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 - 세계가 열광한 IT 창조자 직업 인물 학습만화 꿈의 멘토 1
최재훈.황재희 지음, 코믹 팜 그림 / 웅진주니어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웅진은 내가 국민학교(이래뵈도 나도 국민학교 시절이었다.)때부터 유명했던 학습만화 브랜드였다. 계몽사와 더불어 양대산맥이었던 웅진은 과학 학습만화와 역사만화 등등에서부터 일찌감치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계몽사가 인수합병과 여러가지 사건으로 다른이름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모였다를 반복하는동안, 웅진은 여러 컨텐츠로 꾸준하게 아동시장을 공략하며 예림당, 북21과 함께 꾸준한 학습만화의 강자로 자리매김 하고있다.

 최근 '애플' 의 바람이 거세게 불면서 스티브 잡스라는 한 사람의 인생에 대한 분석이 다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특히 스텐포드 대학 졸업 연설은 그의 각종 프로모션 동영상들과 함께 UCC의 최고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학습만화는 바로 그 스티브 잡스의 '스텐포드 대학 졸업 연설' 에서부터 시작한다.감동적인 그의 연설에서 시작하여, 그의 과거를 훑고, 다시 그의 연설로 마무리 짓는 플롯을 가지고 있다.10~12페이지가 한챕터로 구성되어 있고, 총 10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각 챕터별로 잡스의 인생이 차분히 그려지며, 챕터 말미마다 어린이들의 학습효과를 위한 참고 페이지가 들어가 있다. 이 참고 페이지 역시 여러 일러스트들로 쉽고 상세하며 재미있게 각종 개념이나 생소한 IT 언어들이 소개되고 설명되고 있다. 잡스가 꿈을 이룬 실리콘 베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나 컴퓨터의 각 부품과 역할, 그리고 여러 상식들이 생각보다 아주 깊이있게 소개된다.

이 책을 접하니, 문득 나 역시 어린시절 만화로 보았던 여러 위인전기들이 생각난다.

그땐 사실 그 만화책들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지금 보면 글 반, 만화 반. 솔직히 '만화' 라고 보기도 어려운데 말이다.

이 작품은 만화 와 글의 부분이 명확히 구분된다.

만화는 만화답게, 설명은 여러 일러스트들이 포함되어있지만 설명답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아주 어린 친구들에겐 그닥 큰 인기를 끌지는 못할 것 같다.

애초에 '스티브 잡스' 라는 인물에 관심을 가질만한 연령대라면 최소한 초등학교 이상은 되야 할 것 같다.

아무래도 '애플' 로고가 새겨진 전자기기를 다룰만한 아이들이나 관심을 갖게 되지 않겠는가??

아마 많은 아니들이 '닌텐도' 는 알아도 '애플' 은 잘 모를테니 말이다.

 

하지만, '위인전기' 를 보는 연령대라면 충분히 추천할 만 하다.

어린 아이들이 '훈민정음' 을 몰라도 '세종대왕' 의 위대함을 배울 수 있고, '라듐' 이나 화학식을 몰라도 '퀴리부인'의 위대함을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오히려 스티브 잡스는 그들보다는 더 익숙하게 다가올 법 하다. 잡스는 엄연한 '현대인' 게다가 아직 생존해 있는 인물이고, 앞으로도 위대한 업적을 남길 것이며, 라듐 보다는 익숙한 '컴퓨터' 의 선구자이니 말이다.

 

 



 

 

애초에 시리즈를 염두에 두고 만든만큼 양장본으로 튼튼하게 제본되어 있고, 볼륨감도 상당하다.

202페이지. 대부분의 학습만화들이 150페이지 안팎인데 비하면 상당한 두께이긴 하다.

아이들은 같은 책을 수십번이고 되풀이 해서 본다. 본데 또보고, 본데 또 봐도 항상 새로워하고, 항상 재미있어 한다.

때문에, 왠만큼 튼튼하지 않으면 쉬이 배겨내지 못한다.

 학습페이지 부분은 챕터 사이에 8페이지 안팎으로 생각보다 풍부한 상식들이 알차게 들어있어서, 나도 처음 알게 된 것들도 있었다.

낱말맞추기, 정답찾기, 도표 등 쓸 수 있는 모든 방법들이 구상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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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 -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그 두 번째 이야기
엘리자베스 길버트 지음, 노진선 옮김 / 솟을북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이 작품은 에세이라기 보다는 전문서적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하다.

