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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과 ㅣ 고전부 시리즈
요네자와 호노부 지음, 권영주 옮김 / 엘릭시르 / 2013년 11월
평점 :
'세상 모든 것은 미스테리다' 는 말은 바꿔말하면, 세상 모든 것이 서스펜스라는 의미기도 하다.
사실 너무 당연한 명제이기도 한데, 인간의 마음은 아주 연약해서 한없이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불안함' 은 곧 서스펜스와 연결된다.
예를들어, 아침에 분명히 챙겨나왔던 지갑이 점심시간 이후에 사라지고 말았다.
한달치 용돈과 교통카드와 체크카드, 신용카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심지어 도장 한번 찍으면 런치세트가 무료인 단골 레스토랑의 적립식 카드까지 들어있는데!!!
'내 지갑이 어디갔을까?'
지갑의 행방에 관한 미스테리는 자신의 일상과 연관되기에 곧바로 서스펜스와 연결된다.
이처럼, 특정 이야기 안에서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방법은 결코 어렵지 않다.
독자에게 위화감을 줄 수만 있으면 된다.
결국 어떤 방법을 통해, 어느 정도의 강도로, 그리고 어느 정도의 길이로 유지시킬 수 있는지가 관건일터.
수없는 경험을 통해, 지갑이 언제나 큰 손해 없이 내 손으로 들어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지갑을 분실하는 일 정도는 서스펜스를 불러 일으킬 정도로 불안하지 않을 수 있는 것처럼. 사람은 특정 자극에 쉬이 무뎌지기도 한다.
서스펜스를 일으키는 기술은 쉽고 적확한 반면, 트릭은 한정적이고, 응용 방법도 제한적이기에 명확한 패턴이 만들어진다.
패턴이 반복되면 독자들에게 꾸준히 흥미를 줄 수 없기에, 자칫하다가는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방향으로 빠질수도 있고, 소위 '반전' 이라 불리는 전복의 플롯과 같은 특정 패턴에 매몰될 수도 있다.
2000년대 초반부터는 동시대의 민감한 사회적 이슈를 녹여내는 방법이 주로 활용되고 있다. 빈부격차, 이념, 난민, 종교, 성별, 인종갈등, 정치적, 경제적 이슈 등등을 활용해 '사회파' 라는 접두어를 탄생시켰고, SF, 판타지, 무협등 다른 서브 장르들과 조합되기도 한다.
[빙과]는 오히려 그런 새로운 방식보다는 '정공법' 이랄 수 있는 고전 추리물의 방식을 따른다.
이제 막 고등학생이 된 오레키 호타로는 만사를 귀찮아하는 성격이다. 불필요한 일은 하지 않는 인간이다. 오랜 친구인 후쿠베 사토시는 그를 '회색' 이라고 말하며 '에너지 절약 주의자' 라고 명명하기도 했다. 사토시는 호타로의 정 반대 인간이다. 밝고 명랑한 에너지가 넘치는 부류. 가끔 여자로 오해받을 만큼 호리호리한 외모에 걸맞는 섬세한 취미를 갖고 있고, 수예부이기도 하다.
에너지 절약주의자 답게 고등학교에서도 어떠한 부활동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같은 학교를 졸업한 누나가 외국 여행 중 편지로 권한 '고전부' 에 가입한 호타로는 고전부의 부장격인 '지탄다 에루' 라는 동급생을 통해 고전부의 과거로 향하는 여행을 떠나게 된다.
그 와중에 사토시가 고전부에 양다리를 걸치고,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던 도서부원 이바라 마야카 역시 고전부에 이중 가입하면서 고전부의 33년 역사가 시작된 태초의 사건을 향한 미스테리의 여정에 뛰어든다.
그 시작은 고전부의 전통인 '문집' 이었다.
그리고 33년전 고전부의 일원이었던 지탄다의 삼촌 세키타니 준과 관련된 어떠한 '사건'.
그 사건과 지탄다의 '신경쓰이는 일' - 고전부에 대해 삼촌에게 물어보고, 어떠한 대답을 들었는데, 자신은 울어버리고 말았던 - 과의 연관성을 깨닫고 지탄다와 호타로, 사토시와 이바라까지 고전부의 과거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결과를 제시하고, 과정을 찾아나가는 방식.
답을 보여주고, 논리적인 추론으로 증명해가는 방식이다.
이것은 아주 단순하고 기본적인 미스테리의 플롯이다.
이런 단순한 플롯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단연 '인물' 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인물,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 그 주변의 인물들.
미스테리와 서스펜스, 트릭은 익숙해지면 흥미가 반감된다.
하지만 잘 구축된 '캐릭터' 는 반복되는 패턴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매력을 쌓아갈 수 있다.
홈즈, 포와로, 마플, 콜롬보, 갈릴레오, 해리 보슈, 리스베트, 코난, 김전일 등...
형形만 놓고 보면 비슷한데, 인물들이 너무나도 다르다.
결국 미스테리의 본질 역시 '사람 이야기' 이기 때문이다.
작품의 말미에 놓여있는 '해설' 에도 친절하게 잘 나와있지만, [빙과] 는 셜록 홈즈 등 고전 추리 소설의 장점들을 고스란히 이식한 작품이다.
미스테리와 서스펜스는 거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활용된다. 호타로가 얼마나 홈즈같은지 보여주기 위한 장치에 가깝다는 의미다.
마지막 '빙과' 의 트릭을 밝히는 장면이야말로 캐릭터성의 백미다.
회색에 가깝다고 주장하는 인물이, 사실은 가장 공감능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호타로의 추론은 논리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감성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마지막에 범인이 감정적으로 폭발하며 일체의 범행을 자백하는 클리셰도 넘쳐나지만, '빙과' 의 클라이맥스는 정말이지, 인간적이면서 신선했다.
모든 미스테리는 사람의 마음.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면 의외로 쉽게 풀린다.
아니, 그 반대인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니.
사람의 마음이 미스테리의 근원이니, 세상 모든 일은 미스테리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