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테의 신곡 - 영원의 구원을 노래한 불멸의 고전
단테 알리기에리 지음, 다니구치 에리야 엮음, 양억관 옮김, 구스타브 도레 그림 / 황금부엉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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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클래식.

이 단어만큼 딱딱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말이 또 어디 있던가.

하지만, 이 단어만큼 가치있고, 뛰어나다는 의미를 가진 말 또한 없을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지만, 고전은 영원지 죽지 않는다. 아마 서기 5000년의 인간들도 '단테' 라는 이름을 배울 것이고, 이 작품 '신곡' 또한 읽히든, 아니면 최첨단 기기를 이용해 뇌에 주입되든 할 터이다. 뭐, 지금의 인류가 그때까지 멸망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ㅋㅋ

 

 

1300년경 이탈리아 피렌체에는 유럽의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다.

천하의 부가 모이며, 그 부를 둘러싸고 수많은 가문들이 정치,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큰 파벌을 이루며 격렬한 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 많은 파벌들 중 '백파' 와 '흑파' 가 있었는데, 이 작품의 주인공인 '단테' 는 백파의 리더들 중 한사람이었다.

백파는 시민들의 신뢰와 지지를 받고 있었으나, 일부 귀족과 부호들의 이익을 위해 암약하는 흑파의 모략과 음모로 인한 군사 쿠데타로 지도자 전원이 투옥되고 추방당하고 만다.

단테 또한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되어, 방랑의 길을 떠나, 결국 베로나를 거쳐 라베나에 정착하여 살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이것은 단테가 보고 겪었던 이야기이다.

 

단테는 깊은 숲속을 헤매이고 있었다.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여기가 어디인지도 애매모호했다.

깊은 숲속에서 거대한 늑대와 사자를 만나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때, 로마시대 뛰어난 시인이었던 '베르길리우스' 를 만나게 된다.

역시 '시' 를 공부했던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경의 마음과 신뢰를 갖게 되고, 그의 인도로 지옥과 연옥을 여행하게 된다. 그리고, 길고 끔찍한 지옥과 연옥의 여행이 끝난 뒤에는 지금은 죽고 만 사랑하는 여인이었던 '베아트리체' 를 만나 천국을 여행하고 삶의 의미와 사람의 가치를 깨닫게 된다.

 

 

 

 

 

단테의 '신곡' . 아마 누구나 한번쯤은 들었을 것이다.

아마 유명한 게임인 '데빌 메이 크라이' 의 주인공 이름이기도 한 '단테' 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단테는 호메로스,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4대 시성으로 꼽히며, 이탈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시인으로 꼽는 위대한 인물이다.

(세계 4대는 좀 그렇고, 서양 4대라고 해야 맞을 터다 사실은.ㅋㅋㅋ 지들이 이백이나 두보의 한시를 접하지도 못했으면서...대체 누가 세계 4대 시성을 뽑았는지 원..ㅋㅋㅋ)

 

여튼, 이 작품 '신곡' 은 단테가 죽기 직전에야 간신히 완성항 '대서사시' 라고 알려져 있고, 10몇년간 집필에 몰두했던 역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소문' 만으로도 '와 어렵겠다' '와 엄청 두껍겠다'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단테는 '시인' 이고, 이 작품은 엄밀히 말하면 정말 그냥 대서사'시' 인 것이다.

두께도 얇고, 사실 글자도 별로 없다. ;;;

 

처음 신곡을 접했을때, 솔직히 읽긴 읽었으되, 머리가 하얀...그런 느낌이었다.

대강 맥락은 이해되지만, 시란 함축된 단어들의 나열이지 않은가?

100 중에 20만 이해한 셈이니, 재미있을리 만무했다.

일단 단테를 인도하는 베르길리우스가 어떤 사람인지도 확실히 알 수 없었고, 중간 중간 등장하는 망자들도 '얜 또 누꼬?' 수준이었으며, 감탄사와 오래된 성경처럼, '누가 뭐뭐 하였으니~~ 하였으되~~' 로 끝나는 애매모호한 종결어미들 역시 몰입을 방해했었다.

