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처럼
김경욱 지음 / 민음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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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생이 동화같지 않다는 사실은 너무나 잘 알고있었다.

때로는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에 나오는 계모보다 친모가 더 악독하고 무서운 존재라는 사실을.

백설공주처럼 관에 실려있는 시체에 키스를 하는 왕자따위는 정신병자라는 사실을.

 

무엇보다, 이 세상에 그렇게 내가 내민 유리구두에 발이 딱 맞는 공주도 없을 뿐 아니라, 난 절대 백마 탄 왕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김경욱 작가의 이야기가 주는 매혹은 이미 익히 알고있었다.

어딘가 음울하고, 색으로 치자면 붉은기가 섞인 따뜻한 회색이 아닌, 푸른빛이 감도는 서늘한 회색에 가까운 잿빛을 담고 있는 이야기들.

약간 보랏빛이 감도는 듯도 하다.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절묘하게 균형을 잡는 소재들을 잡아채서 이야기를 빚어내는 그의 능력은 그야말로 '탁월' 그 자체였다. 게다가 아무렇지 않게, 그 잿빛을 글속에 풀어낸다.

담담하기 이를데 없는 문장들은 내 마음을 잿빛으로 물들였다가, 이내 새벽같은 어두움속에 몰아넣는다.

 

'위험한 독서' 라는 제목을 가진 단편집에서 그는 사랑에 관한 작품들을 많이 선보였었다.

그의 단편들에는 언제나 회색빛 로맨스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표제작이었던 '위험한 독서' 에서도 연애감정을 언듯언듯 내비쳤었고,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에서는 결혼을 앞둔 여성의 심정을 아슬아슬하게 풀어내기도 했었다.

결국 이 작가도 장편은 사랑이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선택할 것이라고 생각했고, 아니나 다를까, '로맨스' 라는 카피를 떡하니 달고 책이 나왔다.

제목은 '동화처럼'. 역시나 어딘가 판타스틱한 소재를 잘 끄집어내는 작가답게 평범한 사랑이야기를 평범하게 풀어나가지는 않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초반부는 지나치게 통속적인 멜로물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대단히 실망스러웠다.

아기자기 하지도, 가슴 설레지도, 예쁘지도, 사랑스럽지도 않은. 지나치게 평범하고, 아무렇지 않게 담담한 두 남녀의 만남과 헤어짐.

 

난 이 작품을 보는 내내 그의 단편들이 떠올랐다.

'공중관람차 타는 여자' 가 떠올랐다. '고독을 빌려드립니다' 와 '달팽이를 삼킨 사나이' 도 떠올랐다.

그 작품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미지와 뉘앙스와 미장센의 확장형에 불과한 듯 했다.

 

아마도, 작가는 이 한편을 통해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삶과 사랑에 대해 솔직하고 담담하게 풀어내고 싶었던 듯 하다.

위에 언급한 단편들이 조금은 난해하기도 했고, 압축, 축약된 장면들이 많았다고 한다면, 장편인 '동화처럼' 에서는 보다 넉넉하고 편안하게 풀어내고 있다.

 

프롤로그는 앞으로 여자주인공인 '백장미' 가 쓸 동화가 소개되고 있다.

눈물공주와 침묵왕자의 이야기.

처음엔 눈물공주의 시점에서, 그리고 다음 챕터에서는 동일한 사건을 침묵왕자의 시점에서 풀어낸다.

이처럼, 작품 또한 여자 주인공 백장미와 남자 주인공 김명제의 시점이 챕터마다 번갈아가며 사건이 전개되어 나간다.

 

 이렇게 통속적이고 지나치게 평범한듯한 이야기는 중반을 넘어, 3부에 접어들면 180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차갑고, 회색이고, 담담하고, 무심하지만, 감각적이고 통찰력있는 글귀들이 비로소 '삶' 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이미 만들어져 있던 가정.

그 가정에서 20년을 넘게 살아왔던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영원한 평행선.

 

그 평행선을 그제서야 명료하게 보여주기 시작한다.

 

 

삶이란 무엇일까?

객관적으로 보면, 삶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직선이다.

'태어남' 이란 시작점에서, '죽음' 이라는 종결점까지 쭉 뻗어있는 직선이다. 시작점도 같고, 종결점도 같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직선을 가지고 있고, 그 위를 줄달음쳐 달려간다.

