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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망설일 거야 ㅣ 사계절 웃는 코끼리 25
유은실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평점 :
지난주에 유은실 작가님을 만나뵈었다. 우리학교 시청각실에서.
작가라면 무슨 외계인 급으로 생각했는지 인간 유은실 님을 보곤 아이들이 놀랐다.
"우리 선생님이랑 비슷하네?"
아담한 키에 안경쓴 아줌마라는 면에선 약간 그렇기도 하다. 물론 작가님이 나보다 조금 젊고 더 예쁘시다.
미리 준비한 아이들 질문판에서 작가님이 이 질문을 고르셨다.
"작가님이 가장 애착을 갖는 작가님의 책은 무엇인가요?"
순례주택이나 멀쩡한 이유정을 예상했는데 빗나갔다. 바로 이 '정이 시리즈'가 가장 맘에 드신다고 하셨다. <나도 편식할 거야>로 시작된 정이 시리즈는 이번 겨울쯤 5권으로 완간될 예정이라고 하셨다. <나도 망설일 거야>는 그중 네번째 책이다.
정이는 1학년이고, 책은 저학년 분량의 시리즈다. 각 권 50여쪽 쯤 되니 저학년 읽기용으로 딱이다. 하지만 작가님 최애라고 하시니 관심을 보이는 우리반(중학년) 아이들을 위해 학급문고에 넣어도 인기를 끌 것 같다.
1인칭 시점의 문장들이 거의 단문이고 매우 간결하다. 그런데도 생생하고 유머가 넘친다. 작가님의 커다란 특기라고 생각한다. 각권에서 보여주는 등장인물의 심리와 메시지도 의미 깊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권의 '망설일 거야' 라는 의미가 나는 가장 좋았다. 뭐 깊이 곱씹어보고 그런 건 아니다. 그동안 맺힌게 많아서 나온 본능적인 반응이라고 할까.
아는 샘 교실 앞에는 '말.전.생.'이 급훈처럼 붙어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라는 뜻이다. 나도 내년부턴 똑같이 써붙일 생각이다. 이 책의 '망설임'은 바로 이 뜻이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지 말고 생각하기.^^
'뇌를 거치지 않고 나오는 말'(과학적으론 성립되지 않지만 느낌은 뭔지 아는)의 고약함을 작가님도 느끼신 것일까? 나는 정말로 이게 너무너무너무너무 싫다. 집에 와선 TV도 켜지 않는다. 말이 없는 곳에 나를 담그어야 회복이 된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닐거라 생각한다. 현대인은 모두 성급한 말의 홍수 속에서 산다. 정이가 엄마와 함께 어른 대상 작가 강의를 듣게 되었을 때 오빠 혁이가 써 준 지침 중 이런 것이 있다.
"말하기 전에 생각한다. 생각나는대로 말하는 건 유치원 때 끝난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된다."
'신중해야 한다' 보다도 '망설여야 한다'가 훨씬 와닿는다. '망설이다'를 부정적 의미로 쓰지 않으신 것도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망설이다에는 보통 답답하다는 감정이 따라붙게 마련인데 이 책에선 그렇지 않다. 초등학생은 망설여야 한다. 청소년, 어른들은 어떻고? 오빠 말이 딱이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말.전.생.은 필수다.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고 때와 장소도 구별 못하고 솔직과 무례의 차이도 모르는 이들에게 1학년 정이가 말합니다.
여러분,
말하기
전에
생각했나요?
아울러, 말 그대로 '망설이는' 아이들에 대한 기다림과 배려도 필요할 것이다. 독촉하면 생각할 수 없고, 생각에 드는 시간은 저마다 다르니까.
망설임에 대한 내용은 뒤쪽 절반이고, 앞쪽 절반엔 순진한 아이를 놀려먹는 어른에 대한 '어린이의 단결' 내용이 나온다. 이 부분도 재밌다. 마지막 5권 완결은 '무엇'할거야 일지 궁금하고 기대가 된다.
그리고 이 책은 꼭 써먹을 거다. '말전생'을 가르칠 때.
"여러분, 이젠 좀 망설입시다. 유치원 졸업했으면 그래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