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과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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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것은 미스테리다' 는 말은 바꿔말하면, 세상 모든 것이 서스펜스라는 의미기도 하다.

사실 너무 당연한 명제이기도 한데, 인간의 마음은 아주 연약해서 한없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불안함' 은 곧 서스펜스와 연결된다. 

예를들어, 아침에 분명히 챙겨나왔던 지갑이 점심시간 이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한달치 용돈과 교통카드와 체크카드,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심지어 도장 한번 찍으면 런치세트가 무료인 단골 레스토랑의 적립식 카드까지 들어있는데!!!  

'내 지갑이 어디갔을까?' 

지갑의 행방에 관한 미스테리는 자신의 일상과 연관되기에 곧바로 서스펜스와 연결된다.


이처럼, 특정 이야기 안에서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독자에게 위화감을 줄 수만 있으면 된다.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의 강도로,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길이로 유지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일터.

수없는 경험을 통해, 지갑이 언제나 큰 손해 없이 내 손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갑을 분실하는 일 정도는 서스펜스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특정 자극에 쉬이 무뎌지기도 한다.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기술은 쉽고 적확한 반면, 트릭은 한정적이고, 응용 방법도 제한적이기에 명확한 패턴이 만들어진다. 
패턴이 반복되면 독자들에게 꾸준히 흥미를 줄 수 없기에, 자칫하다가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빠질수도 있고, 소위 '반전' 이라 불리는 전복의 플롯과 같은 특정 패턴에 매몰될 수도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동시대의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녹여내는 방법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빈부격차, 이념, 난민, 종교, 성별, 인종갈등, 정치적, 경제적 이슈 등등을 활용해 '사회파' 라는 접두어를 탄생시켰고, SF, 판타지, 무협등 다른 서브 장르들과 조합되기도 한다.   


[빙과]는 오히려 그런 새로운 방식보다는 '정공법' 이랄 수 있는 고전 추리물의 방식을 따른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오레키 호타로는 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 인간이다. 오랜 친구인 후쿠베 사토시는 그를 '회색' 이라고 말하며 '에너지 절약 주의자' 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사토시는 호타로의 정 반대 인간이다. 밝고 명랑한 에너지가 넘치는 부류. 가끔 여자로 오해받을 만큼 호리호리한 외모에 걸맞는 섬세한 취미를 갖고 있고, 수예부이기도 하다.

에너지 절약주의자 답게 고등학교에서도 어떠한 부활동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한 누나가 외국 여행 중 편지로 권한 '고전부' 에 가입한 호타로는 고전부의 부장격인 '지탄다 에루' 라는 동급생을 통해 고전부의 과거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와중에 사토시가 고전부에 양다리를 걸치고,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도서부원 이바라 마야카 역시 고전부에 이중 가입하면서 고전부의 33년 역사가 시작된 태초의 사건을 향한 미스테리의 여정에 뛰어든다.    

 

그 시작은 고전부의 전통인 '문집' 이었다.

그리고 33년전 고전부의 일원이었던 지탄다의 삼촌 세키타니 준과 관련된 어떠한 '사건'.

그 사건과 지탄다의 '신경쓰이는 일' - 고전부에 대해 삼촌에게 물어보고, 어떠한 대답을 들었는데, 자신은 울어버리고 말았던 - 과의 연관성을 깨닫고 지탄다와 호타로, 사토시와 이바라까지 고전부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결과를 제시하고, 과정을 찾아나가는 방식.

답을 보여주고, 논리적인 추론으로 증명해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미스테리의 플롯이다.



이런 단순한 플롯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단연 '인물' 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 그 주변의 인물들.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트릭은 익숙해지면 흥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잘 구축된 '캐릭터' 는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매력을 쌓아갈 수 있다.
 
홈즈, 포와로, 마플, 콜롬보, 갈릴레오, 해리 보슈, 리스베트, 코난, 김전일 등...
형形만 놓고 보면 비슷한데, 인물들이 너무나도 다르다.
결국 미스테리의 본질 역시 '사람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말미에 놓여있는 '해설' 에도 친절하게 잘 나와있지만, [빙과] 는 셜록 홈즈 등 고전 추리 소설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이식한 작품이다.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는 거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호타로가 얼마나 홈즈같은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는 의미다.

마지막 '빙과' 의 트릭을 밝히는 장면이야말로 캐릭터성의 백미다.
회색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사실은 가장 공감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호타로의 추론은 논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감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범인이 감정적으로 폭발하며 일체의 범행을 자백하는 클리셰도 넘쳐나지만, '빙과' 의 클라이맥스는 정말이지, 인간적이면서 신선했다.

모든 미스테리는 사람의 마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아니, 그 반대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
사람의 마음이 미스테리의 근원이니, 세상 모든 일은 미스테리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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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크러시 1 - 삶을 개척해나간 여자들 걸크러시 1
페넬로프 바지외 지음, 정혜경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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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당첨된 리뷰도서. 

솔직히 처음 제목만 봤을땐 큰 흥미를 갖진 못했다. 

'걸크러시' 라는 조어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남성중심 사회에서 남성으로 살아온 내가 '여성의 삶' 을 다룬 책을 읽고 어떤 감상을 적을 수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여전히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문장과 단어를 고르고 있다.