그 누구도 나의 직선 위에 올라설 수 없고, 나 또한 타인의 직선 위에 올라갈 수 없다.

내가 남의 탄생을 대신할 수 없고, 남의 죽음을 대신할 수 없듯이 말이다.

 

그리고, 여기 한명의 남자와 한명의 여자가 있다.

이 두 남녀가 만난것은 우연이었지만, 자신들의 직선을 옆에 나란히 세우게 된 것은 필연일지도 모른다.

(여전히 우연일지도 모르고.)

 

짜증날 정도로 담담하게 통속적인 로맨스였던 전반과는 달리, 후반부는 -하지만 역시 짜증날 정도로 - 특별한 성장기가 담겨있다.

너무 사무쳐서 결혼, 삶, 그런거 다 짜증나!! 싫어!!! 라고 소리치게 될 정도이다.

 

그래, 다 알고 있다. 삶이란 그다지 아름답지 않고, 사람들이란 그다지 좋은 존재가 아니라는거.

혼자 있으면 외롭지만, 같이있으면 짜증나는거.

인간이란 그런 존재라는거. 싫증내고 귀찮아하고. 없으면 또 찾지만, 찾은 뒤엔 또 싫증내고 귀찮아하며 상처를 줄거라는거.

 

결국 그렇게 귀찮아하고 지겨워 할건데 꼭 누군가 곁에 있어야 할까?

어차피 같은 직선 위에서 뛸 수 있는것도 아닌데? 대체 왜?

왜 그렇게 서로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그렇게나 찾아대는가.

 

삶이란 그런것이다.

귀찮아 하고, 찾고.

싫증내고, 또 찾고.

상처내고, 치료해주고.

징그럽고 지겨워하고, 안고 쓰다듬고.

 

그리고, 살아있는 한.

함께 있는 한 그것이 행복이라는거.

 

단, 전제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반드시 '깊고 솔직한 대화'를 끊임없이 할 것.

아무리 사소해 보이고, 마음에 거슬리고, 거리낌이 있더라도.

진심을 담은 대화.

 

결국 모든 갈등과 사건들은 침묵에서 시작되어, 오해로 끝난다.

그리고 모든 갈등과 사건들은 대화로 풀려진다. 

 

*덧:

꼭, 남녀가 -커플이든 아니든 - 함께 읽어봐야 할 책.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하겠다.

인생의 경험이 부족한 것일까.

좀 더 경험이 쌓이고, 나이라는 연륜이 켜켜이 쌓여갈수록, 보다 보다 더 많은것이 이해될 책.

한번보다는 두번, 두번보다는 세번 읽을때 얻는게 많은 양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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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여단 샘터 외국소설선 3
존 스칼지 지음, 이수현 옮김 / 샘터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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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조차 할 수 없는 미래.

인간은 우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인간이 더 먼 우주로 나아갈 수 있었던 가장 큰 계기는 '콘수' 라는 외계 종족을 만나면서 부터였다.

상상할수없을 정도의 과학력을 지니고 있던 콘수와의 조우를 통해 인간은 많은 과학기술을 얻어낼 수 있었고, 다른 은하계로 진출할 수 있었다.

결국 인간들은 개척할 행성들을 찾아내 개척민들을 장려하고, '우주 개척 연맹' 이라는 연맹을 결성해, 개척민들을 보호하는 군인들을 길러낸다.

은하계에는 너무나 많은 지성체들이 존재했고, 우주로 나올 수 있는 수준을 지닌 강력한 종족들도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 중 가장 가까운 외계 종족들은 '에네샤' '르레이' 그리고 '오빈' 이었다.

인류를 포함한 이 네 종족은 겉모습은 완전히 달랐지만 선호하는 행성의 환경은 비슷해서 자주 부딪힐 수 밖에 없었다.

 

인류는 먼저 CDF라는 군인집단을 창조해냈다.

노인들의 의식을 '만들어진' 인체에 심어서 젊은 병사들로 재창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완전히 빈 두뇌를 만들어 역시 '만들어진' 인체에 심은 특수부대원도 만들어냈다.

이들이 바로 '유령여단'. 이들이 유령여단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들이 죽은 자들의 시체로 만들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죽은 자의 유전자를 다른 종족들과 섞고 섞어서 나온 무언가. 그 신체 안에 넣어진 지식이 만들어진 인간체.

