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랜턴 Green Lantern : 시크릿 오리진 Secret Origin 시공그래픽노블
제프 존스 지음, 이규원 옮김, 이반 레이스.오클에어 알버트 그림 / 시공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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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우리나라에 미국의 히어로가 찾아든 것은 헐리웃 영화를 통해서 였다.
"슈퍼맨" "배트맨" 과 같은 히어로들은 지금 보면 조악하기 짝이없지만, 당시에는 컬쳐 쇼크에 가까울 정도의 영상기술로 스크린 안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응징했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나 박쥐 마스크를 쓰고 시커먼 망또를 둘러맨 배트맨의 외견은 유치해 보였으나, 그 스토리는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슈퍼맨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배트맨은 자신의 마음속 깊이에 위치해 있는 죄책감과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영상 기술은 보다 더 발전했고, 우리는 보다 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발 맞춰서 미국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 문화의 본질, 슈퍼 히어로의 코믹북과 그래픽 노블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생소한 슈퍼 히어로인 '그린 랜턴' 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은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인 동시에, 그린랜턴은 슈퍼맨, DC의 경쟁사인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등 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국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그린랜턴인 '할 조던' 이 어떻게 그린랜턴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눈 앞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 아버지를 목격했던 할 조던.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동경했던 하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지만, 남편을 잃게 한 하늘과 공군을 그의 어머니는 좋아할 리 없었다. 할 조던은 어머니와 형, 동생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하게 된 할 조던은 가족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작은 지역 항공사에 취직하게 되고, 항공사의 여 사장이자 소꼽친구이기도 한 '캐롤 패리스' 와 대립하게 된다.
한편, 지구를 포함한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전사인 그린랜턴 '아빈 수르' 는 우주선에 악당인 '아트로시터스' 를 태우고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언을 접하고 그 악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구에 다다랐을 무렵, 아트로시터스는 아빈수르를 공격하여 우주선을 탈출하고, 아빈 수르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우주선이 사람이 없는 황무지에 추락시키기 위해 남은 생명력을 짜낸다. 우주를 수호해야 하는 그린랜턴은 한시도 공석이 되면 안되기 때문에, 의지가 있는 그린랜턴의 반지는 임무를 물려받을 지성체를 찾아나서고, 그 대상으로 할 조던이 선택된다.
할 조던은 아빈 수르의 임무를 넘겨받아 그린랜턴이 되기로 하고, 우주 어딘가에 있는 그린랜턴의 훈련소에서 짧은 훈련을 마친 뒤 지구로 복귀한다.
지구로 돌아온 할 조던은 아빈수르의 제자이자 다른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그린랜턴인 '시네스트로' 를 만나게 된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은 2009~2010 미국 DC의 메인 이벤트인 '가장 어두운 밤(Blackest Night)' 의 중심 캐릭터인 그린랜턴의 기원에 대한 내용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시리즈를 위한 미드의 파일럿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아빈수르의 지구행에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조던이 그린랜턴이 된 원인이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었고, 이 작품 '시크릿 오리진' 에서 '가장 어두운 밤' 을 이끌어 내는 복선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들은 미국 만화의 시스템을 모르시는 분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랜턴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된다.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될 것이고, 이 작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영화를 보기 전에 한번쯤 봐두면 좋을 듯한 작품이다. 아마 영화에서도 특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의 내용을 많이 차용해서 각본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와 할 조던이라는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우주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외계의 다른 그린랜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국 히어로들과 그린랜턴이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강추!
 
 

 
무엇보다 번역이 참 좋다. 화면에 잘 안보이지만, 이렇게 칸 아랫부분에 작품에 관련된 여러가지 해설들이 적혀있다.
그린랜턴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 미국 만화 자체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매끄러운 번역은 물론, 미국 만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려는 번역자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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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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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덜 성숙되었다는 뜻의 이 명칭을 난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법적인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나이' 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미성년' 이라는 말은 언제나 '미성숙' 이나 '미완성' 을 떠오르게 하는데, 과연 인간이라는 존재가 완전한 성숙에 이를수가 있기는 있단 말인가??  이 작품은 이제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은희경 작가가 자녀들을 위해 쓴 작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법적으로 성인에 도달하지 못한, 흔히 '질풍노도의 시기' 라고 불리우기도 하고, '2차 성징' 이라는 것이 나타나기도 한다는 -아, 요즘 아이들을 훨씬 더 빠르니, 이건 패스. 평범한 남녀공학 고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이야기이다.

