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으로부터 학교를 구하라 - Save the School
왕건환 외 지음 / 에듀니티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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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직 26년을 겪은 나는 비교적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아직 학급에서 학폭사건이 발생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정도면 경력과 무관하게 세상물정 모르는 애송이라고 할 수 있다. 학폭은.... 모든 걸 체험케 한다. 모든 쓴맛을. 자괴감을, 죄책감을, 모멸감을, 무능감을. 절망감을.

겪지도 않은 주제에 어찌 말하냐 묻는다면 살짝 맛을 봤다고 하겠다. 고학년을 맡았던 어느 해 1년간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학폭이 될 수 있던 사건들도 많았고 그 중 두 건은 실제로 학폭 문전에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니 실제 절차의 경험은 없지만 느낌은 안다. 이 책이 나온다는 소식이 반가웠고,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나갔다.

학폭에 있어 학교의 무능력과 안일함과 형식주의가 질타의 대상이 되곤 한다. 물론 나를 비롯한 교사들의 부족함이나 미숙함이 있었다는 걸 무조건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문제는 그럴 수 밖에 없는 구조가 짜여져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 학폭법이 있다.

이 책의 1,2장은 이런 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읽어보시면 학교 밖의 분들도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내겐 너무나 절절히 다가왔다. 나의 경험과 함께 몸서리치게 공감한 부분을 몇 군데 적어보겠다.

- 미성년인 학생들에게 행동에 대한 책임이란, 응당한 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교육적, 심리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그 안에서 타인에게 입힌 피해에 대한 반성과 책임있는 행동을 이끌어가야 한다. [46~47쪽]
: 정말 드물게 공감능력과 도덕성이 전무한 아이를 만나기도 한다. 지능적으로 남을 괴롭히는 못된 녀석도 있다. 이런 아이들에게 잘못을 깨우치는 방법은 "아, 잘못하면 나한테 손해구나."를 느끼게 하는 방법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하지만 이건 드문 경우다. 그보다 많은 경우 아이들은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 판단의 결과를 후회한다. 이런 경우 응보적 처벌이 바탕인 학폭절차는 맞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 교육하고 바른 사회적 기술을 가르치는데 걸림돌이 된다.

- 화가 나고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과 마음이 안정되고 차분한 상태에서 선택한 것이 같을 수는 없다. 오늘날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진 결정적인 원인도 우리 사회가 몹시 흥분한 상태에서 대책을 결정했기 때문은 아닐까. [57~58쪽]
: 집단이(사회가) 흥분하는 경우가 종종(아니 자주) 있는 것 같다. 그렇게 결정한 것들에 대해 지적하거나 난색을 표하면 집중포화를 맞게 되어 있다. 교사들이 그런 꼴이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말하지 않고 있을 수가 없다. 그 빗나감과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게 된 이유라고 하겠다.

학교폭력을 처벌 위주로 대처한 결과는, 걸리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유도한다. 또한 걸리더라도 처벌을 피하기 위해 절대 잘못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막무가내식 대응을 낳기도 한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가해학생을 지목해 처벌하는 방식이 가해학생 학부모의 자식 보호 본능을 무한 자극한다는 점이다. [62~63쪽]
: 물고 늘어지는 가해학생 측의 태도에 분노가 일 때도 있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한 대응을 조장하는 면이 학폭절차에 분명히 있다. 그러니 학부모들은 극도로 날카로워지고 교사를 갈아마실 기세로 이빨을 드러내기도 한다. 아니면 법조 브로커의 유혹에 넘어가거나.ㅠ 이쯤되면 교육은 포기될 수밖에 없다. 교사는 다른 아이들이라도 지키자는 생각으로 힘을 내려 하지만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평상심을 유지하기 어렵다.