다시 돌아가서, 이 책의 리뷰어를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처음 보았을 땐, 그닥 관심이 가지 않았다.

하지만, 소개 내용을 천천히 읽어보니 조금씩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먼저 블로그에 연재 형식으로 그려진 만화 - 웹툰의 형태라는 것이 좋았고, 등장하는 인물들의 면면이 흥미로웠다. 

기원전 4세기의 산부인과 의사부터 미국 원주민인 아파치 부족의 전사, 최초의 수영복을 고안한 수영선수와  2차 세계대전때 스파이로 활약했던  프랑스의 무용수, 뜬금없는 등대지기는 물론 트랜스젠더와 측천무후까지. 

어느정도 이름을 들어본 이들도 있었고, 생소한 인물도 있었다.

리뷰어에 선정되지 않아도 보려고,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도 담고, 도서관에 신청도서로 넣기도 했는데,



난 그다지 관심없는(^^;;), 색색의 굿즈들과 함께 포르르 날아와 주셨다.


총 열 다섯가지 이야기. 

그 중 마리포사는 세 명의 자매니까, 열 일곱명의 여성들이 등장한다.


목차는 아래와 같다.


클레망틴 들레_수염 난 여자
은징가_은동고와 마탐바 왕국의 왕
마거릿 해밀턴_무서운 배우
마리포사 자매_독재 정권에 맞선 자매들
요세피나 판호르큄_사랑 앞에 완고했던 여인
로젠_아파치 전사이자 주술가
애넷 켈러먼_인어가 된 소녀
딜리아 에이클리_탐험가
조세핀 베이커_무용가, 레지스탕스 활동가, 한 가정의 엄마
토베 얀손_화가, 무민 시리즈 창조자
아그노디스_부인과 의사
리마 보위_사회운동가
조르지나 리드_등대지기
크리스틴 조겐슨_셀러브리티
무측천_황제 

 

만화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통적인 유럽식 그래픽 노블로, 그림만큼 글씨도 많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아주 간략화된 인물 평전이랄 수 있는데, 업적을 중심으로 발랄하게 구성되어 있다.

특히, 그 시대를 살아간 주인공들이 결코 녹록한 삶을 살지 않았을텐데, 가벼운 필치로 경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지나친 미화나 엄숙주의는 결코 찾아볼 수 없고, 곳곳에서 깨알같은 유머들이 툭툭 터진다.  

그림체는 장 자끄 쌍뻬를 연상시키는 전형적인 유럽식 신문 카툰인데, 선이 무척 매력적이고, 인물들의 개성도 아주 잘 담아내고 있다.

한 인물의 이야기가 끝나면, 두 페이지 전체를 튼 일러스트가 자리잡고 있는데, 그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아주 좋은 일러스트레이션들이다. 나에게 날아온 굿즈들 중에 하나로 B3 정도 크기의 포스터가 그런 일러스트 중 하나로 구성되어 있었다.

   

목차를 보면, '애넷 캘러먼' 의 일러스트레이션임을 한눈에 알 수 있을터다.



 역시나 여전히 조심스럽게 감상을 적어보련다.

나는 우리 사회가 가부장적인 권위주의 사회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남성이 여성보다 우월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는 사실도 인정하고, 여권 신장이 우리 사회 전체의 숙제 중 하나라는 점 역시 인식하고 있다.

다만, 그 방법에 있어서는 사회적 공감대와 연구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남성들을 끌어 내리는 방법이 아닌, 여성들이 끌어 올려지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 남녀가 함께, 우리 공동체 전체가 함께 연구하고 고민해야 하는데, 지금은 초기라 다소 첨예한 갈등국면이 이어지고 있지만, 시간이 좀 더 지나면 조금 누그러지리라 본다. 

여성불평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태동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고, 인권에 대한 인식, 평등에 대한 인식이 자리잡은지는 고작 몇백년이다.계급, 인종, 성별 그 모든 것에 대한 평등 운동은 인류 역사에 비추면 이제 막 걸음마 단계일 뿐이다.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아주 좋은 여성주의 입문서로 기능할 것이다.

지금보다 여성들에 대한 인식이 더 열악했던 과거, 시대의 편견을 직시하고 정면으로 받아낸 여성들의 이야기. 

모든 인물들의 삶이 인상적이었지만, 여성이고 동시에 아프리칸이었던 조세핀 베이커와 리마 보위가 가장 오래 남았다.

1906년생인 조세핀 베이커는 여성이면서 흑인이었고, 댄서였다.  

그는 자신의 여성성을 십분 발휘하여 과감한 공연을 펼쳤고, 그 덕에 많은 사랑을 받았다. 프랑스에서의 유명세에도 불구하고 모국인 미국에서는 여성이고 흑인이라 극심한 차별을 받았다. 
결국, 자신에게 큰 사랑을 보내줬던 프랑스를 사랑했고, 결국 프랑스 국적을 취득했으나, 기다렸다는 듯이 나치 침공 ㄷㄷ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표현했지만, 얼마나 상심이 컸을까??