정말 끔찍한 결혼생활을 했고, 그보다 끔찍한 이혼과정을 거쳤으며, 정말 오랜 시간동안 그 상처를 치유했던 이제 40대에 가까워진 여성이 '결혼' 에 대한 진정한 의미와 본질을 찾아나가는 내용이니, 이보다 더 진정성이 담길 수는 없을것이다.

 

세상에 수많은 소설들이 존재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수의 작품들이 솟아나고 있지만, 그 어떤 작품이든 작가가 '진정성' 을 담으면 그 작품은 최소한 범작 이상이 된다.

작가가 독자를 기만하고, 우롱하는 순간 작품은 졸작이 되고, 망작이 된다.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아무런 기대 없이 자신의 이혼과정과 그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 나갔다.

남성잡지 전문 기고가이기도 했던 제법 와일드한 여성이었던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그렇게 담담하게, 일기처럼 써내려갔던 글이 전세계 40개국에 번역될만큼 어마어마한 베스트 셀러가 될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진정성' 이 가진 놀라운 능력이다.

 

사람은 사람을 속일 수 있다. 생각보다 아주 쉽다.

사람을 속이는 걸로 수천만원, 어쩌면 수억원까지 벌 수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수천만명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는 없을터.

조앤 롤링이 '해리포터' 를 어떤 마음으로 써내려 갔는지 생각해 보면 '진정성' 의 의미를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어린 아이를 위해, 사랑하는 마음으로 써내려 갔던 그녀의 글 역시 엄청난 사랑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롤링이 해리포터의 후속편을 계속 낸다면, 그 진정성은 분명 훼손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존의 해리포터 팬들은 물론 반기겠지만, 작품 본연의 힘을 빛을 잃으리라고 생각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해라'(이하 '먹기사') 의 엄청난 성공 이후,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엄청난 중압감을 가지고 쓰고있던 원고를 바라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더이상 전과 같은 글을 쓸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고백한다.

베스트 셀러 작품을 낸 작가들은 대부분, 진정성을 잃고 전작의 흥행에 기댄 상업적인 작품을 후속작으로 내면서 가지고 있는 재능을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묻혀져 버리고 만다.

 

비록, 난 '먹기사' 를 읽지는 못했지만, 처음 책장을 넘기면서 그런 부분을 확실하게 염두에 두었다는 사실을 고백하겠다.

그저 그런 칙릿 소설에 불과하거나, 페미니스트의 과격한 단어가 주축이 된 망상들이 가득한 에세이에 불과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첫장을 넘겼다는 사실 또한 고백하겠다.

그리고, 그 예상이 책의 1/3까지는 대강 들어 맞는 듯 해서, '그럼 그렇지' 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는 사실 역시 고백해야겠다.

 

현대사회에 '결혼' 이란 점차 그 의미가 완벽하게 '변화' 하고있다.

한국에서도 이미 혼전동거가 급속도로 늘고있고, 결혼식을 치르지 않은 사실혼 상태의 미혼커플들도 생각보다 훨씬 많다.

이 변화의 주된 원인은 여권신장에 있다.

여성들이 경제력이 강해지고, 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지극히 남성에게만 유리한 룰이었던 '결혼' 의 형태는 급속도로 바뀌어가고 있다.

결혼이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지 예측하는 것은 쉽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그러한 변화가 지속되어 왔고, 앞으로도 급속도로 진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자신의 경험과 수많은 연구자료를 토대로 '결혼' 에 관해 고찰을 시작한다.

분명 그녀는 결혼에 대해 엄청난 상처와 거부감을 갖고있다는 사실을 전재해야겠다.

그렇기 때문에 책의 거의 대부분은 결혼의 부정적인 부분이 아주 체계적으로 서술된다.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의 불합리성, 비논리성, 거기에 비인격성까지 낱낱히 파헤쳐진다.

 

내가 만나온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었다.

환상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정도의 기대를 품고 있었다. 남자 또한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 환상이나 기대치가 100이라고 가정했을때, 여자는 결혼하는 순간 이 기대치가 거의 20까지 떨어지는 반면, 남자는 80정도까지만 떨어진다.

그 후가 더 문제다.

이미 우리 사회 자체가 남성중심이기때문에 결혼한 여성에게 너무나 많은 희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 엄청난 차이를 막연하게나마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남자이기 때문에 어머니를 보면서 느끼는 것보다, 아버지를 통해 느끼는 것이 많다.

