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그 아이 두근두근 어린이 성장 동화 8
이알찬 지음, 고정순 그림 / 분홍고래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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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어두운 면을 굳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 건지, 예전부터 서늘한 동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의 살벌한 관계, 참혹한 가정환경 속에 있는 아이들,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과 악함... 이런 내용들을 접하다 보면 어지럽고 답답했다. 존재하는 건 맞지만 굳이 동화로 또 읽어야하나? 읽기도 어려운 것을 쓰는 분들도 있는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원의 예의로 읽는 것이 맞을까?

이 책은 서늘함과 따뜻함의 중간쯤에 있는 책이다. 아니 둘 다 가졌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5편의 단편들 중 앞의 작품들이 더 서늘하고 뒤로 갈수록 따뜻한 느낌이 강해진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다. 읽다보니 적응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단톡방 인어 공주」는 현실과 판타지가 교묘하게 섞였다. 아이들은 단톡에서 아주 흔한 못된 짓들을 하고, 그러다 나가버린 친구 지나를 다시 초대했는데 지나 대신 들어온 사람은 ‘우르슬라’였다. 인어공주 만화영화의 그 마녀 말이다. 아주 흥미진진한 설정인데다가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금방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고 결국 해피엔딩이 되었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서늘함’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닌데 나는 첫편부터 아주 피곤한 감정이 되어 계속 읽을까말까를 고민했다. 내가 왜그랬을까. 끝까지 읽고 되돌아와 다시 보니 같은 내용이라도 아주 신선한 발상으로 재미있게 쓰셨는데. 아마도 그놈의 ‘단톡방’ 문제가 없는 해가 없기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렇다면 더더욱! 이 작품을 잘 챙겨놓고 있어야겠다.

표제작인 「수영장 그 아이」는 두 번째 봐도 서늘하다. 끔찍하기도 하고. ‘수영장 그 아이’ 덕분에 재하는 새아빠가 될 뻔한 남자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무서운 범죄가 2년이나 지나서 밝혀지다니? 전학 과정에서 아이가 증발되었는데 그동안 신고가 없었다는 것은 학적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부분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동화가 현실과 똑같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세 번째 작품 「위대한 먹태 쿠랄라」부터 재밌어졌다. 승연이를 괴롭히는 아이 박주호의 별명은 ‘박상아리’고,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라간, 할아버지와 승연이의 최애 간식은 먹태다. 먹태가 승연이에게 말을 건다. “쿠랄라사우르스라고 들어는 봤나? 나는 고래나 상어보다 더 큰 초식 공룡이었다는 사실!” 그들은 몸집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해서 최종적으로 명태가 되었다나? 그리고 박상아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승연이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준다.
“상어 같은 애들은 말이지, 덩치만 컸지 알고 보면 은근히 겁쟁이라고. 어두운 바다 밑에서 우리 같은 물고기들이 수만 마리씩 뭉쳐서 한꺼번에 방향을 휙 바꾸기라도 하면 마치 바다 귀신을 본 것처럼 꽁지 빠지게 달아난단 말이지. 암! 이게 바로 우리 쿠랄라사우르스가 명태처럼 작은 물고기로 진화한 이유이기도 하지.”
난 여기에서 선한 세력의 연대, 3의 법칙 등을 떠올렸다. 물론 현실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선이란 게 따로 없는 진흙탕일 때도 있지만 승연이가 박주호한테 맞선 과정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셔서도 손자에게 위로가 되어주시는 할아버지의 존재도 인상적이다.

「이어폰 한 짝」의 민우는 아빠의 학업 압박에 짓눌려 터져버린 아이다. 민우에게 이어폰은 세상과의 단절이다. 그런 민우가 분신과도 같은 이어폰 한 짝을 잃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새 친구를 얻게 된다.
부모의 학업 집착은 흔한 문제다. 내가 볼 때 더 문제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질질 끌려가든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행 속에 빠져 자신을 파괴하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과 방식이 있다. 민우가 새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잘 찾아나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 아빠를 이길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마지막 작품 「102호 초록 의자」의 유정이도 상황이 갑갑하다. 이사온 날부터 고래고래 부부싸움을 해서 민원을 받는 유정이네. 유정이는 갈 곳이 없다. 1층으로 내려와 102호 앞에 서면 거기 유민이와 엄마가 함께 노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어느날부턴가 102호 앞에 놓여진 초록 의자. 유정이의 마음도 유정이네 상황도 좋아지면 좋겠다. 때로는 작은 것에 큰 힘이 있기도 하니까.