 

등장인물은 그리 많지 않다.

전형적인 인물 중심의 플롯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은 애초에 그리 많은 등장인물이 필요하지 않다.

주인공인 연우. 마치 은희경 작가의 페르소나처럼 느껴지는 이혼녀인 연우의 엄마 민아. 민아의 애인인 재욱과 연우의 절친이 되는 태수. 태수의 1살터울 여동생 마리. 그리고, 작품의 가장 큰 축을 떠맡고 있는 동급생 채영.

인물 중심의 작품답게 작품속에 등장하는 인물 한명, 한명은 작가의 고심과 애정이 뚝뚝 묻어난다.

평범하지만 섬세한 연우. 미국에서 거친 방황의 시기를 보냈던 태수. 전형적인 모범생 마리. 그리고 일본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채영.

 

솔직히 소감을 딱 한마디로 말하면, '기대 이하' 라고 잘라 말할 수밖에 없다.

안타깝지만, 진심이다.

이 작품을 개인적으로 '기대 이하' 라고 자른 이유는 이야기의 가장 큰 축을 맡고 있는 연우와 채영이라는 캐릭터의 진부함과 전형성 때문일터다.

이 두 캐릭터는 위에 언급한대로 최근의 일본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듯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은희경 소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일본의 라이트 노벨 느낌이다.

여기서 채영의 캐릭터는 일본에서 유행하는 인물은 '츤데레' 의 모습을 꼭 닮아있다. 한편, 매사에 의욕없고 연약한 연우의 모습은 역시 일본에서 유행하는 초식남의 그것을 꼭 닮아있다. 작품을 읽는 내내 숱한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번득여서 작품에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물론 연우라는 캐릭터는 또렷했다. 어디로 튈 지 모르는 태수의 캐릭터도 매력적이었고, 채영과 삼각관계를 이루는 마리의 성격도 확실했다. 하지만, 너무 정련된 캐릭터들로 인해 정말 고등학생들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고등학생의 탈을 쓴 어른들 같아 보였달까. 연우는 지나치게 사색적이었고, 태수는 지나치게 오버스러웠으며, 마리는 지나치게 똑 부러졌고, 채영은 지나치게 신비로웠다.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채영, 마리, 태수와의 관계는 일본만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딱 그정도 였다.

 

한마디로, 연우와 연우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것들이 지나치게 정리되어 있는 느낌이었고, 클라이맥스까지는 완만하고 서서하게 움직이다가 정작 클라이맥스에선 지나치게 휙휙 지나가버리고, 뭉뚱그러져서 성급하게 마무리지었다는 느낌이었다. 연우가 채영과의 관계에서 겪는 아픔과 혼란은 십수페이지를 할애해 묘사하면서, 클라이맥스에 등장하는 태수와의 결말에서 겪는 수많은 혼란들은 고작 몇페이지에 불과한 부분이 특히 그랬다. 작가의 의도였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개인적으로는 참 많이 아쉬운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은희경 작가는 예전부터 사색이나 고뇌, 혼란들을 탁월하게 묘사해내는 작가였다.

이 작품 역시 연우의 혼란 뿐 아니라, 연우의 엄마, 그리고 엄마의 연인 재욱의 이야기들을 보면 그런 탁월하고 세련된 묘사들이 절묘하게 그려지고 있다. 세상과의 관계에서 오는 분절성과 그로 인한 소외감. 고독함, 외로움, 혼란, 고통. 그런 것들이 절절하게 그려진다.

또한, 연우가 겪는 생애 첫 감정들 또한 혼란과 여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그런 혼란과 여백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지나치게 어른스럽게 그려져셔 감정의 이입을 방해하지만, 묘사만 놓고 보면 세련되고 섬세하기 이를 데 없다. 개인적으로는 은희경 작가가 '남자 고등학생' 의 시절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아무리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격이라고 하더라도, 남고생이 느끼는 세상의 첫 감정들은 보다 거칠고 둔탁하며 투박하다. 그것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거나, 받아들이고 다시 발산해 나가는 과정들은 여고생들의 그것과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자신의 약함, 사랑이라는 감정, 어른들의 생각이나 조언들 모두 말이다. 연우가 그것들을 받아들여가는 과정은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포용적이어서, 나름 조숙했고 섬세하고도 사색적인 남고생활(?)을 겪은 나로서도 몰입하기가 굉장히 힘들었다.  