난 결혼하면, 어떤 남편, 어떤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내 아내가 될 사람에겐 우리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수십년동안 남편과 남자의 역할은 변하지 않았지만, 여자의 역할은 정말 엄청나게 변화했는데도 말이다!!!

결혼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이 여인의 글이 아니었으면, 난 아마 영원히 몰랐을터다.

그녀들은 '결혼' 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론 답은 없지만, 어떤 과정을 통해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 단편적으로나마 알아챌 수 있다.

적어도, '아 내가 어떻게 해야겠구나, 어떤 생각을 가져야 겠구나' 정도는 말이다.

물론 내가 겨우 이 텍스트 하나로 여자들을 이해할 수 있다는 어처구니 없는 생각따윈 하지않을 것이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먼저, 엘리자베스 길버트는 진정한 결혼의 의미에 대해 체계적인 고찰을 시도한다.

아직 원시풍습을 가지고 있는 동남아 오지의 소수부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결혼에 대해 듣기도 하고, 함께 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실패했던 결혼과 비교해 보기도 한다.

그들의 가지고 있는 결혼의 의미와 마음가짐, 자신이 가졌던 결혼의 의미와 마음가짐을 비교해보고, 그 차이가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따져본다.

시간과 환경, 모든게 다르지만 두 남녀가 한 가정을 이루고, 한 공동체의 일원이 된다는 본질은 같기때문에 차이점을 비교하긴 오히려 쉬웠다.

그리고 미국의 결혼관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여러 통계들을 바탕으로 보여주고, 변화의 이유와 의미를 논리적으로 열어놓는다.

'여성의 입장' 에서 말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이 책 역시 저자의 진정성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녀는 자신이 내세우는 수많은 가설들과 스스로 내린 결론들이 오류가 있을 것이고, 위험한 발상인 경우도 있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설사 자신의 이야기가 설득력을 잃게 된다해도 독자들이 함정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보편타당하고 공감을 가질만한 결론을 내림으로서, 스스로에게 '결혼' 에 대한 금제를 푸는데 성공한다.

 

 

결혼.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와 수십년을 함께 살기로 '약속' 하는 것이다.

솔직히 난 상상만으로도 아찔하다.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 사는건데 뭐 어떠냐...고 되묻기엔, 할만큼 경험은 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많은 희생과, 얼마나 많은 양보가 필요할까.

 

이 책은 그런 아찔한 항해에 상당한 조력자가 될만하다.

결혼에 대해 마치 무한의 우주에 떠다니는 미지의 행성같이 생각했던 내게 조금은 구체적인 사진을 보여주긴 했으니 말이다.

 

분명 어렵고 복잡하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고통과 고난이 뒤따를 것이다.

난 잠자리도 엄청 예민하단 말이다!!!!  이정도는 애교 수준인 고통과 고난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선택하고, 누군가에게 선택되어 평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것에 사회적인 약속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뿐이다.

 

1년에 한번씩 이 책을 읽고, 결혼한 뒤에도 이 책을 1년에 한번씩 배우자와 함께 읽을 수 있다면,

 

결혼해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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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2disc)
이준익 감독, 백성현 외 출연 / 프리지엠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때는 조선시대 선조임금 시대.

조선조를 통틀어 세손가락 안에 꼽히는 무능한 임금인 선조의 시대는 당쟁이 가장 극심했던 시절로서, 동인과 서인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시절의 당쟁은 얼마나 심했나면, 지금의 여야갈등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어떤것도 양보하지 않고 서로를 반대하며 물고 늘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동인 출신이었던 정여립의 사건이 발발한다.

지방에서 '대동계' 를 조직해 무술훈련을 시키던 정여립은 서울로 침범하여 한다는 고발을 당해, 관련자들이 체포 당하자 도망을 쳤으나, 관군에 포위당하자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이 사건을 이용해 실세를 잡으려는 서인들은 평소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동인들을 관련자로 몰아 마구잡이로 역모로 몰아부쳤고, 사건의 진위와 관계없이 수많은 동인 출신 실세들이 처형당하거나 유배당했다.

 

이 영화는 바로 이시기.

정여립의 죽음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동계의 일원이었던 '이몽학'과 봉사인 '황정학' 의 갈등이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이다.

