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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시사인 만화 - 신세기 시사 전설 굽시니스트의 본격 시사인 만화 1
굽시니스트 지음 / 시사IN북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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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씨인사이드를 통해 이미 '본좌' 급으로 자리잡았던 '굽시니스트' 님. 이제 필명으로 자리잡은 그의 닉네임 '굽시니시트' 는 '굽신거리다' 와 어떤 행동을 하거나 믿는 사람들은 지칭하는 영문법의 접미사인 '-ist' 가 조합된 합성어이다. 대충 '굽신거리는 사람' 이라고 이해하면 될 듯 하다. 디씨 갤러리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로 수백만 디씨폐인들을 사로잡았던 그의 매력은 단연 '오덕스러움' 과 절묘한 통찰력의 완벽한 조화였다. '오덕' 은 일본의 매니아 문화인 '오타쿠お宅' 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단어로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에 심취하는 행위나 사람을 말한다. 81년생인 굽시니시트는 태생적으로 일본 애니메이션 매니아일 수 밖에 없다. 아마 81년생 만화를 좋아하거나 만화가를 꿈꿨던 남학생들의 대부분은 일본 애니메이션에 깊이 심취했을 것이다. 우리 세대가 고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일본 문화가 전면 개방되었고, 한국의 만화 시장은 일본 만화에 잠식되었으며, 그와 함께 일본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방영해주는 케이블 채널, 일본 애니메이션을 전문으로 소대하는 잡지, 일본 애니메이션의 정식 수입작들이 비디오 대여점에 깔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디씨 인사이드' 의 토대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소위 '디씨 폐인' 들은 70년대 중후반~ 80년대 초중반 세대로부터 시작되었다.  

 굽시니시트는 바로 이 세대에게 완벽하게 먹히는 센스를 지니고 있었다. 한국 사회의 남자들은 비교적 비슷한 단계를 거쳐가며 성장한다. 여배우나 애니메이션, 음악에 열광하는 치기어린 시기를 거쳐, 연애에 목 메는 시기, 취업에 목메는 시기, 사회의 부조리에 분노하지만 생계유지에 목메는 시기. 사회, 정치, 경제에 두루 관심이 생기지만, 넘사벽을 뛰어넘지는 못하는 방관자의 삶. 굽시니스트가  그려냈던 '본격 제2차 세계대전 만화' 는 이런 디씨인들의 마음을 완벽하게 사로잡는 만화였다. 나치 히틀러나 이탈리아의 무솔리니는 물론 그 뒤에 숨겨져있는 수많은 비밀들. 자본주의 시장 점유를 위한 열강들의 대립과 이념과 민족간의 갈등들이 뒤섞인 복잡하기 짝이없는 제 2차 세계대전의 발생 원인과 전황들을 '세일러 문' 이나 '신세기 에반게리온' 같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일본 애니메이션부터 '소녀시대' 까지 넘나드는 오덕스러운 대입으로 절묘하게 풀어냈다.   

 그런 그의 통찰력과 즐거움을 주는 오덕스러움을 눈치챈 분이 정통 시사주간 잡지인 '시사 인' 의 기자였다는 것이 뜻밖일 따름이다. 기자가 직접 간택한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시사 인] 이라는 이름이 주는 견고한 방 안에 일본 애니메이션 오덕후와 여 아이돌 빠가 있었던 것이고, 그걸 커밍아웃 했다는 것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과거를 그렸던 굽시니스트의 통찰력이 현실 정치세계와 접목되기 시작했다. 그의 오덕스러움고 함께 접목된 것은 당연지사. 게다가 최근 몇년간 일본 애니메이션은 당연히 더 많이 쏟아져 나왔고, 패러디 할 소재와 패러디 될 대상은 무궁무진하게 늘어났으니, '만평' 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본격 시사인 만화] 는 위에 언급한대로 시사주간지인 '시사 인IN' 에 2009년부터 개재 되었던 만화를 묶은 것으로 각 호에 실렸던 작품이 두 쪽, 그리고, 굽시니스트의 작가멘트와 각 챕터와 제목이 두 쪽, 총 두 페이지에 실려있다. 보기좋게 잘 정리되어 있고, 2009~2011 사이의 현실 정치세계에선 정말 큼직한 이슈들이 너무 많았기에, 당시에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독자들이라도 작가의 멘트를 곁들이면 큰 무리 없이 고개를 끄덕일 만 하다. 게다가 '오덕' 이 익숙치 않은 독자들 또한 크게 걱정할 필요 없다. '오덕' 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강한 표현은 없기 때문이다. 패러디 된 소재를 전혀 모르더라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이 작품을 단순히 정치만화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굽시니스트라는 작가는 태생부터 정치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와 역사에 관심은 많았을지언정, 좌-우 편향적인 인물은 아닌 평범한 소시민에 가깝다. 소시민의 입장에서 보이고 생각나는대로 그렸다는 느낌의 작품이다. 그저, 2009~2011 한국 사회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기억을 퍼 올리기에 매우 좋다는 느낌이다.  