 

다시 말하지만, 이 작품은 인물 위주의 작품이다.

주인공인 연우의 관점에서 최대한 객관적으로 서술되어 있기에, 사건 자체에 대한 설명은 그다지 친절하지 않다. 

실제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예측만 할 뿐, 어떠한 확신도 얻을 수 없듯, 작품 안의 연우 또한 그 누구의 마음도 확신하지 못한다. 이게 독자들에게는 오히려 참 답답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특히, 클라이맥스의 태수나 채영의 마음이나 기분, 행동의 동기 등등은 작품 내의 그 누구도 알 수 없듯, 독자들 또한 알 수 없을 것이다. 단지 연우가 전해듣는 이야기로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연우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사건들은 단지 그 뿐이다. 이런 철저한 객관성이 이 독특한 성장이야기에 리얼함을 부여한다. 정말 여러가지 사건과 감정들이 연우의 주변을 스쳐 지나가지만, 일관된 연우의 시각에서 함께 겪어볼 수 있는 것이다.  연우의 섬세한 감정선의 묘사나 엄마와 재욱간에 겪는 여러가지 갈등과 해소의 과정들이 정말 주옥같은 문장과 사색들로 펼쳐져 나간다.

물론 태수와 채영, 마리와 겪는 우정과 사랑의 이야기들도 은희경 작가만의 섬세함이 아주 잘 살아있다.

 

모든 소년, 소녀들은 여러가지 사건들을 겪고, 그 안에서 여러가지 감정들을 배우고 갈무리 하며 성장해 나간다.

우정, 사랑, 스킨쉽, 폭력, 경험, 목격, 획득과 상실, 탄생과 죽음 등. 생애 처음 겪는 수많은 것들을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어서 그렇게 한번 배운것도 되풀이 되면, 마치 처음이었던 것 처럼 받아들인다.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도 되풀이 된다. 아마 내가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그대로 고교시절로 되돌아 간다고 해도, 난 여전히 비슷한 실수를 반복할 것이고, 비슷한 상처를 경험한 뒤에, 지금과 별 다르지 않은 30대를 맞이할 것이다. 

 

운동을 오래 해서 근육을 잔뜩 키운다고 고통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턱걸이를 10개 하던 사람이 20개를 할 정도로 힘이 세 졌다고 해도, 턱걸이 10개째에 느끼는 고통은 똑같다는 말이다.

전에는 11개째의 고통을 이겨낼 능력이 없었지만, 이젠 11개째는 물론 20개째까지 그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강해진다는 의미이다.

 

작품속에서 연우는 마라톤을 한다.

마라톤 역시 그렇다.

10km를 달리던 사람이 40km를 달리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10km째에 느끼는 고통은 동일하다.

그 고통을 이겨내고 30km를 더 달릴 수 있느냐, 아니면 주저 앉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성장이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아마 영원히. 죽는 순간까지 실수를 되풀이하고, 상처를 되풀이 할 것이다.

모든 인간은 영원한 미성년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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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랜턴 Green Lantern : 시크릿 오리진 Secret Origin 시공그래픽노블
제프 존스 지음, 이규원 옮김, 이반 레이스.오클에어 알버트 그림 / 시공사(만화)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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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 미국의 히어로가 찾아든 것은 헐리웃 영화를 통해서 였다.

"슈퍼맨" "배트맨" 과 같은 히어로들은 지금 보면 조악하기 짝이없지만, 당시에는 컬쳐 쇼크에 가까울 정도의 영상기술로 스크린 안에서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며 악당들을 응징했다. 파란 타이즈에 빨간 팬티를 입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슈퍼맨이나 박쥐 마스크를 쓰고 시커먼 망또를 둘러맨 배트맨의 외견은 유치해 보였으나, 그 스토리는 전혀 유치하지 않았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 있는 듯한 슈퍼맨은 끊임없이 정체성을 의심하는 사람이었고, 배트맨은 자신의 마음속 깊이에 위치해 있는 죄책감과 공포감을 이겨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사람이었다.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영상 기술은 보다 더 발전했고, 우리는 보다 많은 슈퍼 히어로들을 스크린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그에 발 맞춰서 미국 문화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 문화의 본질, 슈퍼 히어로의 코믹북과 그래픽 노블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너무나 생소한 슈퍼 히어로인 '그린 랜턴' 은 슈퍼맨과 배트맨의 캐릭터를 보유하고 있는 DC 코믹스의 간판 캐릭터이다.

