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 바퀴, 둘레길 여행 - 도심 속 자연과 로컬을 즐기는 최고의 걷기 코스 60
이준휘 지음 / 링크북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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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런 책의 리뷰를 쓸 줄이야. 이 책이 나온 걸 우연히 보고 오호, 해서 동네 도서관에 신청했다. 구입되었다는 연락을 받고 대출해보니 아이쿠, 이런 책은 대출용이 아니라 소장용인 것 같다. 충분히 활용할 생각이라면 말이다.^^

내가 여기 관심 갖게 된 것은 유튜브부터였다. 재작년 가을이었나, 가는 날들이 너무 아쉬워 토요일 하루 한나절 산책 다녀올만한 곳이 있나 하고 찾다가 어떤 여행가의 채널을 구독하게 됐다. 거기서 보고 동구릉, 마장호수 등등을 다녀왔다. 그 뒤로 줄줄이 따라오는 알고리즘.... 지금은 한 분의 채널을 더 구독했.....지만 아직 다녀온 곳은 그닥 없다. 퇴직하면.... 이라고 생각만 하는 중?ㅎㅎ

저자는 여행 가이드 책을 이미 여러 권 내신 분인 것 같은데, 이번에는 서울만 다룬 이런 책을 내셨다. 서울에서 나고 자랐으며 멀리 다니기를 즐기지 않는 나에게 딱 고마운 책이다. 서울 여행도 다양한 컨셉이 있겠으나 이 책의 컨셉은 '걷기 여행'이다. <도심 속 자연과 로컬을 즐기는 걷기 코스 60>이라는 부제가 책의 성격을 딱 말해준다. 잠 안 올 때 유튜브를 보며 오호 여기도 좋네, 찜! 이렇게 생각하며 넘어갔던 코스들이 여기 다 담겨있다. 물론 내가 본 것 이상으로 (몇배로) 충분히 많은 코스가 담겨 있다. 크게는 3파트로 나눠져 있다.

Part 1. 한양도성 순성길&성곽마을길
여기에 내가 가야겠다 생각만 하고 아직 못간 곳이 다 들어있다. 당장 북악하늘길과 길상사코스를 다녀올 생각이다. 나머지(낙산구간, 남산구간, 인왕산 구간 등)는 내년에....

Part 2. 성저십리길
한양도성 외곽의 길들을 말한다.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곳들이 많은데, 주로 강북 코스가 많기 때문이다. 초안산 나들길, 봉화산 둘레길, 배봉산 둘레길 등등. 여기에 나온 곳 중 안산 자락길을 올 가을에 다녀왔는데 즐거운 하루였다. 나머지 코스도 그렇기를 기대해 본다.

Part 3. 서울둘레길2.0
제목대로 서울둘레길 전 코스를 안내하고 있다. 이중에서 내가 걸은 길은 1코스(수락산둘레길) 뿐...^^;;; 스탬프 인증도 하면서 완주를 격려하니 참여자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인증이나 스탬프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성격이지만 좋다는 곳들을 찾아서 몇군데 가볼 생각이다. 물론 다 좋겠지만.

이렇게 크게 3개의 파트로 내용이 담겨져 있지만 그 사이사이와 부록에 그 이상의 내용들이 들어있다. 무장애숲길도 정리되어 있고, 숲속도서관이나 전통시장, 일부 맛집들도 들어있다. (맛집에 중점이 있는 책은 아니다)

각 장소에 대한 내용은 최대한 간결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코스 지도, 소요시간, 거리, 메인스팟들, 주차정보 등 필수적인 것들은 알차게 꽉꽉 들어있다. 여기서 코스를 선택하고 유튜브 검색해서 해당영상 찾아서 같이 보면 이해가 완벽하겠다. 나한테 엄청 유용한 책이 될거 같고, 비슷한 계획이 있으신 분들께 추천한다. 매주 한곳씩 도장깨기를 한다 해도 1년이 넘게 다녀야 한다. 서울만 해도 갈 곳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 그리고 나면 전국을 다니고.... 난 해외여행은 딱히 생각이 없는 사람이니 그건 일단 제쳐두고, 죽기전에 우리나라라도 다 다니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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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특별판)
정세랑 지음 / 민음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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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때 원작 없이 드라마만 보고 나서 뭔가 아쉬워 뒤늦게 원작을 찾아 읽었다. 아 역시 원작부터 읽었어야 했어! 보건교사 안은영도 한문선생 홍인표도 내 머릿속에서 먼저 그려보고 드라마를 봤어야 하는건데, 소설을 읽으며 정유미와 남주혁이 떠오르는 것은 좀 곤란했다.^^;;; 그래도 어쨌든 재미있게 읽었다. 귀신이니 퇴마니 하는 설정은 평소 나의 취향과 너무 거리가 먼데, 이 책은 왠지 무늬만 그런 듯해서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술술 잘 넘어가는 것은 요즘 책이 잘 안읽혀 짜증나 있던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장점이었다. 이렇게 잘 읽히는 책들을 쌓아놓고 읽고 싶다.ㅎㅎㅎ