- 학폭 사안을 매뉴얼대로 처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행정사무관, 교사, 판사, 상담사, 민원 접수 역할 등 수없이 많은 역할을 동시에 요구받는다.... 실제 재판에서 판사는 판결만 하면 된다. 그는 원고, 피고와 함께 생활하지 않는다. 하지만 교사는 재판을 하면서도, 판결이 내려진 후에도 이들과 함께 계속 생활해야 한다. 그것도 교육을 하면서 말이다. [77~78쪽]
: 이 대목이 왜 이리 공감이 될까? 학급에 피해자 가해자란 단어들이 떠다니기 시작하면 교실은 금세 흉흉해진다. 분노와 두려움, 견제와 눈치보기로 팽팽한 교실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괴로움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3장은 <학교폭력, 예방이 최선이다>라는 주제로 예방책들을 다루고 있다. 모든 교육적 방법을 다 동원한다 해도 아이들 간의 갈등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는 없다. 인간이란 것이 원래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시스템과 분위기를 잘 만들어 놓으면 위험성이 훨씬 줄어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 장에서는 그런 프로그램을 학급단위와 학교단위로 나누어 간단히 소개한다. 자세히 소개하자면 이 부분만 가지고도 책 몇 권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상세한 내용은 책을 소개하는데 그친 부분도 있다. 학급긍정훈육법이나 학급운영시스템 같은 책들이다. 그리고 좀 더 강조된 내용은 '평소 신뢰구축을 위한 교사의 수고'가 아닐까 싶다. 신뢰와 호의가 구축되어 있으면 두려움에 따른 본능적인 감정보다 훨씬 성숙한 감정으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대개는 그렇다. 백약이 무효한 경우도 물론 있지만.

4장에서는 학폭 문제해결을 위한 절차들을 제안하고 있다. 학폭법의 최대 문제는 사안별로 적당한 단계의 문제해결 방법을 찾지 않고 일괄 학폭위가 담당하게 한 데에 있다. 학폭위는 분명 필요하긴 하다. 학폭위가 다뤄주어야 할 문제를 학생 개인에게 맡기고 방치했을 때 자살 같은 문제가 일어날 위험성이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보다도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줘야 하는 단계의 문제조차 학폭위에서 다루어 교육은 실종되고 사법적 처리와 감정의 앙금만 남게 되는 경우가 더 많아 문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학교문제 전담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이 기구는 문제를 접수하고 문제의 종류와 정도를 확인하여 문제해결 방법을 결정하는 역할을 주로 한다. 즉, 학급/학년에서 해결할 문제인지, 학폭위에서 다룰 문제인지, 그이상의 문제인지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만 되어도 해당 사안도 되지 않는 일에 아이들이 서로 상처받고 화해의 가능성이 차단되며 학부모들은 원한을 품고 교사는 피를 짜내는 지금과 같은 경우는 훨씬 줄어들 것 같다. 이부분 심도있게 논의되고 변화가 있었으면 한다. 그 외 학급/학교의 문제해결 방법을 세밀한 단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제 교사는 수업을 잘하는 것 외에 공동체를 평화롭게 세우는 기술을 필수로 가져야 할 것 같다. 나름 노력하고는 있지만 정말 부담스럽고 마음이 무겁다. 이건 어느 해에는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아도 저절로 되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건강에 문제를 겪을 정도로 애간장을 끓여도 잘 안된다. 그래도 일차적 노력과 변화의 주체는 학교이며 교사라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겠다.

마지막 5장에는 다양한 제언들이 나온다. 학폭의 현장은 학교인 경우가 물론 많지만 그렇다고 학폭의 책임이 학교에만 있다고 몰아붙이는 건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회적 원인을 함께 찾아야 한다. 또한 교사로서 본연의 역할을 전혀 할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과중한 학폭업무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만 해도 생활부장을 2년 연속 하는 경우를 보지 못했다. 올해는 젊은 여부장님이 맡아 꼬챙이처럼 말라가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며 마음이 아팠다. 이래서 될 일이 아닌 것을....ㅠ
교장의 역할에 대한 제언도 나온다. 외국의 경우는 수업하는 교사와 이런 문제는 보통 분리되며, 생활지도와 학부모상담을 교장이 맡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교장만 다른 세상에 있다.(보통 교감까지는 사안처리로 고생하기도 한다) 이런 역할 재분배도 합의를 통해 바꾸어가야 할 부분이다.