슈퍼맨, 배트맨, 원더우먼과 그린랜턴은 DC 코믹스의 대표 캐릭터인 동시에, 그린랜턴은 슈퍼맨, DC의 경쟁사인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 등 과 함께 미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미국적인' 캐릭터이기도 하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우는 작품군들 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그린랜턴인 '할 조던' 이 어떻게 그린랜턴이 되었는지를 알려주는 작품이다.

 

눈 앞에서 비행기 사고를 당하는 아버지를 목격했던 할 조던. 하지만, 그는 아버지가 동경했던 하늘을 포기할 수 없었다. 공군에 입대해 조종사가 되지만, 남편을 잃게 한 하늘과 공군을 그의 어머니는 좋아할 리 없었다. 할 조던은 어머니와 형, 동생과 갈등을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공군에서 불명예 제대하게 된 할 조던은 가족들에게도 돌아갈 수 없는 처지가 되어 작은 지역 항공사에 취직하게 되고, 항공사의 여 사장이자 소꼽친구이기도 한 '캐롤 패리스' 와 대립하게 된다.

한편, 지구를 포함한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전사인 그린랜턴 '아빈 수르' 는 우주선에 악당인 '아트로시터스' 를 태우고 지구로 향하고 있었다. 불길한 예언을 접하고 그 악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한 여정이었다. 지구에 다다랐을 무렵, 아트로시터스는 아빈수르를 공격하여 우주선을 탈출하고, 아빈 수르는 심각한 상처를 입은 와중에도 우주선이 사람이 없는 황무지에 추락시키기 위해 남은 생명력을 짜낸다. 우주를 수호해야 하는 그린랜턴은 한시도 공석이 되면 안되기 때문에, 의지가 있는 그린랜턴의 반지는 임무를 물려받을 지성체를 찾아나서고, 그 대상으로 할 조던이 선택된다.

할 조던은 아빈 수르의 임무를 넘겨받아 그린랜턴이 되기로 하고, 우주 어딘가에 있는 그린랜턴의 훈련소에서 짧은 훈련을 마친 뒤 지구로 복귀한다.

지구로 돌아온 할 조던은 아빈수르의 제자이자 다른 우주 구역을 수호하는 그린랜턴인 '시네스트로' 를 만나게 된다.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은 2009~2010 미국 DC의 메인 이벤트인 '가장 어두운 밤(Blackest Night)' 의 중심 캐릭터인 그린랜턴의 기원에 대한 내용으로서 '가장 어두운 밤' 시리즈를 위한 미드의 파일럿작품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인 아빈수르의 지구행에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할 조던이 그린랜턴이 된 원인이 바로 그 '가장 어두운 밤' 에 대한 예언이었고, 이 작품 '시크릿 오리진' 에서 '가장 어두운 밤' 을 이끌어 내는 복선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들은 미국 만화의 시스템을 모르시는 분들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린랜턴은 올해 6월, 미국에서 영화가 개봉된다. 아마 한국에서도 비슷한 시기에 개봉될 것이고, 이 작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은 영화를 보기 전에 한번쯤 봐두면 좋을 듯한 작품이다. 아마 영화에서도 특히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의 내용을 많이 차용해서 각본을 썼을 것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린 랜턴이라는 캐릭터와 할 조던이라는 인물의 아이덴티티를 명료하고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다른 슈퍼 히어로들과 달리 우주적인 스케일을 가지고 있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각종 외계의 다른 그린랜턴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미국 히어로들과 그린랜턴이 생소한 독자들에게도 충분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그린랜턴: 시크릿 오리진'.

강추!

 

 

 
 
무엇보다 번역이 참 좋다. 화면에 잘 안보이지만, 이렇게 칸 아랫부분에 작품에 관련된 여러가지 해설들이 적혀있다.
그린랜턴을 전혀 모르는 독자들, 미국 만화 자체를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도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다.
 매끄러운 번역은 물론, 미국 만화를 즐길 수 있게 해주려는 번역자님의 센스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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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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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공지영 작가는 수상작이었던 "맨발로 글목을 돌다" 에서 작가 자신이기도 한 작품속의 주인공의 입을 통해 이런 말을 한다.

"인간이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뒤바꿔놓는 일을 저는 가장 증오하고 있습니다."