정여립이 죽자 황정학은 대동계를 해체시킬것을 주장하며, 조직을 떠나지만, 이몽학은 조직을 존속시키며 다음 방향을 제시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갈등속에 이몽학에게 아버지를 잃은 서자 '견주' 와 이몽학의 연인인 기생 '백지' 가 얽히게 된다.

 

 

 

이 작품은 본디 동일한 제목의 만화책이 원작이다.

한국 만화계의 뛰어난 작가들 중 한분이신 박흥용 선생의 원작 만화책은 주인공 '견주' 가 혼란한 시대속에서 스승을 만나고, 검을 배우고, 여자를 품으면서 진정한 의미의 자유, 즉,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을 절묘한 호흡으로 그려낸 명작중의 명작이다.

 

하지만, 영화는 완벽하게 다른 작품으로 보는게 옳을 것 같다.

'원작' 이라고는 하지만, 영화와 책이 품고있는 메시지와 그 전달 방법은 완벽하게 다르다.

캐릭터와 시대배경, 그리고 제목을 빼면 완전히 다른 작품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캐릭터도 이름이나 배경만이 같을뿐, 그 개성이나 특징은 모두 다르다.

 

애초에 비교할래야 비교할 수가 없다.

 

확실히, 이준익 감독도 정말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원작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은 한 개인의 깨달음의 과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구조 자체가 단순하다.

견주와 황정학의 만남은 필연보다는 우연에 가깝고, 이몽학과의 관계는 스승인 황정학이 한때 연을 나눈 사이에 불과하다.

그리고 황정학은 이몽학에 대해 이제 완벽하게 방관하는 입장에 불과하다. 

백지는 견주의 첫 여인이자, 잃을 수 밖에 없는 첫사랑이고 이몽학과는 단 한번도 마주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구조를 이준익 감독은 이몽학과 황정학에게 첨예한 갈등을 밀어넣고, 견주를 이 둘의 중심에 밀어넣음으로서 보다 농밀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게다가 이몽학에게 견주의 아버지를 죽이게 함으로서 황정학과의 접합점을 만들어 냄으로서, 황정학과 견주의 만남에 필연성을 부여한다.

백지 또한 마찬가지.

이몽학과 백지를 연인으로 만듦으로서, 이몽학 - 황정학+견주 - 백지 라는 안정적인 긴장의 삼각관계를 이끌어낸다.

이 안정적인 삼각관계 속에서 그의 이야기는 생동감과 함께 설득력을 얻어낸다.

 

 

이런 시대극을 보면 항상 이상한 감정이 들끓는다.

이 시대보다 단순한 사고를 필요로 했지만, 보다 큰 열정이 필요했던 시대.

삶에도, 사랑에도 '열정' 만이 가장 큰 가치였던 시대.

하지만, 아무리 열정이 크고 강렬해도, '신분' 이라는 벽 앞에서는 벌레보다, 먼지보다 못해지던 시대.

 

이몽학과 황정학이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사가 떠오른다.

 

이: 우리가 같이 살자고 꾼 꿈이... 이 길 아니오?

황: 아, 아니여, 아니여. 이건 다 같이 죽는 꿈이여...

이: 난 이 꿈을 깨고 싶지 않고.

 

 

그리고, 이몽학과 백지가 나누는 마지막 대사 역시 떠오른다.

 

이: 이건 꿈이지??

백: 당신 꿈안에는 내가 없는거지? 내 꿈안엔 당신이 있는데.

이: 미...미안해 백지야...

백: 꿈에서 만나, 꿈에서 만나. 꿈속에서 만나.

 

 

이 작품안에서 이몽학은 '꿈' 을 대표한다.

백지는 견주에게 '넌 이몽학에게 안되' 라고 이야기한다.

격분해서 왜 자신이 이몽학에게 안되냐고 묻는 견주에게 백지는 '넌 꿈이 없잖아.' 라고 말한다.

이몽학의 '꿈' 은 세상을 바꾸고픈 열정이다. 혹은 권력에 대한 욕심이기도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가 말하는 꿈은 Dream 이자, Hope 이다.

 

 

원작에서 '달' 은 진정한 자유, 진정한 자아였다.

그리고, 그 달을 가리는 구름은 오기와 자존심이었다. 스스로 한계를 만들고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며, 항아리 안에 가두는 것들.

자존심. 오기.