이렇게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어린이의 아픔을 품고 있다. 색채는 각기 다양하다. 좀 더 어둡기도 하고 훨씬 밝기도 하다. 모두 작가가 희망 쪽을 바라보며 쓴 이야기라는 것을 다 읽어보니 알겠다. 조금씩 들어오는 빛의 구멍이 점점 열리는 느낌이었다. 어린이의 아픔이 세상의 아픔이다. 이렇게 섬세하게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좋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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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영의 친구들 - 제2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아동문고 105
정은주 지음, 해랑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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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문학상 수상자들은 완전 신인인 경우도 있지만 꾸준히 작품을 쓰고 발표도 해왔던 기성 작가들인 경우도 많다. 이 책의 작가님은 후자에 속한다. 몇 년 전 내가 아주 재미있게 읽고 기억해두었던 작품이 있다. 『복길이 대 호준이』라는 책이다. 등단에 실패하고 직장인으로 살다가 이루리 그림책 워크숍을 통해 발탁되어 책을 내게 되었다는 사연을 기억한다. 많은 책을 내신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이 내공을 쌓는 시간이었구나 짐작한다. 이 책을 보면 말이다.

다루기 까다롭고 재밌기도 어려운 소재를 다루었다. 기소영이라는 친구의 죽음. 사건은 난데없이 다가왔다. 이야기 구조상으로도 도입부에 바로 치고 들어왔다. 독자들은 소영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아이의 죽음을 접한다. 이후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둘씩 알게된다. 소영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안타깝지만 도입부터 이미 알고 있는 사실 - 아이의 죽음을 바탕에 놓고 이야기를 읽는 기분은 유쾌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많이 슬프거나 비참하지도 않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남은 자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 밋밋한 일상에 소영이의 기억을 큐빅처럼 박아나가는 이야기다. 큐빅이 박힐 때 가라앉았던 슬픔이 솟구쳐 올라오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에 웃음짓기도 하고, 몰랐던 이야기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한다. 아프기도 슬프기도 눈물겹기도 하지만 담담하기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 같은 이야기다.

화자는 학급회장인 채린이다. 부반장인 소영이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일요일밤 학부모단톡방에 한참동안 들어가있던 엄마가 전해준 소식은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다. 엄마는 꽃집에 주문해 놓은 국화 꽃다발을 가지고 등교하라고 시켰다.
“엄마, 나 돈 없어. 돈 줘야지.”
하는 말이나, 학교 도착했을 때 가짜뉴스라는 말을 듣고
“뭐야! 괜히 샀잖아.”
하는 말들은 절친으로서 언뜻 괴상해 보이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다. 저런 말들 때문에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나 했더니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소영의 친구들, 그러니까 소영이랑 어울려 지냈던 4명의 여학생과 그룹은 아니었지만 같은 성당을 오래 다니며 소영이를 좋아했던 남학생 한 명, 이렇게 5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로 되어있다. 한 명 한 명의 일화들 속에서 기소영이 점점 드러난다. 소영이는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의 친구들을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아이였다. 소영이가 아니었다면 그룹으로 묶일 리가 없었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은 소영이를 ‘애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면서 소영이가 빠져 서걱거리는 빈틈을 채워간다.