 '통찰' 이란 부분을 보고 전체를 가늠하는 능력의 통칭이다. 요즘엔 너무나 많은 정보와 언론들이 수많은 대중들, 국민들을 혼란케 만들고 있다. 장님이 코끼리의 다리와 코, 상아까지 만져보고 코끼리라는 사실을 인지해 가고 있는데, 뒤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사자다! 늑대다! 아니야, 개야!! 호랑이가 물어간다!! ' 라고 시끄럽게 떠들어서 오히려 장님의 판단력을 흔드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렇다고 [본격 시사인 만화] 가 한국 정치 현실의 모든 것을 완벽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는 없다. 아무리 뛰어난 통찰력이 있어도 평범한 시민들을 보지 못하는 흑막이 있는 것이 바로 정치이므로.  

 하지만, 적어도 이것 한가지만은 확실히 알려준다.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남들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도 다가 아니며, 귀에 들리는 소리 또한 다가 아니라는 점. 좀 더 보기위해 노력하고, 좀 더 능동적으로 행동해보고, 좀 더 많은 것을 듣기위해 노력하여, 그것들을 가지고 보다 깊이 있게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 대한민국은 분명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공권력에 굽신거리고 있는 모든 굽시니스트들이여. 마음만이라도 굽시니스트가 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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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대중문화 분야의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그래픽 노블의 창작 활동이 활발하다. 한국 출판만화가 무너지고 웹툰이 득세하면서 '컬러만화' 에 대한 수요와 욕구가 많아짐과 동시에, 문학성과 예술성을 두루 갖춘 유럽의 그래픽노블들을 벤치마킹 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그에 발맞춰 한국형 그래픽 노블 창작집단인 '케나즈' 의 활발한 활동은 반갑기 그지없다. 케나즈의 작가군들은 철저하게 유럽이나 북미시장을 타깃으로 동양적인 색채와 세계관에 유럽식의 유려한 화풍을 구사하는 그래픽 노블 작품들을 전략적으로 창작해 내는데, '이스타란 앤 웨스타니아' 는 그 제목만으로도 그 색채를 발견할 수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인 애드리안 스미스와 미국 시장에 진출해서 영화화까지 성공한 만화가 '형민우' 씨가 공저한 야심찬 작품. 만나보지 않을 수 없다. 

 

 

 

 대중음악 평론가가 바라본 한국 대중음악계. 역동적인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대중 음악계엔 어떤 일들이 있었을까?? 평론가가 만난 음악인들의 이야기. 궁금하다. 

 

 

 

 

 

 

 디자인에 철학이 있다. 당연하다. 디자인이랑 결국 외양이 아닌 내면이다. 외면에 지나치게 신경쓰다간 내실을 잃듯, 디자인 또한 마찬가지. 사람을 위한 마음이 없다면 디자인이란 단지 사람들을 현혹시켜 결국 파멸로 이르게 하는 세이렌의 노랫소리와 같다. 진정 뛰어난 디자이너는 자신의 손 끝에 사랑을 담고 철학을 담아낸다. 

 

 

 

 

 

 이런 사진들을 볼 수 있다면, 뭐가 더 부족할까??  저작권과 초상권, 아동 나체, 포르노, 작가의 윤리,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란 등 역사 속에서 끊임 없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사진 73점 이야기!나사에서 찍은 달 탐사 사진, 루마니아의 인종 학살 참상을 담은 사진, 한 남자가 시체더미에서 울고 있는 사진, 아프리카의 소녀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사진. 단 한 장의 사진이 당대 사회의 모순과 거짓, 인간의 추악한 면모를 드러낼 때. 인류의 역사와 사회를 돌아볼 수 있는 최고의 작품들!! 

 

  

만화를 전혀 다른 차원, 새로운 경지로 옮겨 놓은 궁극의 실험이 시작된다! ‘만화계의 카프카’로 불리는 천재 만화가 마르크앙투안 마티외가 선사하는 만화의 수수께끼.카프카, 보르헤스가 쌓아올린 책의 바벨탑에 환상의 만화를 추가하라.『꿈의 포로 아크파크』 전 5권 출간!

 

   

 

  

 

『캡틴 아메리카』는 『시빌 워』의 마지막 장면에서부터 이어지는 그래픽 노블이다. 최근 각광을 받고 있는 작가 에드 브루베이커가 스토리를 담당하고 스티브 엡팅, 마이크 퍼킨스, 부치 가이스 등이 작화를 담당하였으며 또한 거장 알렉스 로스가 참여하여 새로운 캡틴의 코스튬 디자인과 이미지 일러스트 등을 그렸다. 오리지널 캡틴 아메리카(스티브 로저스)의 죽음에서 시작하여 그의 사이드 킥이었던 버키가 새로운 캡틴 아메리카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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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집은 어디인가
장은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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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에겐 이런 기대를 갖게 해주는 작가군은 있다.