진정한 의미의 멘탈붕괴였을텐데, 조세핀 베이커는 사교계 인맥을 이용해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비밀 요원으로 활약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삶이 드라마틱하지만, 조세핀 베이커는 그야말로 켄 폴릿 작품 급으로 드라마틱하다. 


리마 보위는 상대적으로 가장 최근 인물이다. 1972년생으로 2011년에 노벨 평화상을 받은 분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우리 사회는 수많은 차별의 연합체이다.

인간은 너무나 어리석어서 아주 작은 차이를 구실로 차별한다. 

리마 보위가 태어나고 자란 라이베리아 역시 그랬다.

아프리카는 서구 열강들의 무분별한 식민통치의 산물로 적대하는 여러 종족들이 한 국가, 한 도시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게다가 이슬람교와 기독교 갈등까지 있다. 부족갈등과 종교갈등으로 내전이 끊이지 않았고,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은 노인과 아이보다도 여성이다.   

폭력, 학대, 내전, 임신, 

                                

리마 보위는 한국 일일 드라마급 파란만장이다.

더 다행인것은 노벨평화상으로 보상받고, 앞으로도 쭉 활약할 사람이라는 것.                            

이 책 덕에 알게되어 구글링을 통해 많은 정보들을 접했는데, 정말 엄청난 사람이다. 

모든 평등 운동은 하나로 통한다는 것.

벨 훅스의 페미니즘 모토인  "모든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 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이다.


일련의 사회적 운동이 갈등을 야기할 수는 있다.

아니, 갈등을 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권리는 투쟁을 통해 쟁취해야 비로소 자기것이 되는 것처럼, 갈등 자체를 두려워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운동이 또다른 차별로 점철되어서는 안된다. 남성을 차별하는 것으로 남녀 평등을 이뤄낼 수는 없다는 의미다.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한다.

최근들어 나 역시 동참하고 있는, '그녀' 라는 대명사에 대한 문제의식 같은 부분.

이 책에는 '그녀' 라는 인칭대명사가 단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3인칭 대명사는 모두 '그' 로 통칭되어 있다.

이는 최근에 제기된 우리 언어의 성 차별 문제와 맥을 함께한다.

우리 언어는 외국에 비해 남녀 구별이 뚜렷하지 않다. 때문에, 남녀를 구별하는 단어에서 성차별적 요소가 더욱 도드라진다.

'그' 와 '그녀' 가 대표적이다.

'그' 는 3인칭 대명사로 기본형인데, 유독 여성만 접두어가 붙어 '그녀' 로 변형된다.

'그남' 은 없다. 처음부터 없었다. 

남성이 '기본형'이고, 여성은 '파생형'이라는 의미인데, 이는 명백히 차별적이다.

그러면 해결법은?

간단하다.

'그녀' 를 안쓰면 된다. 

기본형인 '그' 만 쓰면 된다. 굳이 남녀를 나눌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특히나 '그녀' 는 문어체이기 때문에, 굳이 안써도 된다. 세상의 모든 '그녀'를 '그' 로 바꿔도 문법이나 맥락면에서 전혀 껄끄러움이 안느껴진다.  그러면 외국어 Her 는 무엇으로 대체하나?? '그' 라고 하면 된다. him 도 '그'  라고 하면 되고.

우리 말의 인칭대명사는 원래 남녀구별이 없다. 외려 3인칭에만 있는게 이상한거였다.

다행히 이런 문제제기는 폭넓게 호응을 얻어 많은 텍스트들에서 '그녀' 가 빠르게 사라지고 있다.

이처럼 사회적 공감대를 구할 수 있는 부분부터 차근차근 해나가면 된다.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은 이제 막 두 다리에 힘을 느껴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조금 어려운 단어를 익혀 세상 모든걸 물어보는 세살 아이 정도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엔 리마 보위가, 조세핀 베이커가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에게도 신사임당, 논개, 유관순, 남자현 열사 같은 분들이 계셨다. 다만, 이렇게 발굴할 생각조차 '덜' 했을 뿐.  

김영하 작가는 TV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 사회의 여성들이 이제 막 '말을 하기 시작' 했고, 우리(남성)들은 가만히 '들어야 할 때' 라고 했다.

비록 듣자마자 바로 완벽히 동의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 사회의 남성으로서 충분히 곱씹고,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해볼 만한 문장이다.

그리고, 이 책이 그 이유가 조금은 될 수 있을터다. 

단순한 걸크러시가 아니다.

은연중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차별을, 그것을 품고 있는 사회를, 모두 CRASH 하기 위한 CRUSH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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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타카코 씨 2
신큐 치에 지음, 조아라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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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코믹스 측에서 책을 보내주셨다! @.@ 

AK출판사(AK커뮤니케이션즈)는 코믹스 보다는 작법서로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만화 작법서와 창작 활동에 큰 도움을 주는 자료서들을 뚝심있게 펴내는 출판사.

'들녘 출판사'의 '판타지 라이브러리' 시리즈의 출간이 멈추면서, AK 커뮤니케이션의 '트라비아북' 시리즈가 서브컬쳐장르의 아카이브 역할의 바통을 넘겨받았다.  