 

공지영 작가의 이런 메시지는 이미 전작인 "도가니" 를 통해 먼저 언급한 적이 있었다.

"인간이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뒤바꿔놓는 일"

공지영 작가의 장편소설인 "도가니" 에서는 장애아동들을 학대하는 보육원이 등장하였고, "맨발로 글목을 돌다" 는 단편임에도 불구하고 일제 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 북한에 납치된 일본인 H, 그리고 아우슈비츠에 수감되었던 유태인들이 등장한다.

 

피할 수 없는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 그 소용돌이에 휘말린 바다위의 낙엽같은 생生.

 

한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뒤바꾸는 일은 그런 엄청난 역사적인 사건들에게만 허락된 능력은 아니다.

당신도, 나도, 아주 쉽게 한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뒤바꿀 수 있다.

 

작품 속에는 그렇게 너무도 쉽게 생 전체가 폭력으로 뒤바뀐 두 남녀가 등장한다.

 

'따뜻한 콩' 이라는 의미의 '온두' 는 대형 유아용품 전문백화점인 '베이비앤마미' 의 1층 유모차 판매장에서 근무하는 여성 판매사원이다.

시크하고 냉정하지만 번득이는 통찰력과 논리정연한 소개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이 있는 뛰어난 사원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한가지 비밀이 있었으니, 그녀가 바로 '슬트모' 의 회원이라는 사실이었다.

슬트모가 뭐냐고?? 슬트모는 '슬'리핑 '트'렁크 족의 '모' 임 의 줄임말이다. 슬리핑 트렁크. 말 그대로 자동차 트렁크에서 잠을 자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잠잘 시간이 되면 수면용품이 든 백을 들고 공터에 주차해 놓은 자신의 자가용으로 간다. 그리고, 잠자기 좋게 각종 도구들로 아늑하게 꾸며져 있는 트렁크 안으로 들어가서 아침까지 자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자신의 차 옆에 또다른 슬리핑 트렁크족이 자리잡는데, 그 남자의 이름은 '이름' 이었다.

온두와 이름은 왜 자신의 집, 방 안의 침대를 장식용 가구로 만들면서 굳이 좁디 좁은 트렁크 안에 지친 몸을 누이는 것일까??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수 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

 

 

 

 

 

트렁크 안에서 잠자는 사람들.

'트렁커' 라는 제목과 재미있는 일러스트의 표지처럼 작품의 초반은 가볍고 경쾌하다.

시크한 온두라는 캐릭터도 얄밉지만 안타깝고 꽤나 매력적이다. 귀엽고 작아서 보듬어주고 싶은 의미의 '사랑스러움' 과는 판이하게 다른 의미로 '사랑스러운' 캐릭터이다.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여린 속살 밖에 날카로운 가시를 돋우고 있는 고슴도치 같은 인물이기도 하다.

이름이라는 청년 또한 사랑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역시나 어딘가 무심하고 무뚝뚝해 보이지만, 왠지 따뜻할것만 같은 그런 남자.

전형적인 로맨스물의 캐릭터들 같다. 작품의 초반을 읽어 나가면서 '이거 그냥 달달한 로맨틱 코미디 아냐?' 싶어서 책을 편 것을 후회했더랬다.

웅진 "뿔" 블로그에서 리뷰어에 당첨되었으나, 어찌 된 이유에선지 한달이나 늦게 책을 받기도 했었고. 유쾌한 마음으로 펴든 것이 아님은 확실했다.

게다가 달달한 로맨스 소설 따위, 난 보고싶지 않아고오!!!

 

하지만, 이야기가 중반을 넘어서면서부터 가슴이 턱턱 막히는 부분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이 리뷰의 서두에 언급했던 "인간의 생을 폭력으로 바꿔내는" 장면들이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온두와 이름이 트렁크에서 잠을 자게 된 이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이 엄청난 사건들은 말 그대로 가슴이 턱턱 막힌다.

  

우리는 너무나 쉽게 누군가의 인생을 폭력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폭력에 가장 무방비하며, 인생 전체를 저당잡을 수 있는 존재들이 바로 우리 옆에 항상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아이들이다.

나의 자식이 될 수도 있고, 다른 누군가의 자식이 될 수도있는.

누군가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

바로 어린 아이들.

 

어린 아이들은 자신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주변이 세상의 전부라고 인식한다.

