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국보 : 상·하 세트 - 전2권
요시다 슈이치 지음, 김진환 옮김 / 하빌리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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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 읽고 영화까지 봤다. 리뷰가 책 리뷰가 될지 영화 리뷰가 될지 잘 모르겠다.^^;;; 먼저 알게 된 건 영화인데, 상영시간이 3시간이나 된다고 해서 망설이고 있다가, 도서관 신간코너에서 책을 발견하는 바람에 “둘 다 보자!”가 되어 버렸다. 휴가중이라 가능했다. 책이 상하권 합하면 750쪽이 넘는다. 게다가 영화도 길지, 난 능력자가 아니라서 이런 감상은 시간이 많아야 가능하다. 결과적으로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보냈다.

주인공 키쿠오의 소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긴 시간을 담았다. 그의 일대기라 할 수 있겠다. 그는 나가사키에서 야쿠자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폭력에 목숨을 잃는 장면을 목도한다. 난 솔직히 책과 영화 모두 이 장면을 보면서 혀를 찼는데.... 일본 영화나 우리 영화나 조폭 얘기가 나오면 혐오의 감정이 끓어오른다. 법보다 주먹이 가깝다고, 기껏해야 주먹질 칼질 도끼질 밖에 못하는 것들이 예쁜 여자 옆에 끼고 부하들 거느리고 떵떵거리며 폭력으로 얻은 돈과 권력을 휘두르는 꼬락서니라니.... 키쿠오 아빠도 솔직히 마찬가지지. 멋진 척 해봤자 조폭이 조폭이지 뭐. 그쪽 파의 신년회에서 소년 키쿠오는 가부키 춤을 선보이는데, 그때 당대 최고 배우 한지로가 초청받아 참여했다가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감탄한다. 그것도 잠시, 다른 파의 습격을 받아 잔치 자리는 난장판 피바다가 되고.... (아 역겨워) 아 그리고 걔네들 역겨운 짓의 최고봉 있잖아. 작두랑 신체 절단. 진짜 지구 최고 욕을 해도 모자란다. 책에는 좀 나중에 이 장면도 나온다. (영화에는 다행히 안 나왔다.) 인간은 어떻게 두면 그렇게 폭력을 자행하게 되는 걸까. 나도 내 안의 폭력성을 느낄 때가 있다. 말하자면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라고 하겠는데, 나처럼 쫄보는 그걸 발현하지 못하고 겁대가리 없는 인간들은 발현하고 그러는 걸까? 인류의 역사가 폭력의 역사, 전쟁의 역사, 피의 역사였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금씩은 나아지고 있는 걸까.

사실 이건 이야기의 발단에 불과하니 이렇게 길게 말할 것도 못되는데 내가 너무 혐오하다 보니 흥분했다....ㅠ 이렇게 해서 아버지를 잃고 모든 기반을 상실한 소년 키쿠오는 그날 함께 있었던 한지로 가문에 맡겨져 오사카로 오게 되고 가부키 연습생이 된다. 여기서 ‘가문’이라는 말은 중요하다. 당시 가부키는 세습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가문에는 이미 수련을 받고 있는 친아들, 슌스케가 있었다. 둘의 경쟁 관계, 긴장 구도는 작중 피할 수 없는 설정이다. 하지만 그보다도 그들은 형제처럼, 친구처럼, 동료처럼 자랐다. 그들의 인생인 가부키를 함께 수련하며. 키쿠오가 맨처음부터 맨마지막까지 나오는 제1주인공이라면, 슌스케는 그보다 조금 뒤에 나오고 조금 먼저 사라지는 제2주인공이다. 난 그냥 그들 둘이 투톱인 이야기로 읽고 싶었다. 그렇게 봐도 무리는 없겠다.

여기서 가부키 얘기를 좀 해보면, 나는 사실 일본의 전통 예술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고 가부키도 그 여장 배우의 모습이 일본 디자인에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익숙한 정도다. 영화를 보며 그 뛰어난 영상미에 매료되었지만 솔직히 그 장르 자체의 매력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다만 여기서는 가부키라는 장르보다도 예술(무대예술) 그 자체를 다룬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예술을 향한 열정, 그 아름다움은 어디까지인가. 그건 인생 전체를 걸 만큼 그렇게 소중한 것인가.

사라져가는 장르의 예술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배우들을 보면서, 이 책의 타케노처럼 쉽게 말할 수 있다.
“가부키 배우라는 사람들은 이런 지루한 공연을 진심으로 대단한 작품으로 생각하고 있는 거냐고. 억지로 그렇게 믿고 있는 거 아니냐고.” (상권 167쪽)
(이렇게 말한 타케노는 뒤로 갈수록 달라진다)
솔직히 가부키는 잘 몰라서 생각조차 안해봤고 그 외 시들어가는 예술 장르에 대한 나의 평소 생각도 저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는데.... 이 대목을 읽으며 생각도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로는 전통적 기능을 전수받은 이들이 그것만 고집하지 않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것 또한 생존의 욕구이며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도 한다.

