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대성당
레이먼드 카버 지음, 김연수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 를 즐기는 사람들은 누구나 '책' 에 대한 무언가가 완벽하게 변화하는 순간을 맞이한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동화책만 보던 아이가 어린이용 세계문학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어린이용 세계문학만 접하던 소년이 판타지와 무협소설을 접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판타지, 무협, 스릴러, 추리소설만 접하던 소년이 세계 문학전집의 완역본을 읽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한권으로 읽는 세계사 시리즈를 읽다가 제대로된 역사책을 읽게 되었을 때라고 하면 좋을까??
공지영 작가가 [맨발로 글목을 돌다] 라는 작품에서 말했던 것 처럼 어쩌면 1차 대전이 교과서에 적혀있던 대로 세르비아 황태자가 암살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선발 제국주의 열강들과 후발 제국주의 열강들의 시장다툼때문에 벌어진 것이라는 사실, 결국 돈때문에 세상은 미친듯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문학이란, '글' 이란 단지 고개를 끄덕거리고,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 아니, 결코 그 정도로 끝나면 안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나의 생각, 사상, 감정, 경험. 삶 전체가 그저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 순간이 찾아들면, 사람들은 '책' 과 '책 읽는 행위' 에 대한 모든 것이 변화한다.
세상에 얼마나 많은 책들이 있을까?? 스페인의 작가 '루이스 사폰' 은 [천사의 게임]이라는 작품을 통해 책은 각각 작가의 영혼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 작가 뿐 아니라, 그 책을 읽었고, 그 책과 함께 살았고 꿈꾸었던 사람들의 영혼까지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시간 속에서 잊혀진 책들이 모인 거대한 도서관을 그려낸다. 새로운 독자나 새로운 영혼의 손길을 기다리는 '잊힌 책' 들의 거대한 도서관. 그렇게 한 사람과 만난 책은 독자의 영혼을 뒤흔들고 삶을 바꾸어 낸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은 내게 그런 하나의 거대한 울림과도 같았다.
진도 9.0의 대지진.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거대한 진동. 마음 속의 맨틀을 뒤흔들고 깊이 침잠되있던 지각판들을 수면 위로 솟구쳐 올린다. 그리고 영혼의 수면 위쪽에 있던 어줍잖은 대지들은 마음 깊숙한 곳으로 가라앉히고 말았다.
독서에는 고급과 저질이 없다고 생각한다.
과거의 수많은 현인들은 양서(良書) 와 악서(惡書) 를 구분하기도 했지만, 현대에 그 구분은 대단히 모호하다고 본다. 글이 반드시 삶을 담고 있어야 진수이자 정수이고, 독자에게 상상력과 말초적인 즐거움만 준다고 쭉정이이고 해악이라고 생각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위에서 언급했던 변화의 순간은 어찌보면 단지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이 내게 준 거대한 지진은 단지 책과 글을 받아들이는 내 자신의 관점의 변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게다가 그것은 단지 내면의 변화일 뿐으로, 내가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을 접하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주구장창 리얼리즘이 가득한 책만 읽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수많은 작가들이 있듯, 수많은 독자들이 있고, 수많은 감동들이 있을것이며, 수많은 욕과 불평 또한 찬사와 칭찬 만큼 있을것이다.
이 작품이 내게 준 큰 울림은 최근 몇 해간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다' 라는 문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삶이란 그러해서 그런것이고, 그러해서 그런것이기이 그 어떤 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 마치 카프카의 [변신] 에서 그레고리가 아침에 눈을 떴을때, 자기가 벌레가 되있었을 때 처럼 말이다. 어느날 문득 병원을 가보니 말기 암 진단을 받듯이, 어느날 문득 산 로또에 당첨 되듯이, 어느날 문득 만난 여자와 사랑에 빠지듯이 말이다.
사실 삶의 모든 일들에 꼬치꼬치 하나하나 엄청나게 꼼꼼한 계획처럼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조물주는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그렇다. '새옹지마' 처럼 지금 일어난 이 일이 나중에 어떻게 작용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그냥 새옹은 아무런 계획 없이, 그냥 말 한마리를 가져왔을 뿐이지 않은가?? 현실이란 대부분 그렇다.
삶의 모든 순간은, 언제나 단지 그러해서 그럴 뿐이다.
멍때리는 순간에도, 잠자는 순간에도. 응가를 하기 위해 괄약근을 조이는 순간에도, 음식을 비운 식기를 개수대로 가져가는 순간에도. 그저 그러해서 그렇ㅔ 순간 순간이 차곡차곡 포개져간다.
인간과 삶의 위대함은, 바로 그러한 '순간' 들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우리는 이 순간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삶은 단지 그냥 그렇게 그러해서 흘러갈 뿐이지만, 그 순간 인간은 사물이 될 수도 있고, 신이 될 수도 있다. 이 순간이 지옥이 될 수도 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다. 우리의 삶은 그냥 그렇다. 매초, 매분, 매시간. 아니, 구분할 수 없는 수많은 감각의 덩어리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은 그 순간을 영원히 붙잡을 수 있다. 그 순간의 기억을. 기분을. 느낌을. 마음을.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들은 바로 그 순간을 붙들어서 박제해 놓은 것만 같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이 흙바닥에 떨어져 먼지들을 피어 오르게 하고, 흙속에 스며들이 젖은 흙냄새와 먼지냄새를 솟구치게 만드는 바로 그 순간. 그 기분, 그 느낌. 그 순간을 붙들어 하얀 종이 위에 까만 글씨로 붙들어 놓는다.
그의 작품 속에서 그의 숨결이 느껴지고, 그의 마음이 느껴진다는 것은, 그냥 단지 나의 상상일 뿐인걸까?
루이스 사폰의 말처럼 책 속에 레이몬드 카버의 영혼이 피어올라서 책을 읽는 나의 영혼과 하나가 되는 순간인 건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하나가 된 영혼은 다시 책 속으로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언젠가 새로운 영혼을 만나기 위해 나에게서는 잊혀지겠지.
인간은 언제나 지금'만' 산다. '지금' 이라는 '순간' 들이 모이고 모여 '삶' 이 된다.
삶이란, 그냥, 그래서, 그런 것이다.
내일 외계인이 찾아왔으면 좋겠다.
난, 그렇더라도,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최대한 만끽할 것이다.
내일 커피가 엄청 맛있게 내려졌으면 좋겠다.
만일 그렇지 않고, 엄청 맛없게 내려졌더라도, 일단은 그냥 그래서 그런거라고 고개를 주억거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오만상을 찌푸리고 욕을 해가며 그 맛없는 커피를 꾸역꾸역 다 맛볼 것이다.
레이몬드 카버의 작품들을 읽기 전과 읽은 뒤 나에게 찾아온 변화는, 뭐, 그 정도이다.
읭????!!!!!
변한게 없는 것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