 

정말로 '주석' 이 엄청나게 많이 필요한 책이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밑줄 쫙 쫙 거가며, 화자가 처한 상황, 함축적 의미, 상징성, 작품 외적인 상황, 내적인 심리...등등 우리고 고등학교때 배웠던 시에 대한 모든 것들을 쥐뿔정도는 알아야 즐길 수 있는 작품이 바로 이 '신곡' 인 것이다.

 

 

이번에 리뷰를 하게 된 다니구치 에리야의 '단테의 신곡' 은 위에 언급한 곤란한 요소들을 상당히 해소시켜주는 좋은 작품이다.

일단 19세기 최고의 일러스레이터인 '구스타브 도레' 의 세밀 목판화도 함께 해 예술적 가치가 상승되었고, 다니구치의 세밀한 주석도 신곡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시' 란 함축된 언어로 쓰여진 것이기에 이거 뭐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애매한 부분들이 있고, 저자의 의도도 애매한 부분들이 있는데, 그런 하나하나. 등장인물 한명한명까지 상세한 주석이 붙어있어 전반적인 이야기의 이해에 많은 도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구스타브 도레의 놀라운 상상력이 표현된 세밀한 목판화도 이야기를 이해하는데 일조한다.

정교하고 디테일한 정묘한 판화들은 그 등장인물들의 섬세한 표정까지 완벽하게 담아내고 있으며, 끔찍한 지옥과 연옥, 그리고 환상적인 천국의 정경까지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고전문학의 가치는 그 '순수성' 에 있다.

작가가 나름대로 탐구하고 도출해낸 교훈들, 가르침들,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들. 

그것들은 순수하게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했고, 작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해서 그것을 담아낸 것이다.

 

고전문학은 서사적인 재미에 있어서는 현대문학보다 못 할 수도 있다.

사람의 어느 부위를 어떤 무기로 어떻게 쑤셨으며, 그것을 어떤 트릭으로 숨겨내고, 사건의 배후에는 누가 있었는데, 그와의 관계는 이렇고 저렇고 블라블라.

하지만, 과연 그런 서사적 '재미' 속에 인류에게 주는 보편타당한 메시지가 고전에 비할바가 될 수 있을까?

만약 있다고 쳐도, 그것은 이미 수백년전 작가들이 한 서너번쯤 써먹었던 것들에 불과할것이다.

 

 

인간에게 정말 영혼이라는 것이 있을까?

솔직히 말하면 잘 모르겠다.

내가 키우는 예쁜 고양이에게도 영혼이 있을까? 

그리고 사후세계란 존재할까?

그 사후세계에는 인간만 가는걸까? 그럼 우리 고양이는? 얜 죽으면 그냥 없어지는걸까?

질문에 질문이 끊이지 않고, 종교의 도움은 사실 그닥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종교 또한 그 질문들에 속시원한 도움을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결국 그냥 개인의 믿음에 맡기게 되고, 그 믿음을 굳혀줄 무언가를 내밀 뿐이다.

 

이 작품 '신곡' 은 기본적으로 가톨릭 세계관에서 쓰여졌지만, 그리스.로마 신화의 세계관이 역시 뒤섞여있다.

지옥, 연옥, 천국은 기본적으로 가톨릭이 말하고 있는 사후세계의 모습이며, 뱃사공 카론은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뿐만아니라 여러 곳에서 가톨릭의 세계관과 그리스 로마신화의 세계관이 큰 이질감 없이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이 작품은 인간이 살아감에 있어 욕망과 탐욕이 인간은 어떤 길로 이끌고, 선행과 자비가 역시 인간을 어떤 길로 이끄는지에 대한 교훈인 동시에, 필멸의 존재인 인간에게 이 생보다 죽은 뒤를 더 생각해보라는 가톨릭 적인 종교관이 함께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중간 중간 베르길리우스가 주는 교훈이나 베아트리체의 말 한마디도 대단히 인상적이다.

인간들이 흔히 저지르기 쉬운 실수에 대한 메시지들도 아주 풍부하다.

 

 

"무엇이 중요한지를 알아야 해.

논리를 넘어서 두 눈으로 보아야 한다네. 그 이유를 생각하는 건 좊지만, 그럴 때도 쓸데없는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 돼.

논리를 따르면, 사람이 나아갈 길은 너무도 좁아.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의 경지처럼 바라보면 된다네.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자연의 경지처럼 바라보면 된다네. 모든 것은 불가사의, 모든 것은 자연, 마음에 비치는 그대로를 아는 게 중요한 일이라네."