바로 그 시기에, 그들의 주변이 어그러지기 시작하면, 그들은 세상 전부가 어그러지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세상 전체가 어그러지는 충격. 그 충격은 단순히 잊어넘길 수 없는 거대한 사건이 되고, 당연하게도 그것은 어른이 되고 노인이 되어 세상에서의 숨을 다 하는 순간까지 결코 잊을 수 없는 고통으로 각인될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 엄청난 사건에 대항할 신체적, 정신적인 능력도 부족하다. 

그렇기에, 세상의 법은 미성년에게 저지른 죄는 몇배로 강하게 처벌한다. 아, 국내에서는 예외로 하겠다.

지구상에서 한국을 제외한 모든 법치국가에서 미성년자에게 저지르는 범죄, 특히 폭력에 대한 범죄는 최소한 몇배의 처벌을 받고, 많게는 몇십배까지도 처벌의 수위를 높인다.

 

하지만, 그만큼 어린아이들에게 저지르는 범죄는 세상의 법을 피해갈 수 있기도 하다.

특히 아동 보호시설이나, 가정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는 더더욱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당하는 폭력을 잘못된 것이라고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아동 보호시설의 경우엔 인지력과 나이, 신체적 특징이 비슷한 처지의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동시에 폭력을 당하기 때문에, '원래 이렇구나' 라고 인지하게 된다.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저항하고 대항할 능력이 없음을 인지하고 세상이 그런 것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때문에 그것을 법에 호소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게다가 자신을 먹여주고 살려주는 어른을 놓친다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한다.

그냥 그 폐쇄된 세상 속에서 평생을 '사육' 당하는 것이다.

 

가정 안이라고 해서 다를 것은 없다. 가정 또한 하나의 사회이고, 특히 한국에서는 더더욱 폐쇄된 공간이다.

우리는 옆집에서 자식을 패는 소리를 듣더라도, '가정교육' 이라고 치부하기 일쑤이다. 우리나라는 '우리' 문화가 특히 발달한 문화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가정교육을 중시하고, 아이들을 교육하는데는 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여기는 전통도 있어왔 때문이다. 아버지나 어머니가 비인격적인 폭행이나 폭언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자녀들이 많고, 특히 어렸을때부터 그렇게 자라온 자녀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부모들의 폭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가족.

그것은 벗어날 수 없는 끔찍한 연옥이자, 헤어날 수 없는 거미줄이며, 끈질긴 물귀신과도 같다.

하지만, 그 속에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있고, 가끔은 즐거움과 행복도 있으며, 때로는 의지가 되기도 하고 최후의 도피처가 되어주기도 한다.

 

주인공들은 자신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를 벗어나 더 좁은 공간으로 숨어들어간다.

자신의 몸에 딱 맞는 공간을 좋아하는 고양이처럼 말이다. 고양이과의 동물들 중 가장 강한 동물인 호랑이는 언제나 사방이 탁 틔이고 높은 곳을 좋아한다. 동물 사파리에 가보면 호랑이 무리의 두목이 자리잡는 곳은 언제나 그런 곳이다. 누구에게나 공격을 받을 수 있는 곳 말이다. 반면, 고양이과의 가장 약한 동물인 고양이는 자신의 몸 하나만 딱 들어갈 수있는 좁은 공간을 좋아한다. 벽과 벽의 사이, 자동차의 뒷바퀴와 자체 사이, 보일러의 연통 안, 벽에 세워진 매트리스 사이 같이 말이다. 옆과 뒤가 모두 막혀있어서 정면에서 다가오는 적을 가장 빨리 보고 도망갈 수 있고, 대적하더라도 뒤와 옆에서 협공받을 수 없는 그런 곳 말이다.

작품안에 등장하는 '트렁크' 는 주인공들에게 딱 그런 장소인 셈이다.

최후의 도피처. 가족으로부터. 공동체로부터. 사람으로부터. 그리고, 각종 감정으로부터.

자신의 세계 안에 갇혀있는 평범한 사람들처럼 말이다.

 

작가는 시종일관 시공간을 베베 틀면서 혼란스럽게 이야기를 전개시켜 나간다.

책의 대부분을 지하철 안에서 음악을 들으며 읽었는데, 어떤 부분에서는 음악을 끄고 정신을 집중해서 앞장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기도 했다. 이야깃속의 이야기들이 상당히 많고, 단편적으로 툭툭 튀어나오는 연두의 과거와 이름의 과거가 규칙없이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꽤 혼란을 주기도 한다. 

