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ㅣ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평점 :
결말이 어찌될지 궁금했던 책은, 그야말로 오랜만이었다.
책의 중간을 읽다가 맨 뒤를 펼치면, 책을 그냥 쓰레기통에 쳐박는 것과 다름 없다는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얻은 지 수 년 이지만, 어지간히 날고 기는 미스테리 스릴러 작품들을 읽으면서도 '뒤가 궁금' 한 적은 거의 없었는데.
맨 뒤를 펼치고픈 욕망과 한없이 싸웠다!!
지금 이 순간의 즐거움을 위해서.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 다음은?" "아 빨리 말해봐~~!!!" 라고 안달하는 그 즐거움.
정말 오래간만에 '이야기의 힘' 그 자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과거를 미스테리하게 숨긴 주인공도 아니고, 중첩되어 복잡 미묘한 플롯을 가진 것도 아니고.
지나치다고 느껴질 만큼 친절하게 길을 안내하지만 그 길의 끝이 궁금해 미칠 것 같게 만드는, 우직하게 한 방향으로 끌고 나가는 이야기의 힘, 말이다.
이야기의 첫 머리에 주인공 기현은 성매매를 하는 여성을 한 명 구해 차에 태운다. 여성에게 선불로 넉넉한 화대를 지불하고, 기현은 한 모텔 방 으로 그 여성을 들여보낸다. 방 안에는 한 남성이 누워있다. 기현이 낙향하기 전에는 몇 년 동안 기현의 어머니가 그 성인 남성을 등에 업고 창녀촌을 전전했다고 한다. 창녀가 들어간 모텔 방에 누워 있는 남성에게는 두 다리가 없었다. 기현의 형인 우현의 다리가 잘려나간 것은 5년 전이었다. 장래가 촉망되던 명문대생 우현은 기현이 모르는 새에 군대에서 두 다리가 잘린 채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기현은 자신의 형의 두 다리가 잘려나간 것에 대한 자책감을 갖고 있다.
이것은 '가족' 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디서 읽었더라.
가족이란, 신이 주신 가장 큰 선물인 동시에 가장 큰 짐이라는, 내용을.
이 이야기는, 그 내용이 담겼던 문장 자체가 그냥 멋에 겨워 쓴, 무의미한 문장이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애초에 삶 자체가 짐이 가득한 선물인걸.
꽤 오랫동안 가출했다가 낙향한 기향은 다리가 잘려나간 형을 업고 사창가를 전전하는 어머니를 보고 큰 충격을 받는다.
기현은 어머니를 보며 어떤 이미지를 떠올렸을까? 짐을 지고 가는 어머니? 선물을 지고 가는 어머니?
기현이 어머니를 본 것은, 작은 개인 심부름 센터를 하는 기현에게 온 의뢰 때문이었다. 상당한 착수금과 함께 어떤 여성을 미행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는데, 알고보니 그 여성이 자신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이 후로도 기현에게는 자신의 어머니를 미행하라는 의뢰가 끊이지 않고, 생활비에 쪼들리던 기현은 어쩔 수 없이 계속해서 의뢰를 받아들인다.
다리를 잃은 뒤 주기적으로 성충동적인 발작을 일으키는 형 우현. 특별한 비밀을 가진 어머니, 항상 없는 사람처럼 조용히 화단을 가꾸는 아버지. 평범한 중상층보다 약간 더 위쪽 포지션이었던 기현과 우현 가족에게 과연 어떠한 과거가 있었을까?
결말이 궁금하지 않고 배길 수 없었다.
오래간만에 한 자리에서 책 앞표지와 뒷표지를 다 봤다. 몇 초 만에 맨 뒤로 넘길 수 있었지만, 욕망을 참고 참아 두어시간 동안 한 장씩 맨 뒷 페이지를 향해 읽어 넘겼다. 그렇게 책장을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덮고 난 뒤 한참동안 이야기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다. 우현과 기현 형제는 물론, 그들 부모님의 삶까지 지배한 사랑이라는 감정의 지극한 파괴성과 삶의 냉혹함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랑에 얽매여 살고 있을까. 불현듯 그 거대함에 몸서리가 쳐졌다.
얼마전에 봤던 [이웃집에 신이 산다] 는 영화가 떠올랐다.
