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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야구부의 영광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3월
평점 :
절판
자, 일단 단순하게 평하면, 수작이라고 하기는 모자르고, 범작이라고 하기는 약간 더하다.
내면묘사는 여전히 약간 서투르고, 장면 전환과 이야기의 호흡은 여전히 능숙하다. 아직 글맛은 떨어지지만, 이야기를 끌어내는 능력만큼은 좋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영화로 비유해 보자면 평단에 의해서는 중간 이하의 점수를 얻지만, 대중들에게는 상위권의 스코어를 얻어낼 만한 작품이다. 특히 이번엔 주 소재가 '야구' 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인기 스포츠. 출범 29년만에 누적관객 1억명을 돌파했고, 지난해엔 600만명의 관중 동원을 기록한 명실상부, 국내 제일의 스포츠. 지난 두권의 책이 어느정도 대중들의 지지를 받은 작가, 국내 제일의 청취율을 자랑하는 '두시 탈출 컬투쇼' 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메인 디렉터라는 명함, 거기에 야구. 아주 솔직히, 심하게 까대듯 말하면 '팔릴 만한, 팔리기 위한, 팔리는' 작품이라는 티가 제목에서부터 풀풀 묻어난다.
솔직히 이번 작품에는 작가의 욕심이 아주 뚝뚝 묻어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이 말하는 인생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도 풀어내고 싶고, 야구와의 접점을 찾아내고도 싶고, 서울대에서 야구했던 이야기도 풀어내고 싶다. 작가는 정말 감각적으로 액자식 구성을 이용해 이야기속에 이야기를 넣음으로서 등장인물들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고, 수많은 실제 지명과 인명, 사건들을 풀어내며 작품 전체에 전반적인 리얼리티를 불어넣는다. 무엇보다 화자인 '김지웅' 에 대한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리기 위해 대단히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그 공은 작품안에 충분히 반영되어 화자인 김지웅을 통해 흘러나오는 이야기들과 등장인물들 모두가 생동감있게 통통 튀어 다니지만, 역시나 이번 작품도 클라이맥스가 약간 밋밋하다. 확 끌어당겼다가 한방에 팡 터뜨리는 스킬이 부족한 것이 참으로 아쉽다. 이야기의 흐름상 감정이 콱 뭉쳤다가 뻥 뚫려야 하는데 그 부분들이 지나치게 서사적으로 흐르다 보니 클라이맥스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한 듯 하다. 무엇보다 지난 '압구정 소년들' 에서도 보여졌던 '도련님 스러운' 묘사는 확실히 글 읽는 맛을 잘 느끼지 못하게 한다. 이재익 작가의 문장은 아직은 밍밍하고 건조한 맛이다.
주인공 김지웅은 서울대를 졸업해 국내에서도 꽤 대단한 영화투자업체에 근무하던 직원이었다.
남에게 평가받기 보다 평가하는데 익숙한, 통장에 잔고가 얼마 남았는 지 보다 얼마를 쓸지가 더 궁금할 정도로 넉넉한 경제력을 지니고 있는, 그리고, 의사인 아내와 어린 아들까지 있는 단란한 가족의 가장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지금은 부인과 이혼을 준비중인 실업자. 백수 홀아비 신세가 코앞인 그저 그런 루저. 아내와 이혼에 합의한 뒤 선고받듯 주어진 시간, [이혼 숙려 기간 3개월]. 충격적인 현실에 혼란을 느낀 지웅은 대학교 재학중에 몸담았던 '야구부' 의 감독님을 찾아간 자리에서, "얻어맞을 때 맞더라도, 한 번 쯤은 던지고 싶은 공을 던져봐야 투주 아이가." p. 48 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한다. 한국 제일의 대학교엔 서울대학교. 그 학교를 나와도 가질 수 없는 '하고싶은 일' . 직장, 아내, 아이, 서울대라는 명판. 그 모든 걸 다 잃은 서른 중반의 남자는 비로소 자신이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과정 중에 서울대학 시절 함께 뛰고 뒹굴던 서울대학교 야구부 동료들을 한명씩 찾아낸다.
서울대학교.
