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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장 그 아이 ㅣ 두근두근 어린이 성장 동화 8
이알찬 지음, 고정순 그림 / 분홍고래 / 2022년 11월
평점 :
세상의 어두운 면을 굳이 보고 싶어하지 않는 마음이 나에게 있는 건지, 예전부터 서늘한 동화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아이들 사이의 살벌한 관계, 참혹한 가정환경 속에 있는 아이들, 인간의 적나라한 본성과 악함... 이런 내용들을 접하다 보면 어지럽고 답답했다. 존재하는 건 맞지만 굳이 동화로 또 읽어야하나? 읽기도 어려운 것을 쓰는 분들도 있는데,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일원의 예의로 읽는 것이 맞을까?
이 책은 서늘함과 따뜻함의 중간쯤에 있는 책이다. 아니 둘 다 가졌다고 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5편의 단편들 중 앞의 작품들이 더 서늘하고 뒤로 갈수록 따뜻한 느낌이 강해진다. 이건 아주 주관적인 느낌이다. 읽다보니 적응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다.
「단톡방 인어 공주」는 현실과 판타지가 교묘하게 섞였다. 아이들은 단톡에서 아주 흔한 못된 짓들을 하고, 그러다 나가버린 친구 지나를 다시 초대했는데 지나 대신 들어온 사람은 ‘우르슬라’였다. 인어공주 만화영화의 그 마녀 말이다. 아주 흥미진진한 설정인데다가 아이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금방 꼬리를 내리고 사과했고 결국 해피엔딩이 되었다. 그러니 앞에서 말한 ‘서늘함’이 그렇게 강한 것은 아닌데 나는 첫편부터 아주 피곤한 감정이 되어 계속 읽을까말까를 고민했다. 내가 왜그랬을까. 끝까지 읽고 되돌아와 다시 보니 같은 내용이라도 아주 신선한 발상으로 재미있게 쓰셨는데. 아마도 그놈의 ‘단톡방’ 문제가 없는 해가 없기 때문에 진절머리가 나서? 그렇다면 더더욱! 이 작품을 잘 챙겨놓고 있어야겠다.
표제작인 「수영장 그 아이」는 두 번째 봐도 서늘하다. 끔찍하기도 하고. ‘수영장 그 아이’ 덕분에 재하는 새아빠가 될 뻔한 남자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의 무서운 범죄가 2년이나 지나서 밝혀지다니? 전학 과정에서 아이가 증발되었는데 그동안 신고가 없었다는 것은 학적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 부분이 잘 이해 가지 않았다. 하지만 동화가 현실과 똑같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세 번째 작품 「위대한 먹태 쿠랄라」부터 재밌어졌다. 승연이를 괴롭히는 아이 박주호의 별명은 ‘박상아리’고, 할아버지 제사상에 올라간, 할아버지와 승연이의 최애 간식은 먹태다. 먹태가 승연이에게 말을 건다. “쿠랄라사우르스라고 들어는 봤나? 나는 고래나 상어보다 더 큰 초식 공룡이었다는 사실!” 그들은 몸집을 줄이는 쪽으로 진화해서 최종적으로 명태가 되었다나? 그리고 박상아리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승연이에게 중요한 이야기를 해 준다.
“상어 같은 애들은 말이지, 덩치만 컸지 알고 보면 은근히 겁쟁이라고. 어두운 바다 밑에서 우리 같은 물고기들이 수만 마리씩 뭉쳐서 한꺼번에 방향을 휙 바꾸기라도 하면 마치 바다 귀신을 본 것처럼 꽁지 빠지게 달아난단 말이지. 암! 이게 바로 우리 쿠랄라사우르스가 명태처럼 작은 물고기로 진화한 이유이기도 하지.”
난 여기에서 선한 세력의 연대, 3의 법칙 등을 떠올렸다. 물론 현실은 이보다는 훨씬 복잡하고, 선이란 게 따로 없는 진흙탕일 때도 있지만 승연이가 박주호한테 맞선 과정은 아주 의미심장했다. 살아계실 때도, 돌아가셔서도 손자에게 위로가 되어주시는 할아버지의 존재도 인상적이다.
「이어폰 한 짝」의 민우는 아빠의 학업 압박에 짓눌려 터져버린 아이다. 민우에게 이어폰은 세상과의 단절이다. 그런 민우가 분신과도 같은 이어폰 한 짝을 잃어버렸고, 그것 때문에 새 친구를 얻게 된다.
부모의 학업 집착은 흔한 문제다. 내가 볼 때 더 문제는 아이들에게도 다른 대안이 없다는 거다. 그러니 질질 끌려가든가,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비행 속에 빠져 자신을 파괴하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과 방식이 있다. 민우가 새 친구와 함께 그 길을 잘 찾아나갔으면 좋겠다. 그런데 저 아빠를 이길 수 있을지는 걱정이다.
마지막 작품 「102호 초록 의자」의 유정이도 상황이 갑갑하다. 이사온 날부터 고래고래 부부싸움을 해서 민원을 받는 유정이네. 유정이는 갈 곳이 없다. 1층으로 내려와 102호 앞에 서면 거기 유민이와 엄마가 함께 노는 소리가 정겹게 들린다. 어느날부턴가 102호 앞에 놓여진 초록 의자. 유정이의 마음도 유정이네 상황도 좋아지면 좋겠다. 때로는 작은 것에 큰 힘이 있기도 하니까.
이렇게 다섯 편의 이야기는 모두 어린이의 아픔을 품고 있다. 색채는 각기 다양하다. 좀 더 어둡기도 하고 훨씬 밝기도 하다. 모두 작가가 희망 쪽을 바라보며 쓴 이야기라는 것을 다 읽어보니 알겠다. 조금씩 들어오는 빛의 구멍이 점점 열리는 느낌이었다. 어린이의 아픔이 세상의 아픔이다. 이렇게 섬세하게 그들의 아픔을 들여다보는 시선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겠다. 좋은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