작법서와 트라비아북 모두 소재가 다채로운데, 메이드, 슈퍼히어로부터 전차, 크툴투까지 괴랄하고 아스트랄한 경지까지 뻗어있다.

그야말로 오타쿠들을 위한, 오타쿠의 자료들인데, 코믹스쪽에서 출간해내는 책들도 덕스럽긴 마찬가지다.

나는 요코야마 미츠데루의 일본 역사 만화들을 통해 AK의 만화들을 접했다.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장편 일본 역사물은 물론, 데츠카 오사무의 걸작집도 읽어봤지만, 이런 평범한 코믹스도 출간하는줄은 전혀 몰랐다. ㅋㅋㅋㅋ


이 작품은 정말 너무 소소한 일상물이다. 작품이라고 하기보다 소품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꽤 잘되는 레스토랑의 직원인 타카코가 출근해서 일을하고, 동료 직원이나 친구들과 어울리는 등 평범한 일상속의 소소함 속에서 행복을 찾아내는 이야기이다.

1권을 읽지 않았지만,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에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로 짧은 에피소들이 잔잔하게 흘러간다.   


최근들어 우리나라에 '소확행' 이라는 단어가 유행한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90년대에 썼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이라는 에세이에서 파생된 이 단어가 수십년이 지난 한국에서 세삼스레 유행한다는게 좀 의아하지만, 우리 사회가 일본 사회를 10여년 차이로 뒤따르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어느정도 수긍이 가기도 한다.

이제 우리 사회도 뜬구름 잡는 듯한 큰 희망이나 바램보다 일상에서 손에 꼭 쥘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통해 충분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는 쪽으로 변화했다는 뜻이리라. 

이 책은 그러한 '최근' 의 '우리' 에게 무척 잘 어울리는 책이다.

일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


사람의 삶에 뭔가 의미가 있을까? 

매일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장소에 가서,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에게만 던질 수 있는 질문이며, 오직 살아있으므로 생각해볼 수 있는 의문이다.


또 다른 우문을 던져보자면, 

굳이 삶에 의미가 있어야 하나?? 

단지, 살아있음. 그 자체가 의미가 될 수는 없을까?


우리가 삶 속에서 반드시 뭔가를 이뤄야 할까?

하루하루를 챗바퀴처럼 돌면서,무엇을 위해 괴로움과 고통으로 하루하루를 지워내야하나??


왜 우리에겐 살아가는 이유가 필요할까?
사실은, 이유따위 없어도, 이렇게 잘 살아갈 수 있는데.

살아있기에 이유를 찾고, 이유를 찾기위해 살아간다.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자연의 거대한 섭리의 하나로서, 치열하게 의미를 찾고, 이유를 탐구하며 살아간다.
오직 인간만이 궁금해하는 그것.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은 그것.
오직 나에게만 궁금하고, 오직 나만이 찾으며, 내가 숨쉬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고, 내가 밥먹는 데에 결코 필요하지 않은,
내 삶의 의미와 이유.
타카코씨의 삶은 어쩌면 그 실마리가 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해서든, 하루하루를 만끽하는 삶.
그래,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엔 운도 좋게 속 편한 가정에서 태어난, 배부른 돼지만이 느낄 수 있는 게으른 만족감을 한껏 즐겨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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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나방
장용민 지음 / 엘릭시르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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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를 뒤져보면 수많은 괴담들을 찾아볼 수 있다.

엘비스 프레슬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부터, 히틀러가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 일본에는 오다 노부나가도 아직 살아있다는 괴담도 있다. 십자군 기사단의 분파인 '템플 기사단' 과 이슬람 수니파의 '하사신' 들이 물밑에서 아직 치열한 암투를 벌이고 있으며, 세계 경제를 조종하고 있는 '프리 메이슨' 에 대한 이야기도 무성하다. 

진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사람들은 '이야기' 를 좋아하고, 자신이 믿고 싶은 것만 믿기 때문이다. 

실체적 증거를 들이밀어도, 사람들은 여전히 자신만의 괴담과 기담을 퍼뜨린다. 

설사 그것이 정치적이든 상업적이든 그 어떤 특별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그저 '재미로' 혹은, '흥미로'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이야기' 는 어쩌면 인류의 특징이자 본능일지도 모른다. 

 

그런 맥락에서, 소설가는 인류의 이러한 특질을 가장 잘 드러내주는 직업일터다.

이야기를 '지어내도', 또 그것을 '퍼뜨려도' 된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사람들. 

누구보다 그럴듯하고, 어떤 일들보다 현실에서 일어날 법 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사람들. 

공인받은 이야기꾼들.


장용민 작가는 역사 속 괴담을 허투루 보아 넘기는 사람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천재 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상과 지금은 사라진 조선총독부의 건물에 얽힌 괴담을 활용해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이라는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냈을 때 부터 말이다. 

이번에는 2차 세계대전 당시의 히틀러와 그의 수하들, 그리고 비약적으로 발전했던 당시 독일의 과학기술에서 접점을 캐냈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1969년 미국. 인파가 가득찬 극장에서 어린 소년을 쏘아죽인 살인범 오토 바우만. 