초반부는 책과 드라마가 거의 일치하는 듯했으나 뒤로 가면서 차이가 많이 났다. 드라마에서는 매우 중요한 역할로 보이던 문소리 배우 역할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렇게 큰 역할을 새로 만들었단 말이야? 매우 의외였다. 그리고 뭔가 거대한 음모가 깔려있는 느낌을 주는 세력, 일광소독이니 안전한행복이니 하는 집단도 책에선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냥 뭔가 있나보다 정도... 책 한 권으로 어떻게 드라마 6부작을 만들었을까 했는데, 이렇게 극적인 느낌을 높이는 요소들을 추가한 것이었구나. 양쪽에 장단점이 있겠으나 나는 소설 쪽에 한 표다. 훨씬 단순하고 경쾌하고 명랑하다. 뭔가 보이지 않는 음모가 짙고 깊게 깔린 가운데 주인공이 고군분투하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이 소설 정도가 더 좋다.
그런가하면 안은영이 래디네 가족을 만나는 에피소드는 드라마에 나오지 않았다. 이걸 맨 뒤로 빼면서 우리 집에 좀 와주세요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넣었다. 그 집에서의 에피소드 재미있었는데.... 왜 뺐지. 속편에 넣으려는 생각이었나? 하지만 속편은 아직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역사교사가 교과서 채택하는 에피소드도 드라마에선 못본 것 같다. 음 그게 좀 정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많아서 그랬겠지...? 책에선 이 부분도 흥미롭게 읽었다.

강선이를 보내는 가슴아픈 장면은 드라마에서 잘 표현한 듯... 정유미 배우가 연기를 잘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중학생일 때의 사연도 어른 되어서의 사연도 드라마에서 훨씬 더 세밀하게 다루었다. 이건 책과 드라마 둘다 좋았다.

결정적으로, 드라마를 보며 '아 둘은 로맨스 관계는 아니구나' 했는데, 아닌 게 아니었어. 그것 역시 속편을 위해 남겨둔 것이었나? 어쨌든 책에서는 로맨스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둘이 함께 살며 마무리가 되는데 그런 과정 또한 담백하고 유쾌해서 좋았다.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랑 있어요.”
이런 프러포즈 왤케 따뜻하지? 둘다 행복해졌으면 하는 마음이 절로 드네. 마지막 문장, 은영의 얼굴이 인표의 ‘수면등’이라는 표현도 감탄했다.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으니까 소설가구나.

남을 도와야하는 성가신 운명 때문에 은영은 고달프지만 부수어야 할 것을 부술 때의 쾌감은 짜릿하다. 해로운 것을 없애고 무해한 것들로 채우는 능력이 좀 널리 주어졌으면 얼마나 좋아. 세상에 독기는 더욱 차오르고 있다. 은영이란 캐릭터 자체가 너무 순진한 것인지도 몰라. 군단 쯤 된다면 모를까.

그래도 이 책을 읽으면 무해한 쪽에 있고 싶어진다. 어둠을 보태는 역할이 아니라 한귀퉁이라도 밝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진다. 실상 나는 이제 무엇에도 아무에게도 관심이 없어서 나 자체가 어둠이 되지 않는지나 신경써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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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 빠진 강경우 678 읽기 독립 16
소연 지음, 최민지 그림 / 책읽는곰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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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그림을 보고 책을 고르는 사람들도 있겠다 싶을 만큼 표지가 맘에 들었다. 그림에다가 글씨체마저도 귀엽다. 이어지는 본문의 삽화들도 재미있다. 그림책 작가인 최민지 작가님과의 협업은 이야기의 귀여움과 재미를 더욱 돋보이게 해주었다. 쓱싹쓱싹 쉽게 그린 듯한 그림체인데 그게 훨씬 느낌을 잘 살린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누구나 인생에서 통과하는 이갈이의 경험을 소재로 한다. 더구나 경우는 첫 경험이니 그 느낌의 강도가 최강이다.

