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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한 건물 탐방기 - 노노하라 작품집
노노하라 지음, 김재훈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4년 8월
평점 :
아주 오랜만에 리뷰 이벤트에 당첨되서 읽은 책이지만, 최근 우리나라에 발간되는 작법서나 화집들은 대부분 현지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책들이기에 수준이 상당히 높다. 특히, 이렇게 테마로 묶인 책들은 더더욱 그런 편인데, 워낙 대중예술의 인프라가 넓고, 깊은 일본의 간행물들은 무척 참신하면서도 실용성을 갖춘 경우가 많다.
게다가 심지어 기존의 유명 ip들을 이용한게 아니라면, 그야말로 기획력과 내용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더 볼만한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작가가 sns 등으로 유명세를 떨친 이라면 그림 뿐 아니라, 글도 재미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인 노노하라는 SNS에서 유명세를 떨친 작가라고 한다.
나도 X를 종종 이용하는데, 이 작가의 그림이 리트윗된 것을 종종 본 기억이 있고, 무척 인상적이어서 퍼오기도 많이 했기에, 광고를 접한 뒤 장바구니에 담아두기도 했다. 한스 미디어의 작법서나 화집들에 대한 신뢰감도 있었는데, 이렇게 발빠르게 최신 트렌드와 함께하는 작가의 책이라 기대감을 갖고 있었기에, 리뷰 이벤트에 당첨됐을때 참 기쁘기도 했다.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건물을 한번쯤 그려본 적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땐 도화지에 크레파스로 집과 가족들 정도는 누구나 한번 그렸을테고, 만화가를 꿈꾸는 이들이라면 배경으로 건물을 그리기 위해 이런저런 사진들을 참조해서 모사도 해보고, 밑에 깔고 트레이싱 정도는 해봤을 것이다.
만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론 캐릭터이지만, 그 컷의 완성도는 주로 배경에 의해 결정되곤 한다.
정확한 퍼스는 작가의 실력을 한눈에 보여주고, 디테일한 배경 묘사는 캐릭터가 미처 못해내는 설정 정보를 전달하기 때문이다.
최근의 웹툰은 배경을 스케치업과 언리얼등 3D 프로그램들이 대체하고 있기에 많이 줄었지만, 출판만화와 웹툰의 과도기에는 배경을 날리고 얼굴을 한 컷에 다 넣는, 이른바 "대갈치기" 가 횡행했던 이유들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예전 만화가들은 배경 자료 수집을 위해 카메라를 들고 일주일에 몇번씩 부지런히 돌아다녀야 했다.
다양한 자들과, 제도용 샤프(심이 가늘고 단단해서 가루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제도용 로트링펜을 구입해야 했던 이유기도 하다.
그나마 현실 배경이면 좋은데, 중세 유럽이 배경이면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머리를 짜낼 수 밖에 없었다.
혹은, 대형 문고의 외국서적 칸을 기웃대며 다양한 유럽 정경이 실린 사진집을 구해야만 했다.
배경이 단순한 "정경" 이 아니라, 비주얼 내러티브에서 너무나도 중요한 "정보" 이기 때문이다.
불과 몇십년 사이에, 만화 작업 환경은 극적으로 변화했다.
트레이싱만 하지 않는다면, 자료로 쓸 수 있는 사진이 널리고 널렸고, 언리얼 엔진이라는 극강의 툴은 사용료 무료에, 다양한 에셋들도 매달 수십개씩 무료로 제공해준다. 예전부터 유명했던 스케치업은 또 어떤가. 웹 버전은 역시 무료로 쓸 수 있고, 다양한 컴포넌트들을 무료로 가져다 쓸 수 있고, 남이 만든 컴포넌트도 무척 쉽게 해체해서 나만의 오리지널 요소들을 넣어 개조할 수도 있다.
이렇게 3D프로그램으로 배경을 만들어 사용하면, 퍼스를 맞추기도 굉장히 쉬워진다.
결국, 이제는 현실에 있는 것들을 얼마나 잘 만드느냐, 는 경쟁요소가 아니다.
TPO에 얼마나 잘 맞는가, 가 중요한 시기가 됐다는 의미다.
캐릭터의 의상과 설정, 그에 맞는 세계관에 어울리는 건축물들.
때문에, 이제는 배경을 제작하는 3D개발자들도 건축과 문화에 대한 공부를 해야하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우선 총 4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평야지역, 연안.섬 지역, 산악.삼림 지역, 협곡의 나라. 이렇게 총 네곳의 식생을 설정하고, 그 곳에 맞는 건축물들을 소개한다.
물론, 대다수는 익숙한 디자인의 건물들이 등장한다.
많은 부분 실제 지구의 식생과 문화를 따랐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다양하고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암직 하다고 봤으나, 저자는 최대한 절제했다.
그렇기에 제목이 현지에서는 "있을법 한" 건물 탐방기 였을터다. (제목이 바뀌게 된 이유도 책 안쪽에 잘 설명되어 있다.)
사실은 그다지 신비하지 않은 건물들이 등장한다는 의미다.
다만, 그 모든 것들이 매우 있을법하기 때문에, 현재 만화 배경을 목표로 배경 작업을 하는 이들이라면 충분히 알아둘만한 작업 공정들이 담겨있다.
건물이 들어설 세계의 자연환경, 기후요소, 주변 생태와 식생, 거주하는 사람들의생활 패턴들이 건축물의 디자인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게 되는지 무척 세밀하고도 재미있게 풀어져 있다.
배경 작업이나,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그냥 읽는 것만으로도 재밌었다.
무엇보다 저자의 색감이 좋고, 그림 그리는 행위 자체에 대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그림체들이 아주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