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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신
한윤섭 지음, 이로우 그림 / 라임 / 2025년 11월
평점 :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있다. 이 책은 제목에서부터 그런 느낌을 풍기고, 내용 또한 그것을 향해 독자를 집중시키는 책이다. 은근슬쩍 웃기면서 한자락 보여주고 지나가는 방식이 아니고 아주 정면으로 다룬 책이라고 할까. 희곡과 동화로 왕성하게 이야기를 펼치시는 한윤섭 작가님의 책이라 더 기대하게 만드는 책.
"이야기의 시작은 우주의 시작"이라는 작가의 시각에 나도 동의하고, 누구나 이야기의 씨앗을 갖고 있다는 이 책의 주제에도 공감한다. 어찌보면 '쓸데없는' 일 같아 보이는 그 '이야기'가 사실 인간의 본질에 가장 가깝게 있으며 결국 쓸데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다다른다. 물론 그걸 직업적으로,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사람들은 따로 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재능을 가지면 안되니까 말이다. 프레드릭이 있고 다른 쥐들이 있었듯이. 그러나 그게 프레드릭의 전유물은 아닌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같은 평범인들에게도 모두 해당되는, 바로 '이야기'!!
이 책은 액자 형식인데 바깥쪽은 아주 얇고 안의 이야기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안쪽과 바깥쪽을 연결하는 매개는 <이야기의 신>이라는 책이다.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제목이 손글씨로 쓰여 있고 속이 빈 책이었다. 노트라고 부르는 게 더 적합할 듯한. 여백은 채우는 사람의 몫인 것이다. 누구든 그 여백을 채울 수 있다. 이 책의 '나'는 열두살에 동네 놀이터 벤치에서 할머니를 만났다. 이 책을 보게 됐고 할머니에게 이끌려 할머니와 주고받듯 이야기 만들기를 경험하게 된다.
초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도 이 '이야기 만들기'가 들어있다. 작년 4학년 때도 한 단원이 통째로 창작 단원이었는데 2학년으로 와 바뀐 교육과정을 보니 마지막에 '나도 작가'라는 단원이 있다. 2학년 수준에서는 '뒷이야기 이어 짓기' 정도로만 나와 있지만 전체 창작도 해볼까 생각하고 있던 중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쓸 데 있는 생각만 하면 너무 재미 없을 거야. 아무 것도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겠지. 쓸데없는 생각은 상상으로 가는 문이야." (66쪽)
이 말대로라면 어린 아이들이 더 쓸데없는 생각을 잘하고 상상력도 풍부하니 이야기도 더 잘 만들어낼 수 있다.^^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모르겠다는 아이에게 해준 할머니의 설명이 내겐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대부분 아주 작은 점처럼 나타나. 그 작은 점이 나타나면, 집중을 해서 그 점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거야. 그러면 작은 점이 어느 순간 폭발하는 거지. 우주의 빅뱅처럼. 이야기도 똑같은 원리야." (27~28쪽)
그 점은 낱말 하나일 수도 있고 한 문장일 수도 있고 그림의 한 장면일 수도, 꿈의 한 장면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나도 살면서 저런 빅뱅의 체험을 못해 보았지만, 아이들을 인도해갈 수는 있지 않을까 욕심이 나기 시작한다.^^
4학년 이상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불씨를 당긴 후 시작하면 참 좋을 것 같다. 혼자서도 그렇게 할 수 있길 작가님이 바라고 쓴 책 같은데, 함께 읽기를 한다면 훨씬 더 쉽게 재미있게 서로의 이야기를 공유해가면서 이야기에 다가갈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AI 생각이 나네.... 난 일부러 피하듯이 한번도 해본 적이 없는데, 몇가지 설정해주고 지시하면 아주 그럴듯한 창작품이 튀어나오는 세상이잖아. 문학도, 음악도, 미술도.... 이런 세상이 좋은 세상이야? 난 모르겠어. 아닌 것 같아.... 그래서 AI 수업 연수에서 이런 창작 관련 도구들을 소개해주시고 결과물을 보여주실 때 난 단번에 거부감이 들더라구. 뻔지르르하면 뭐하냐. 걔 머릿속에서 나온 게 아닌데. 더 무서운 거는 그게 본인의 능력이라고 착각한다는 거야. 깡통이 속에 꽉 차있다고 착각하는 거랑 똑같지 않아?
모르는 소리 말라고, 그렇게 시대에 뒤떨어져서 어쩌냐고 걱정한다면 괜찮아, 나 이제 낼모레 퇴직 할거거든. 내가 계속 남아있다면 이런 책 같이 읽고 연필로 종이에 글을 쓸 거야. 그중에 하나 골라 도화지를 접어 장면마다 그림도 그려넣어서 그림책도 만들 거야. 그걸 집에 가져가면 엄마가 바로 재활용박스에 넣어버릴 지도 모르지만.... 이렇게 시대가 가는 건가... 그럼 그때도 '이야기'는 소중한 것일 수 있을까. 모르겠네.... 오늘 리뷰는 이렇게 모르겠다로 마쳐야겠네.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