사형을 코앞에 둔 그는 몰락한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틴 하퍼드를 지명, 방문을 요청한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며.

비록 일련의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일을 안하고 있지만, 뛰어난 언론인이었던 그녀는 죽음을 코앞에 둔 살인범의 이이야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었다.  

바우만의 이야기는 19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 바우만은 유태인으로 아우슈비츠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다. 가족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했던 그는 패망한 독일 베를린에서 연합군의 전후 처리를 돕고 있었다. 독일어를 비롯, 폴란드, 러시아, 체코, 프랑스어에 능통했던 그는 소련측과 히틀러의 시신을 확인하는 자리에 참석하게 되고, 아직 그 어느곳에서도 히틀러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히틀러를 뒤쫓는 연합군의 특수 부대 '아디 헌터(Ady Hunter)' 에 대해 알게 된다.(아디는 아돌프 히틀러의 아명)

일련의 과정을 거쳐 아디 헌터에 입대하게 된 바우만은 전후 처리 과정 중에 압수된 독일의 기밀문서들을 번역하는 일을 맡게 되는데, 독일 최고의 뇌 전문의이자 수많은 유태인들과 포로를 대상으로 비인도적인 생체 실험을 거듭한 '죽음의 천사' 요제프 멩겔레가 뇌 이식 수술에 성공했다는 내용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통해 히틀러와 융케 등 나치의 핵심인사들이 뇌를 이식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인정되고, 수십년에 걸친 아디헌터의 '히틀러 사냥' 이 본격화된다. 


흥미진진하지만, 아주 새로운 전개를 보여주지는 않는다.

'영원히 사는 존재' 가 인류 사회의 뒤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조종하고 있다는 설정은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다.

다만, 그 존재의 정체가 무엇이며, 어떠한 방식으로 인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가 관건일 따름이다. 가장 흔한 존재는 물론 뱀파이어 같은 이들이 불멸의 삶을 이용해 아주 오랫동안 거대한 사업 네트워크를 운영하며 정치계와 법조계를 좌우한다는 설정 정도일 것이다. 이는 혈통을 따라 대를 이어 기업체를 물려받는 서구 자본주의의 핵심 네트워크의 1차원적인 은유인 셈이다. 이런 존재들이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엔터테이너로 등장하는 정도가 좀 발전된 정도랄까.

[귀신나방]의 히틀러 역시 크게 신선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미국의 연방준비은행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데, 솔직히 기예르모 델 토로의 "스트레인" 시리즈가 오버랩 되는 부분이 눈에 띄였다.

하지만, 이 역시 고전에 가까운 클리셰이긴 하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갑부가 시한부의 삶 속에서 영생을 주겠다는 이의 유혹에 넘어가는 클리셰는 고대 세계 각지의 신화에서는 물론, 진시황의 역사적인 기록에도 등장하는 바이니... 


히틀러가 '자본' 의 힘을 깨닫고, 그에 다가가는 과정은 충분히 흥미로웠다. 

캔자스 주 린츠에서 벌어지는 에피소드 역시 실제 존재하는 사례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는데, 아이디어와 소재, 전개 모두 깔끔하게 접합되었다는 인상을 받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방식은 주인공이 제3자에게 자신의 과거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서술 방식은 미스테리 스릴러 장르에서 자주 쓰이는 방식이다. 사건을 설명하기에 좋기 때문이다. 허나, 캐릭터를 부각시키기엔 참 비효율적이다.

제 3자에게 설명하는 방식이기에, '나는 그때 기분이 이랬소, 저랬소, ' 라는 식으로 단순히 서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을 이해하기엔 좋지만, 작가의 특별한 장치가 없다면 감정이입이 참 어렵다.

이 작품 역시 이 장단점이 모두 부각된다. 

오토 바우만이나 크리스틴, 심지어 히틀러까지도 전형적인 성격인데, 작가가 이야기의 전달과 정서의 전달 중 하나를 확실히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나마 크리스틴에게 이입을 유도한 장치와 작가의 의도가 느껴졌지만, 그도 정서의 전달이라기보다 드라마, 아니 '이력'전달에 가까웠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더 깊은 드라마나 정서적 공감을 이끌 수 있는 장치-가족이나 연인 따위의-를 부여했다면, 어느정도 예상 가능했던 마지막 장면이 보다 인상적이지 않았을까, 싶다.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이는 저자의 선택으로 보인다.

사건도 전달하고, 정서도 전달하기보다, 장용민 작가가 정말 잘하는 것.

빠른 전개와,  적확한 구획, 요소마다 등장하는 강렬한 씬들을 위한 유려한 연출을 택한 것 같다.



이 책을 읽을때 즈음 인간의 뇌에서 두개골뼈로 향하는 림프관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읽었다.

지금까지는 없다고 여겨졌던 면역계의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건데, 인간은 인간 자신에 대해서도 아직 너무나 모르고 있구나, 싶었다.

그 와중에 '뇌 이식 성공' 을 전제한 소설을 읽으니, 사실, 스토리에 이입하기도 쉽지 않았다.