원작에서의 견주는 자존심을 산산히 깨뜨리며 스스로가 작은 존재임을. 약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자신의 한계를 모르기에, 더 좁고 작은 틀 안에 스스로를 가두어두고 있었던 스스로를 깨닫는다.

신분제 사회속에서 서자로 태어난 설움. 따돌림당하며 살아왔던 수많은 날들은 그에게 어줍잖은 자존심과, 쓸데없는 오기만으로 길러주었고, 그것들은 스스로를 가두는 좁디좁은 항아리에 불과했던 것이다.

 

 

영화에서의 달은 무엇이고, 구름은 무엇일까?

영화에서의 달은 '삶' 이다.

그리고 '구름' 은 헛된 욕망으로 물든 잘못된 꿈이다.

 

이몽학은 구름도, 달도 아니었다.

잘못된 꿈을 쫓아간 가여운 사내였다.

 

문득.

나는 달인가, 구름인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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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들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자, 먼저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작품은 호불호가 완벽하게 나뉠만한 작품임을 전제하겠다.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

 

지금까지 킬러가 등장하는 소설은 정말 숱하게 있어왔다.

소설 뿐인가, 만화, 게임, 영화...

'킬러' 라는 소재는 이미 그 소재 자체로 하나의 컨텐츠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작가는 '킬러' 라는 소재를 꺼내든 순간, 그 모든 기존의 작품들에 선전포고를 하게 된다.

기존의 작품들에 대한 선전포고.

즉, 우리가 흔히 '클리셰' 라고 부르는 진정한 넘사벽과 진검승부를 하게 되는것이다.

이 승부의 향방은 딱 그거 한가지에서 갈린다. 넘사벽을 넘을수 있느냐, 없느냐.

'넘사벽' 이라는 신조어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면, 이 작가가 이 벽을 넘으려면 최소한 '사차원' 이상이어야 한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을터다.

작가가 사차원을 넘는 역량이라면, 수많은 독자들은 이 작품에 '신선하다' 는 평을 쏟아낼 것이고, 삼차원정도에 머문다면 '진부하다, 어디서 많이 본 듯 하다' 는 악플로 도배될 것이다.

 

 

'킬러' 라는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사람을 죽이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

죄인의 목을 베는 망나니 같은 사람이나, 군인, 경찰같은 직업이 아니다.

'직업' 이란 자신의 행위를 통해 이득을 창출하는 것이잖은가?

말 그대로, 누군가를 죽여서 그 댓가를 받아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바로 킬러들이다.

 

"돈을 받지 않고 사람을 죽인 적이 있나?" 이발사가 물었다.

"아뇨, 한 번도. 지난밤에 몇 명 찌르긴 했는데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래생이 말했다.

"자네가 나에게 죽는 마지막 자객이겠군. 내가 돈을 받지 않고 죽이는 첫번째 자객이고."

p. 380

 

자, 위에 '이발사' 와 '래생' 의 대화를 보면 확연히 이해가 갈 터.

킬러란 그런 직업이다.

도덕, 윤리. 이딴거 다 무시하는 차가운 정산이 가능한 직업.

어떤 일을 되풀이하다보면, 그 일에 대한 감정들이 잦아들기 마련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강렬한 감정인 '사랑' 도 때가 되면 잦아들듯이, 죄책감 또한 마찬가지일 터.

비록, 인간이 도덕, 윤리는 무시해도 죄책감은 무시할 수 없겠지만, 결국 그것도 무뎌질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는다. 세상에 죽지 않는 인간은 없다.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죽음을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큰 병에 걸리거나, 사형선고를 받는 등, 어떤 식으로든 죽음이 임박했을때만 죽음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아마도, 인간의 뇌가 가지고 있는 일종의 자기방어 기제일 것이다.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 매일매일, 매 시간마다 죽음을 인식한다면, 그 공포때문에 삶 자체가 어려울 것 아닌가?

 

이 작품은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일을 업으로 삼고있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남을 죽이는 일을 직업으로 함으로써, 우리같은 평범한 인간들보다 더욱 자주 죽음을 인식하며 살아갈 것이다.

 

목표물을 제거하듯, 자신도 반드시 제거당할 것임을, 그리고 그건 어느순간 벼락같이 찾아올 것임을 뚜렷이 인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 하루하루를. 정말 '하루' 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단지 오늘 하루 살아있음에 만족하는 삶을 과연 정말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래생에게는 기회가 있었다.