  "아, 이 작가는 대충써도 이만큼은 해줄거야."

전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가 너무 강렬한 작품이어서 그랬을까??

이번작품은 솔직히 평하면 딱 그만큼이다. "이만큼".

그렇다고 작가가 대충 썼을리는 없다. 오히려 너무 부담을 가진게 아닐까 싶다. 작품을 다 읽은 뒤 정보들을 찾아봤더니 모 인터넷 북 쇼핑몰에 연재되었던 작품을 모은 것이라고 한다. 물론 연재된 텍스트들을 그대로 옮겼을리는 없다. 퇴고의 과정을 거쳤겠지만, 이젠 확실히 그런 작품들은 태가 난다고 해야할까. 일단 장은진 작가의 전작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 작품은 지나치게 전작과 비슷하다. 거기에 감동은 덜 하고, 메시지는 더 많다. 아니, 메시지가 너무 많아서 감동이 덜하다고 해야 할까, 메시지를 위해 감동을 포기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페이지는 더 적으며 연재되는 글을 읽는 독자들을 위한 듯한 일종의 패턴이 있다. 전작인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 와 비슷한 패턴이지만, 전작에서는 등장인물들이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할 때 마다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켜서 이야기 전체가 역동성이 있었던 반면, 이번 작품에서는 비슷한 분위기가 반복되며 이야기는 갈수록 더 정적이 된다.

결국 이 작품은 '이야기' 자체보다 '인물' 에 집중하는 수밖에 없다. 작가는 '사건' 이 아닌 '인물' 에 집중을 했고, 서로간의 관계와 대화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영화로 따져보면 일종의 로드무비, 버디무비에 가까운 작품으로서 이야기 자체를 즐기기보다 '캐릭터' 한명 한명에 집중해야 작가의 메시지를 들을 수 있다. 작가의 전작 역시 그랬지만, 이번 작품은 인물들간의 관계가 보다 농밀하고 끈적하다.  

 

 이야기의 화자는 지금 어떤 여자와 마주하고 있다.

여자의 이름은, 그래, 화자는 그녀를 "제이" 라고 불렀다. 필연적이라고 해야 할까, 우연히라고 해야 할까. 무튼, 그녀 제이는 주인공의 집에 숙식하고 있다. 20대의 열쇠장이인 화자. 한때 소설가가 꿈이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열쇠가게를 물려받았다. 그리고 한때는 절친한 사이였으나 연인을 몇번이나 빼앗긴 뒤 절교하게 된 "케이". 부잣집 아들로 한때는 화가가 꿈이었으나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으며, 최근 고흐처럼 자신의 한쪽 귀를 도려내기까지 했다. 케이는 화자를 "와이" 라고 부르게 된다. 케이와, 화자인 와이는 제이의 집을 찾기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다. 힌트는 무성한 숲과 구름다리. 케이가 제이의 기억을 더듬어가며 그린 그림 한 장. 그 한 장을 들고 우리나라에 있는 구름다리가 놓여있는 숲을 찾아 무작정 떠나게 된다.

 

 이런 간단한 줄거리만으로도 책을 많이 읽어보신 분들은 이야기가 어떻게 진행되어 나갈지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두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 그렇다. 가장 안정적이라고 하는 구도로 자리잡고 있는 이 삼각 관계가 얽히고 설킴과 함께, 각각의 과거와 현재가 얽혀들어 갈 것이다. 이 작품안에서는 여 주인공인 제이를 꼭지점으로 한 감정적인 삼각관계와 절친한 친구였던 케이와 와이의 과거가 드러나며 서로가 가지고 있던 오해와 갈등들이 해소된다. 결국 그 여행은 제이의 집을 찾아주기보다 케이와 와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한 여행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기저에 한가지가 더 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외모와 목소리를 가지고 있고, 탁월한 음악적인 감각까지 가지고 있는 그녀 - 제이는 문명의 소산을 먹어야만 생존이 가능하지만, 그것때문에 사회에서 격리되고 만 존재였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도시로 들어가야 하지만, 도시 안에서는 숨어 지내야 하고, 자연을 사랑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없으면 살아갈 수 없는 아이러니 덩어리의 혼란스러운 존재. 