강경우라는 이름.ㅎㅎ 교사들은 딱 보자마자 느낀다. 얘는 어딜 가나 1번이겠구나. 강씨에다가 또 ㄱ이야.^^ 아니나달라, 경우는 1학년 1반 1번이다. 1번들의 운명은 뭐든 첫 테이프를 끊어야 할 때가 많다는 건데, 경우는 많이 긴장하는 성격이라 안타깝게도 1번에 제격은 아니다.

이갈이도 경우는 느린 편이다. 반 친구들 중엔 2개, 많게는 그보다 넘게 빠진 아이들도 있는데 경우는 이제 처음이다. 모두 알다시피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아프다. 게다가 친구들에게 들은 이빼기 무용담은 경우를 더욱 공포로 몰아넣었다.

그러다 경우의 귀가 번뜩 뜨인 사례는 나희의 경험이다. 나희의 조언은 '엄마한테 절대로 말하지 말 것'이다. 그러면 치과에 끌려가거나 억지로 빼게 될 테니까. 아주 많이 흔들릴 때까지 참고 오이랑 젤리를 먹으라고 했다. 경우는 나희의 조언을 실천하기 시작한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이 책은 한창 이 시기를 통과하고 있는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폭풍 공감을 주겠다. 난 올해 2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데, 어느날 이 빠진 자리를 보여주며 웃는 아이들의 웃음이 예쁘다. 급식 시간 사과나 배 조각을 어금니로 먹으려고 사투를 벌이는 모습은 정말 귀여움의 끝판왕이다. "엇, 이가 빠졌어요!" 하며 들고 나오는 일도 아주 드물진 않다. 그러면 티슈로 꼭꼭 싸서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준다. 부모님 꼭 갖다드리라고.^^ 2학년도 이러니 1학년은 이갈이 사연이 더 많을 것 같다.

이갈이는 생물학적 현상이니 지구인 모두에게 경험이 있을 터, 어른들이 읽어도 추억을 돋게 하는 내용이다. 특히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과대 두려움'에 휩싸여 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에겐 더더욱. 나도 어릴적 채 빠지지 않은 어금니 밑으로 영구치가 솟아올라 그게 무슨 큰 문제인줄 알고 한동안 불안에 시달린 적이 있었는데.... 문제는 그럴 때 절대 말을 못하고 혼자 끙끙대는 성격이다. 경우도 약간 그런 성격인 것 같은데, 첫 이갈이의 경쾌한 경험으로 조금 대범한 사람이 되어도 좋을 것 같다. 책을 읽는 독자 어린이들도.

"앞니 빠진 자리로 바람이 살랑 지나갔어."
크, 마지막 문장이 너무 적절하다.
이 책, 교실에 두면 인기 폭발일 것 같다. 굳이 소개 안해줘도 눈이 보배인 애들부터 읽고 나면 삽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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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러너
임지형 지음 / 상상스퀘어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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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나왔을 때 마침 학교도서관에서 구입도서 신청을 받길래, 옳다구나 하고 교사용 도서로 신청했다. 그리고 나서 약간 후회를.... 도서관 구입 절차는 한 달이 넘게 걸린다. 이번주에야 도착했다는 메세지를 받고 대출해와서 주말에 읽었다. 가독성은 최고였다. 300쪽이 넘지만 두시간이면 충분할 것 같다. 드라마 보듯이 편하게 읽으면 된다. 재미만 있다면 난 드라마보다도 책이 더 편하다. 아 그러고보니 이 책도 드라마로 나와도 괜찮겠다.

이 책을 쓰시는데 그런 전략을 쓰신 것 같지는 않지만 만약에 전략이라면 정말 탁월하게 세운 전략이다. 일단 러닝이라는 소재. 요즘 이거 안하면 대화에 못 낄 정도로 열풍이다. 그만큼 효과가 보이니까 그런 게 아닐까. 지금 사람들이 한창 신나있는 소재를 다룬 소설, 안 집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두번째는 30대, 미혼, 구직자라는 인물의 상황. 이건 같은 연령대를 당연히 끌어당길테고, 그 부모 세대 비슷한 나까지도 읽어보게 만들었다. 조금 앞두고 있거나 막 지나온 연령대도 재미있게 읽지 않을까? 말하자면 이 책에 끌릴 대상이 매우 폭넓다는 뜻이다.