P. 188

 

 

다니구치 에리야와 구스타브 도레의 신곡. 

이렇게 쉽고 재미있게 고전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사실 많지 않다.

인류가 순수하게 추구하던 문학을 접해보기에 더 없이 좋은 교재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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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버 - 개정판 VivaVivo (비바비보) 6
캐서린 라이언 하이디 지음, 공경희 옮김 / 뜨인돌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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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은 베트남에 참전했던 상이군인이었다.

인종차별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미국에서 흑인으로 태어났지만, 그는 훤칠한 외모와 준수한 학력으로 나름대로 전도유망한 미래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동료가 떨어뜨린 수류탄. 이 수류탄이 루벤의 외모는 물론 성격과 미래까지 바꾸어버렸다.

베트남에서 큰 부상을 입고 돌아온 루벤은 한쪽 얼굴이 완전히 뭉개져버린 채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야 했다.

해적선장처럼 안대를 해야했고, 움직이기 불편한 왼팔을 사용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무엇보다, 자신의 외모를 보고 반응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익숙해져야 했다.

간신히 부상에서 회복된 루벤은 약혼녀와 이별을 택할 수 밖에 없었고, 미국의 상이용사 재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사회선생님으로 새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의 나이는 44세였다. 베트남 참전용사에 흑인이었고, 독신남인 사회선생님이었다.

 

아를렌은 사람들이 보면 한눈에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작은 시골동네에 살고 있었고,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그는 리키라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남들처럼 동거를 시작했다. 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있었다. 리키는 이미 쉐릴이라는 여자와 결혼한 유부남이었다는 것.

리키는 얼마 뒤 쉐릴과 이혼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아를렌에게 장밋빛 미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다.

리키는 말 그대로 '망나니' 에 여자를 밝히는 호색한이었던 것이다.

아를렌은 사람을 보는 눈이 없었지만, 리키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이 '트레버' 는 달랐다.

 

열두살 트레버는 보다 사려깊고, 주의력이 좋은 소년이었다.

여기엔 아를렌의 통렬한 자기반성의 흔적이 묻어있었다. 아를렌은 자기가 인생을 망쳤다는 사실을 깊이 인지하고 있었고, 자식에게 그것들 되물려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비록, 미혼모로 내연남인 리키가 저질러놓은 뒷처리를 하느라 아침이나 낮이나 정신없이 일을 해야했지만, 끊임없이 자식에게 관심을 기울였고, 사랑으로 보살폈으며, 그에게 더 나은 미래를 물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녀는 리키로부터 배운 못된 버릇인 알콜중독이 있었지만, 끊기위해 끊임없이 노력했고, 그 노력이 이제 빛을 보고 있었다.

 

트레버가 다니는 학교에 사회 선생님으로 부임한 루벤은 한 학기짜리 과제를 내준다.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서 실천에 옮기시오.'

 

트레버가 생각해낸 아니디어는 '다른 사람에게 베풀기 였다.'

우선, 한 사람이 다른 세 사람에게 댓가없이 무언가를 베푼다.

그게 무엇이 됐든,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어야 하고, 도움을 받은 상대방은 그 베풂의 댓가를 또 다른 타인에게 베푸는 것으로 갚는다.

마치 피라미드식 다단계 마케팅처럼, 베풂이 피라미드 처럼 확산된다.

 

트레버는 일단 세사람을 선택한다.

 

과연, 트레버의 계획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되어, 어떤 열매를 얻게 될까??

 

 

 

 

 



'아름다운 세상을 위하여' 라는 영화를 기억한다.

 

되게 옛날에 봤던 것 같은데, 2001년 작이다.

'식스 센스' 에서 세계적인 유명세를 탄 아역배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가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던 작품이다

.

이 영화는 주제의식을 전달하는데는 성공했으나, 지나치게 보편적인 캐릭터를 작위적으로 사건들과 연계시키는 연출로 아쉬움을 안겨주었던 작품이기도 하다. 따뜻한 메시지와 배우들의 열연이 영화를 살린 경우라고 보면 된다.

 

이 작품에 원작이 있다는 사실은, 작년에야 알았다.