쓰다보니 다른 때보다 긴 서평이 되어버렸는데, 아직도 다 말하지 못한 느낌이다. 학폭법은 정말 이대로 두어서는 안된다. 때맞추어 이런 고민이 담긴 책이 나온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 동력으로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길 기대해본다. 교사들은 평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평화의 기술을 갖춘 학생들을 길러내는데 최선을 다하되, 제발 잘잘못을 캐고 증거를 잡고 증언들을 대조하고 속임수를 까발리고 정죄하는 일이 업무가 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이걸 하던 그 해 교직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다.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학폭의 문제 안에 교육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문제와도 연결되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문제의 표출이 학폭이라 본다면 과한 생각일까. 이 책으로 깨어난 문제의식이 집단지성의 힘으로 결실을 보길. 그걸 보고 퇴직할 수 있다면 아쉬움이 훨씬 덜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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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 손수건, 포포피포 철학하는 아이 8
디디에 레비 지음, 장 바티스트 부르주아 그림, 김주경 옮김, 이보연 해설 / 이마주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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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아이'라는 이 시리즈를 두 권째 읽는다. 첫번째 읽은 것은 <오, 멋진데!> 였다. 둘 다 짧은 글 안에 강한 상징과 비유가 들어 있어 그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풀며 이야기를 나눠보면 재미있을 것 같다.

첫번째 읽었던 <오, 멋진데!>에 나타난 비유는 아이들이 스스로 풀기에 조금 어려울 수도 있겠고,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이 전개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거기에 비해 이 책은 무엇을 말하려는지가 명확해서 가려는 방향은 한 곳으로 정해진 느낌이다. 그것은 "거짓말의 노예가 되지 말고 잘못을 인정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라." 라는 메시지다. 그런데 거짓말 손수건이라는 소재가 거짓말의 속성을 매우 실감나게 상징하고 있어서 이 부분에 공감하다 보면 나눌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기도 하다.

클로비는 거실에서 축구공을 가지고 놀다가 엄마가 아끼는 하마 도자기를 깨뜨려 버렸다.
클로비는 그 조각들을 얼른 쓸어모아 손수건으로 쌌다. 나중에 손수건을 꺼내보고 깜짝 놀랐다. 깨진 조각들은 손수건에 무늬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잘못을 은폐한 클로에는 같은 목적으로 손수건을 계속 써먹는다. 먹기 싫은 껍질콩을 몰래 감추기, 망친 시험지 점수 지우기 등... 거짓말들은 손수건에 무늬로 흔적을 남기고, 회를 거듭할수록 손수건은 점점 커져 감당하기 어려울 지경이 된다. 마침내는 클로비를 휘감고, 어딜 가나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참다 못한 클로비는 소리친다. "너 때문에 숨 막혀. 가 버려! 사라지라고! 내가 거짓말한 거 다 털어놓고 썩 꺼지란 말이야!"

이후 손수건이 제 모습을 찾는 결말을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은 단순하고 선명하다. 하지만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눈덩이처럼 점점 커지고, 올무가 되어 자신을 옭아매는 것을 이토록 실감나게 표현한 책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면에 '거짓말'에 대한 문제나 고민을 가져보지 않은 사람은 드물 터, 거짓말의 속성에 대해서 함께 느끼고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다.