지난 연휴때 하루 반짝 개었던 날에 난 안산 자락길을 걸으러 갔었다. 그 종착지가 바로 이 책에 자주 나오는 홍제폭포이고 그 하천이 바로 주인공 연희가 달리는 코스인 홍제천이다. 여기를 가봤던 건 이 독서를 위해 아주 좋은 일이었다. 가본 곳을 묘사하니 책이 훨씬 잘 넘어가고 실감났다. 폭포까페도, 거기서 고개를 약간 돌리면 보이는 물레방아도, 겨우 한 번 봤다고 반가운....ㅎㅎ 그러니 같은 홍제천 러너들에겐 엄청 사랑스러운 책이 되겠다.

작가님과 페친이어서 아는 바, 작가님 자신이 러닝을 몹시 사랑하는 사람이고 오랜 경험을 가진 분이다. 주인공의 연령대나 상황을 약간 바꾸었을 뿐 본인의 경험이 그대로 투입된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한다. 후반부에 가서 연희는 하프마라톤에까지 도전하게 되는데, 이또한 작가님의 경험이다. 연희는 시작이지만 작가님은 이미 그 단계를 지나 노련한 경력자라는 점이 다를 뿐.

지방대를 졸업하고 취업을 위해 서울로 올라와 '연희동'에 자리잡은 도연희가 화자이고 고교동창인 두 친구가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요즘 젊은 세대가 겪는 방황과 어려움의 표상이다. 그중 연희가 취업전선에서 가장 쓴맛을 많이 봤고 상처도 많다. 하지만 완전히 최악으로 끝나지 않는 것, 아무리 힘든 세대라 해도 희망을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책의 소재 덕분이다. <연희동 러너> 이 제목은 작가님과 연희를 동시에 지칭한다.

소설이지만 꽤나 실용적인 효과도 있다. 러닝에 대한 정보들이 자연스럽게 잘 녹아있다. 또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도 한없이 침잠해 들어가던 연희의 초기 상황과 심리 묘사도 매우 공감이 갔고, 때문에 연희의 떨쳐 일어남을 함께 응원하는 마음이 되었다. 연희의 구직 과정의 다양한 에피소드들도, 경험이 전무한 나에게는 참고가 됐다. (누군가들에게는 엄청난 공감이 되겠지) 우연히 만나 연희의 달리기를 돕는 지훈의 존재도, 살짝 피어나는 로맨스도 약간의 판타지 같지만 빠지면 아쉬운 필수요소라고 하겠다.^^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회사에서 맞닥뜨린 인간관계의 살벌함 또한 어떤 직장인이든 공감할 일이다. 그중 하팀장의 반전에도 공감한다. 드라마에서 많이 본 캐릭터 같아 기시감이 있으면서 애틋함도 생기는 캐릭터다. 사회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쉽게 믿어버려도 안되지만 섣불리 혐오해서도 안된다는 점을 다시 상기한다. 직장에서도 진정한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니까.

이 책은 몹시 건강하다. 달리기를 소재로 삼았으니 오죽하랴. 그런데 요즘은 어쩐지 건강한 이야기는 가벼운 이야기로 취급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인간사의 비참함과 인간 본성의 끔찍함을 보여주어야 높게 쳐주는...? 물론 그런 작품도 귀하다. 하지만 이렇게 읽고나면 기분좋은 의욕이 솟아나는 책이 어찌 안 귀할소냐. 이런 책도 수많은 문학 중에서 한자리에 반드시 꽂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독립한 아들이 오랜만에 와서 밥 먹인 후 이 책을 손에 들려 보냈다.
"이거 도서관 책이야. 담주에 꼭 가져와!"
이런 걸 일석이조라고 한다.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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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절한 땅콩 호텔 - 제2회 문학동네초승달문학상 대상 초승달문고 56
임고을 지음, 김규아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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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인지 아닌지 생각하는 고기오>라는 책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임고을 작가님이 문학동네초승달 문학상을 받으셨구나. <고기오....>가 신선하며 좀 난해(?)했다면 이 책은 훨씬 가볍고 경쾌하다. 하지만 공통적으로는 심오하다? 생각하기에 따라 많은 의미를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은 책들이다. 그런 책일수록 함께읽기에 좋다고 생각한다. 각자가 생각한 것을 나눌 때 훨씬 풍성한 감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함께 하는 걸(약속이 있는걸) 부담스러워 하는 나는 안하겠지만.^^;;; 그래서 리뷰라도 써본다.