이 영화를 다시 보기 위해 온라인 서점의 DVD 코너를 뒤적이다가 연관 검색된 책이 바로 이 책이었고, 구판은 죄다 품절이었고, 개정판은 한 곳에서만 판매하고 있었다.

이렇게 운명적으로 만난 '트레버' 는 역시나. 나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영화가 부족했던 50%을 완벽하게 메꿔주는 것이었다.

일단 캐릭터도 달랐고,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서사구조도 완벽히 달랐다.

책을 보고 영화를 평하니, 이건 완벽히 원작을 망친 케이스라고 봐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이 작품은 한 기자의 인터뷰 형식으로 시작된다.

사회에 일어난 작고도 큰 변화. 그 변화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관련된 사람들을 한명씩 찾아서 인터뷰 형식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인물들의 인터뷰는 시간대가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서사구조를 가지고 있고, 트레버는 알지 못했지만, 관계를 미친 인물들 역시 포함된다. 매 챕터의 마지막엔 트레버의 일기가 첨부되어 있다. 이 방식은 인물들이 난립하는 듯도 보이지만, 짜임새 있고 흡인력이 있어서 시종일관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살짝 도톰한 볼륨의 이 책은, 페이지 수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다.

단 한명도 우리의 관점에서 '정상적으로 채워진' 사람이 단 한명도 등장하지 않는다.

루벤은 흑인이라는 인종적 편견과 추하게 변한 외모때문에 이중 삼중의 방어벽을 치고 사람을 대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고,

아를렌은 망쳐버린 인생에 대한 열등감과 자괴감으로 똘똘 뭉친 데다가 알콜 중독 경력까지 있었다.

그 뿐 아니라, 트레버와 관련된 사람들 모두가 마약 중독자, 노숙자, 독거노인, 동성애자 등이다.

 

사람은 언제나 누군가를 소외시킨다.

소외의 기준은 언제나 유치할 정도로 단순하다.

색깔, 성별, 선호하는 것, 태어난 곳, 입고있는 옷, 갖고있는 돈, 키.

심지어 얼굴의 생김새와 그 사람의 과거까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이 작품은 루벤과 아를렌을 통해 단단하게 감춰진 상대방의 마음을 파고드는 법을 알려주고 있고,

트레버를 통해 타인을 바라보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소통을 하고 마음을 열고, 진심에 다가서는 방법.

그 방법은 단순하고도 어려운 '차별없이 바라보는' 법이다.

 

타인에게 가지게 되는 편견은 지극히 자기중심적이다.

우리가 노숙자나 부랑인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순전히 그들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마음이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 분들 대부분은 나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기본적으로 그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것은 상대적으로 그들의 입장에서도 그렇다.

노숙자나 부랑인들 역시 자기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다른 사람들에게 적의를 갖게 된다.

실제로 상대방이 자신들에게 역시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고, 어떠한 영향도 주지 않고, 게다가 어쩌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사회적으로 낙오된 자신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적대적인 감정들이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사람은 성장하면서 많은 경험과 간접경험들을 겪게되고, 그것은 모두 편견이 된다.

 

이 작품속에서 루벤과 아를렌은 그런 경험들을 통해 보편적인 편견을 갖고 상대방을 대한다.

아직 순수한 시각을 가지고 있는 트레버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받아들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들의 편견을 깨기 위한 방법들을 모색한다.

 

"엄마와 세인트 클레어(루벤) 선생님은 서로 좋아한다. 난 안다.

한데 이해가 안되는 것은, 왜 정작 두 사람은 그걸 모르냐는 거다.

두 사람을 붙잡고 '그러지 말고 인정하라고요.' 라고 말해주고 싶다."

P. 79

 

남녀가 만나 소통을 하고 사랑을 하는 과정은 차별과 편견의 벽을 허무는 과정과 일치한다.

루벤과 아를렌이 '정작 두 사람이 그걸 몰랐던 이유' 는 서로가 진심으로 대화를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리고 순수한 트레버의 눈에는 루벤과 아를렌이 완벽한 한쌍이 될 수 있지만, 루벤은 자신의 흉칙한 외모를 아름다운 아를렌이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또한 아를렌은 지적이고 부드러운 루벤이 젊은 시절 몸을 막 굴린 댓가를 치르고 있으며, 트레버의 친부인 리키와의 관계조차 정리되지 않았고, 제대로 교육조차 받지 못한 자신을 받아줄 리 없다고 생각한다.

