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으읍 스읍 잠 먹는 귀신 - 2022 아르코 문학창작기금 장편동화 선정작 우리학교 상상 도서관
백혜영 지음, 박현주 그림 / 우리학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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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의 귀함을 이야기 씨앗으로 품으신 작가님께 공감과 경의를 보낸다.

어느 날, 늦은 밤까지 환하게 불이 켜진 거리를 걷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왜 잠들지 못할까?'
그런 고민이 머릿속에서 뱅글뱅글 돌다 이 책이 태어났어요.

나도 그런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퇴근하고 모임 갔다가 잔뜩 늦은 시간에 같이 엘리베이터를 탄 아이. 학원에 갔다가 이시간에 온다고 했다. 겨우 초등학생인데 말이다. 나는 모처럼 늦은거고 보통 이시간엔 집에 편한 자세로 있는데.... 전문가들은 그나이대 아이들의 권장 수면 시간을 9시간 정도로 잡는데 그 이야길 하면 아이들이나 부모들이나 다 깜짝 놀란다. 왜겠어. 훨씬 적게 자고 있기 때문이지...ㅠㅠ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잠을 낭비하는 시간, 게으른 시간으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많이 자면 자책한다. 언젠가 연수에서 강사님이 너무 대단해서 누군가가 질문했다.
"선생님은 어떻게 그 많은 일을 해내세요?"
"시간은 누구에게나 똑같잖아요. 솔직히 잠을 줄이는 수밖에 없어요."
흑.... 나는 그때 깨닫고 포기했다. 나는 걍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 수밖에 없다고. 욕심낼 수 없다고. 왜냐면 나는 '잠'을 포기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잠을 못자는 상황이 되면 본능적으로 목표를 축소 수정한다. 잠을 못자면 사람구실을 못하겠다.
"내가 무생물 중에서 제일 사랑하는 게 베개야."
무심코 이렇게 말했다가 남편의 폭소가 터진 적도 있다. 이렇게 잠을 사랑하는 나는 솔직히 성취를 꽤 많이 포기해야 하고 그에 따른 자괴감도 없진 않았는데, 이 책은 이런 나를 위해 쓰여진 책인가?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ㅎㅎ

저승세계를 다룬 판타지 동화는 이 책 말고도 꽤 있다. 개인적으로 그런 배경을 별로 좋아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은 '잠빚'이라는 특별한 설정이 있다. 살아생전 잠을 못채운(잠빚이 있는) 귀신들을 '잠귀'라고 한다. 그들은 잠밥을 먹어 그 빚을 다 갚아야 저승에 무사히 갈 수 있다. 잠밥은 이승에서 잠을 충분히 잔(초과한) 사람들에게 빨아먹으면 된다. 제목의 '스으읍 스읍'이 바로 그 소리다. 아하하하하하하 저한테 오세요 잠귀님들~ 제가 나눠드릴게요.ㅋㅋㅋㅋ

혜령이는 엄친딸 장서연과 비교당해 쉴 틈이 없다. 잠 못자고 노력해도 늘 실패하고 엄마의 실망은 깊어간다. 어느날 밤 학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깜빡 조는 순간 트럭에 치어 이승을 떠나게 됐다. 혜령이의 '잠빚'이 꽤 될거라는 짐작을 할 수 있겠지? 그 빚을 갚으며 일어나는 일들이다. 후회하고 시들어가는 엄마, 언니를 사무치게 그리워하면서도 언니몫까지 하려고 애를 쓰는 동생 아령이. 그리고 같은 날 잠귀가 된 트럭아저씨. 바로 혜령이를 친 그 택배 트럭.... 아저씨의 잠빚이 훨씬 더 많다. 어떤 일상을 살았을지 짐작이 가능하다.ㅠ

그 외 혜령잠귀 옆에서 함께 해 준 수지언니잠귀, 엄격한 듯 허당스럽기도 한 잠귀현감, 무섭지만 자애로운 잠귀대왕 등 다양하고 흥미로운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악귀 같은 무섭고 끔찍한 캐릭터도 나오고. 참, 혜령이 집에서 키우는 앵무새 연두의 활약도 고맙고 귀엽다.

성취욕은 나쁜게 아닐거다. 잠을 잊어가며 몰두하는 경험도 인생에서 필요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반적으로 한 템포 느리게 가야 할 필요가 있다. 어린이들의 잠을 보장하라!! 부모들에게 이 책을 읽히고 싶다. 아 그리고 어른들도. 충분히 자고 깨어있을 때 맑은 정신으로 삽시다. 잠이 보약이란 말이 괜히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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