요즘 우리 2학년은 <인물>이라는 교과서를 배우는데, 자신에게 영향을 준 인물을 소개하는 차시가 있었다. <참 고마운 인생수업>이라는 그림책을 읽어주고 같은 방식의 작은책 만들기 활동을 해보았다. 그중 아주 눈에 띄는 내용이 있었다.
"초롱이(이 아이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에게서 처음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어요."
고양이를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지는 차치하고.... 아니 이런 문장은 우리반 어린이들이 쓸 수 있는 표현이 아닌데?ㅎㅎㅎ 하지만 아주 가끔씩은 의외의 결과물이 나오는 법. 이걸 전체에 읽어주며 '순이는 고양이한테 처음엔 경계하는 것을 배웠군요. 그러다 믿음이 생기면 서로 사랑하는 것도요. 순이랑 초롱이처럼요."
그러자 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읽으며 순이랑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 책의 주인공은 땅콩호텔의 직원인 '너츠'이다. 귀여운 생김새를 보고 어떤 동물인가 했더니 햄스터였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 듯. 아이들은 귀여운 거라면 꺼뻑 넘어가니까.^^

땅콩섬의 유명한 관광지 땅콩산 국립공원이 안식년을 갖기로 했다. 그에 맞추어 땅콩호텔도 쉬기로 했다. 직원은 모두 너츠의 가족들이어서 들뜬 마음으로 세계여행을 떠나 휴가를 즐기기로 했다. 너츠만 남았다. 손님들이 모두 빠졌지만 '왕땅콩방'에 있는 장기투숙객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너츠는 만족한다.
"가족들의 잔소리를 듣지 않고, 혼자 조용히 지낼 생각에 가슴이 뛰었어요."
나랑 똑같은 캐릭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 천지 돌아다니는 것보다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을 좋아하는 것이. 하지만 완벽히 혼자인 걸 바라는 건 아니다. 나같은 경우는 그렇다. 완벽한 단절은 두려워하면서 연결도 귀찮아한다. 얍삽한 건가, 이기적인 거겠지...ㅠㅠ

드디어 혼자 호텔을 맡은 날이 밝았다. 그동안 너츠는 불친절하다며 가족의 구박을 많이 받았다. 가족들은 못미더워 수첩을 남기고 떠났다. 일종의 매뉴얼. 나름 친절한 직원의 역할을 잘하려 애쓰던 중, 드디어 한번도 대면한 적 없던 왕땅콩방의 투숙객과 만나게 되었다. 두려움과 신비감이 공존하던 그 의문의 투숙객은 의외로 작은 개구리였다. 이름은 폴짝 씨라고 했다.

두 주인공의 만남이 참 새롭고 신선하다. 기시감이 전혀 없는 이야기다. 고객과 직원으로 만난 주인공들. 폴짝 씨는 오늘이 땅콩산에 갈 수 있는 마지막날인 걸 알고 등반을 서두르고, 넛츠에게 안내를 요청한다. 넛츠는 마지막이고 뭐고 간에 거기까지 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으나 계약조건에 있는 내용이라 할 수 없이 동행한다. ‘천절함’을 절대 잃지 않으면서.

넛츠의 고객 응대 모습을 보면서 요즘 ‘영혼을 빼려고’ 노력하는 직장인들의 풍속도가 떠올랐다. 나의 직장도 예외는 아니다. 괜히 영혼을 넣어 응대했다가 공격으로 돌아오면 그 상처는 회복하기 힘들다. 아예 영혼을 빼면 그나마 상처는 받지 않으니까, 알맹이 빠진 껍데기에 친절함만 덕지덕지 묻히고 일을 한다. 그 일이 즐거울 리 만무하다.

그런데 일을 하다보면, 내 안에 눌러놨던 영혼이 고개 들어 꿈틀거리는 걸 느낄 때가 있다. 아니 내가 느낄 사이도 없이 저절로 그러고 있을 때가 있다. 그때는 매뉴얼이고 주의사항이고 없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일일 뿐이다. 기름바른 장어처럼 미끈하게 빠지지 않은 모습일 수 있다. 그런데 그게 마음을 움직이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상처받으면 더 두꺼운 껍질을 쓰게 된다. 그 껍질에는 친절이라는 채색이 되어 있다. 하지만........

우리반 아이가 고양이에게 배웠다는 것처럼 어쩌면 ‘경계’는 필요할 것이다. 너무 열어놓은 사람도 나는 썩 편하진 않더라고.... 하지만 끝까지 닫힌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무엇을 해도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이 책은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가 아니다. 그 과정을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읽도록 하자. 귀엽고 상큼하고 흐뭇하고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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