서로 자신의 마음의 문을 열고 감정을 내보이지 못한다.

자존심과 편견의 벽 때문에.

 

트레버가 세상에 뿌린 씨앗은 어찌보면 아주 단순한 '소통' 을 위한 첫 걸음일지도 모른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한다는 것은 '대화' 를 시도한다는 의미이다.

지금 어떤 상태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 말이다.

 

결국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살리는 것도 모두 '말' 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진심을 담은 말' 은 결코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만큼 어렵기도 하다.

 

"누군가를 정말로 돕고 싶다면 그리 큰일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아세요?

엄마한테 몹시 화가 났는데 엄마를 돕는다면 그게 큰일이 되는거라구요."

p.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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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식 씨의 타격 폼
박상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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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름부터 웃기다. '박 상' ....

그 책 작가가 누군데?

박상.

......

그냥 박상이야.

 

박상 뒤에 뭔가 한 자 더 올것 같아서 작가가 누구냐고 묻고 좀 기다렸는데, 그냥 박 상이 맞단다.

이름부터 '허걱' 하게 했던 이 독특한 단편집은, 매 작품들이 '허걱' 하게 할 정도로 '깬다'.

그래, 한국 문단에서도 이제 색다른 시도를 주류로 받아들이고, 관념을 뒤집는 유머러스한 작품들이 많이 등장한다 했는데, 급기야 이런 작품까지 나왔다.

 

첫 단편인 '치통, 락소년, 꽃나무' 를 시작으로, 이 책의 타이틀이기도 한 '이원식씨의 타격폼' 그리고 '홈런왕B'  생각지도 못한 쇼킹한 러브행각을 전면에 부각시키는 '연애왕C' 그리고 황당무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외계로 사라질테다' 와 '가지고 있는 시 다 내놔'  그리고 마이너한 감성을 듬뿍 담아내며 이 시대 젊은 세대들의 사랑과 연애, 고민과 삶들을 잘 담아낸 '춤을 추면 쉽지 않아 '체면 좀 세워줘' ,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

모든 작품들이 통통튀는 상상력과 슬럼가의 흑인 랩처럼 말 그대로 '거침없이' 풀어나가는 문장이 절묘한 조화를 이루어낸다.

 

어떤 문화 장르에서건 작가가 데뷔하기 위해서는 '단편' 이 필요하다.

영화, 소설, 만화 모두 마찬가지이다.

작가는 모든 역량을 부어 자신의 경험과 숨결을 한정된 지면 안에 담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자신의 모든게 '압축' 되어 담겨있기 때문에, 단편은 한두번 읽어서는 그 맛을 제대로 음미하기 어렵다.

또한 소설 단편은 수필등과 확연히 구분된다.

플롯을 압축하고, 장면들을 나누어 이중 삼중의 장치를 사용해 교묘하게 메시지를 드러낸다.

좋은 단편일수록 플롯은 단순하고, 담겨있는 것들은 많다.

양파를 벗기듯, 단순한 모양 속에 새로운 면들이 계속해서 솟아난다.

 

소설가 박상이라는 인물을 세상으로 끌어올린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 이 딱 그런 작품이다.

냉동된 닭을 운반하는 트럭 운전사였던 주인공이 연인에게 버림받고, 새끼 고양이 한마리를 얻어오면서 시작되는 이 우울하기 짝이 없는 단순한 이야기속에, 절망이 있고, 희망이 있으며, 사랑과 우정이 있다.

 

"그는 공간을 장악해가고 시간까지 장악해간다.

목소리가 시공을 초월하면서 완벽한 절정에 다다른다.

인간의 삶도 없고, 짝짝이 구두도 없고, 잊혀지지 않는 여자의 얼굴도 없고 사투리를 쓰는 배송과장도 없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

무겁게 퍼지는 하드락처럼 도도하게 존재할뿐.

p.264"

 

라고 말하지만,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그는 내일도 짝짝이 구두를 목도할 것이고, 여자의 얼굴은 여전히 잊혀지지 않을 것이고, 사투리로 까대는 배공과장도 있을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락이 있고, 음악이 있으며, '너 뒈지면 죽여버린다!' 고 말하는 친구도 있으며, '자신의 삶에 기대어드는' 따뜻한 체온의 고양이도 있을것이다.