 한편, 제이의 반대편에서 각 점을 이루고 있는 케이와 와이는 '돈' 을 기준한 위 아래 두 계층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매일매일 죽을만큼 일해서 한달 간신히 먹고 살 수 있는 돈을 버는 열쇠장이 와이. 매 시간 돈에 쫓기듯 살아야 한다.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 그렇게 삶의 한 부분 한 부분을 돈과 연관시키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불투명해진다. 그는 언제나 자신의 연인들이 돈이 많은 절친한 친구였던 케이에게 달아났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부조리한 사회 자체에 대한 불만과 미움, 증오가 있지만 그런 것들을 미워하고 증오할 여유는 없다. 당장 오늘 일해야, 다음 달에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케이는 엄청난 부잣집의 막내아들이었다. 생존은 물론 일체의 모든 것들이 여유있게 보장된 케이. 그 엄청난 부유함의 댓가는 '자유' 였을터다. 케이는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아야 했으나, 너무나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미치도록 그림을 그리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케이를 미국으로 보내버린다. 결국 우울증에 걸린 케이는 미친척 연기를 하고 자해를 해서야 간신히 아버지의 눈 밖에 나게 되지만, 그동안 깊어진 우울증은 그를 끊임없이 자살충동 속으로 몰고간다.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역시 "제이" 이다.

제이를 둘러싼 두 남자. 와이와 케이는 제이를 받아들이는 방법과 과정을 통해 사랑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미 여자들에게 상처를 받은 와이는 제이를 짐덩어리 취급하고 불필요한 것으로만 인식한다. 즉, 사랑에 큰 상처를 입었기 때문에 쓸쓸함과 외로움을 느끼면서도 끊임없이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밀어낸다. 이것은 사랑에 대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사람들도 그러하지만, 상대적으로 세상에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감정을 품는 것을 두려워한다.

꾸준히 언급하고 있지만, 난 인간에게 가장 큰 적은 외로움, 고독함이라고 생각한다.

"자아" 라는 것은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해주는 선물인 동시에, 인간을 언제나 외롭게 만드는 저주와도 같다. "나는 나" 라는 확고한 의식은 '남' 과 '나' 를 명확하게 구분함으로서 스스로를 완벽하게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게 한다. 외로움이나 고독감은 필연적이다. 그래서 인간은 언제나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고, 연인, 가족, 동호회는 물론 인스턴트 메시징,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끊임없이 "대화" 를 갈구한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기를,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다른 이가 있기를 바란다.

 

 "문득, 사람이란 살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이야기하기 위해 사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삶이란 자기 이야기를 쓰고 읽고 듣는 과정인 건지도 모른다고."

p.222

 

사람이란 한권의 책과 같다. 표지와 제목만 보고 책의 내용을 알 수 없듯 사람의 외모와 이름만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없다. 책을 펴고 꼼꼼히 읽어 나가듯, 마주 앉아 이야기를 시작해야 그 사람을 알 수 있게된다. 절친한 사이였던 와이와 케이가 서로에게 등을 돌리게 된 이유는 '연인' 때문이었다.

와이와 케이는 좋아하는 여자의 취향이 비슷했다. 와이는 가난한 열쇠공이고, 케이는 부유한 집안의 자제였으므로 와이는 언제나 케이에게 피해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항상 자신의 여자친구가 결국 케이의 매력에 이끌려 자신을 떠났다고 생각했다. 그런 심각한 오해와 그로인한 갈등들은 제이의 집을 찾아주는 여행동안 나눈 많은 대화를 통해 오해가 하나씩 풀려가며 갈등들이 해소되어진다.

즉, 제이의 집을 찾아 떠난 여행은 와이에게 있어, "제이" 라는 이름의 책 한권과, "케이" 라는 이름의 책 한권을 읽는 여행이었다고나 할까.

 

아무리 좋은 책을 읽어도, 책 한권을 읽는다고 한 사람의 삶이 확 변하진 않는다.

하지만, 연못 한 가운데에 던진 작은 돌 하나부터 시작된 파문이 연못의 가장자리까지 닿듯이, 좋은 책으로부터 시작된 작은 일렁거림은 언젠가는 그 표면으로 드러나게 되있다. 와이와 케이. 그리고 제이의 삶 또한 그럴 것이다.

 

자, 이제 작품을 조금 다른 관점에서 파고들어 보겠다.

작품 속에는 꾸준하게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이 등장한다.

독일의 철학자 '니체' 의 철학이 집대성된, 어마무지하게 어려운 책이라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으며 집을 찾아가는 '제이'.

니체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라는 책에는 니체가 주장한 "존재의 자기 긍정을 하는 자" 즉, '초인' 의 세가지 변용이 등장한다고 한다.

 

 그 첫번째는 '낙타' 이다.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성실히 걸어나가는 낙타는 환경에 적응하고, 체제에 순응하는 존재이다. 게다가 등지 지고 있는 짐도 자기 짐이 아니다. 자신이 왜 남의 짐을 져야 하는지,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왜 가는지도 모르며 궁금해 하지도 않는다. 조물주, 신, 절대자, 공권력, 체제 앞에 무릎꿇고 짓눌려 살아가는 전체주의에 매몰된 인간상이다.