'국립 서울 대학교' 의 ㄱ,ㅅ,ㄷ 을 합쳐 놓은 것 뿐이라는 '샤' 라는 구조물이 거대하게 자리잡고 있는 서울대학교 정문을 통과하는 꿈은 대한민국의 모든 고등학생들이 한번쯤은 꿈꾸고 동경했을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국내에 그와 어깨를 견줄만한 명문사학들은 분명 존재하지만, '서울대'라는 이름이 주는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 무언가는 존재한다. 고교시절이 이제는 10년이나 더 옛날 일이 된 지금이야 서울대라는 명함이 주는 대단함은 많이 희석되었지만,- 아니 희석이라기 보다 대한민국을 이끌어가는 상위층엔 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한 힘은 나같이 평범한 사람은 느낄래야 느껴 볼 수도 없다는 말이 맞을게다. 게다가 내가 하는 일 자체가 딱히 학벌이나 학연이 큰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작품과 주인공,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런 어마어마한 힘을 가지고 있는 '서울대' 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마 서울대를 나온 독자들은 굉장히 공감할만한 장면들이 많이 등장할 것이다. 나야 서울대라고는 잘난 친구 덕에 몇번 들락거려본 경험뿐이지만, 그 친구 덕에 서울대란 단지 그냥 엄청 넓은 학교일 뿐이고, 서울대 생이라고 해봐야 20대의 대부분을 어마어마한 취업고시와 각종 고시들에 파묻혀 산다는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각종 고시를 패스하는 것도, 대기업에 발을 들이는 것도 수 많은 서울대생들 중 일부일 뿐. 위에 언급했듯 많은 서울대 출신 졸업생들도 고학력 백수가 되고, 이 작품에 등장하는 김지웅처럼 홀아비 백수 예비자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기나긴 인생 중, 대학졸업은 어디쯤일까?? 그래, 이 책엔 모든 챕터들이 야구의 이닝별로 나뉘어 있고, 작품이 시작하는 김지웅의 처지를 감독님은 '5회초' 정도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볼 때 니는 이제 5회 초쯤 역전을 당한 기다. 잘 던지다가 홈런 맞고 1,2점 차 정도로 역전. 겨우 5회촌데, 게임에 진 얼굴로 인상 쓰고 있으면 되겠나? p.44"
라고 말이다.
작품은 줄곧 이렇게 야구와 삶을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야구 팬이라면 잊을 수 없는 장면들이 속속 등장한다. 무시무시한 파워를 보여주었던 90년대의 해태 타이거즈의 전설과도 같은 선수들부터 시작해서, 프로야구 원년의 OB와 아련한 기억속의 삼미 슈퍼스타즈. 신바람 타선으로 돌풍을 일으켰던 90년대 중반의 LG트윈스와 압도적인 모습을 보였던 현대 유니콘스. 2000년대의 지배자이자 '야신' 이라는 단어를 탄생시켰던 Sk와이번스까지. 그리고,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이 되는 인물인 '장태성' 은 바로 부산 사나이이다. 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말따옴표"" 안에 들어있는 말들 중 가장 많이 등장하는 경상도 사투리. 이정도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것이다. 바로 롯데 자이언츠. 부산 남자를 만나면 말을 딱 두 마디만 한다고 한다. "밥 묵었나?" 그리고 "롯데 이깄나?" 라고. 아마 요즘엔 부산 여자들도 그럴 듯 하다.
굳이 부산이라는 지역에 국한 시키지 않더라도, '스포츠' 는 서민들에게 가장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선물해주는 가장 강력한 오락거리이다.
고대 로마에서는 대중들을 정치에서 눈을 돌리게 하고,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곳곳에 원형 경기장을 지어 주말마다 자극적인 스포츠를 열게 했다. 박정희 시대 또한 그랬다. 3S 정책 얘기는 다들 들어보셨을 터. 스크린 Screen, 스포츠 Sports, 섹스 Sex. 대중들의 눈과 귀, 관심을 그런 말초적인 곳에 집중하게 해 정치적 판단력을 거세시켜 버리는 효과적인 정책이다. 유럽의 민주주의 선진국의 국민들이 스포츠에 대한 집착이 더욱 강하고 그 역사도 깊은 이유도 어느정도 연관이 있을 것이다. (물론, 일부일 뿐이다. 스포츠 자체가 가지고 있는 다른 수많은 긍정적 효과들까지 한번에 매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야구는 그렇게 박정희 - 전두환 시대의 3S 정책의 연장선에서 자라왔다. 여전히 야구단을 거느리고 있는 대기업들은 정치판과 맞닿아있고, 야구단이 모기업의 자금세탁처로 활용된다는 점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이야기. 관객들은 순수하게 다이아몬드 안에서 던지고, 치고, 뛰고, 몸을 날리는 선수들의 플레이 하나 하나에 일희 일비한다. 소리지르고 응원하고 욕하고 사랑하고 증오한다. 특히, 야구는 더욱 더 마약같은 중독성을 자랑한다. 알면 알수록 중독되는 것이 야구라고 하는데, 법전만큼 두껍다는 야구 규칙도 그 중 하나일 수도 있을터다. 다 안다고 생각해도, 그 이외의 상황이 벌어지고, 1년에 한번 볼까 말까 한 장면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게다가 어떤 선수에게든 그라운드 안에 있는 선수들에게는 모두 공평하게 차례가 돌아간다.