 

"기분 좋은 웃음이 잠깐 그의 심장 박동에 감흥을 싣는다.

바람이 그의 머리를 스치며 날아간다.

P. 265"

 

 

이 등단작이 이 책의 말미에 실려져 있다는 것 또한 유머러스한 편집이다.

편집자와 작가간의 소통이나 센스가 돋보이기도 하는데, 비교적 서정적이고 담담한 내용의 등단작과는 달리 나머지 8편의 작품들은 모두 파격에 가까운 상상력과 구조가 돋보이기 때문이다.

 

뒤통수를 맞는듯한 얼얼함, 손바닥을 치게 만들 유머. 거기에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현실을 담고, 그것을 교묘하게 조소하는 문체를 뒤섞으면 '박상' 표 '밥상' 이 완성된다.

 

최고의 밥상. 최고의 밥상은 뒤 엎는게 제격이다.

아니라면 미안하다.

 

 

 

 

"이해, 라는 것은 무조건 쌍방이다.

일방적인 이해는 폭력이나 돈이나 사랑을 동반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것 없이 이해를 바랄때는반드시 쌍방이어야 한다.

p. 106p"

 

"사랑이란, 그 순간 행복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지금 사랑때문에 아픈데 그 사랑을 지키겠노라고, 믿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눈앞에서 행복이 다운되어 버린다.

세상에 지금 당장 행복하지 않은데 뭣 때문에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많이 들고, 귀찮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걸 해야한단 말인가.

p. 110"

 

"작은 고양이와 그의 눈이 처음으로 맞부딪힌다.

그는 밥공기를 놓고 손가락 하나를 조심스럽게 뻗어 고양이의 머리를 만져준다.

손가락 하나를 뻗어 무언가를 만진다는 건, 눈물을 닦을 때나 쓰는 방법이었다, 라고 그는 생각한다.

p.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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헐크 : 플래닛 헐크 시공그래픽노블
Pagulayan, Carlo 외 지음 / 시공사(만화)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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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하고 강렬한 액션! 글래디에이터를 뛰어넘는 짜임새있고 완성도 높은 영웅 서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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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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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한번 다 읽었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갔다.

사실 각 최소한 두번, 혹은 세번까지도 읽은 작품도 있었지만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책 말미에 자리하고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과 작가의 말 까지 다 읽자,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읽어보고 싶어졌기 때문이었다.

김연수 작가의 작품들은 언제나 어렵지만, 대단히 매혹적이다. 여기서 어려움이란, 우리가 '인생이란 알수 없는거야.' 라고 말할때의 그 알 수 없음과 일맥상통한다. 대체, 이 이야기들이 왜 이토록 '알 수 없는가?' 라는 질문은 다시 책의 처음을 펴게 만든다. 다시 문장들을 하나 하나 씹어 읽게 만든다. 문득, '정작 김연수 작가는 마치 쉬운 듯 슥슥 써내려 갔겠지?' 라는 마음이 생겨 샘이 나기도 한다.

 

모더니즘이나 포스트 모더니즘을 나는 잘 모른다. 그냥 단지, 포스트 모더니즘이 '이 세상은 이해할 수도 없고, 인간 역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한다' 는 정도. 또한, 이성보다는 감성, 논리보다는 비논리, 규칙보다는 랜덤, 권위보다는 관용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한다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얕은 지식으로는 김연수 작가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사조로서의 포스트 모더니즘을 이해할 수는 없을터. 단지, 그의 작품이 무언가 진리를 갈구하는 것도, 인생의 해답을 찾으려는 것도 아님은 이해할 수 있다.

그의 작품 안에는 어떠한 교훈이나, 삶의 진리나, 인생을 살아가는 방법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다.

 

책 안에는 총 9편의 단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케이케이' 라고 불리우는 남자와 사랑을 나누었던 여류작가인 주인공. 케이케이의 추억을 더듬어 한국을 찾은 노작가의 따뜻한 사랑이야기만 같은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부터 소름이 오소소 돋았던 엔딩이 인상적이었던 [달로 간 코미디언] 까지, 짧고 긴 단편들이 꽉꽉 자리잡고 있다.