  두번째는 '사자' 이다. 사자는 의욕과 자율의 상징으로, 자신이 해야할 일을 알고 있고, 하기 위해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하지만, 사자의 자유는 긴장된 자유이다. 사자라는 동물은 알다시피 한 영역에 한마리의 수컷만이 존재한다. 자신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수컷 사자들은 모두가 적이다. 사자의 자유는 극도의 긴장 속에서 아슬아슬한 자유이고, 공격적이며 방어적이다.

  그리고 가장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상인 '초인' 은 바로 '어린아이' 이다.

순진무구함이며,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새로운 놀이이며, 스스로 굴러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움직임이며, 하나의 신선한 긍정이다. 이제 정신은 자신의 의지를 원하고 세상을 잃어버린 자는 스스로 새로운 세상을 획득하는 것이다. 자유롭지만 고독하지 않고, 자신의 세상을 창조할 수 있으며,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이 초인의 단계는 어느날 갑자기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낙타와 사자의 단계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위키백과, 네이버 "프리드리히 니체" "니체의 사상" 에서 발췌,요약 ) 

 

작품속에 등장하는 와이는 낙타의 단계라고 한다면, 케이는 사자의 단계에 가깝다. 그리고 제이는 어린이, 즉, 초인의 모습이다.

제이를 통해 와이와 케이는 무언가 깨달음을 얻어낸다.

위에 언급했던 "좋은 책 한권" 을 읽은 정도의 파문이겠지만, 제이는 케이와 와이가 인격적 성장에 이르도록 도와주는 촉매제의 역할을 한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는 결국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 로 마무리 된다.

 

그녀의 행동과 생각, 모습은 니체가 표방했던 완전한 인간.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어린이' 로 변용된 초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를 통해 화자인 와이는 끊임없이 삶에 대해 생각하고, 과거에 대해 생각하며, 환희과 고통, 오늘과 내일에 대해 사색한다.

그리고 결국 생의 긍정. 삶의 긍정. 존재의 긍정을 받아들인다. "제이" 가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를 읽는 동안 '케이' 라는 이름의 책과 '제이'라는 이름의 책을 읽어낸 화자 "와이" .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와이의 삶이 하루아침에 뭔가가 확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여전히 아침 일찍 열쇠집 문을 열어야 할 것이고, 하루종일 열쇠를 깎아대야 할 것이며, 매달 날아드는 고지서와 아슬아슬한 통장을 보며 걱정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어제보다 조금 더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눈 앞의 현실을 믿기 시작했고, 그것은 즉. 긍정했다는 의미니까.

 

 

P.S)

 책을 덮고, 한번 더 읽고, 니체의 사상을 찾아보고, 요약-해설되있는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까지 읽어보고서야 작품이 조금 이해가 되었다.

전작만 생각하고, 인터넷에 온라인 연재되었다는 정보를 듣고, 동화틱한 일러스트 표지 아래 250여페이지의 얄팍한 두께만 보고 만만하게 덤볐다가 머릿속을 정리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다. 새삼, 장은진 작가가 정말 대단한 작가라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왔다. 아무렇지 않게 술술 풀어내는 글속에 엄청나게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다만, 각 챕터가 그날 그날 독자들에게 보여지니까, 자꾸 무언가를 더 담아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조금 작위적인 느낌이랄까. 문학계에 일고있는 온라인 연재의 붐의 장단점은 곧 드러나게 될 것이다. 물론 과거부터 신문연재소설도 꾸준히 있어왔고, 그런 작품들은 대부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들거나 명작의 반열에 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으로 묶어낼땐 연재 기간만큼 길고 정성스러운 퇴고 과정이 있었음 또한 간과하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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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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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를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 에 대한 무언가가 완벽하게 변화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화책만 보던 아이가 어린이용 세계문학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어린이용 세계문학만 접하던 소년이 판타지와 무협소설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판타지, 무협, 스릴러, 추리소설만 접하던 소년이 세계 문학전집의 완역본을 읽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한권으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를 읽다가 제대로된 역사책을 읽게 되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공지영 작가가 [맨발로 글목을 돌다] 라는 작품에서 말했던 것 처럼 어쩌면 1차 대전이 교과서에 적혀있던 대로 세르비아 황태자가 암살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발 제국주의 열강들과 후발 제국주의 열강들의 시장다툼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 결국 돈때문에 세상은 미친듯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란, '글' 이란 단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 결코 그 정도로 끝나면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생각, 사상, 감정, 경험. 삶 전체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이 찾아들면, 사람들은 '책' 과 '책 읽는 행위' 에 대한 모든 것이 변화한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을까?? 스페인의 작가 '루이스 사폰' 은 [천사의 게임]이라는 작품을 통해 책은 각각 작가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 작가 뿐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잊혀진 책들이 모인 거대한 도서관을 그려낸다.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길을 기다리는 '잊힌 책' 들의 거대한 도서관. 그렇게 한 사람과 만난 책은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고 삶을 바꾸어 낸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은 내게 그런 하나의 거대한 울림과도 같았다.