 

'뇌도우미' 라는 기술을 활용한 이 기술은 텅 비어있는 인간의 뇌를 빠르게 채워주는 역할을 맡아, 1~2살에 불과한 인간의 두뇌를 빠르게 정보와 지식들로 채워넣는다. 그리고,인간보다 훨씬 강한 신체와 능력으로 무장된 특수부대는 인류의 우주진출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다.

 

우주에 진출한 인류와 에네샤, 르레이, 오빈간의 치열한 음모와 처절한 전쟁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SF나 판타지는 인간과 인간사회를 보다 객관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창문이기도 하다.

이런 류의 작품에서는 언제나 인간이 아닌 다른 종족이 등장하곤 한다.

이들은 때론 인간과 대단히 흡사하기도 하고, 완전히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인간' 인 이상 아무리 완벽하게 차별점을 지닌 종족을 탄생한다 해도, 그들에게는 언제나 '인간' 의 잣대로 매겨질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간단한 예로 '스타크래프트' 시리즈를 봐도 알 수 있을것이다.

프로토스나 저그같은 종족들도 결국엔 '인간적인' 한계를 넘지 못한다.

인간적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들도 분명 존재한다. 그런 작품에서의 주인공은 당연하게도 언제나 인간이고, 그가 상대방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그 한계를 넘어선 창조물이 인간인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을 통해 결국엔 '인간' 을 본다.

 

때문에, 우리는 수많은 공상과학 작품들의 수많은 다른 종족들을 보면서 인간을, 인간의 사회를 볼 수 밖에 없다.

 

어떤 사건에 직면했을때, 우리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사건 전체를 '조망'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런 관점에서 공상과학소설은 인간, 나아가 인류 전체를 '조망' 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종족들 또한 마찬가지이다. 르레이라는 종족은 인간의 윤리와 종교성을 극대화 시킨 종족이다. 에네샤는 모계의 집단성을 극대화 시켰고, 오빈은 그 안에서 '의식' 을 결여시켰다.

 

이 작품에서 인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것은 비단 다른 종족들 뿐이 아니다.

바로 '유령여단' 을 통해 인간이란 무엇이며, 정체성이란 어떤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그들이 사고하고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은 대단히 흥미롭다.

지식이 처리되는 과정, 사고하는 과정, 통합과 우정에 대한 부분. 윤리와 도덕에 대한 부분.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는 과정까지, 상당히 흥미로운 이론과 논리로  풀어나간다.

 

이 작품에서는 먼저 인간의 존재에 대해 질문한다.

먼저 '영혼' 과 '의식'의 문제이다.

 

일단 영혼도 있고, 의식이라는 것도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영혼은 인간을 이루는 근간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영혼을 바탕으로 의식이 존재하고, 의식은 수많은 경험이 축적되어 변화하고 성장한다.

영혼은 아직 구별할 방법을 찾아내지 못했지만, 의식은 현재의 기술로도 볼 수 있다. 바로 '뇌파' 라는 것을 통해서이다.

 

이 작품안에서 인간의 정체성을 이루는 것은 '의식' 과 '경험' 이라고 전제한다.

 

참으로 단순하지만, 일견 논리적인 설정에 크게 반박할 구석이 떠오르지 않았다.

사실,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을것이다.

내 유전자를 가지고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서, 내 뇌를 통째로 그 새로운 인체에 옮겨 담는다.

단, 유전자로 또다른 인간을 만들어내는 완벽한 기술이 이미 만들어져 있는 상황이고 말이다.

 

그리고 작품 전반을 관통하는 '선택' 의 문제.

인간은 과연 어디부터 어디까지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는가?

부모도 선택하지 못하고, 탄생과 죽음도 선택하지 못한다.

우리나라의 경우엔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는 틀 안에서 선택이 가능하다.

 

이 문제는 종교적인 부분과도 연관된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유의지' 라는 것을 주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자유의지 라는게 잘 따지고 들어보면 제약이 엄청나게 많다.

그야말로 어떤 선택을 하던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인 셈이다.

 

이 작품에도 내내 이 물음표가 떠다닌다.

 

사실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묻는 공상과학 작품들은 굉장히 많았다.