투수와 맞 상대하는 타자는 공이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3개가 들어오기 전까지 무한한 기회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내가 아무리 잘해도 동료가 도와주지 않으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이 오기도 한다. 지고 있는 상황에서의 9회말 투아웃이라고 하더라도, 내가 타석에 들어선다면 경기를 뒤집을 수 있는, 혹은 뒤집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는 무한한 기회를 제공받는다. 투수에게 스트라익 3개를 내어주기 전 까지는 말이다.
솔직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곤 하는데, 그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맞춰 보기 시작한다면 인생과 비견되지 않을 것이 무에 있을까? 야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야구에 비유할 것이고, 축구를 사랑하는 사람은 인생을 축구에 비유할 것이다. 마라톤, 낚시와 비유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이, 그리고 이재익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은 바로 이것일터다.
"야구를 하는 이유는 하나밖에 없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거야(...)
다들 마찬가지야. 이기려고 하는 거야. 분명히 이길거고. p. 103"
삶에 이기고 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공과 실패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성공은 무엇이고, 실패는 무엇일까?? 작품속에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당연하게도 그 중 대부분은 서울대생들이다. 그들 각자의 삶들을 하나씩짚어보면 성공과 실패를 가늠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분명 그들의 삶 속에는 평범한 나나 당신들이 그리던 '폼나는 삶, 성공한 삶, 멋진 삶' 의 모습들이 투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중요한 키맨인 '장태성' 의 모습을 보면서는 무엇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작가는 그의 모습을 통해 " '성공하는 삶, 행복한 삶' 이란 이런게 아닐까?? " 라고 독자들에게 질문하지만, 역시 그에 대한 답 또한 당신들과 나의 몫일터다.
그래, 일단. 서울대생이라고 한다면, 작품의 문법상 어느정도일까??
인생이란 경기의 5회초, 석점 차 리드정도라고 할 수 있을까??
2009년 5월 12일.
잠실. LG 트윈스와 SK 와이번스의 경기.
9회 말, 스코어는 9:1. 무려 8점을 지고 있던 경기였다.
그 경기에서 LG 트윈스는 한이닝동안 그 8점을 다 따라붙어 결국 연장전까지 갔었다.
5회초, 석점정도 이기고 있어도, 지고 있어도, 경기 결과는 어찌될지 아무도 모른다.
아직, 6,7,8,9 회가 남았다. 아, 연장전도 있다. 이 엄청난 호흡의 경기 속에서 순간이라도 '아 지겠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경기는 정말 져버린다. 나는 언제나 LG 트윈스의 경기를 홈페이지 중계를 통해 보는데 LG 트윈스 공식 캐스터인 안준모 캐스터는 항상 이런말을 하곤 한다.
"그라운드 위의 선수들에게는 언제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그만큼 팬들에게도 긍정적 마인드가 필요합니다. 우리 선수들이 해줄거야,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을 계속 해야하죠. 투수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던지는 공, 상대 타자가 절대 못 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의 공에 자신감을 갖고 힘있게 뿌려야 되요. "
MBC 스포츠 야구 전문 해설가인 이효봉 위원도 비슷한 맥락의 말을 많이 한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부정적인 생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던진 공이 상대 타자에게 맞으면 어떡하지?? 점수 내주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미세하게 공을 채는 손가락이 흐트러져서 실투가 나오는거죠. "
게다가 야구의 한 시즌은 130경기 이상을 치르는 장기 레이스이다. 한 경기, 한 게임 정도, 시즌 전체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때도 있다.
모든 스포츠가 그렇듯, 야구도 정신력의 싸움이다.
나 자신에게 지는 순간, 상대방에게도 진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인생은 너무나도 길다.
나도 이제 갓 30년을 좀 더 살았을 뿐이고.
나보다 1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 20살이 많으신 형 누님들도 그만큼 더 사셨을 뿐.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다. 나보다 어린 애기들한테는 할 말도 없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이지만, 아직 더 맞아도 된다. 점수, 더 내줘도 된다. 9회말에 8점 쫓아 갈 수 있는 것이 야구. 그렇다면 인생에선 10점, 20점까지 쫓아가고 역전하고 저만~~치 뒤로 따돌려 버릴 수도 있다.
야구 해설계에 전설처럼 떠다니는 말이 있다.
"야구 몰라요."
나도 이 비슷한 말을 하나 아는게 있다.
"그래, 그거였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 그것이다."(팻 콘로이)
야구는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은 성공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최후의 한 호흡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 인생에서는 성공할 수 있다.
참, 그런데 야구 선수들이 한 시즌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는 아시려나 모르겠네.
지겠다고 징징대기 전에, 그 부분을 먼저 한 번 점검해 보는 것도 필요할 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