작가가 독자들을 잡아 당기는 흡인력의 부분에서는 선정적이고 잔인한 장면들이 등장하지만, 지나치지 않은 선을 적당히 유지하면서 정서적으로 큰 거부감을 주지는 않는다. 작품 전체적으로 행동묘사가 굉장히 적은데, 역겹거나 잔인한 장면들을 디테일하지 않게 넘어가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하며 완성도를 높인 작가의 좋은 의도였다고 보여진다.  독자의 상상력에 적절히 기대면서도 이야기의 맥을 짚어내는 작가의 기술이 상당히 돋보인다.  

 

작품은 초반의 가벼움과 경쾌함을 지나, 중반에는 정서적인 위화감과 감정의 폭발을 유발시킨다. 그러다가 후반에 접어들면 앞에 꼬아놓았던 새끼줄을 풀듯이 감정과 정서를 다시 차분하게 안정시켜 나간다. 정신없이 꼬여 없는듯한 플롯들이 그 정체를 드러내며 문장들과 더불어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배가시킨다. 확실히 정말 좋은 소설이다.

 

최근 한국문학, 특히 소설쪽에서는 신인 여성 작가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그녀들은 서사의 구조나 시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자유자재로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지면 위에 풀어내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것이 모더니즘의 작가주의적인 그것이라기 보다 포스트 모더니즘의 대중주의에 가깝다는 사실이 놀랍다. 작가가 자신의 의도를 관념적으로 풀어내면서도 대중들에게 지지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작가들이 포스트 모던한 대중주의 자체에 뿌리내리고 성장한 덕택일 것이다. 그녀들의 작품은 순수문학을 지향하면서도 편협하지 않고, 자유롭다.

앞으로 한국 여성작가들은 더욱 더 많이 나올것이고, 21세기 한국 문학의 최고봉에는 언제나 여성 작가들이 서 있을 것 같다.

 

 

사람은 너무나 쉽게 다른 사람의 생에 관여한다.

어쩔 수 없다. 사람이라는 존재가 절대 혼자서 살아갈 수 없게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 관여가 한 생을 폭력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고, 사랑으로 바꿔놓을 수도 있다.

책을 덮으면서 아이가 키우고 싶어졌다.

폭력이 아닌 사랑과 기쁨에 익숙한 아이를 키워내고 싶어졌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사랑과 기쁨에 익숙한 아이를 키워냈으면 한다.

자신뿐 아닌, 타인에게도 사랑을 주고 기쁨을 주는 것이 익숙한 아이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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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출판 만화 시장이 무분별한 일본만화 수입과 무책임한 대여점의 난립등의 이유로 바닥까지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대중들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온라인 게임, PC방, 모바일 인프라의 확대 등 여러 이유등이 거론되지만, 위에 언급한 저 두 가지가 가장 큰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판 만화 시장은 무너졌지만, 만화라는 장르는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만화] 라는 컨텐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인터넷 강국답게 한국에서 웹툰이라는 장르가 태동했다. 김풍, 강풀, 강도하등의 작가로 대변되는 웹툰 1세대들의 노력은 웹툰으로 만화가가 살아남는 법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웹툰은 전통적 만화문법의 파괴를 가져왔다.
출판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만화를 책으로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책' 이라는 방식이 나온 뒤로 만화는 좌에서 우. 혹은 우에서 좌로 읽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가로연출' 이라고 한다. 컷과 컷 사이의 그림들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책을 넘기는 방향으로 지그재그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시선의 이동, 이것을 '코마' 라고 부르는데, 컷의 크기, 컷 안에 들어있는 인물들의 배치, 컷 안의 배치된 그림들의 카메라 앵글, 확대, 축소, 효과음과 미장센 모두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웹툰은 세로로 내리면서 본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만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문법에 대치되는 방식이었고, 만화작가들은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야 했다. 종이를 앞뒤로 넘기는 것이 아닌. 스크롤를 쭉쭉 돌리며 위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컷들을 위해 작가들은 새로운 시도들을 접목시켰고, 강풀이나 양영순 같은 작가들이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고안해내면서 새로운 만화적 문법들을 제시했다.