물론 나는 SF와 판타지와 같은 장르를 무척 좋아하기에, '소설적 상상력' 에 대해 누구보다 훈련이 잘 되어있다고 자신했지만, 뇌의 면역계조차 모르면서 뇌 이식을 성공할 수는 없을텐데, 그 존재 자체를 이제야 알았다는 기사를 봐버리니, 그 부분에서만큼은 소설적 상상력의 발현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이 선택한 "뇌 이식" "히틀러 생존" "네오 나치" 라는 일련의 소재들이 더 진부하다고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미국의 금융,자본 시스템, '연방준비은행' 을 주 소재로 택한 점도 흥미로웠다. 이 역시 장용민 작가 특유의 적확하고 간명한 묘사와 등장인물을 통한 강렬한 장면들로 정말 잘 활용했다. 마침, 내가 이 책을 읽을 즈음에 "황금" 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어서 이 책에 간추린 미국의 통화정책이 쉽게 이해됐고, 그를 이용해 미국을 지배할 야심을 키우는 히틀러의 야욕 역시 명확히 이해할 수 있었다. 

미국의 금융시장 전체가 몇개의 은행으로 좌우되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는 뜻이다. 

참고로, 미국의 금태환은 1933년,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폐기됐다.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을 이겨내기 위한 방안들 중 하나였는데, 이전까지 미국의 달러는 금과 동가였다. 1달러의 지폐는 금 1달러어치와 동등했다는 뜻이다. 은행은 금을 맡고, 지폐는 금을 맡았다는 차용증서라는 개념이었다. 하지만, 금은 희소성이 있어서 미국에서 발행된 돈은 세계 전체 금의 매장량을 쉽게 넘어버렸고, 이는 공황의 단초로 작용한다. 금과 지폐의 가치를 동등하다고 믿어온 시장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린 것. 금 본위제의 폐기는 시장을 위한 필수적인 선결과제였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작가는 이 부분에서는 소설적 상상력을 가해 금태환 중지의 시기를 뒤로 많이 미루어 케네디 대통령과 연관시켰다. 케네디의 암살설 역시 이 쪽 장르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활용했던 소재이긴 한데, 네오 나치와 연결시키기 위해 금 본위제를 끌어들인 것은 흥미로운 발상이었고, 효과도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작품에서 활용된 '귀신나방' 이라는 상징적인 이미지는 지속적으로 음산한 연결고리로 작용하며 매우 흥미로운 시도로 읽혔다.

무엇보다 참 생소한 곤충이라서 전반적으로 평이한 소재들을 신선하게 환기시키는 역할을 잘 해주었다.

정말 영리한 한 수 였다고 생각한다. 


각설하고,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완결성은 훌륭했다.

구성이 명확하고, 단선적인 서사를 플롯을 이용해 흥미진진하게 배열한 스토리 텔링 기술도 돋보였다. 

때문에, 약간 부족한 캐릭터가 더 아쉽게 느껴지기도 했다. 

이 작품은 일종의 대체역사물로 접근하면 상당히 재미있게 읽히는 면이 있다. 역사적 사실의 왜곡은 대체역사라면 충분히 허용되기도 하고. 장르의 속성에 매우 충실한 작품이기도 하다. 

장용민 작가는 협소한 우리나라의 문학계 안에서도 비주류로 분류되는 장르물에 특화된 작가이다.

이제, '장용민' 하면 어느정도의 완결성과 재미는 보장받을 수 있다고 여겨질 정도랄까.

뭐, 이런저런 아쉬움들을 토로하긴 했지만, 충분히 웰메이드로 평가될 만한 작품이었다.

엘릭시르의 한국 작가 라인업은 믿고 볼만한 수준이 되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올 한해는 실망한 작품이 한 작품도 없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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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라
이언 매큐언 지음, 민승남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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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기에 쟁취한 노벨 물리학상의 성과로 얻은 부와 명예로 풍족한 삶을 누리고 있는 마이클 비어드는 다섯번째 결혼의 파국을 맞이하고 있었다. 그는 외모는 그다지 매력적인 편이 아니었지만, 다소 특정한 취향 -모성애를 자극하는 이성에게 끌리는- 의 미인들에게 불가해한 매력을 풍기는 남자였다. 비어드의 다섯번째 결혼 상태인 퍼트리스는 '더이상' 그에게 그런 매력을 느끼지는 못하는 듯 했다. '타킨' 이라는 젊은 배관 수리공과 바람피는 중이었으며 비어드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었다.

 비어드는 사실 그런 상황에 개의치 않는 남자였다. 그 역시 여러번의 결혼생활 동안 많은 외도를 했었고, 그의 부인들이 그 사실을 알아챌 무렵은 서로에 대한 열정의 거의 사라진 뒤였기에, 자연스럽게 법적으로 헤어지는 절차를 밟으면 됐다. 

하지만, 퍼트리스에게만큼은 조금 달랐다.

비어드는 아직 그녀를 사랑했다. 물론 이 다섯번째 결혼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 근본 원인도 비어드의 외도였지만, 퍼트리스의 '맞'외도를 알고도 비어드는 그녀와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어떻게든 그녀의 마음을 돌이키길 원했으나, 비어드의 심신은 피폐해져 있었고, 가뜩이나 볼품없던 외모는 세월의 직격탄과 폭음과 폭식, 운동부족으로 더욱 볼품없어진 터였다. 