로봇과 복제인간들을 통해 끊임없이 정체성에 관해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인공 '재러드 디렉' 또한 그 전형이다. 

 

동양인들이 뿌리깊은 윤리관에 집착해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지 못하고 있을때, 북미나 유럽의 뛰어난 '몽상가' 들은 이런 작품들을 창조해낸다.

모든 장르문학 중 유독 SF에서 동서양의 격차가 어마어마하다는 점을 이 작품을 통해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을 듯 하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서구의 '판타지' 장르는 동양에서는 '대하역사' 장르로 대비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인류가 과연 얼마나 더 나아갈 수 있을까? 라는 물음을 던져본다.

난 꽤나 독실한 크리스찬이지만, 외계인이 없다고 믿지는 않는다.

아무리 봐도 성경에 우주의 다른 종족들에 대한 구절은 전혀 없기때문이다.

우주의 다른 종족들도 창조하셨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받아적인 모세가 당시의 과학수준으로는 도저히 그 말을 이해해서 풀어낼 능력이 없었을수도 있지 않은가??

외계에 다른 종족이 있다, 없다는 이미 인간의 범주로는 종교로도, 과학으로도 설명할 근거가 없다.

단지 추측만 할 뿐이잖은가?

 

인간의 가장 큰 능력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이미 지구를 떠나본 경험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달에 가고싶다' 는 상상력과 몽상들이 쌓여 이루어진 것이다.

수많은 애니메이션과 영화들에서 등장하는 광활한 - 이라는 단어로는 너무나 부족한 - 우주.

난 영원히 몽상속에서만 가능하겠지만, 이런 훌륭한 공상과학 작품들을 통해 보다 농밀하고 리얼한 몽상이 가능해진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별 10000000개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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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 월드 워 헐크 - 정식 한국어판 시공그래픽노블
그렉 박 외 지음, 이규원 옮김 / 시공사(만화)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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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 작품의 작화 상태는 어느정도 알고 있었다.

분명 실망할 것이 분명한 작화임을 알고 있었지만, 헐크와 마블의 세계관에서 이 작품을 빼놓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큰맘먹고 구입.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되었던 '헐크'의 이벤트 프로젝트였던 '플래닛 헐크' 의 후속편격이다.

'플래닛 헐크' 에서 헐크는 판타스틱4의 리즈 리처드와 실드의 새로운 수장인 아이언맨, 최고의 마법사인 닥터 스트레인저와 우주인인 볼트의 음모에 의해 지구에서 추방, 은하계 어딘가의 '사카아르' 라는 행성에 홀로 불시착하게 되었다.

헐크는 사카아르에서 우여곡절끝에 사악한 외계인의 압제에 시달리던 행성 원주민들을 구해내고 파괴자가 아닌 구원자로서 추앙받는다.

행성의 여왕과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사카아르의 행성 원주민들을 친구로 사귀기도 했으나, 자신이 타고왔던 우주선이 대 폭발을 일으키며 행성은 삽시간에 황무지가 되어버린다.

자신이 구해냈던 행성의 원주민들과 사랑하는 행성의 여왕도 폭발에 휘말려 허망하게 죽고만다.

순식간에 모든걸 잃어버린 헐크는 자신을 그 우주선에 태워 보낸 지구의 슈퍼 히어로, 리즈 리처드와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와 볼트를 처단할 것을 맹세한다.

(리뷰: http://blog.naver.com/fireflag/150074325130 )

 

 

월드 워 헐크는 바로 그 뒷 이야기이다.

행성 사카아르에서 우정을 나누었던 몇몇 생존자들과 함께 지구로 날아온 헐크.

그의 분노를 막기 위해 지구의 슈퍼 히어로들이 총 출동하지만 분노가 정점에 달한 헐크는 그들을 한명한명 제압해 나가며 최후로 치닫는다.

 

 

 

지금까지 봤던 마블 코믹스의 작품들 중 가장 단순한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가장 박진감 넘치는 이슈들로 채워진 작품이다.

헐크 시리즈 특유의 큼직큼직하고 시원시원한 액션들도 단연 돋보인다.

확실히 '헐크' 시리즈는 마블의 다른 이슈들에 비해 단순한 플롯에 많은 액션들이 호탕하게 짜여져 있는 편이다.