 

웹툰이라는 장르가 태동하고, 많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다 보니, 웹툰의 세로 연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웹툰을 책으로 만들때 과연 어떻게 보일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가들은 반드시 책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유수의 포털 사이트들이 모든 웹툰에 가격을 매기고 네티즌들로 하여금 비용을 지불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작가들은 웹툰을 그려 먹고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웹툰 작가에 대한 비용 시스템을 언급해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포털 사이트에서는 작가에게 소정의 작업비를 보조해주는 정도이고, 작가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개재하고 출판업자를 통해 책을 내야지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강풀, 강도하, 양영순 작가와 같이 A급 작가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기성 출판만화 작가들 또한 그렇고.)

그래서 최근의 웹툰 작가들은 책으로 묶일 것을 예상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꽤 있다. 대부분의 프로 작가들은 지나친 세로연출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애초에 책을 낼 약속을 하고 포털 사이트에 연재물을 개재하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만화 문법이 파괴되면서, "만화는 그림이 우선!" 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지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는 특히 이야기와 그림 중, 지나치게 그림에 편중된 인식이 있었다. 일본이나 미국만 해도 그림작가보다 글 작가가 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다. 일본에서는 '원작자' 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라이터' 라고 한다. 미국에서 '만화작가' 라고 하면 글만 쓰는 작가를 말하고, 그림작가는 '아티스트' 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스토리 작가는 그림작가가 고용한 형태로 운영되기도 하고,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스토리 작가를 그림작가에 종속된 관계로 보는 관행은 뿌리 깊게 남아있다. 전에 어떤 포스팅에서 한국 만화가와 일본 만화가의 대담을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작가가 "한국 작가들은 그림은 정말 잘 그린다. 정말정말 잘 그린다. 일본에서도 손꼽을 만 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들의 만화에는 그림만 있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 작가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웹툰은 이렇듯, 기존의 만화가 가지고 있던 '작화' 에 대한 개념을 깨뜨리고 있다.

현재 포털에서 A급 취급을 받는 작가들인 강풀, 조석 같은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 분명 세련되고 멋진 작화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다. 2010 독자대상 만화를 수상한 [신과 함께] 의 작가인 '주호민' 작가 역시 세련되고 멋진 작화를 구사하는 작가가 아니다. 이들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만화에서 그림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다. 

 



네이버에 연재될 당시의 타이틀 컷.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는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두개의 축을 가지고 전개된다. '김자홍' 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죽은 뒤 49일동안 재판을 받는 내용과, 억울하게 죽은 '유성연' 이라는 청년의 영혼을 뒤쫓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야기의 한 축은 법정드라마를 연상케 하고, 다른 한 축은 전형적인 퇴마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단순하게 잘 짜여진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캐릭터에 활력을 불어넣어 이야기 자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49일동안 김자홍이 받게되는 저승 재판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한국의 전통 신화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으며, 곳곳에서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과 유머를 만끽할 수 있다. 유성연의 영혼을 뒤쫓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다.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플롯을 적절하게 구사했으며, 역시나 풍성한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위에 언급한 만화적 상상력과 한국의 전통 신화의 조화, 플롯과 캐릭터의 완벽한 역할도 분명하겠지만,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너무도 뻔하고 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교훈 덕분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뻔한 훈계가 되어 오히려 반감만 가질게 뻔한 "착하게 살아라" 라는 교훈 말이다. 작품은 시종일관 이 교훈을 아주 부드럽고 능숙하게 이야기속에 녹여낸다. 이 세권의 책 속에 착하게 살아가는 모든 방법들이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그것들을 이야기로서 독자들이 스스로 깨치게 하는 능력은 정말 수준급이다. 글이나 말이었으면 설득력이 떨어졌을 그 말은 만화의 특징들을 통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신과 함께] 또한 작가가 애초에 제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될 당시의 화면.

 


 
 

책으로 묶인 장면.

 
딱 봐도 책의 사이즈에 맞게 3단으로 연출한 것을 세로로 길게 이어붙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식으로 작업을 하면, 웹 연재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제책 디자인에 들어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책이 빨리 나올 수 있다. [신과 함께] 가 2010년 시작과 함께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해서, 2010년의 마무리에 즈음해서 단행본까지 완벽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철저한 기획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의 분량도 더하거나 덜 함 없이 3권에 딱 끝낼만한 정도였다.
 
결국 만화의 힘은, 아니, 모든 컨텐츠의 핵심은 '이야기' 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신과 함께] 는 만화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들을 적절하게 살린 수작임은 분명하다.
현재 네이버에서 [신과 함께] 의 '이승편' 이 연재되고 있다. 올해 말이면 이것 또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터.

주호민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이건 저의 팬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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