 파탄난 결혼생활과는 별개로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상 수상자의 명성으로 대학 명예 교수직은 물론 왕립 과학자협회 등에서 변함없는 지위를 유지하고 있었고, 마침 새로 신설된 기후 변화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 국가가 주도하는 기초과학 센터에 '간판' 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때는 2000년. 기후 변화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던 시기였는데, 비어드는 사실 기후변화의 문제를 심각하게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센터의 활동도 그다지 진지하게 수행하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별 상관 없었다. 그의 역할은 '간판' 으로서 센터가 주도하는 세미나에 얼굴을 비추거나 공공 사업 기금을 타내는 데에 집중하면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센터 소속의 젊은 과학자들 중 한명인 '톰 올더스' 는 그렇지 않았다.

그는 광자, 즉 태양 에너지의 가능성에 대해 깊은 이해도를 가지고 있었고, 비효율적인 가정용 풍력 발전기 따위나 만들고 있는 센터의 활동에 실망하고 있는 참이었다. 톰 올더스는 센터장 그레이비보다 더 큰 사회적 위치와 힘을 가지고 있는 마이클 비어드를 설득시키려 했지만, 비어드는 그따위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다섯번째 부인 퍼트리스와 그의 애인인 타킨에 대해서 집중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에너지야, 뭐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지으면 된다고 생각하고, 온실효과는 주기적인 종말론처럼 부풀려진 괴담 정도로 생각하는 부류였으니까. 

 그리고,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마이클 비어드는 마침내 톰 올더스의 모든 아이디어들을 훔치게 된다.    



[솔라]는 2000, 2005, 2009  시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세 챕터를 통해 마이클 비어드라는 명망 높은 엘리트의 삶을 관조한다.

내게 이언 매큐언의 작품은  [속죄]와 [넛셸] 이후 겨우 세번째이다. [넛셸]과 [솔라]를 통해서는 저자의 냉소주의와 사회 전반에 대한 비판의식을 읽을 수 있었다. ([넛셸]은 특히 '과학 엘리트'라는 특정 계층에 대한 냉소와 조소를 느낄 수 있었다.)

우연히도 내가 읽었던 [속죄], [넛셸], [솔라] 의 세작품은 모두 '거짓말' 이 서사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다.

[속죄] 는 중심 화자가 독자들에게도 거짓말을 한다. 화자가 독자들에게 풀어내는 이야기 전체가 거짓말이었기에, 클라이맥스에서 드러나는 진실이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솔라] 는 독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거짓말을 하는 화자를 보여줌으로써 시한폭탄 하나를 휙 던져준다. 전자가 '독자를 속이는 것' 으로 흥미를 유발했다면, 후자는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는 서스펜스를 부여한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이 이야기의 클라이맥스엔 시한폭탄이 반드시 터지고야 말 것이며, 막대한 피해를 불러오리라는 것을.

하지만, 이번에도 이언 매큐언은 독자들에게 흥미로운 약올리기를 시전한다.

폭탄이 터지기 직전에 서사를 끝내버리는 것이다. 

시한폭탄에 달려있는 시계가 00.01 카운트가 되자 이야기를 확 끝내버린다.

나는 이 책을 헬스장 싸이클 위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읽다가, 마지막 페이지에 당황해하며 페달을 멈추고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한편으론 '참 이언 매큐언 답다' 라며 만족하기도 했다. 



이야기가 담고 있는 소재와 주제의 불편함과 난해함을 차치하고, 정말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마이클 비어드라는 한 남자가 거짓말을 이용해 어떻게 떠오르고, 결국 어떻게 추락하는지, 잘 짜여진 한편의 우화, 신화 같았다.

과학자의 입을 통해, 과학이라는 분야를 다루고 있지만, 과학이 아니라, 문학이라고 했어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뭐, 제자나 친구의 글을 훔쳐서 대박나는 이야기는 쌔고 쌨으니까.

한마디로, 소재와 주제가 아니었으면 그다지 신선한 서사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수년을 훌쩍훌쩍 뛰어넘는 형식, 가장 핵심적인 갈등들을 회상으로 보여주는 대담함에서 노련한 이야깃꾼의 스토리 텔링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중간중간 마이클 비어드가 맞닥뜨리는 논쟁들을 통해 이 노작가가 시대와 빚었던 갈등들을 엿볼 수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다.

 초반, '북위 80도 세미나'에서 메러디스라는 소설가와 나눈, 마치 이과와 문과의 대결과도 같은 격렬한 논쟁은 '대중과학'에 관한 내용 같았고, 광자 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사보이 호텔에서 한 긴 연설은 에너지 산업의 미래를 둘러싼 논쟁들처럼 보였다. 그 직후 도시학-민속학자인 멜런과의 '이야기의 원형' 에 관한 대화는 마치 표절론, 창작론에 관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이 짧은 에피소드는 비어드가 갖고 있는 '거짓말' 의 핵심과도 맞닿아 있는 부분이기도 해서, 이 이야기에 관한 저자의 본심을 일부 읽을 수도 있었다.
 