가장 감탄했던 건 지어낸 이야기라는 느낌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엄마가 무당인 걸 감추고 싶어하는 연화, 재개발 지역에 산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벽을 쳐버린 영진, 이 친구들에게도 살며시 스며든 소영이는 비현실적 천사표 캐릭터는 아닌 그냥 우리 곁에 있는 제일 멋진 아이 중 한명이다. 따뜻하고 품이 넓은. 5명의 남겨진 친구들도, 만든 캐릭터라기엔 그냥 이웃 같았다. 평범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좋은 사람이 일찍 떠나면 우리는 더 안타까워하곤 하는데, 소영이처럼 좋은 친구가 고작 13년을 살고 떠나버렸다고 해서 그 삶이 아까운 것일까? 그 삶의 길이가 꼭 중요할까? 이 책을 읽으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소영이는 꽉 채운 삶을 살았다. 소영이가 있는 그곳에선 그런 구별이 의미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남아있는 이들이다. 남아있는 이들은 먼저 간 이들에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 기소영의 친구들은 진지하게 그 방법을 탐구했고 나름대로 실천했다. 소영이가 다니던 성당에 미사도 신청해서 참여했고, 멀리 경상도까지 할아버지 댁을 찾아 납골당에도 다녀왔다. 소영이 물건들을 정리했고 소영이가 맡아 기르던 유기견을 이어서 맡았다. 감정은 반짝이게 일렁였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기도 했고, 때로 추억에 젖어 웃기도 했지만 폭포수같은 눈물을 쏟기도 하고.... 마지막 채린이의 꿈에 등장한 소영이와는 조용한 이별을 했다.
“우리는 소영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란 걸 알기에 울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드는 감정도, 생각도 다 다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도 나는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기소영의 친구들의 추모를 기억하겠다. 기소영이 가장 원하는 추모인 것 같아서. 나를 기억해 줘. 하나도 안 울면 섭섭하겠지만 너무 많이 자주 울지는 말아 줘. 뿔뿔이 흩어져서 외로워하지 말고 가끔 함께 내 얘기를 웃으면서 나눠 줘. 그리고 잘 지내. 잘 지내다 만나.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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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싸움 동아리 어린이 희곡집 1
오완 지음, 박진아 그림 / 노란돼지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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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실에서 연극을 해보고 싶어도 마땅한 대본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얼마 전까지 했었는데, 이제는 그것도 옛말이 되어버린 것 같다. 몇 년 사이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주로 유명한 창작동화나 옛이야기를 각색한 희곡집이 대부분인 가운데, 최근 출간된 창작 희곡집이 있어 눈길을 끈다.

저자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극단 ‘빈도’의 단원이라고 한다. 빈도라면 모교의 연극 동아리! 그저그런 동아리들도 많지만 빈도는 내가 다니던 그옛날부터 유명했다. 졸업생들도 꾸준히 공연에 참여해서, 나도 두번쯤 그 연극을 보러 갔었다. 그런 단원들이 현장에서 연극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서 본인들의 특기를 살려 애쓰지 않았을까? 이 책은 그 결과물이라는 느낌이 든다.

초등교사 치고 아이들과 연극수업을 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대부분은 교실수업에서 끝난다. 그게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나도 그러니까. 나는 연극에 호감은 많지만 전문성은 전혀 없어서 아이들이 교실에서 즐거웠으면 됐다는 주의다. 남에게 보일 정도로 하려면 필요한 게 많아서. 하지만 저자는 무대 연출의 경험이 많은 것 같고, 그 노하우를 이 시리즈에 녹여내었다. 두 권의 대본집과 한 권의 활용서다. 이왕 아이들과 연극을 해본 김에 진짜 무대경험까지 시켜주고 싶은 교사, 학교 발표회 등에서 우리반 프로그램을 연극으로 정한 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겠다. 무대연출까지의 노하우가 담겼지만, 거기까지 다 가지 않고 중도에서 만족할 교사들도 재미있게 읽고 필요한 만큼 도움을 받을 만하다.

창작희곡인 이 대본은 생활밀착형 스토리다. 현실 아이들, 현실 상황, 현실 캐릭터, 현실 말투들이 등장한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살짝 짜증까지 난다는....ㅎㅎ 하지만 막장으로 끝나지 않는 적당한 주제의식이 앞뒤에 배치되어있어 교육적으로도 무리가 없다. 그 주제는 제목에서 드러난다. ‘말싸움 동아리’!

말싸움이든 몸싸움이든 나는 싸움은 질색이다. 조금 싫으면 걍 참고, 너무 싫으면 손절한다. 하지만 그건 일종의 회피라고 할 수 있겠지. 아이들에게 가르치기에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싸우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폭력을 행사해서는 절대 안되고, 적법한 방식으로 자신의 분노와 항의 표현은 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말싸움’이다. 언어폭력도 폭력 아닌가요? 맞다. 말싸움이 몸싸움보다 더 나쁜 경우도 있지. 여기서 말하는 말싸움은 그렇게 상처를 목적으로 하는 언어폭력이 아닌 정당한 의사표현이다.