거짓말을 하는 이유도 여러가지다. 클로비처럼 잘못을 감추기 위해서인 경우가 가장 많은 것 같고, 하기 싫은 일을 피하기 위해서, 금지된 것을 하기 위해서, 혹은 인정받고 싶어서 하는 거짓말도 있다. 이 모든 이유의 뿌리에 '두려움'이 있다. 각자가 가진 두려움이 무엇인가? 이것을 안다면 스스로 극복할 때도, 주변에서 도와줄 때도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 생각한다. 이 책은 그런 성찰에 실마리가 될 수 있겠다.

거짓으로 숨지 말고 용기있게 현실을 직면하기, 그리하여 떳떳한 자기 삶을 살기! 나를 비롯한 누구에게나 쉽지 않은 인생의 과제일 것이다. 아이들이 각자의 두려움을 떨치고 이런 용기를 가지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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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마트 구양순 여사는 오늘도 스마일 어린이 나무생각 문학숲 1
조경희 지음, 원정민 그림 / 어린이나무생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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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카트>의 동화버전이라 할까. 둘다 배경이 마트이고 주인공들은 거기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이라는 면에서 유사하다. 하지만 약간은 결이 다르다. 이 책은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잘 보여준 책이라 할 수 있겠다. 눈물겨움이 있지만 재미와 재치도 있다.

그 사회의 천박함의 수준을 보려면 구성원들의 갑질의 수준을 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아주 부끄러운 수준이지...ㅠ 거기에 기름을 끼얹은 것이 이 표어라고 생각한다. "고객은 왕이다."
왕이라는 봉건시대의 존재를 갖다붙인 것부터가 시대착오적이다. 한쪽이 왕이면 한쪽은 뭐란 말인가? 우리에겐 각자의 소임에 맞는 역할과 의무가 있을 뿐이지 인간에게 위아래는 없다. 저 표어부터 당장 폐기해야 한다.

주인공 구양순 여사는 화자인 태양이의 엄마다. 행복마트의 고참 계산원이지만 여전히 1년 단위의 비정규직이다. 행복마트의 사장님은 바로 저 표어(고객이 왕이다)를 신조로 삼고 있는 사람. 직원들에게 철저히 친절교육을 시키고 폴더인사를 시킨다. 문제는 친절 차원에서 끝나는게 아니라 모든 것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블랙컨슈머의 가당찮은 갑질에도 모든 책임을 직원에게 돌리며 친절교육을 강화할 뿐이다. 이 와중에 직원들의 가슴은 썩어 문드러져 간다. 감정노동이 얼마나 어려운지 절절히 느낄 수가 있다.

언제부터인가 학교에도 이 표어가 스며들어오며 학생과 학부모를 소비자의 위치에 놓기 시작했다. 즉 학부모는 화이트컨슈머 아니면 블랙컨슈머인 셈이고, 이중 블랙컨슈머가 맘먹고 갑질을 하면 한 학급 말아먹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그래서 이젠 교사들도 감정노동자의 범주에 넣는다. 그러나 실제로 블랙컨슈머는 비율면에서 그리 많지는 않다고 본다. 문제는 그게 통하는 사회라는 것.

오늘 나도 마트에 갔다. 이것저것 사고 줄을 섰는데 앞 고객의 계산이 아무리해도 끝나질 않았다. 알고보니 계산대의 컴퓨터가 오류가 난 것이다. 죄송하다며 다른 계산대로 옮기라고 하는데, 계산대마다 줄이 길어 또 기다려야 했다. 난 미간에 주름을 잡으며 물건들을 다시 담아 다른 줄에 섰다. 근데 여기도 마찬가지였다. 직원들이 우왕좌왕했다. 전체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듯.... 이럴때 어떤 나라 사람들은 괜찮으니 천천히 하라며 웃어준다던가.... 근데 난 못참고 한마디를 던졌다. "해결이 되나요? 안되나요? 기다려요 말아요?"
그러자 직원 한분이 마이크를 잡고 조금만 더 기다려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는 줄에서 빠져나와 상품들을 제자리에 다 돌려놓고 나와버렸다. 아무데나 던져놓고 나온 것도 아니니 나도 아주 나쁜 고객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속으로 은근히 놀랐다. 이 상황에 아무도 화를 내거나 큰 소리로 불평을 하지 않더라는 것. 내가 젤 나쁜 고객이었다. 이 책을 읽고 갔는데도 말이다.ㅎㅎ 그러니 블랙컨슈머가 많아서 문제라기보다는, 그들의 가당치 않은 행위를 근절할 의지가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닐까 한다.