세상을 창조한 신이 자신이 창조한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해 매일매일 기상천외한 규칙들을 만들어내고, 자연재해를 일으키고, 사고를 일으키는 내용이 있었다. 인간들을 괴롭히기 위해 창조해낸 규칙 중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 같은 것과, "배우자가 있을 때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다" 와 같은 것이 있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일종의 착란과도 같다. 정신병과도 같은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지 않나.
자기 자신을 온전히 타인에게 맡긴다거나, 타인의 모든 것 - 빚이나 병이 있는 가족 등 까지- 떠안는 일 따위는, 상식적으로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아닌가. 그리해야, 그 어떤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곤 하는 사랑에 빠진 인간들을 설명할 수 있을터다. 그리해야, 사랑 놀음은 결코 행복하거나 달콤할 수 없다는 나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터다. 아니 그런가? 1초의 행복과 달콤함을 위해 남은 모든 시간은 괴롭고 화나고 슬프고 우울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인간은 외로움이라는 선천적 질병 앞에서 사랑이라는 모르핀을 취할 수 밖에 없다. 희망 없는 삶 속에서 유일한 빛은 사랑이다. 1초의 행복을 위해, 1초의 달콤함을 위해, 사람들은 마약쟁이처럼 매달리고, 구걸하고, 끈덕지게 달라붙는다.
누구에게나 사랑의 기억은 있다. 마치 남에게 들키면 안되는 불법적인 일처럼 꼭꼭 숨겨놓은 그 곳에 말이다.
이야기의 여운 속에서 한참을 허덕이다가 [식물들의 사생활] 이란 제목에 시선이 머물렀다.
온갖 종류의 식물이 떠올랐다. 잡초, 푸성귀, 벼, 보리, 배추, 무우, 브로콜리, 피망, 양상추부터 개나리, 진달래, 프리지아, 히야신스, 물망초 등의 꽃은 물론, 단풍나무, 소나무, 은행나무, 버드나무, 미류나무, 밤나무, 잣나무 이 작품에 언급된, 야자나무, 물푸레나무 등까지. 식물들은 우리가 볼 수 있는 부분보다 볼 수 없는 부분이 더 많다. 우리 집 뒤의 산만 생각해 봐도 그렇다. 빼곡한 숲을 떠올려도 그렇다. 상상의 범위에도 담지 못하는 엄청난 뿌리들이 서로와 얽혀있다. 얼마나 많은 나무와 풀들이 서로에게 얽혀있을까? 어지간한 비가 와도 흙이 쓸려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그 어떤 태풍이 몰아쳐도 끄떡하지 않을 정도로 서로에게 굳게 얽혀있다.
사람들도 그렇지 않던가.
애인의 스마트폰을 몰래 열어 전화부를 열어 보면 보이는 수 많은 사람들. 마치 집 뒤의 산이 떠오를 만큼 가득 찬 나무처럼 빽빽한 이름들. 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의 관계를 모두 알 수는 없다. 우연히 문자나 카톡 메시지를 통해 흙 밖으로 비죽이 솟아나온 뿌리를 본 연인처럼 히스테리를 부려봐도 결코 쉽게 알아챌 수 없는 어마어마한 관계의 뿌리들이 어디에든, 누군가와든 닿아 얽혀있다. 그리고 그 어딘가에 사랑의 기억이 묻혀있다. 당신과 나만 아는 곳. 그 곳에.
이 작품에서 기현은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오해하는 가장 대표적인 사람; 아버지, 어머니, 형제의 뿌리를 찾아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뿌리는 대부분, 사랑으로 얽혀있다. 딱히 숨기려 하지도 않았고, 드러내려 한 적도 없으나, 세월의 흙이 켜켜이 덮여 저절로 숨겨진 비밀스러운 어찌보면 '대부분의' 삶들. (재미있게도, 가족들의 뿌리를 파헤치는 기현의 뿌리는 독자들만이 볼 수 있다.)
뿌리는 흙 속에 있을 때 비로소 제 기능을 발휘한다.
함부로 누군가의 뿌리를 파헤치다가는, 그 누군가가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랑이란 감정은 지극히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기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사랑으로 점철된 뿌리는, 또 다른 사랑으로 파헤쳐진다. 사랑과 사랑이 얽히고, 시간속에 묻힌다.
삶이라는 식물은, 그렇게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