이러한 주제를 드러내는 장면이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의 이누이트 축제 장면이다. 그들은 노래로 싸웠고 주변 사람들이 그 내용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이 한 장면이 연극 전체에 힘을 넣어주고 수준을 높여주고 지향할 바를 제시해 준다.

드센 아이들 그룹(하라,유리,다미)의 수작에 당하기만 하던 빛나와 어진이 말싸움 동아리를 만들고 범도와 우길이를 끌어들인다. 범도, 우길은 나중에 실제 대결을 할 때 현장 중계를 맡는데, 이것이 연극에서는 관객들을 웃길 수 있는 웃음 포인트다. 대본 그대로도 재미있지만 본인들 스타일을 살려서 조금씩 바꿔가며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책도 그런것을 권장하고 있다.) 범도는 전학생인데, 웬만해서는 아무 일에도 끼지 않으려고 하지만 결국 분위기 반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범도의 사연은 아이들이 자칫 빠지기 쉬운 함정에 경고를 보내주기도 한다.

고학년 학급에 있게 마련인 교실 내 서열과 권력관계의 문제, 그 아래서 말 못하고 시들어가는 아이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이야기로 아주 적당하다고 생각된다. 아이들이 이 책을 기본으로 대본작업, 연습과 공연 등의 과정을 통해 문제의식과 내면화의 과정을 모두 거칠 수 있다면 너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여러 각색 희곡집에 창작 희곡집까지 더해져 선택의 폭이 넓어져 더욱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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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17 2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망설일 거야 사계절 웃는 코끼리 25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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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 유은실 작가님을 만나뵈었다. 우리학교 시청각실에서.
작가라면 무슨 외계인 급으로 생각했는지 인간 유은실 님을 보곤 아이들이 놀랐다.
"우리 선생님이랑 비슷하네?"
아담한 키에 안경쓴 아줌마라는 면에선 약간 그렇기도 하다. 물론 작가님이 나보다 조금 젊고 더 예쁘시다.

미리 준비한 아이들 질문판에서 작가님이 이 질문을 고르셨다.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가님의 책은 무엇인가요?"
순례주택이나 멀쩡한 이유정을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바로 이 '정이 시리즈'가 가장 맘에 드신다고 하셨다. <나도 편식할 거야>로 시작된 정이 시리즈는 이번 겨울쯤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나도 망설일 거야>는 그중 네번째 책이다.

정이는 1학년이고, 책은 저학년 분량의 시리즈다. 각 권 50여쪽 쯤 되니 저학년 읽기용으로 딱이다. 하지만 작가님 최애라고 하시니 관심을 보이는 우리반(중학년) 아이들을 위해 학급문고에 넣어도 인기를 끌 것 같다.

1인칭 시점의 문장들이 거의 단문이고 매우 간결하다. 그런데도 생생하고 유머가 넘친다. 작가님의 커다란 특기라고 생각한다. 각권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메시지도 의미 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권의 '망설일 거야' 라는 의미가 나는 가장 좋았다. 뭐 깊이 곱씹어보고 그런 건 아니다. 그동안 맺힌게 많아서 나온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할까.

아는 샘 교실 앞에는 '말.전.생.'이 급훈처럼 붙어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라는 뜻이다. 나도 내년부턴 똑같이 써붙일 생각이다. 이 책의 '망설임'은 바로 이 뜻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생각하기.^^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말'(과학적으론 성립되지 않지만 느낌은 뭔지 아는)의 고약함을 작가님도 느끼신 것일까? 나는 정말로 이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집에 와선 TV도 켜지 않는다. 말이 없는 곳에 나를 담그어야 회복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현대인은 모두 성급한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정이가 엄마와 함께 어른 대상 작가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 오빠 혁이가 써 준 지침 중 이런 것이 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건 유치원 때 끝난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된다."