 비어드가 첫번째 이혼에 이르는 과정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작품 속 시간으로는 60년대 중후반~ 70년대 초반으로 읽히는데, 여성들이 사회를 지배하는 가부장제에 대해 눈을 뜨고 일련의 행동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초기 페미니스트 운동의 정신과 형식을 관찰할 수 있는데, 수십년 뒤에 비어드의 첫번째 추락과 밀접하게 연관된다.

비어드는 페미니즘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내가 변화하는 과정 자체에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자신의 수식을 발전시키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비어드는 변화에 1도 적응하지 못했고, 애초에 적응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 

그 추락 안에서 벌어지는 언론과의 갈등, 대중들과의 갈등, 자국의 과학계와의 갈등도 대단히 격렬하고, 그만큼 흥미로웠다.        

그 밖에 수많은 정크푸드들과 술, 담배. 나이를 먹어가며 겪게되는 수많은 '유해한 것들' 과의 사투.

결국은 악성 반점(ㅋㅋ)과의 사투에, 톰 올더스의 연구를 훔칠 수 있게 만들었던 타핀과의 갈등까지.

게다가, 수많은 결혼들, 그를 통해 만난 여자들. 그녀들과 겪는 갈등, 그리고 딸과의 갈등. 

최후의 최후까지 타이머가 째깍째깍 움직인, 거짓말의 폭탄까지.



우리의 삶이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것 만큼 우리의 사회도 복잡하고 다층적이다.

한 발만 삐끗하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천상으로 날아오르기도 한다.

시대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한 사람의 삶은 지극히 작고 초라하며 수동적으로 보이지만, 그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누군가가 들여다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변화한다. 

이 작품에서 양자역학을 주된 테마로 삼았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 지점이다.

내가 양자역학에 대해 아는건, 관찰하기 위해 빛을 쪼이는 것만으로도 성질이 변하는 소립자의 세계;  빛의 입자에 의해 영향을 받아 우리가 '상식' 이라 생각했던 물리학의 법칙이 통하지 않지만, 존재하기는 하는 그 세계, 라는 것 정도이다.

우리가 관찰할 수 없는 미시의 세계. 이론과 상상으로만 만나볼 수 없지만, 어쨌든 존재하는 세계. 

마치 '신' 과도 같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종교와 과학, 미신이 모두 합치되는 세계.  

어떤 입자를 관찰하기 위해 빛을 보낸 순간 그 입자는 빛의 영향을 받아 알 수 없는 방향으로 반응한다. 

빛이 반사되어 인간에게 '관찰' 된 순간, 그 입자는 이미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특별한 성질을 지니게 된다. 어디로 어떻게 움직일지 아무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관찰한 결과는 이미 과거의 것.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하다. 

나와 아무 관계가 없었던 너. 하지만, 내가 너를 보고, 네가 나를 보는 순간, 우리의 삶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우리 서로가 단 한번도 상상한 적 없는 세계로 빠져든다. 마이클 비어드의 삶이 과학자들에게 관찰된 순간, 그의 삶은 크게 변화했고, 그가 다시 대중과 언론에게 관찰된 순간 또 크게 변화했다. 그의 삶은 이미 한참 달라졌지만, 대중과 언론은 그 왜곡된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만다. 


마이클 비어드는 마치 관찰하기 위해 빛을 쪼인 소립자와도 같아보인다. 

신의 지문과도 같은 과학 원리를 이용해 인류 역사에 남을만한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는 인간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인 '거짓' 을 이용해 태양을 향해 날아갈 수 있는 날개를 만들었다. 그래, 어쩌면 그가 발견한 새로운 융합 이론은 신이 그를 관찰하기 위해 비쳤던 신의 시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게 과대해석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은 불확정원리 속에서 살아간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사실 분단위, 아니 시단위로 쪼개봐도 우리의 오늘은 어제와 완전히 다르다. 

한 사람의 삶은 어떠한 가치가 있는가.

마이클 비어드의 삶은 누구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과연 우리 각자의 삶이, 이 세상에, 이 역사에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지구는 퍼트리스와 마이클 비어드가 없어도 그만이다. 지구가 다른 인간까지 모두 떨궈낸다고 해도 생물권은 계속 존재할 것이며 천만 년만 지나면 낯설고 새로운 생명체로 들끓을 테고, 영장류처럼 영리한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셰익스피어나 바흐, 아인슈타인, 비어드-아인슈타인 융합을 아무도 기억 못한다고 누가 안타까워하겠는가?"

p. 127


    

아니, 그렇다면 나는 반문한다.

꼭 어떤 가치가 있어야 하나?

꼭 무슨 의미가 있어야 하나? 

이는 모든 창작물에 대한 작가들의 질문이기도 하다.

꼭 모든 작품에 의미나 가치가 있어야하나?

어쩌면 세상에 그 어떤 것에도 의미도, 가치도 없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들은 오롯히 상대적인 것이니까.

거기 그저 그렇게 있지만, 누군가의 관찰을 통해, 필요에 의해 의미를 얻고 가치를 얻는다.

석유처럼, 바람처럼, 태양처럼.

그리고, 거짓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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