죽음과 맞닿아있는 '하루' 를 버리고, '내일' 을 바라보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가 분명, 두번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두번의 기회 모두를 저버렸다.

 

책장을 덮고 나서 래생이 두번이나 그 기회를 저버렸을까, 계속 고민했다.

왜? 왜, 대체 왜?

왜 래생은 시궁창 같았던 피로 얼룩진 과거를 버리지 못했을까?

완벽하게 새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기회였다.

한번은 평범하게 행복을 꿈꿀 수 있는 삶이었고, 마지막 한번은 그동안의 삶 전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다른 사람을 죽이고, 누군가의 복수를 할 만큼의 용기와 애정이 있었으나, 그는 내일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다.

그의 삶속에서 '내일' 이 존재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내일' 은 오늘과 다를 것이고, 내일을 위해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나갈 힘이 없었다.

'내일' 이 기대만큼이 아니었다면, 내일 또 '오늘' 이라는 하루를 치열하게 이겨내어서 또 다시 '내일' 을 기대할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 그것을 희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래생의 삶 속에는 '희망' 이 없었다.

희망이란 것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에, 앞으로도 희망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희망이란 그렇게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책을 덮은 뒤, 난 기꺼이 찬사와 호평을 날리는 쪽에 붙었다.

이 작품은 킬러가 등장하는 그 어떤 소설들과도 완전....완전....다르고 새롭다고는 못하겠지만, 정말 대단히 신선한 느낌임은 사실이다.

 

소문만 들은 '캐비닛' 은 남들이 칭찬하고 안달복달하면 나만은 쿨한척 무시하고 싶어지는 별 그지같고 생뚱맞은 기질때문에 읽어보지 않았지만, 김언수라는 작가가 왜 그토록 많은 작가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는지 충분히 알 것 같다.

 

이 작품은 단순하게 말하자면, 피비린내나는 낭만소설이다.

 

이야기의 흐름과 정서가 완벽하게 상이하지만, 그 조합이 신기할정도로 조화롭다.

마치, 오우삼 감독의 '페이스 오프' 라는 영화에서 등장했던 감미로운 클래식이 배경음으로 깔렸던 처절한 총격씬을 처음 봤을때의 느낌이다.

그 부조화의 조화로움에 대한 경이, 경탄.

올리브 오일 파스타에 김치를 얹어먹었을때의 감탄과 비슷하달까?

 

책의 뒷장에 적혀있는 권여선 소설가의 추천사처럼 우아하면서 앙증맞고, 흥미진진 하면서 숭고하다. 모순적인 조합의 완벽한 조화이다.

게다가 그 글장난은 또 어떤가.

한없이 우울하게 만들다가도, 툭툭 던져지는 글장난들은 한없이 키득거리게 만든다.

등장인물들은 또 어떤가.

한명 한명이 모두 개성적이고 사랑스럽기 짝이없다.

 

한가지 부탁이 있다면,

김언수 작가님.

성함이 비슷하신 김연수 작가님만큼 다작해 주시길.

조만간 캐비닛도 후딱 보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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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시오페아 공주 - 現 SBS <두시탈출 컬투쇼> 이재익 PD가 선사하는 새콤달콤한 이야기들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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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장편과 단편 중, 장편만 주구장창 읽어댔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그냥 읽는것 자체가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고, 작가의 이야기속에 정신없이 매몰되는 느낌이 좋았기 때문일수도 있다.

단편은. 말 그대로 감질났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5권 이하짜리 책은 쳐다도 안본 것 같다.

이문열 작가의 '변경' 을 통해 느꼈던 장편의 몰입감. 제발 이 책이 100권까지 이어졌더라면...하는 마음까지 갖게 했었다.

조정래 작가의 '태백산맥' '아리랑' 도 마찬가지.

 

그러다가, 단편의 즐거움을 알게 됐는데, 무려 고등학교 수능 모의고사 시간이었다.

언어영역, 국어 시험지에 알퐁스 도데의 '별' 이 지문으로 실려있었다. 황순원 의 '소나기' 도 일부, 그리고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 도 일부.

거기에 염상섭의 '삼대' 도 일부,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 도 일부...

 

아마 시험지의 지문만큼 집중해서 읽는건 없으리라.

 

난 순식간에 이야기와 문장속으로 빠져들었다.

시험이 끝나고, 국어 교과서와 문학 교과서를 마치 소설책 읽듯이 줄줄 읽어내려갔고, 몇번을 읽었더랬다.

