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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기의 여행 - 대책 없이 느긋하고 홀가분하게
송은정 지음 / 걷는나무 / 2019년 4월
평점 :
봄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햇살도 따사로워지고, 앙상했던 나무가지에 물이 올라 초록초록해지는 봄.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도 꽃처럼 피어나는 이 때, 읽기 딱 좋은 책을 만났다.
<빼기의 여행>의 송은정 작가는
언뜻 보면 완전 부러운 '팔자'의 소유자이다.
출판사와 잡지사 에디터였다가, 여행책방을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다가
지금은 부엌 식탁과 소파를 오가며 글을 쓴다.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 속에서 원치않은 부대낌을 거쳐
매일 비슷비슷한 일을 (갑자기 새로운 일이 생길 때는 대개 '긴급사항'이고;)
반복적으로 하는 보통의 직장인에겐, 딱히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엄청나게 흥미진진한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작가가 교토, 도쿄, 사이판, 코펜하겐과 아이슬란드. 파리, 시리아,
이집트, 우유니사막, 아타카마사막 처럼 듣기에도 팬시한 곳을 다녀와
책으로 냈으니 어떤 내용과 사진이 담길 지 궁금했다.
결론을 말하자면, 사진은 내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 꽤나 많았다.
물론 이국적인 지형과 건물을 담고 있는 사진도 있었으나
책에 실린 사진은 대부분 아래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이것이 작가가 말하고픈 것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평범한 일상처럼 보이며 심드렁-하게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여행자의 눈에는 새롭고 신기한 경험에다 기억에 남는 순간이 될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어렵게 시간과 돈을 투자하여 떠난 여행에서
남들이 가는 곳은 다 가보고, 먹는 것은 맛깔스럽게 사진으로 찍어 올리고
세상 다시 없을 특별한 경험을 하려고 애쓰다보면
어느새,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위해주는 여행이 아닌
'남'들의 기준에 맞추려고 (혹은 인정받으려고) 아둥바둥 하는 직장 생활과
다를 게 없이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는 것.
다들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조바심에 무리하게 되는 여행에서
이런 '평상심'과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행위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걸 이 작가는 해낸다.
글 쓰는 사람답게, 우리가 그의 여행에 동참한 것처럼 느끼도록
상세하고 시시콜콜한, 사소하면서도 찰나적인 순간을 묘사하며
혹은 평범해보이는 사진에 대한 일화를 무심하게 전달하면서. ^^
책을 읽는 동안, 여행의 낯섬과 새로움을 즐기면서도 무리하지 않는
바쁘게 일정을 소화하느라 혹은 경험들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놓치게 될 수 있는 소소한 즐거움과 깊은 사유를 알뜰살뜰 적어두었다.
그래서 3장 빼기의 하루를 읽으면
평범하고 지루하며, 주말만을 기다렸던 나의 일상도 어느새 여행이 된다.
여행객들이 신기해하고 갸웃거리고, 꺄르르 웃으며 사진으로 남기는 순간이
출퇴근길, 산책길, 시장 보러 나가는 골목에 숨어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매일의 일상에서 알알이 수집한 장면들이 모여 어떤 큰 그림을 만들어낼지
장소를 떠날 순 없지만, 시간을 '여행'하는 우리 모두에게 건네는 작가의 말.
지금 이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지만, 어디로 가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