마트에서 구양순 여사와 동료들의 일이 이야기의 한 줄기라면, 태양이와 모둠 친구들이 '노동'이라는 주제의 모둠과제를 하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줄기다. 이 두 줄기는 합쳐지는데, 모둠 친구들이 취재차 행복마트를 방문한 것이다. 여기에서 아이들은 많은 것을 깨닫고 훌륭한 발표를 한다. 특히 블랙컨슈머와 삼진아웃제에 대한 역할극이 많은 호응을 받았다. 고객의 권리가 중요한만큼 직원도 존중받을 수 있어야하며 도를 넘어선 행위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

막다른 곳에 이른 직원들은 "우리는 일회용 종이컵이 아닙니다." 라는 구호가 적힌 노란조끼를 입고 투쟁하며 일을 하게 되는데, 노사협상이 잘 해결되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동화다운 무난한 결말이라 하겠다. 악랄하던 사장이 선선하게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나, 고객 직업체험행사로 역지사지를 하는 부분은 현실과는 좀 멀어보였지만, 이 정도만 보여줘도 아이들에게는 많은 생각거리가 있을거라 본다.

몇년 전부터 나는 "진로교육은 곧 노동교육이 아닐까"를 생각해 왔다. 모든 아이들이 연예인이나 운동선수, 바리스타나 요리사가 되진 않는다. 그리고 어떤 직업이든 기본적으로 하기 싫거나 괴로운 일도 참고 해야만 한다. 즉 남의 돈 거저 먹는 법 없는 것이다. 그러니 어릴 때부터 직업을 미리 정하라 종용할 것이 아니라 모든 직업이 다 귀하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직업이 존중받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을 발견한 것이 매우 기쁘고 반가웠다.

[약간 옥의 티?] 동화의 시점이 좀 헷갈렸다. 분명히 태양이가 '나'로 서술하는 1인칭 시점인데 마트 장면에서는 전지적 시점이다. 태양이가 천리안을 가진 것은 아닐텐데 말이다. 장마다 다른 시점으로 썼나? 내가 그것까지 따지면서 읽진 않았고, 하여간에 읽으면서 읭? 했다. 물론 작품 안에 여러 시점이 혼재된 작품도 있을 수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매끄럽지 않아서 그 점이 좀 아쉽다. 그래도 내용이나 재미 면에서 정말 맘에 드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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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됐지? 창비아동문고 247
김옥 지음, 홍정선 그림 / 창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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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의 <동화 쓰는 법>이라는 책이 있다. 빌린지 한참 됐는데 안읽어서 그냥 반납하려고 도서실에 갔다가 책 뒤에 '이현 작가가 권하는 동화 100권'이 있길래 후다닥 훑어보았다. 읽은 책도 있고 제목만 아는 책도 있고 처음 보는 책도 있다. 그중에 도서실에 있는 책 몇 권을 빌려왔다.

김옥 작가는 남의 직업 부러워하지 않는 내가 부러워하는 유일한 직종에 있다. 바로 교사+작가. 초등교사 동화작가분들이 많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실생활에 가장 밀착되어 있으니 좋은 동화를 쓰기 유리하지 않을까? 지금은 퇴직하셨지만 송언, 원유순 작가도 초등교사였고 천재가 아닐까 의심되는 천효정 작가도 현직 초등교사다. 그리고 김옥 작가. 상당히 오래 작품을 쓰셨고 작품의 깊이도 뛰어나다. <축구 생각>은 저학년에게 권하고 <청소녀 백과사전>은 고학년에게 권한다. <그래도 즐겁다>도 재미있었다. 이 책은 처음 보았다. 이현 작가는 소개글에 이렇게 적어놓았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로 자라난 주인공에게 닥친 불행한 사고와 그로 인한 갈등 속에 종교를 화두로 던지는 동화. 교회에 다니는 어린이가 이렇게나 많은데, 어째서 종교에 대해 고민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는지 의아하다."

