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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 : 저승편 세트 - 전3권
주호민 지음 / 애니북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나라의 출판 만화 시장이 무분별한 일본만화 수입과 무책임한 대여점의 난립등의 이유로 바닥까지 무너져 내렸다는 사실은 이미 많은 대중들이 익히 들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와 함께 온라인 게임, PC방, 모바일 인프라의 확대 등 여러 이유등이 거론되지만, 위에 언급한 저 두 가지가 가장 큰 원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출판 만화 시장은 무너졌지만, 만화라는 장르는 무너질래야 무너질 수가 없는 것 아닌가. [만화] 라는 컨텐츠는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장 쉽고 편하게 접할 수 있는 대중매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인프라가 발달한 인터넷 강국답게 한국에서 웹툰이라는 장르가 태동했다. 김풍, 강풀, 강도하등의 작가로 대변되는 웹툰 1세대들의 노력은 웹툰으로 만화가가 살아남는 법을 제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웹툰은 전통적 만화문법의 파괴를 가져왔다.
출판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은 만화를 책으로 만들어 보기 시작했다. '책' 이라는 방식이 나온 뒤로 만화는 좌에서 우. 혹은 우에서 좌로 읽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흔히 우리는 이것을 '가로연출' 이라고 한다. 컷과 컷 사이의 그림들의 흐름은 자연스럽게 책을 넘기는 방향으로 지그재그로 이어지게 되어있다. 시선의 이동, 이것을 '코마' 라고 부르는데, 컷의 크기, 컷 안에 들어있는 인물들의 배치, 컷 안의 배치된 그림들의 카메라 앵글, 확대, 축소, 효과음과 미장센 모두를 표현하는 용어이다.
하지만, 웹툰은 세로로 내리면서 본다. 이것은 당연하게도 지금까지 만화라는 매체가 가지고 있었던 전통적인 문법에 대치되는 방식이었고, 만화작가들은 새로운 방식을 연구해야 했다. 종이를 앞뒤로 넘기는 것이 아닌. 스크롤를 쭉쭉 돌리며 위아래로 빠르게 지나가는 컷들을 위해 작가들은 새로운 시도들을 접목시켰고, 강풀이나 양영순 같은 작가들이 영화를 연상시키는 장면들을 고안해내면서 새로운 만화적 문법들을 제시했다.
웹툰이라는 장르가 태동하고, 많은 작가들이 작품활동을 하다 보니, 웹툰의 세로 연출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것은 웹툰을 책으로 만들때 과연 어떻게 보일것인가? 에 대한 의문이었다. 작가들은 반드시 책을 팔아야 돈을 벌 수 있다. 한국을 지배하고 있는 유수의 포털 사이트들이 모든 웹툰에 가격을 매기고 네티즌들로 하여금 비용을 지불하게 하지 않는 이상, 작가들은 웹툰을 그려 먹고살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우리나라 웹툰 작가에 대한 비용 시스템을 언급해야 하는데, 간단히 말하면 포털 사이트에서는 작가에게 소정의 작업비를 보조해주는 정도이고, 작가는 포털 사이트를 통해 작품을 개재하고 출판업자를 통해 책을 내야지만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다. (물론, 강풀, 강도하, 양영순 작가와 같이 A급 작가들은 사정이 좀 다르다. 기성 출판만화 작가들 또한 그렇고.)
그래서 최근의 웹툰 작가들은 책으로 묶일 것을 예상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경우도 꽤 있다. 대부분의 프로 작가들은 지나친 세로연출을 자제하는 방향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애초에 책을 낼 약속을 하고 포털 사이트에 연재물을 개재하는 경우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전통적 만화 문법이 파괴되면서, "만화는 그림이 우선!" 이라는 고정관념도 깨지기 시작했다.
한국 만화는 특히 이야기와 그림 중, 지나치게 그림에 편중된 인식이 있었다. 일본이나 미국만 해도 그림작가보다 글 작가가 보다 높은 대우를 받는다. 일본에서는 '원작자' 라고 하고, 미국에서는 '라이터' 라고 한다. 미국에서 '만화작가' 라고 하면 글만 쓰는 작가를 말하고, 그림작가는 '아티스트' 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스토리 작가는 그림작가가 고용한 형태로 운영되기도 하고, 저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었다. 지금이야 많이 달라졌지만, 여전히 스토리 작가를 그림작가에 종속된 관계로 보는 관행은 뿌리 깊게 남아있다. 전에 어떤 포스팅에서 한국 만화가와 일본 만화가의 대담을 본 적이 있는데, 일본 작가가 "한국 작가들은 그림은 정말 잘 그린다. 정말정말 잘 그린다. 일본에서도 손꼽을 만 하다. 하지만, 그 뿐이다. 그들의 만화에는 그림만 있다." 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것이 한국 작가들의 현실이었던 것이다.