 

위에 언급했다시피, 나는 김연수 작가의 단편들을 모두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소설은 작가의 경험과 머릿속에서 나오는 창조물이다. 그리고, 사람은 각기 다른 경험과 다른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하물며, 나조차도 나를 이해할 수 없는데, 남을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카를로스 루이스 사폰은 [천사의 게임] 이라는 책에서 '한 권의 책에는 작가의 영혼이 스며 있다' 고 까지 했는데, 내가 타인의 영혼이 담긴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난 단지 보았을뿐이다. 김연수라는 남자가 자신의 이야기속에 어떤 영혼을 녹여내었는지 보고 느끼려고 했을 뿐이다.

 

 

단편집 제목이 '세계의 끝 여자친구' 인 것 처럼, 이번 단편집의 작품들에는 모두 남녀간의 사랑이야기가 들어있다.

당연히, 전혀 달콤하지도, 전혀 로맨틱하지도 않지만, 가슴에 사무치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떠오르게 하는 그런 사랑말이다.

인생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고, 결코 불가능한 일이겠지만, '사랑' 이라는 단어 안에 귀결시킬 수는 있을터다.

왜냐하면, 사랑은 '추억' 이고, '소통' 이기때문이다. 사람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만들어가고, 소통을 통해 현재를 완성해간다.

 


 우리는 어리석다는 이유만으로도 당장 죽을 수 있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 삶에 감사해야만 한다. 그건 전적으로 우리가 사랑했던 나날들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이해되기만을 기다리며 어리석은 우리들을 견디고 오랜 세월을 버티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좋고 좋고 좋기만 한 시절들도 결국에는 다 지나가게 되어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나날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말할 수는 없다.     P.81 [세계의 끝 여자친구] 


 

 

[세계의 끝 여자친구] 라는 단편에 등장하는 시인은 죽는 순간까지 자신이 사랑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세계의 끝'까지 함께 가고 싶었던 사랑. 시인은 지금 암에 걸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세상은 내가 죽는 순간 끝이 난다. 지금 내가 영위하고 있는 세계가 멸망하는 순간은,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일터다. 이렇듯, '자신의 세계' 가 끝이 나는 그 순간까지도 시인은 한 여자와 사랑했던 순간을 추억한다. 어쩌면, 작품속에 등장하는 시인이 말한 '세계의 끝' 은 자신이 죽는 순간을 의미할수고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시인은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 하고 싶은 여자' 를 사랑했던 것이다.

 

 

사람의 죽음이 누구도 모르게 느닷없이 찾아오듯, 실연도 느닷없이 찾아온다. 어떤이들에게 사랑의 끝은 자신에게 있어 세상의 끝과 같은 착각을 안겨준다. 특히, 사랑하는 대상을 '죽음' 으로 잃었을 때 세상의 끝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상실의 고통은 쓰디쓰다. '소통을 노력해온 대상의 세상' 이 사라진다는 고통은 이루 설명할 수 조차 없다.

 


날 때부터 연약했던 그 작은 심장 하나가 멈췄을 뿐인데, 완전히 텅 비어버린 지구에 대해. 그러다가 어느 날, 해피는 문득 깨닫는다. 으아아아으으어. 그건 그 아이가 군살처럼 느겨지던 나날, 차라리 행복했던 그 시절. 새벽마다 자신을 깨우던 아이의 울부짖음이라는 것을.  .....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는 아이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P. 26-27 [케이케이의 이름을 불러봤어]    


 

때로 사랑은 고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자 하지만, 고통에 매혹되기도 한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사랑은 그런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자신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이성을 사랑하기도 한다. 그들은 사랑이 주는 고통보다, 사랑을 잃은 뒤의 고통을 더 두려워한다. 그것은 바로 사랑의 끝이, 그 혹은 그녀에게 있어 자신의 세상이 끝나는 것과 맞먹는 충격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혹은 그녀들은 사랑이 주는 고통을 감내한다.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감내하고 이겨내고 극복하려 한다. 노력하면 극복되어지리라 믿는다. 희생하면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렇듯 일그러진 사랑도 존재한다. 그것도 분명한 사랑이다.

