든 미술이든 마찬가지이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품에 따라 감상할 때 마다 느낌이 달라질 수 있겠지만, 그것은 엄연히 독자의 입장에서의 해석의 자유일 뿐, 창작자에게는 창작하는 순간의 찰나에 불과하다. 나 역시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써 한번 그린 그림은 결코 두 번 다시 똑같이 그릴 수 없다. 디지털의 시대로 넘어와 복사+붙이기라는 신공이 있지만, 복사해서 붙여넣은 그림은 창조가 아니라 복제일 뿐이다. 같은 종이 위에 같은 붓으로 같은 터치를 했다고 해도 순간에 불과하다.
히쇼가 날리는 도자기 새 역시 마찬가지. 깨뜨리기 위해 만드는 도자기라니.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지만, 예술이란 관점에 따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다.
히쇼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찰나를 영위하기 위한 영생이라니. 그 역시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지만, 인생이란 관점에 따라 그렇게 무의미한 것이다.
도자기가 만든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 화살에 맞아 조각나는 순간 히쇼는 끝났다고 말했지만, 요코는 시작이라고 말했다.
선비는 자신을 알아보는 군주를 위해 죽는다지만, 예술은 자신을 알아보고 즐기는 이를 통해 살아난다.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하는 예술이라 불리지도 못하고 너무 쉽게 '쓰레기' 라 이름 붙여져 재가 되어 사라진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했으며, 얼마나 많은 작품들이 그 누구에게도 알려지지 못한 채 사라졌을까.
얼마나 많은 예술가들이 단 한 작품도 인정받지 못한 채 괴로움 속에서 굶어 죽어갔을까?
창작자의 입장에서 타인에게 '다음을 기대하게 만든다' 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든 일인지 새삼재삼 통감하는 요즘이기에 정말 깊이 와닿았던 작품이다.
한시간 사이에 서너번을 다시 읽고, 또 다시 읽고, 또 생각에 잠겼던 작품이다.
앞으로도 여러번 되 읽어 보게 될 것 같다.
'낙조의 옥', '청조란' ,'풍신' 역시 영생의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직급의 관리들이 등장한다.
현대의 공무원들이 관리직부터 기술직까지 다양하게 있듯 십이국기의 세계 안에서도 다양한 일을 하는 관리들이 등장한다.
관리가 되어 선적에 들어가면 평범한 이전의 삶과 일별해야 한다. 가족들과 동반해서 선적에 들 수도 있지만, 모두가 영생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뿐 아니라 영원히 같은 일을 반복한다는 것은 엄청나게 권태로운 일. 관리도 아닌 가족의 일원으로 영생을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유쾌한 일은 아닌 듯, 남편을 버리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가는 일도 잦은 듯 하다.
비교적 한직에 머무는 하급 기술 관리들의 삶도 꽤나 흥미로웠다. '풍신' 은 나라의 수목을 관리는 기술직 관리의 이야기가 등장하는데, 십이국기 세계에서 선적에 든 관리들은 어지간하면 나무만큼 오래 산다. 나무가 돌처럼 단단히 굳어버리는 전염병을 치료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