그 둘이 무대에 데뷔하는 날, 한지로 씨가 격려한 말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그동안 하루라도 연습 쉰 적 있었니? 네가 무대에서 춤동작을 까먹어도, 네 몸이 알아서 춤을 춰 줄 거야.” (상권 181쪽)
나는 평생 무엇을 이렇게까지 수련한 적이 없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들의 삶은 그 깊이가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할 자신은 없고, 부럽기는 하고.^^;;;

둘의 필연적 갈등이 떠오른 것은 한지로 씨가 부상으로 무대에 서지 못하게 되었을 때였다. 그의 대역을 당연히 아들이 하게 될 거라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한지로 씨는 키쿠오를 지명했다. 재능이 피를 이겼다고 볼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때 못나게 굴지 않는 슌스케의 대응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그는 계속 버틸 수는 없었나 보다. 어느 날 편지 한 장을 남기고 잠적해 버렸고 지방을 떠돌다 10년이 지나서야 다른 가문의 명배우 눈에 띄어 다시 중앙으로 떠오른다.

이렇게 둘의 운명은 계속 교차하며 롤러코스터를 탄다. 전화위복이 되었다가, 전복위화가 된다. 칭찬과 갈채를 받는가 하면 억울한 비난으로 매장되기도 한다.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 그들도 청년기를 지나 중년에 이른다. 그래도 여장 배우로서의 아름다운 선을 유지하는 게 참 놀랍다. 작중 가장 흐뭇하고 안정된 시기는 그들이 함께 무대를 만드는 콤비 시기였다. 영화도 이때의 영상이 참 멋지다.

그러나 행복은 늘 왜 길지 않은가.... 슌스케에게 닥쳐온 고난. 마지막까지 무대에 서고자 하는 그의 집념을 뒷받침해주며 알맞은 상대역을 해준 사람은 키쿠오. 영화에선 그 마지막 무대에 많은 관객들이 울컥하며 가슴을 부여잡았을 것 같다. 때론 갈등했지만 둘은 정말 아름다웠다. 훌륭한 배우의 자식과 제자는 그렇게 마지막까지 함께 했다.

3시간이나 되는 영화의 마지막은 키쿠오의 노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잘생긴 배우라서 머리만 하얗지 얼굴은...^^) 후반부로 갈수록 책과 영화는 많이 달라진다. 특히 키쿠오가 젊은 시절 만났던 요정의 게이샤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딸 아야노에 대한 서사가 많이 다르다. 공통점이 있다면 딸이 상처받은 시점이다. 그가 신사에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딸이 뭘 기도하냐고 묻는데 그때 그는 “기도가 아니라 악마와 거래를 했다.”고 대답한다.
“가부키를 잘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어. 일본 제일의 가부키 배우가 되게 해주세요 라고. 그 대신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영화에선 이 장면에서 딸의 얼굴에 웃음기가 사라진다.

이와같이 이 작품에선 주인공들이 인생을 바쳐 (어쩌면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바쳐) 예술을 추구한다. 예술이란 뭐길래 그럴까.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막이 내린 무대에서 키쿠오가 눈물을 흘리며 내뱉은 “아름답다...”라는 말이다. 그래 예술을 아름다움이랑 동의어로 봐도 좋겠다. 아름다움이란 그렇게도 가치가 있는 것이겠지. 때로 그들은 그 안에 갇힌 불쌍한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책에서는 그를 비단잉어로 비유한 부분이 나오는데 비유가 절묘해서 그 심정이 이해되었다. 갇힌 비단잉어. 하지만 그 잉어는 스스로 자유를 찾는다.
“꺼내 줘 꺼내 줘 하고 꼬리지느러미를 흔들며 몸부림을 치는데 모두가 알아채지 못하고, 아니 모두가 모르는 척을 하고 가만 내버려두었던 그 잉어는, 어느새 그 작은 수조 속에서 맑은 강물을 상상하기 시작했던 거겠지요. 맑은 그 강물에서 마음껏 헤엄치기 시작했던 거겠지요.” (하권 336쪽)

[예술 안에 갇힌 그들이 예술 안에서 자유를 얻다.]
영화평론가는 아니지만 이걸 나의 한줄평으로 삼겠다. 별점은 4.5점!^^

사족 : 책이 재밌고 지루할 새가 없는데 나한테는 쭉쭉 나가진 않았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방대한 서사이다보니 등장인물이 많은 편인데 일본 이름들은 왤케 헷갈려...^^;;; (이중 많은 인물들이 영화에선 생략되기도 했고 얼굴과 같이 나오니까 책처럼 헷갈리진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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