아무래도 헐크라는 캐릭터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 자체가 복잡하고 촘촘한 음모와 관계들로 맺어져 있는 에피소드에는 도통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플래닛 헐크' 를 통해 영웅서사시를 풀어냈던 그렉박은 이번에도 호쾌하고 단순하지만 그 안에 복수, 절망, 상실, 우정 거기에 반전까지 아주 적당하게 재미있는 요소들이 잘 조합된 맛깔스러운 헐크 이야기를 창조해냈다.

헐크가 강력한 슈퍼 히어로들을 박살내는 모습들은 우리가 익히 보아온 토너먼트식 대전을 연상케 하고, 감정과 오해들이 맞물려 일으키는 갈등으로 인한 거대한 대립은 무협지를 연상케도 한다.

또한, 우리에게 익숙한 히어로인 아이언맨이나 판타스틱 포를 악당으로 보이게끔 만들어서, 헐크에게 두들겨 맞는 모습들에 통쾌감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그 내용에 비해 작화가 많이 떨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거의 무료배포용 코믹스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서 상당히 많이 아쉽다.

차라리 이 작품이 아주 예전에 나온 작품이라고 하면 이해하고 넘어갈 만 하지만, 내가 알기로 이 작품은 미국에서도 2007년인가 2008년에 출간 되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비교적 최신작인데 이정도 수준이라 너무 아쉽다.

플래닛 헐크의 카를로와 아론이 이 작품까지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오히려 좋았을 것 같다.

그림만 놓고 본다면 원화도, 컬러링도 모두 수준 이하라 솔직히 돈이 좀 아까웠다.

 그래서 별 두개 삭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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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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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이런 게임은 아는가.

우선 트럼프 카드를 준비한다. 게임에 참가하는 사람이 여덟명이면 여덟장.

그 안에 스페이드 잭과 조커를 섞어둔다. 그 여덟장의 카드를 뒤집어놓고 한 사람이 한장씩 골라 갖는다.

스페이드 잭을 찾은 사람은 '탐정' 이고, 조커를 뽑은 사람은 '범인' 이다.

카드를 뽑은 여덟명의 사람중 탐정만, 자기가 탐정이라고 밝힌다. '범인' 을 포함한 다른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한다.

당신도 카드를 한 장 뽑는다. 당신은 탐정도 범인도 아닐 것이다.

이걸로 준비는 끝이다.

 

이제 여덟명은 서로의 얼굴이 잘 보이는 위치에 각자가 대화를 나눌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앉는다.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로, 그러면서도 약간은 서먹한 위치에. 이제 다 같이 아무 내용의 잡담을 시작한다.

무슨 내용의 이야기건 상관없다. 단, 이야기를 나눌때는 상대방의 얼굴은 빤히 보고 있어야 하며, 각자가 번갈아가며 모든 사람과 대화를 나누어야 한다.

여덟명은 화기애애하게 담소를 나눈다.

그러다가 어느순간, 그때까지 번갈아 가며 웃는 얼굴로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던 상대 하나가 꿈뻑 하고 크게 눈짓을 보낼 것이다.

 

그렇다.

그 인물이 바로 '범인' 이고, 이 순간 당신은 그 인물에게 살해당한 것이다.

당신은 천천히 마음속으로 다섯을 세고 나서 갑자기 "죽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여기서 게임은 일단 중단된다.

탐정은 참가자를 빙 둘러보고 범인을 맞춰야 한다. 만약 한번에 맞추지 못하면 게임은 재개된다.

다시 여덟명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범인이 탐정에 의해 발견되고 잡힐 때까지 이 게임은 계속된다.

 

주인공들의 학교의 어떤 '행사' 는 바로 이 게임과 흡사하다.

그것이 언제, 누구에 의해 시작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행사는 3년에 한번 씩 어김없이 이루어진다.

 

이 학교의 행사에서 방금 소개한 게임의 '범인' 에 해당하는 사람을 '사요코' 라고 불렀다.

사요코가 누구인지는 사요코 자신과 그 사요코를 지명한 바로 전의 사요코밖에 알지 못한다.]

 

 

책을 펴자마자 시작되는 '프롤로그' 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있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전통적인 행사.

그 행사에 연관된 4쌍의 남녀학생들. 그리고, 벌어지는 일련의 끔찍한 사건들.