웹툰은 이렇듯, 기존의 만화가 가지고 있던 '작화' 에 대한 개념을 깨뜨리고 있다.
현재 포털에서 A급 취급을 받는 작가들인 강풀, 조석 같은 작가들의 그림을 보면 분명 세련되고 멋진 작화가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현재 한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가들이다. 2010 독자대상 만화를 수상한 [신과 함께] 의 작가인 '주호민' 작가 역시 세련되고 멋진 작화를 구사하는 작가가 아니다. 이들이 이렇게 큰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결국 만화에서 그림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증거인 셈이다.

네이버에 연재될 당시의 타이틀 컷.
주호민 작가의 [신과 함께] 는 만화가 표현할 수 있는 이야기의 위대함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야기는 크게 두개의 축을 가지고 전개된다. '김자홍' 이라는 평범한 사람이 죽은 뒤 49일동안 재판을 받는 내용과, 억울하게 죽은 '유성연' 이라는 청년의 영혼을 뒤쫓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가 그것이다. 이야기의 한 축은 법정드라마를 연상케 하고, 다른 한 축은 전형적인 퇴마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두 이야기 모두 단순하게 잘 짜여진 플롯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은 캐릭터에 활력을 불어넣어 이야기 자체를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49일동안 김자홍이 받게되는 저승 재판은 우리가 잘 알고있는 한국의 전통 신화를 정확하게 따르고 있으며, 곳곳에서 작가의 만화적 상상력과 유머를 만끽할 수 있다. 유성연의 영혼을 뒤쫓는 저승차사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재미있다. 쫓고 쫓기는 전형적인 플롯을 적절하게 구사했으며, 역시나 풍성한 캐릭터들이 돋보인다.
이 작품이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았던 것은 위에 언급한 만화적 상상력과 한국의 전통 신화의 조화, 플롯과 캐릭터의 완벽한 역할도 분명하겠지만, 무엇보다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너무도 뻔하고 뻔하지만 큰 울림을 주는 교훈 덕분일 것이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뻔한 훈계가 되어 오히려 반감만 가질게 뻔한 "착하게 살아라" 라는 교훈 말이다. 작품은 시종일관 이 교훈을 아주 부드럽고 능숙하게 이야기속에 녹여낸다. 이 세권의 책 속에 착하게 살아가는 모든 방법들이 녹아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터. 그것들을 이야기로서 독자들이 스스로 깨치게 하는 능력은 정말 수준급이다. 글이나 말이었으면 설득력이 떨어졌을 그 말은 만화의 특징들을 통해 고스란히 독자들에게 전달된다.
[신과 함께] 또한 작가가 애초에 제책을 염두에 두고 작업한 작품이다.

네이버 웹툰에 연재될 당시의 화면.
책으로 묶인 장면.
딱 봐도 책의 사이즈에 맞게 3단으로 연출한 것을 세로로 길게 이어붙인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식으로 작업을 하면, 웹 연재가 끝남과 동시에 바로 제책 디자인에 들어갈 수 있고, 결과적으로 책이 빨리 나올 수 있다. [신과 함께] 가 2010년 시작과 함께 네이버에 연재를 시작해서, 2010년의 마무리에 즈음해서 단행본까지 완벽하게 나올 수 있는 이유는 이런 철저한 기획에 있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작품의 분량도 더하거나 덜 함 없이 3권에 딱 끝낼만한 정도였다.
결국 만화의 힘은, 아니, 모든 컨텐츠의 핵심은 '이야기' 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
[신과 함께] 는 만화가 가지고 있는 최고의 장점들을 적절하게 살린 수작임은 분명하다.
현재 네이버에서 [신과 함께] 의 '이승편' 이 연재되고 있다. 올해 말이면 이것 또한 책으로 만나볼 수 있을터.
주호민 작가의 건필을 기원한다.
마지막으로 이건 저의 팬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