이 책이 그런 작품이란 말인가? 빌린 책들 중 가장 먼저 읽어보았다. 오랜 세월 익숙해진 교회의 의식과 행사들에서 작가와 동질감을 느낀다. 작가도 신앙생활을 오래 하신 것 같다. 한번쯤은 자신의 신앙적 고민이 담긴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가졌으리라 짐작한다. 자신의 내면을 꺼내놓는 것이 작품 아니던가. 하지만 대중의 공감을 많이 얻기는 힘들었겠다. 검색해보니 작가의 작품 중에서 판매지수와 평점도 낮고 리뷰도 대체로 부정적이다. "성장소설로서의 가치는 인정하나 종교적 색채가 불편하다"는 평들이 많았다. 그렇게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작가도 그 점은 감안하고 썼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작가의 마음을 느낀 나같은 독자도 있을 것이다.

기독교에서 '죄'의 문제는 핵심이지만 일개 성도인 내가 논하기엔 어렵다. 초등 고학년인 지효는 공교롭게도 한꺼번에 몰려온 여러가지 죄의식에 사로잡히게 된다. 마침 시작된 몽정과 자위행위, 위기상황에서 믿음을 부정했던 일, 부모님이 너무나 예뻐하던 동생 지민이의 사고와 죽음, 그 원인에 관련된 본인의 실책 등등.... 가족에게 고난과 고생은 끝도 없을 것처럼 이어지고 묵묵히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부모님이 답답해서 지효는 폭발할 것 같은 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이 과정에 정말 선생 같지 않은 선생(6학년 담임)도 나오고ㅠ, 딱히 악하게 굴진 않지만 힘든 지효 가족을 대하는 교회나 신도들도 그리 따뜻해 보이지는 않는다. 교회는 교회대로 그냥 굴러갈 뿐인 것.....ㅠ

그러나 작가는 이중에도 하나님은 일하시는 것을, 뭔가 상황과 환경을 극적으로 바꿔주시지 않아도 삶이 변하는 모습을 살며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고난과 고생과 고통이 사라졌으면 좋겠는데 그걸 싹 걷어가지 않으면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도무지 분별하기 어렵다. 이렇다할 고난을 겪지 않고 살아온 나는 고난의 의미를 더더욱 잘 모른다. 그 안에서 찾은 답이 정금일거라 짐작만 한다.

신도로서 더할 수없이 모범적이고 성실한 지효 아빠는 아빠로서는 빵점에 가까웠다. 이것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마지막에 변화가 있어 다행이지만.... 기독교 가정의 부모님, 특히 아빠들이 한 번 읽어보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회는 숲과 나무를 모두 볼 수 있는 시선을 간구해야 할 것 같다. 그 나무 안엔 '사람'이 있다. 그게 하나님의 시선이라고 믿는다.