 

너무나 평범한것을 미스테리어스하게 만드는 일본의 추리소설작가인 온다리쿠의 데뷔작은 이렇게 시작된다.

 

학교.

문득 나도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우리나라의 고교입시제도는 일본강점기의 영향인지, 일본과 완전히 같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로 비슷하다.

단, 일본이 우리나라보다 체육활동과 동아리활동을 훨~~~씬 권장한다는 점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대학입시를 위해 3년동안 수학, 국어, 한문, 물리, 화학따위를 주입식으로 배운다는 점은 상통한다.

즉, 학창시절에 대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생각이 우리나라 학생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1964년생인 온다리쿠가 이 작품을 발표한 것은 1994년. 20대 후반의 나이였다.

그녀 역시 주입식 교육에 대한 폐해를 느끼고 있었고, 그래서인지 이 작품은 미스테리라는 틀을 둘러싸고 있지만, 주입식 교육에 몰입된 일본의 고교정책을 통째로 비판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정도이다. 뿐만 아니라, 그 정책 안에서 다람쥐 챗바퀴 돌듯 무의미하게 학창생활을 '낭비' 하고있는 젊은 세대들에 대한 꾸지람 같기도 하다.

 

온다리쿠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 라고 불리우는 이유들 중 하나는 고등학생이 주인공인 작품이 많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언제나 학창시절을 떠오르게 하고, 그 당시의 추억들을 되짚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필연적으로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것들이 작가가 풀어내는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미스테리와 어우러지며 강렬한 인상으로 남는 것이다.

 

지난 온다리쿠의 작품 리뷰에도 언급했지만, 인간의 기억이란 언제나 잊혀지게 되어있기 때문에, 과거란 언제나 미스테리함으로 가득 차있을 수밖에 없다.

 

어렸을때 내가 좋아했던 여자애가 나를 좋아했는지, 아니었는지부터도 굉장히 미스테리하지 않은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그 시절에 친했던 친구들을 찾아 그 여자아이가 나를 좋아했다는 단서를 찾아나가기 시작해보면 뭔가 엄청 새로운 것이 걸릴지도 모른다. 그 당시의 선생님들이야기라던지, 부모님들의 이야기라던지 말이다.

아마 완전히 동문서답을 들을 수도있고, 그것을 통해 또다른 미스테리가 시작될지도 모른다.

 

인간의 이런 부분들을 통찰해 여전히 짜릿할정도로 레알 '돋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온다리쿠의 재능이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이 작품은 '유지니아' 처럼 사건의 진상에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뒷머리가 쭈뼛거릴정도로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온다리쿠의 초기시절 스토리 텔링을 만끽할 수 있다. 독자들의 호흡을 빼앗고 감정을 쥐었다 폈다하던 기술은 이미 데뷔시절부터 상당히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문득, 그녀의 작품들에 등장하는 고교생 주인공들을 모아 한 곳에 모아놓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녀도 마치 그런 상상을 했듯, 최근 '도미노' 라는 작품을 내기도 했다.

 

살아 숨쉬는 등장인물들과 등골이 오싹한 '분위기 겁주기' 의 화려한 향연.

온다리쿠의 세계로 입문하신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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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 없이 해피엔딩 - 김연수 김중혁 대꾸 에세이
김연수.김중혁 지음 / 씨네21북스 / 2010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지금 세대의 주류 작가들은 바로 전 세대의 작가들과 굉장히 많이 다르다.

모더니즘과 포스트 모더니즘을 거쳐, 융합과 해체, 작가주의와 대중주의, 풍요와 빈곤, 격동과 안정을 두루 경험해서 일까.

그들의 작품들은 사상적으로나 뭘로나 지나치게 한쪽으로 흐르지 않는다.

이쪽에서는 이쪽의 시각을, 저쪽에서는 저쪽의 시각을 절묘하게 잡아챈다.

 

그런 절묘한 균형감각을 가진 작가로 손꼽을 수 있는 이 세대의 기수라고 한다면, 단연 김연수 작가를 꼽을 수 있다.

한국 작가치고 상당히 다작하기 때문일까?

그의 작품세계는 깊고 디테일하면서도, 절묘하게 이쪽, 저쪽의 시각들을 잡아낸다.