진도 9.0의 대지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한 진동. 마음 속의 맨틀을 뒤흔들고 깊이 침잠되있던 지각판들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린다. 그리고 영혼의 수면 위쪽에 있던 어줍잖은 대지들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히고 말았다.

 

독서에는 고급과 저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수많은 현인들은 양서(良書) 와 악서(惡書) 를 구분하기도 했지만, 현대에 그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다고 본다. 글이 반드시 삶을 담고 있어야 진수이자 정수이고, 독자에게 상상력과 말초적인 즐거움만 준다고 쭉정이이고 해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변화의 순간은 어찌보면 단지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이 내게 준 거대한 지진은 단지 책과 글을 받아들이는 내 자신의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내면의 변화일 뿐으로, 내가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주구장창 리얼리즘이 가득한 책만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듯, 수많은 독자들이 있고, 수많은 감동들이 있을것이며, 수많은 욕과 불평 또한 찬사와 칭찬 만큼 있을것이다.

 

 이 작품이 내게 준 큰 울림은 최근 몇 해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다' 라는 문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고, 그러해서 그런것이기이 그 어떤 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마치 카프카의 [변신] 에서 그레고리가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자기가 벌레가 되있었을 때 처럼 말이다. 어느날 문득 병원을 가보니 말기 암 진단을 받듯이, 어느날 문득 산 로또에 당첨 되듯이, 어느날 문득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듯이 말이다.

 사실 삶의 모든 일들에 꼬치꼬치 하나하나 엄청나게 꼼꼼한 계획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조물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새옹지마' 처럼 지금 일어난 이 일이 나중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새옹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말 한마리를 가져왔을 뿐이지 않은가?? 현실이란 대부분 그렇다.

 

 삶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단지 그러해서 그럴 뿐이다.

멍때리는 순간에도, 잠자는 순간에도. 응가를 하기 위해 괄약근을 조이는 순간에도, 음식을 비운 식기를 개수대로 가져가는 순간에도. 그저 그러해서 그렇ㅔ 순간 순간이 차곡차곡 포개져간다.

 

인간과 삶의 위대함은, 바로 그러한 '순간' 들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삶은 단지 그냥 그렇게 그러해서 흘러갈 뿐이지만, 그 순간 인간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순간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그냥 그렇다. 매초, 매분, 매시간. 아니,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감각의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 그 순간의 기억을. 기분을. 느낌을. 마음을.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은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서 박제해 놓은 것만 같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져 먼지들을 피어 오르게 하고, 흙속에 스며들이 젖은 흙냄새와 먼지냄새를 솟구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그 기분, 그 느낌. 그 순간을 붙들어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붙들어 놓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냥 단지 나의 상상일 뿐인걸까?

루이스 사폰의 말처럼 책 속에 레이몬드 카버의 영혼이 피어올라서 책을 읽는 나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순간인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된 영혼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영혼을 만나기 위해 나에게서는 잊혀지겠지.  

 

인간은 언제나 지금'만' 산다. '지금' 이라는 '순간' 들이 모이고 모여 '삶' 이 된다.

삶이란, 그냥, 그래서, 그런 것이다.

 

내일 외계인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난, 그렇더라도,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최대한 만끽할 것이다.

 

내일 커피가 엄청 맛있게 내려졌으면 좋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엄청 맛없게 내려졌더라도, 일단은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욕을 해가며 그 맛없는 커피를 꾸역꾸역 다 맛볼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을 읽기 전과 읽은 뒤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뭐, 그 정도이다. 

 

 

 

읭????!!!!!       

 

     

변한게 없는 것 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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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자, 일단 단순하게 평하면, 수작이라고 하기는 모자르고, 범작이라고 하기는 약간 더하다.
내면묘사는 여전히 약간 서투르고, 장면 전환과 이야기의 호흡은 여전히 능숙하다. 아직 글맛은 떨어지지만,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만큼은 좋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영화로 비유해 보자면 평단에 의해서는 중간 이하의 점수를 얻지만, 대중들에게는 상위권의 스코어를 얻어낼 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번엔 주 소재가 '야구' 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출범 29년만에 누적관객 1억명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600만명의 관중 동원을 기록한 명실상부, 국내 제일의 스포츠. 지난 두권의 책이 어느정도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작가, 국내 제일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메인 디렉터라는 명함, 거기에 야구. 아주 솔직히, 심하게 까대듯 말하면 '팔릴 만한, 팔리기 위한, 팔리는' 작품이라는 티가 제목에서부터 풀풀 묻어난다. 

