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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소영의 친구들 - 제2회 사계절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ㅣ 사계절 아동문고 105
정은주 지음, 해랑 그림 / 사계절 / 2022년 10월
평점 :
주요 문학상 수상자들은 완전 신인인 경우도 있지만 꾸준히 작품을 쓰고 발표도 해왔던 기성 작가들인 경우도 많다. 이 책의 작가님은 후자에 속한다. 몇 년 전 내가 아주 재미있게 읽고 기억해두었던 작품이 있다. 『복길이 대 호준이』라는 책이다. 등단에 실패하고 직장인으로 살다가 이루리 그림책 워크숍을 통해 발탁되어 책을 내게 되었다는 사연을 기억한다. 많은 책을 내신 건 아니지만 그동안의 시간들이 내공을 쌓는 시간이었구나 짐작한다. 이 책을 보면 말이다.
다루기 까다롭고 재밌기도 어려운 소재를 다루었다. 기소영이라는 친구의 죽음. 사건은 난데없이 다가왔다. 이야기 구조상으로도 도입부에 바로 치고 들어왔다. 독자들은 소영이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채 아이의 죽음을 접한다. 이후 친구들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둘씩 알게된다. 소영이가 어떤 아이였는지. 안타깝지만 도입부터 이미 알고 있는 사실 - 아이의 죽음을 바탕에 놓고 이야기를 읽는 기분은 유쾌할 수 없다. 하지만 아주 많이 슬프거나 비참하지도 않다. 시간은 무심히 흘러가고 남은 자들은 일상을 살아간다. 그 밋밋한 일상에 소영이의 기억을 큐빅처럼 박아나가는 이야기다. 큐빅이 박힐 때 가라앉았던 슬픔이 솟구쳐 올라오기도 하고, 좋았던 기억에 웃음짓기도 하고, 몰랐던 이야기들이 드러나기도 하고, 새로운 관계가 설정되기도 한다. 아프기도 슬프기도 눈물겹기도 하지만 담담하기도 미소가 지어지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 같은 이야기다.
화자는 학급회장인 채린이다. 부반장인 소영이와 친하게 지냈다. 어느 일요일밤 학부모단톡방에 한참동안 들어가있던 엄마가 전해준 소식은 너무나 현실감이 없었다. 엄마는 꽃집에 주문해 놓은 국화 꽃다발을 가지고 등교하라고 시켰다.
“엄마, 나 돈 없어. 돈 줘야지.”
하는 말이나, 학교 도착했을 때 가짜뉴스라는 말을 듣고
“뭐야! 괜히 샀잖아.”
하는 말들은 절친으로서 언뜻 괴상해 보이지만, 실감하지 못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들이다. 저런 말들 때문에 심각한 오해가 발생하나 했더니 다행히도 그런 건 아니었다.
이 책은 기소영의 친구들, 그러니까 소영이랑 어울려 지냈던 4명의 여학생과 그룹은 아니었지만 같은 성당을 오래 다니며 소영이를 좋아했던 남학생 한 명, 이렇게 5명의 친구들의 이야기로 되어있다. 한 명 한 명의 일화들 속에서 기소영이 점점 드러난다. 소영이는 각기 다른 개성과 사연의 친구들을 이어주는 접착제 같은 아이였다. 소영이가 아니었다면 그룹으로 묶일 리가 없었던 아이들. 하지만 아이들은 소영이를 ‘애도’하는 방법을 함께 찾아가면서 소영이가 빠져 서걱거리는 빈틈을 채워간다.
가장 감탄했던 건 지어낸 이야기라는 느낌 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다는 점이다. 엄마가 무당인 걸 감추고 싶어하는 연화, 재개발 지역에 산다고 놀리는 아이들 때문에 벽을 쳐버린 영진, 이 친구들에게도 살며시 스며든 소영이는 비현실적 천사표 캐릭터는 아닌 그냥 우리 곁에 있는 제일 멋진 아이 중 한명이다. 따뜻하고 품이 넓은. 5명의 남겨진 친구들도, 만든 캐릭터라기엔 그냥 이웃 같았다. 평범한 건 아니지만 자연스러운.
좋은 사람이 일찍 떠나면 우리는 더 안타까워하곤 하는데, 소영이처럼 좋은 친구가 고작 13년을 살고 떠나버렸다고 해서 그 삶이 아까운 것일까? 그 삶의 길이가 꼭 중요할까? 이 책을 읽으니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소영이는 꽉 채운 삶을 살았다. 소영이가 있는 그곳에선 그런 구별이 의미없을 것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남아있는 이들이다. 남아있는 이들은 먼저 간 이들에게 예의를 다해야 한다. 기소영의 친구들은 진지하게 그 방법을 탐구했고 나름대로 실천했다. 소영이가 다니던 성당에 미사도 신청해서 참여했고, 멀리 경상도까지 할아버지 댁을 찾아 납골당에도 다녀왔다. 소영이 물건들을 정리했고 소영이가 맡아 기르던 유기견을 이어서 맡았다. 감정은 반짝이게 일렁였다. 이상하리만큼 고요하기도 했고, 때로 추억에 젖어 웃기도 했지만 폭포수같은 눈물을 쏟기도 하고.... 마지막 채린이의 꿈에 등장한 소영이와는 조용한 이별을 했다.
“우리는 소영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언젠가 다시 만나리란 걸 알기에 울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은 직접적으로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하나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그 모습을 보고 드는 감정도, 생각도 다 다를 것이다. 당연한 일이다. 어떤 일도 나는 장담은 못하겠다. 하지만 기소영의 친구들의 추모를 기억하겠다. 기소영이 가장 원하는 추모인 것 같아서. 나를 기억해 줘. 하나도 안 울면 섭섭하겠지만 너무 많이 자주 울지는 말아 줘. 뿔뿔이 흩어져서 외로워하지 말고 가끔 함께 내 얘기를 웃으면서 나눠 줘. 그리고 잘 지내. 잘 지내다 만나.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