 

북한의 공산주의화 과정에 대한 일단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밤은 노래한다' 를 살펴보면 그의 균형감각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상당히 민감한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사상적, 정치적, 역사적 균형감각을 절묘하게 유지하며 물 흐르듯 흘러나가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들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시대의 작가로서 가지고 있는 작가주의와, 그 와중에도 '재미' 를 듬뿍듬뿍 담아 독자들을 배려한 대중주의의 절묘한 균형감도 대단하다.

 

마치 한편의 추상화를 연상케 했던 김연수 작가의 초기 단편들이나 '꾿빠이 이상' 같은 장편을 보면, 그가 가지고 있는 이 탁월한 균형감각은 나이를 먹고 경험과 사색을 통해 획득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런가 하면, 무심한 척하지만 시대상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능력이 돋보이는 김중혁 작가도 있다.

김중혁 작가는 김연수 작가에 비해 정말 소작(?ㅋㅋ)하는 작가이다.

지금까지 나온 책은 '펭귄뉴스' 와 '악기들의 도서관'  요 단편집 두 권이 다다. 아마 여러 문집등에 단편들을 중심으로 기고하셨겠지만, 그의 톡톡튀는 단편들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너무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김중혁 작가의 단편들은 무척이나 소소하고 평범한 듯 하지만, 디테일과 캐릭터들이 생동감 있다.

특히, 그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펭귄뉴스' 의 경우에는 그가 가지고 있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스토리 텔링의 재능과 시대상을 가감없이 담아내는 통찰력을 엿볼 수 있다. 

독특한 건, 그의 단편들엔 '사랑' 이야기. 특히 '로맨스' 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떻게, 그런 소재가 들어가지 않으면서도 그토록 재미있을 수 있을까?? 

 

 

 

난 사실 김연수와 김중혁이라는 작가의 관계를 잘 몰랐다.

애초에 엣세이류를 거의 좋아하지 않아서, 김연수 작가나 김중혁 작가의 엣세이 형식의 기고들을 거의 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너무나 다른 작품세계를 가지고 있는 이 두 작가가 국딩시절부터 알고지냈던 절친이라는 사실에 그야말로 깜놀!!!

게다가, 이 작품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듯, 영화에 대한 엣세이를 릴레이처럼 이어간 작품집이라는 사실에 또 한번 깜놀!!!

 

내가 엣세이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소설 원작인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 이유랑 비슷할 것이다.

소설을 통해 상상하는 작가를, 엣세이를 통해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것은 큰 도박이기때문이다.

김연수 작가의 경우는 왠지 아웃사이더적이면서도 반항적이고, 그러면서도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김중혁 작가의 경우는 의외로 진중하면서, 따뜻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자기만의 세계를 만끽하는 사람이어야 했다.

 

허나 이게 왠일.

 

엣세이를 주고받는 이 둘의 모습은 그냥 '애들' 이었다. ㅋㅋㅋㅋ

안되, 이건 뭐야!!

김연수 작가는 [밤은 노래한다] 의 김해연의 모습이어야 했다. 이름도 비슷하잖아. 아니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에서 강시우를 바라보고, 정민을 바라보던 '나' 여야 했다.

김중혁 작가는........................

그래, 솔직히 김중혁 작가는 내가 상상하던 이미지와 거의 비슷했다..ㅋㅋㅋㅋㅋ

엉뚱한 것들을 발명해내는 이눅씨처럼, 그는 엉뚱하지만 따뜻한 사람. 그러면서 로맨스와는 꽤나 거리가 있는..ㅋㅋ

 

김연수 작가와 김중혁 작가는 정말 절친의 모습 그대로, 서로를 흉보고 말꼬리를 잡고 말장난을 치면서 영화에 얽힌 각자의 추억들을 풀어낸다.

 

아, 이런 영화 리뷰도 있구나 싶었다.

솔직히 리뷰라기 보다는 그냥 영화에 얽힌 소소한 이야기들이다.

 

결국 소설이란 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고, 영화라는 것도 사람 사는 이야기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들이 그 얼마나 다르겠는가.

그닥 신통할 것도, 신기할 것도 없는 두 작가의 재미난 이야기.

 

생각없이 빠져들면, 대책없는 해피엔딩이다.

 

문득, 김중혁이라는 친구가 있는 김연수 작가와 김연수라는 친구가 있는 김중혁 작가가 쬐끔. 아주 손톱만큼 부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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