 


 
순식간에 고통이 그녀의 몸으로 밀려들었다. 언제라도 그녀를 매혹시켰던 고통이었건만 맛보는 바로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견딜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기에 그토록 끌렸던 것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을 일으켜야만 한다는, 그러지 않으면 다시는 자신이 알던 세계 속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뒤에도 그녀는 바닷속에 머물러 있었다.    P. 59 [기억할만한 지나침]


 

 

[기억할만한 지나침] 의 현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들로부터의 해방을 갈구했다. 정해진 틀, 정해진 학교, 강요된 꿈. 그것들만으로도 현에게는 고통이었지만, 그는 더 큰 고통을 원했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음' 에 대한 갈망이었다. 억압된 세계. 강요된 세계. 현은 순간의 일탈로 강요되고 억압된 세상을 끝내고자 애썼지만, 그것은 아직 어린 소녀인 현이 감당할만한 무게가 아니었을터다.

모든 인간은 안정을 추구하지만, 정작 안정을 획득하고 나면 다시 변화를 원한다. 정작 변화의 계기가 찾아오면, 변화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움찔거리고 오히려 한걸음 물러서게 된다. 변화에 익숙한 삶이라면, 안정된 삶을 추구하면서도 두려움을 갖게 될 터이고, 안정된 삶이라면 변화를 추구하면서도 두려움을 갖게 된다.

 

사랑은 그 모든것의 복합체이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만나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소통을 의미한다. 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있어야 하고, 멀리 있으면 소통할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연애 초기의 남녀는 하루종일 붙어다니고, 전화통에 불이 날정도로 대화를 시도한다. 소통은 일종의 확인이다. 내 옆에 그가 있는지. 내 말을 그녀가 들어주고 있는지. 내 마음이 그녀에게 닿고 있는지, 그의 마음이 얼마나 나와 가까운지. 그리고, 그것은 고통의 시작이기도하다.


소통하면, 고통은 없는거야. 맞지?? 이 두사람이 늘 함께 붙어 있다가 이렇게 떨어지면, 서로 소통이 안 되니까 그게 고통이잖아.

..... 암튼 붙으면 고통이 없고 떨어지면 고통이 생기고, 그런 거야. 그래서 네가 내 곁에 없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었던 거야. 곁에 없으면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고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야. 눈이 있어도 못 보고 귀가 있어도 못 듣는 처지가 되는 거지. 걔는 왜 그랬을까? 정말 이상한 얘잖아? 이해할 수가 없어.한때 나 자신보다 더 친했던 사람에게 느끼는 그런 의문 자체가 고통이라구.
P. 246   [달로 간 코미디언]


 

 

결국 인생은 사랑이지만, 사랑은 고통이다. 인간은 고통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기도한다.

이런 아이러니를 극복하고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이다. 결국 사랑이란 소통이고, 소통이란 서로 노력해야만 가능한 부분이다. 일방적인 소통이란 없다. 한쪽은 말만하고, 한쪽은 듣지 않는다면 그것은 이미 소통의 단절을 의미한다. 소통이 단절되는 순간, 사랑은 순수한 고통만 남게 되고, 그것은 더이상 인생을 위한 사랑으로서의 가치를 잃는다.

설사 어떤 방식으로든 사랑을 잃는다 해도, 아직 당신과 나의 세상은 끝난 것이 아니다.

인생에는 우리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끊임없이 사그라든다.

그것이 각자의 '세계' 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만날 때는 서로 만나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만난다. 인연에는 우연이 없다.  P.104 [당신들 모두 서른살이 됐을 때] 

 쉽게 위안받을 생각하지 말고 삶을 끝까지 쫓아가란 말이야!      P. 180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어떻게 될 지 모르는게 인생이기 때문이다.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 아닌것 처럼, 사랑에는 종결이라는 것이 없다.

나의 사랑도 언제나 고통이었다.

나의 소통은 일방적이었고, 언제나 떨어져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랑없는 삶을 생각해본적은 없다. 사랑이 숭고하거나 고고하기 때문은 아니다. 사랑은 결국 살아있다는 증거이자, 남을 위한 나의 노력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나와 함께 소통하기로 약속한 사람처럼 누군가와 만나기를 소망한다. 내가 노력하는 한, 소망을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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