 

 솔직히 이번 작품에는 작가의 욕심이 아주 뚝뚝 묻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풀어내고 싶고, 야구와의 접점을 찾아내고도 싶고, 서울대에서 야구했던 이야기도 풀어내고 싶다. 작가는 정말 감각적으로 액자식 구성을 이용해 이야기속에 이야기를 넣음으로서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수많은 실제 지명과 인명, 사건들을 풀어내며 작품 전체에 전반적인 리얼리티를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화자인 '김지웅' 에 대한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단히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 공은 작품안에 충분히 반영되어 화자인 김지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 모두가 생동감있게 통통 튀어 다니지만, 역시나 이번 작품도 클라이맥스가 약간 밋밋하다. 확 끌어당겼다가 한방에 팡 터뜨리는 스킬이 부족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야기의 흐름상 감정이 콱 뭉쳤다가 뻥 뚫려야 하는데 그 부분들이 지나치게 서사적으로 흐르다 보니 클라이맥스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듯 하다. 무엇보다 지난 '압구정 소년들' 에서도 보여졌던 '도련님 스러운' 묘사는 확실히 글 읽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재익 작가의 문장은 아직은 밍밍하고 건조한 맛이다.

 

 주인공 김지웅은 서울대를 졸업해 국내에서도 꽤 대단한 영화투자업체에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남에게 평가받기 보다 평가하는데 익숙한, 통장에 잔고가 얼마 남았는 지 보다 얼마를 쓸지가 더 궁금할 정도로 넉넉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는, 그리고, 의사인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있는 단란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부인과 이혼을 준비중인 실업자. 백수 홀아비 신세가 코앞인 그저 그런 루저. 아내와 이혼에 합의한 뒤 선고받듯 주어진 시간, [이혼 숙려 기간 3개월]. 충격적인 현실에 혼란을 느낀 지웅은  대학교 재학중에 몸담았던 '야구부' 의 감독님을 찾아간 자리에서, "얻어맞을 때 맞더라도, 한 번 쯤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져봐야 투주 아이가." p. 48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한국 제일의 대학교엔 서울대학교. 그 학교를 나와도 가질 수 없는 '하고싶은 일' . 직장, 아내, 아이, 서울대라는 명판. 그 모든 걸 다 잃은 서른 중반의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서울대학 시절 함께 뛰고 뒹굴던 서울대학교 야구부 동료들을 한명씩 찾아낸다.

 

 서울대학교.

'국립 서울 대학교' 의 ㄱ,ㅅ,ㄷ 을 합쳐 놓은 것 뿐이라는 '샤' 라는 구조물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꿈은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한번쯤은 꿈꾸고 동경했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내에 그와 어깨를 견줄만한 명문사학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서울대'라는 이름이 주는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무언가는 존재한다. 고교시절이 이제는 10년이나 더 옛날 일이 된 지금이야 서울대라는 명함이 주는 대단함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니 희석이라기 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상위층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느낄래야 느껴 볼 수도 없다는 말이 맞을게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딱히 학벌이나 학연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과 주인공,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서울대' 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마 서울대를 나온 독자들은 굉장히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나야 서울대라고는 잘난 친구 덕에 몇번 들락거려본 경험뿐이지만, 그 친구 덕에 서울대란 단지 그냥 엄청 넓은 학교일 뿐이고, 서울대 생이라고 해봐야 20대의 대부분을 어마어마한 취업고시와 각종 고시들에 파묻혀 산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각종 고시를 패스하는 것도, 대기업에 발을 들이는 것도 수 많은 서울대생들 중 일부일 뿐. 위에 언급했듯 많은 서울대 출신 졸업생들도 고학력 백수가 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김지웅처럼 홀아비 백수 예비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나긴 인생 중, 대학졸업은 어디쯤일까?? 그래, 이 책엔 모든 챕터들이 야구의 이닝별로 나뉘어 있고, 작품이 시작하는 김지웅의 처지를 감독님은 '5회초' 정도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볼 때 니는 이제 5회 초쯤 역전을 당한 기다. 잘 던지다가 홈런 맞고 1,2점 차 정도로 역전. 겨우 5회촌데, 게임에 진 얼굴로 인상 쓰고 있으면 되겠나? p.44"

라고 말이다.

 

 작품은 줄곧 이렇게 야구와 삶을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야구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파워를 보여주었던 90년대의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 원년의 OB와 아련한 기억속의 삼미 슈퍼스타즈. 신바람 타선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90년대 중반의 LG트윈스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현대 유니콘스. 2000년대의 지배자이자 '야신' 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던 Sk와이번스까지.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이 되는 인물인 '장태성' 은 바로 부산 사나이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말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 이정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부산 남자를 만나면 말을 딱 두 마디만 한다고 한다. "밥 묵었나?" 그리고 "롯데 이깄나?" 라고. 아마 요즘엔 부산 여자들도 그럴 듯 하다.