당연히, 언어영역 국어 시험도 엄청 잘봤다. ㅋㅋ

 

단편의 즐거움은, 압축과 합축, 생략과 여운에 있다.

짧기 때문에,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정서가 쭉 유지된다는 것도 강점이다.

그리고, 반전의 미학도 빼놓을 수 없다.

 

미국 철강산업의 아버지인 '철강왕' 카네기가 이런 말을 했다.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재능이다. 하지만, 복잡한 것을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재능이다.'

 

대학교 졸업반때, 졸업 작품을 만들기 위해 28페이지짜리 단편만화를 그리기 위해 두통을 느낄 정도로 고생했던 기억이 난다.

A4 두매나 되었던 스토리를 압축해야 했다. A4 의 반정도까지 압축해야 만화로 28페이지가 나올 수 있었다.

두바닥을 꽉 채운 스토리를 반매로 압축하는 일은 정말 미친듯이 괴로웠다.

그렇게 간신히 반매로 압축했지만, 콘티를 짜보니 무려 36페이지가 나왔다.

8페이지를 더 줄여야 했다.

 

단편은 그렇게 절제와 함축을 통해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의미를 도출해낸다.

짧기때문에 등장인물은 적고, 장르는 다양하다.

평소에 안해본 시도를 해 볼 수도 있고, 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아낼 수도 있다.

 

'카시오페아 공주' 는 다양한 장르의 단편들이 모여있는 종합 선물세트 같은 작품이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작가가 할 수 있는 모든 시도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들을 다 해보고 싶었던 듯 하다.

표제이자 첫작품인 '카시오페아 공주' 는 미국 드라마처럼 조금 뻔하게 전개되지만, 따뜻한 감성을 전달해 주다가,

다음 작품 '섬집 아기' 에서는 엄청난 흡입력을 보여주는 호러물로 진을 빼놓는다. 정말 등골이 오싹하고 천장을 바라보기 힘들 정도로 소름끼친다.

그러다가 '레몬' 이라는 작품으로 조금은 통속적으로 느껴질수도 있는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담담하게 흘러나오고,

'좋은 사람' 에서는 소름끼치도록 잔인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느껴진다.

그리고, '중독자의 키스' 는 가슴한켠이 따뜻해지는 정통 로맨스의 모습을 느껴볼 수도 있다.

 

일단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느낌은, 상당히 시각적이고 스펙타클한 묘사에 강하다는 점이다.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처음 접해봤는데, 이래서 그의 작품중에 영화화 된 것이 많구나 - 싶을정도로 플롯이 단순하고 경쾌하면서도 박동감이 넘치고 묘사가 생생하다.

그렇기에 위에 간략하게 설명했던 각 작품들의 따뜻한 감성, 오싹한 소름끼침, 담담한 사랑이야기, 잔혹한 서스펜스 스릴러가 정말 생생하게 느껴진다.

마치 영화를 보듯 눈앞에 펼쳐지는 듯 하다. 

 

단편들은 '짧다' 는 특성때문에 '이야기' 의 전달보다는 '감성' 과 '정서' 의 전달에 주력한다.

때문에, 플롯이 단순해지는 대신 문장들은 수많은 압축과 함축을 담게 되는데, 말 그대로 '한 줄' 도 버릴 것 없이 플롯에 단단하게 매여있다.

배경묘사와 동작묘사 같은 문장들에도 모두 일관성과 통일성을 갖고 짜여진다.

이런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재익 작가의 작품은 장르를 넘나들지만 일관적으로 가지고 있는 문장들이 뭔가 동적인 느낌을 준다.

 

문득, 이 작가분이 당대 최고의 낮 라디오 프로그램인 '두시탈출 컬투쇼' 의 담당 PD라는게 떠올랐다.

물론 이 라디오 프로그램이 최근 몇년간 최고의 청위율을 자랑하는게 지들이 잘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정찬우씨와 김태균씨ㅋㅋ), 생동감 있는 대본에는 컬투쇼의 작가진과 이재익 담당PD가 한 몫 할 것이라는 것은 자명하다.

 

박동감 넘치는 경쾌한 필치로 그려내는 판타지와, 호러, 따뜻한 사랑이야기와, 스펙타클한 스릴러.

골고루 느낄 수 있는 종합 선물세트도 같은 작품.

뭔가 신선한, 그리고 생생한 자극을 원하시는 분들께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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