'신중해야 한다' 보다도 '망설여야 한다'가 훨씬 와닿는다. '망설이다'를 부정적 의미로 쓰지 않으신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망설이다에는 보통 답답하다는 감정이 따라붙게 마련인데 이 책에선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한다. 청소년, 어른들은 어떻고? 오빠 말이 딱이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말.전.생.은 필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때와 장소도 구별 못하고 솔직과 무례의 차이도 모르는 이들에게 1학년 정이가 말합니다.
여러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아울러, 말 그대로 '망설이는'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과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독촉하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에 드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니까.

망설임에 대한 내용은 뒤쪽 절반이고, 앞쪽 절반엔 순진한 아이를 놀려먹는 어른에 대한 '어린이의 단결'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도 재밌다. 마지막 5권 완결은 '무엇'할거야 일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꼭 써먹을 거다. '말전생'을 가르칠 때.
"여러분, 이젠 좀 망설입시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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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 2022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장편동화 선정작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백혜영 지음, 박현주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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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귀함을 이야기 씨앗으로 품으신 작가님께 공감과 경의를 보낸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이 켜진 거리를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왜 잠들지 못할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다 이 책이 태어났어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퇴근하고 모임 갔다가 잔뜩 늦은 시간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이. 학원에 갔다가 이시간에 온다고 했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말이다. 나는 모처럼 늦은거고 보통 이시간엔 집에 편한 자세로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나이대 아이들의 권장 수면 시간을 9시간 정도로 잡는데 그 이야길 하면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다 깜짝 놀란다. 왜겠어. 훨씬 적게 자고 있기 때문이지...ㅠ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잠을 낭비하는 시간, 게으른 시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많이 자면 자책한다. 언젠가 연수에서 강사님이 너무 대단해서 누군가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세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잖아요. 솔직히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흑.... 나는 그때 깨닫고 포기했다. 나는 걍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욕심낼 수 없다고. 왜냐면 나는 '잠'을 포기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을 못자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목표를 축소 수정한다. 잠을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겠다.
"내가 무생물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베개야."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가 남편의 폭소가 터진 적도 있다. 이렇게 잠을 사랑하는 나는 솔직히 성취를 꽤 많이 포기해야 하고 그에 따른 자괴감도 없진 않았는데, 이 책은 이런 나를 위해 쓰여진 책인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ㅎㅎ

저승세계를 다룬 판타지 동화는 이 책 말고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배경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잠빚'이라는 특별한 설정이 있다. 살아생전 잠을 못채운(잠빚이 있는) 귀신들을 '잠귀'라고 한다. 그들은 잠밥을 먹어 그 빚을 다 갚아야 저승에 무사히 갈 수 있다. 잠밥은 이승에서 잠을 충분히 잔(초과한) 사람들에게 빨아먹으면 된다. 제목의 '스으읍 스읍'이 바로 그 소리다. 아하하하하하하 저한테 오세요 잠귀님들~ 제가 나눠드릴게요.ㅋㅋㅋㅋ

혜령이는 엄친딸 장서연과 비교당해 쉴 틈이 없다. 잠 못자고 노력해도 늘 실패하고 엄마의 실망은 깊어간다. 어느날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깜빡 조는 순간 트럭에 치어 이승을 떠나게 됐다. 혜령이의 '잠빚'이 꽤 될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겠지? 그 빚을 갚으며 일어나는 일들이다. 후회하고 시들어가는 엄마, 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도 언니몫까지 하려고 애를 쓰는 동생 아령이. 그리고 같은 날 잠귀가 된 트럭아저씨. 바로 혜령이를 친 그 택배 트럭.... 아저씨의 잠빚이 훨씬 더 많다. 어떤 일상을 살았을지 짐작이 가능하다.ㅠ

그 외 혜령잠귀 옆에서 함께 해 준 수지언니잠귀, 엄격한 듯 허당스럽기도 한 잠귀현감, 무섭지만 자애로운 잠귀대왕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악귀 같은 무섭고 끔찍한 캐릭터도 나오고. 참, 혜령이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연두의 활약도 고맙고 귀엽다.

성취욕은 나쁜게 아닐거다. 잠을 잊어가며 몰두하는 경험도 인생에서 필요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한 템포 느리게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의 잠을 보장하라!! 부모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아 그리고 어른들도. 충분히 자고 깨어있을 때 맑은 정신으로 삽시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괜히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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