 

 굳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 시키지 않더라도, '스포츠' 는 서민들에게 가장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는 가장 강력한 오락거리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대중들을 정치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곳곳에 원형 경기장을 지어 주말마다 자극적인 스포츠를 열게 했다. 박정희 시대 또한 그랬다. 3S 정책 얘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터. 스크린 Screen, 스포츠 Sports, 섹스 Sex. 대중들의 눈과 귀, 관심을 그런 말초적인 곳에 집중하게 해 정치적 판단력을 거세시켜 버리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의 국민들이 스포츠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하고 그 역사도 깊은 이유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일 뿐이다. 스포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수많은 긍정적 효과들까지 한번에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그렇게 박정희 - 전두환 시대의 3S 정책의 연장선에서 자라왔다. 여전히 야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은 정치판과 맞닿아있고, 야구단이 모기업의 자금세탁처로 활용된다는 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이야기. 관객들은 순수하게 다이아몬드 안에서 던지고, 치고, 뛰고,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일희 일비한다. 소리지르고 응원하고 욕하고 사랑하고 증오한다. 특히, 야구는 더욱 더 마약같은 중독성을 자랑한다. 알면 알수록 중독되는 것이 야구라고 하는데, 법전만큼 두껍다는 야구 규칙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을터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그 이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선수에게든 그라운드 안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모두 공평하게 차례가 돌아간다.

투수와 맞 상대하는 타자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3개가 들어오기 전까지 무한한 기회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해도 동료가 도와주지 않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9회말 투아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혹은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받는다. 투수에게 스트라익 3개를 내어주기 전 까지는 말이다.

 

 솔직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맞춰 보기 시작한다면 인생과 비견되지 않을 것이 무에 있을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야구에 비유할 것이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축구에 비유할 것이다. 마라톤, 낚시와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리고 이재익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일터다.

"야구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거야(...)

다들 마찬가지야. 이기려고 하는 거야. 분명히 이길거고. p. 103"

 

삶에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과  실패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무엇일까?? 작품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당연하게도 그 중 대부분은 서울대생들이다. 그들 각자의 삶들을 하나씩짚어보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들의 삶 속에는 평범한 나나 당신들이 그리던 '폼나는 삶, 성공한 삶, 멋진 삶' 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맨인 '장태성' 의 모습을 보면서는 무엇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 '성공하는 삶, 행복한 삶' 이란 이런게 아닐까?? " 라고 독자들에게 질문하지만, 역시 그에 대한 답 또한 당신들과 나의 몫일터다.

그래, 일단. 서울대생이라고 한다면, 작품의 문법상 어느정도일까??

인생이란 경기의 5회초, 석점 차 리드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2009년 5월 12일.

잠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9회 말, 스코어는 9:1. 무려 8점을 지고 있던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LG 트윈스는 한이닝동안 그 8점을  다 따라붙어 결국 연장전까지 갔었다.

 

5회초, 석점정도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어도, 경기 결과는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 6,7,8,9 회가 남았다. 아, 연장전도 있다. 이 엄청난 호흡의 경기 속에서 순간이라도 '아 지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기는 정말 져버린다. 나는 언제나 LG 트윈스의 경기를 홈페이지 중계를 통해 보는데 LG 트윈스 공식 캐스터인 안준모 캐스터는 항상 이런말을 하곤 한다.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팬들에게도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해줄거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하죠. 투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던지는 공, 상대 타자가 절대 못 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갖고 힘있게 뿌려야 되요. " 

MBC 스포츠 야구 전문 해설가인 이효봉 위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많이 한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던진 공이 상대 타자에게 맞으면 어떡하지?? 점수 내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미세하게 공을 채는 손가락이 흐트러져서 실투가 나오는거죠. "

게다가 야구의 한 시즌은 130경기 이상을 치르는 장기 레이스이다. 한 경기, 한 게임 정도, 시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야구도 정신력의 싸움이다.

나 자신에게 지는 순간, 상대방에게도 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은 너무나도 길다.

나도 이제 갓 30년을 좀 더 살았을 뿐이고.

나보다 1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 2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도 그만큼 더 사셨을 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나보다 어린 애기들한테는 할 말도 없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직 더 맞아도 된다. 점수, 더 내줘도 된다. 9회말에 8점 쫓아 갈 수 있는 것이 야구. 그렇다면 인생에선 10점, 20점까지 쫓아가고 역전하고 저만~~치 뒤로 따돌려 버릴 수도 있다.  

 

야구 해설계에 전설처럼 떠다니는 말이 있다.

"야구 몰라요."

나도 이 비슷한 말을 하나 아는게 있다.

"그래, 그거였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다."(팻 콘로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최후의 한 호흡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

 

참, 그런데 야구 선수들이 한 시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는 아시려나 모르겠네.

지겠다고 징징대기 전에, 그 부분을 먼저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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