"준비됐지?"
죄의식과 두려움을 떨친 지효의 날갯짓을 응원한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함께하실 하나님의 동행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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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기 돌려읽기책에 비문학으로 이 책을 넣을까 생각중이다. 이 책은 경제를 처음 접하는 어린이들에게 경제의 원리를 더이상 쉬울 수 없게 이야기로 풀어주는 책이다. 그런데도 처음부터 이 책을 고려하진 않았는데 그 이유는 경제 원리 그 이상의 것... (생각거리... 뭔가 선한 가치를 추구하는...) 그런 것들이 함께 들어있었으면 하는 욕심 때문이었다. 아 그러나 두마리 토끼를 잡기는 영 힘들다. 이정도 책이 나온 것도 아이들에게 읽히는 입장에서 매우 고마운 일이다.^^

일단은 쉽고 재미있어서다. 우리반 아이들 중 누구도 이 책을 어렵고 지루해서 못읽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경제 원리를 설명하기 위해 작가는 한 섬에 여러가지 일을 하는 주민들을 등장시켰다. '따로섬'이라는 이 섬에는 족장님, 꼬꼬아주머니(닭을 키움), 까까 군(이발사), 뚝딱아저씨(목수), 곰곰할머니(방앗간주인) 등등의 주민들이 산다. 이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경제활동을 하지 않을 수 없고, 독자인 아이들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경제 원리들을 하나씩 깨치게 된다. 물론 지금의 복잡다난한 세상에 비해 따로섬은 너무나 단순하고 작은 세상이지만 오히려 그 단순성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명확하게 다가갈 것 같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도 완전 '입문' 책이다. 4학년 우리반 친구들에게 딱 맞다.

첫 장은 이발사 까까 군이 의자를 구하느라 애를 먹는 모습을 보며 물물교환의 어려움을 파악하게 된다.
2장에서는 초기 화폐가 등장한다.(이 섬에서는 조개껍데기) 돈의 역할에 대해 배울 수 있다.
3장에서는 시장이 형성된다. 이따가 "12시에 광장에서 각자 물건을 가지고 만나요~" 그렇다면 광장은 시장이 되는 것. 경제활동을 편리하게 해주는 시장의 역할을 잘 보여준다.
4장에서는 무려 은행이 나온다. 튼튼한 창고를 갖고 있던 곰곰할머니가 그 역할을 맡는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저축, 대출, 이자 등의 기능이 생긴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 눈높이에서 '설명'이 아닌 '이야기'로 잘 전개되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5장에서는 가격을 다룬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오르내리고 형성되는 원리를 잘 보여준다.
6장의 키워드는 '선택'이라 하겠다. 동글아가씨는 거울을 사려다 충동적으로 반지를 사게 되는데, 결국 후회할 일이 생긴다. 말하자면 '합리적 선택'을 하지 못한 셈이다. 이 '합리적 선택'은 이번 교과서에서도 꽤 비중있게 다룬다. 교과서랑 꼭 연결시킬 필요는 없지만 자연스럽게 연결되면 더 좋은 건 사실.^^

7장에서는 따로섬에 회사(주식회사)가 생긴다.
8장에서는 멀리섬 사람들이 새로운 물건을 싣고 찾아온다. 즉 무역이 시작된다.
9장에서는 제품에 문제가 생기는 상황을 보여준다. 이때 소비자는 정당한 권리를 잘 행사해야 한다.

마지막 10장. 여기서는 물건이 생산되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과정, 즉 유통과정을 다룬다. 이 내용도 교과서의 중심주제다. 교과서에선 우리 주변의 상품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교류까지를 다루고 있다. 교과서와는 비슷한 내용도 있고 더 있는 내용도, 없는 내용도 있다고 보면 되겠다.

출간된 어린이 경제책들이 우리학교 도서관에만 해도 수십권이 넘는다. 상당히 어렵거나 깊이있는 내용으로 넘어간 책들도 많은데, 이 책을 처음 읽고나서 스스로 살펴보고 골라 읽으면 어떨까 싶다. 책들이 많아도 함께 읽을 책은 여러가지를 고려해야 해서 고르기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그래도 이 책이 나와서 걱정을 좀 덜어준 것 같다. 비문학이지만 아이들이 이야기책처럼 술술 읽을 수 있는 책. 쉽고 재미나게 쓰신 작가의 글솜씨도 뛰어난 것 같고, 그림작가가 유설화 님이라는 것은 특별한 보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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